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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에 드리는 말씀은 22년 전에 올렸던 글인데 당시에 사용하였던 도메인이 공짜로 쓰던 것이라 없어졌다가
웨이백 머신을 돌려서 찾은 글입니다. 말씀은 언제나 새롭게 감동으로 받아들이면 은혜인 줄 믿습니다.-dhleepaul
2002/09/02(19:44) from 218.156.18.251 | |
작성자 : 이덕휴목사 (dhleepauol@hanmail.net) | 조회수 : 273 , 줄수 : 42 |
축복받는 믿음
제목: 축복받는 생활
일자:2024.12.22. 주일 낮 예배
선포: 만나교회 담임 이덕휴목사
말씀: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살전 5:16-18/ 참고 빌4:4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 ).
찬양: 서로 사랑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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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찬양
- 들어가는 말씀
마9:14. 그 때에 요한의 제자들이 예수께 나아와 이르되 우리와 바리새인들은 금식하는데 어찌하여 당신의 제자들은 금식하지 아니하나이까
15.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혼인집 손님들이 신랑과 함께 있을 동안에 슬퍼할 수 있느냐 그러나 신랑을 빼앗길 날이 이르리니 그 때에는 금식할 것이니라
16. 생베 조각을 낡은 옷에 붙이는 자가 없나니 이는 기운 것이 그 옷을 당기어 해어짐이 더하게 됨이요
17. 새 포도주를 낡은 가죽 부대에 넣지 아니하나니 그렇게 하면 부대가 터져 포도주도 쏟아지고 부대도 버리게 됨이라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넣어야 둘이 다 보전되느니라
대개의 경우 결혼식은 모든 사람으로부터 축복을 받는 결혼이거니와 양가 부모는 물론 친지들도 모두가 기뻐하는 날입니다. 또한 사람이 죽어 장례를 하는 날은 모두가 슬픔을 겪는 날입니다. 우리가 일상을 살아가는데도 마치 결혼식날과 같이 기쁘게 사느냐 장례식 날처럼 슬프게 사느냐 하는 것입니다.
구약의 이스라엘에 금식하는 날은 하루 있었습니다. 모세가 전해준 말씀에는 대속죄일 금식입니다.
[레위기 23:27]말씀에는“일곱째 달 열흘날은 속죄일이니 너희는 성회를 열고 스스로 괴롭게 하며 여호와께 화제를 드리고”"On exactly the tenth day of this seventh month is the day of atonement; it shall be a holy convocation for you, and you shall humble your souls and present an offering by fire to the LORD.Source: https://bible.knowing-jesus.com라고 하여 7월10일이 대속죄일입니다. 이스라엘의 달력은 두 개입니다. 하나는 종교력이고 하나는 민간력입니다. 종교력 7월1일이 민간력으로 1월1일이 됩니다. 6개월 차이 나는데 이 달력은 농사 등을 위해서 만든 민간력입니다. 쉽게 말해서 그레고리 력이라고 하여 태양력입니다.
그레고리력(영어: Gregorian Calendar)은 현재 전 세계적으로 통용하는 태양력(太陽曆)으로, 1582년에 교황 그레고리오 13세가 이전 율리우스력을 개정하여 시행한 역법을 말한다. 율리우스력 계산법은 천체운행과 불일치함으로 간극이 발생했기에 이를 보정하기 위해서 새로운 역법을 만들었다. 그레고리력은 달 운동과 관계없이 태양 운행만 기준으로 한 태양력의 한 종류로, 이 역법 사용이 전 세계적으로 일반화한 시기는 20세기다.
스페인, 프랑스, 이탈리아 등은 1582년에 그레고리력을 채택하였고, 대부분 개신교와 정교회 국가는 정치·종교적 이유로 말미암아 기존 율리우스력 사용을 고수했다. 영국은 1752년, 일본은 1873년, 러시아는 1918년에 그레고리력을 채택하였다.[1] 대한민국은 1896년부터 그레고리력을 채택하였고, 서력기원(西曆紀元, AD)을 본격적으로 사용한 시기는 1962년부터다.[2][3] 현재까지 대한민국에서 사용하는 태양력 또는 양력은 그레고리력이다.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기원전 46년에 제정한 율리우스력은 1년 평균 길이를 365.25일로 보고 4년마다 하루를 추가하는 윤년을 두었다. 이는 천문학에서 1 회귀년 365.2421일보다 0.0078일(11분 14초)이 길어서 128년마다 1일 편차가 발생한다. 결국 이 편차가 1,250여 년 동안 누적되어 1582년에 이르자 부활절을 정하는 기준이 되는 춘분이 달력상 춘분인 3월 21일보다 10일 빨라지는 오차가 발생하게 되었다. 이 편차를 수정하기 위해서 그레고리력에서는 1582년 10월 중에 10일을 제거하고 이후에는 400년에서 3일(세 번 윤년)을 없애는 방법을 도입하였다.
민간력으로 1월10일은 대속죄입니다. 새해가 시작될 때 지난 해의 묵은 죄를 다 버리고 사함을 받고 새해를 새롭게 출발하는 것입니다. 원래 종교력으로 하면 7월10일이 됩니다. 태양력으로 9월 정도 됩니다.
대속죄일에 금식하며 괴로워하라고 되어 있습니다. 지난 죄를 회개하고 사함을 받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염소 두 마리를 성전에 몰고 옵니다. 그러면 제사장은 그 염소에게 안수하고 죄를 전가합니다. 한 마리는 잡아서 피를 뿌리고 번제로 드립니다. 한 마리는 아사셀이라 하여 먼 산으로 데리고 가서 풀어줍니다. 자유롭게 가라는 다니라는 뜻입니다. 죄에서 자유롭게 된 인간을 표현하는 것입니다. 아사셀(Azazel)은 "떠나다"("아잘")와 염소("에즈")란 말의 합성어로 "떠남". "보냄"의 의미인 듯합니다. 이스라엘의 죄를 속하기 위해 속죄일에 광야로 내보내지는(레 16: 8, 10) "속죄 염소(양)"의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원래 모세오경을 통해서 전해준 금식하는 날은 일 년에 이 날 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훗날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고 또 우상을 숭배하여 법죄하여 금식하는 날이 많아져서 예수님 공생애 시절에는 바리새인들이 일주일에 월요일과 목요일 이틀이나 금식하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그들이 회개하고 새롭게 되기 위해 금식을 했는데 세월이 지남으로 그들이 남에게 보이려고 금식을 하는 외식하는 신앙이 되었습니다.
오늘날에도 우리가 고난주간이 되면 성도들 가운데 금식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주님의 그 고난을 깊이 묵상하며 금식하며 죄를 회개하고 또 주님께 감사하는 시간을 가지는 것입니다.
본문말씀대로 우리의 신앙 생활도 혼인 잔치와 같이 기쁘고 즐겁게 하는 것이 정상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장례식에 참석한 사람처럼 어둡고 슬프게 신앙 생활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똑같은 신앙 생활을 하는데 왜 이런 차이가 나올까요? 각 사람이 처해있는 상황 차이 때문일까요? 물론 처해 있는 상황이 많은 영향을 미칠 것입니다. 그러나 상황보다는 그 사람의 마음 자세에서 많은 차이가 난다고 보는 것이 올바른 해석입니다. 왜냐하면 기쁘고 즐거운 삶을 사는 사람들은 어떤 환경 속에서도 기쁘게 확신있게 사는 것을 볼 수 있고, 힘들게 사는 사람들은 어떤 환경에서도 불평과 원망을 하며 인상을 쓰고 사는 것을 목격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한마디로 상황보다 그 사람의 마음 자세가 더 중요한 것입니다. 그래서 이 시간에는 우리가 혼인집 손님들 같이 항상 기뻐하고 즐겁게 신앙 생활할 수 있는 비결이 무엇인가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 오늘의 본문의 가르침은 기뻐하는 신앙생활입니다.
1. 하나님의 말씀으로 살아야 합니다.
우리가 항상 기쁘게 살 수 있는 한 가지 비결은 하나님의 완벽한 섭리를 믿고 궁극적인 승리를 확신하며 사는 것입니다. 저는 지난 8월 16일 숭실대학교 졸업식에 갔습니다. - 법학박사학위 수여식, 현재 중부대학교 경찰행정학과- 경00교수
그런데 졸업식장이http://kcm.co.kr/cymf/index.html"target="_blank">한경직목사 기념관이었기에 저로서는 그 목사님을 많이 생각하게 하였습니다. 실로 오늘 말씀가운데 그분을 소개하는 것은 저로서는 대단한 영광입니다. 먼저 그는 한국 기독교계의 원로목사님이자 복음신앙과 청빈한 삶으로 한국 교계에 큰 영향력을 끼쳤습니다. 이분이 간직한 평생의 말씀이
오늘 우리가 봉독한 데살로니가전서 5:16-18절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였다고 합니다. 이분은 98세까지 살면서 물질 문제나 정욕 문제로 전혀 잡음을 일으키지 않고 아름답게 인생을 마쳤습니다. 이분도 인생의 역경이 없었던 것이 아니었습니다. 젊은 시절에 미국에서 유학하다가 폐병에 걸려 생사의 기로에 있었습니다. 영락 교회를 개척할 당시 한국 교계에 많은 갈등이 있었고, 교회 내 에 후계자를 세우고 나서도 환난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일생동안 항상 기뻐하고 범사에 감사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의 섭리를 믿는 믿음 때문이었습니다.
사도 바울도 섭리를 믿는 믿음 때문에 어떤 역경 속에서도 기뻐했습니다. 그는 로마 감옥에서 빌립보 성도들에게 편지를 썼는데 그 편지에서 이렇게 강조했습니다.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빌 4:4) 그가 차디찬 감옥 속에서 자유가 억압된 삶을 살면서 어떻게 이렇게 기뻐하라고 강하게 권면 할 수 있었을까요? 그것은 하나님의 섭리와 궁극적인 승리를 믿는 믿음 때문이었습니다. 그는 복음은 전하다가 세상의 어떤 사람보다도 많은 고난을 겪었습니다. 고린도후서 11장에는 그의 고생담이 길게 나옵니다. 그는 옥에 갇히고 매도 수없이 맞고 여러 번 죽을 뻔하고 한 번 돌로 맞고 세 번 파선하고, 여러 번 여행에 강도의 위험과 동족의 위험과 이방인의 위험과 광야의 위험과 바다의 위험을 당하고, 또 수고하며 애쓰고 자지 못하고 주리며 목마르고 굶고 춥고 헐벗었습니다. 그러나 이런 어려움 속에서도 그는 근본적으로 감사하며 기뻐하며 찬송하는 삶을 살았습니다(행 16:25). 그 이유는 고난의 의미를 알았고 하나님의 상급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장차 하나님께서 그에게 의의 면류관을 주실 것을 조금도 의심치 않았습니다(딤후 4:8)
그는 로마서 8:28절에서 매우 중요한 말을 했습니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에게는 운명이 없다는 것입니다. 모든 일이 하나님의 선하신 섭리 가운데서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자주 힘들어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자신의 인생이 자꾸 꼬인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다른 사람은 잘 풀리는 것 같은데 나는 왜 이리 안 풀리는가?'라고 생각하면서 밥맛을 잃고 힘들어합니다.
이때 우리는 우리를 완벽한 섭리 가운데서 인도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봐야 합니다. 현재의 상황이 너무나 고통스럽고 힘든 상황이지만 하나님의 크신 뜻 가운데서 일어나고 있다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우리가 알아야 할 중요한 사실은 세상에 어려움이 없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다는 것입니다. 겉으로 볼 때는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도, 그 속을 파고 들어가 보면 나름대로의 문제가 있음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건강 문제, 물질 문제, 죄 문제, 자녀 문제, 가족 문제 등 여러 가지 문제로 고통합니다. 우리가 위인 전기를 읽어보면 역경이 없었던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음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이들은 자신에게 주어진 역경을 꿋꿋이 이겨냈기 때문에 성공적인 인생을 살 수 있었습니다. 인생은 어차피 문제의 연속입니다. 믿는 자나 믿지 않는 자나 일생동안 끊임없이 많은 문제에 봉착합니다. 중요한 것은 이런 문제를 어떤 자세를 가지고 대하는가 하는데 있습니다. 운명적으로 생각하고 힘들게 받아들이면 한없이 힘들고 어두운 인생을 살수밖에 없고, 고난받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고 적극적으로 감당하고자 하면 즐거운 마음으로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우리의 인생 길을 베스트의 길로 인도하시는 하나님을 확실히 믿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당장은 사망의 음침한 길을 가고 있는 것처럼 느껴지더라도, 선한 목자 되신 하나님께서 가장 좋은 길로 인도해 주실 것이라는 확신만 있으면 안심하고 살 수 있습니다
http://godislove.net/wwwb/ChurchMaker.cgi?db=misupart06&mode=read&num=91&page=1&ftype=category&fval=%bd%c5%be%d3%b0%a3%c1%f5&ftitle=신앙간증&backdepth=1">(시 23편).
2.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는 생활을 살아야 합니다.
우리가 기쁘게 신앙 생활할 수 있는 또 하나의 비결은, 은혜의 세계에서 사는 법을 배우는 것입니다. 은혜의 세계에서 산다는 것은 자신이 심히 부족하지만 예수님의 죄사함의 은혜를 덧입고 하루하루 은혜로 살아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율법은 우리가 영적으로 깨어있는 삶을 사는데 매우 중요한 나침반 역할을 합니다. 그러나 너무나 율법에 매여서 숨막히는 삶을 살아서는 곤란합니다. 은혜로 사는 것과 율법으로 사는 것의 차이점을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어떤 사람이 새벽 5시에 새벽 기도를 하기로 결심을 했습니다. 그런데 다음날 새벽에 자명종이 울렸음에도 불구하고 일어나지 못했습니다. 이때 율법적인 사람은 제시간에 일어나지 못한 것이 마음에 걸려서 하루종일 자학하며 인상을 쓰며 삽니다. 그러나 은혜로 사는 사람은 늦게 일어난 것에 대해서 적극적으로 하나님 앞에서 회개합니다. 한편, 많은 시간동안 푹 자게 하셔서 몸의 피로를 말끔히 씻어주시고 맑은 정신으로 하루를 살아가게 하신 것에 대해서 감사하며 힘차게 하루를 살아갑니다. 율법에 매여서 사는 사람은 자신이 하지 못한 것에 대해서 계속 마음이 매여 있습니다. 뒤를 돌아보며 후회하느라 앞으로 나아가질 못합니다. 그러나 은혜로 사는 사람은 자신의 잘못에 대해서 솔직히 인정하고 앞으로는 잘하고자 방향을 잡고 열심히 달려갑니다. 이것이 훨씬 미래 지향적이며 생산적인 삶입니다.
또 한 가지 중요한 경우는 자신의 부족함이 드러났을 때 어떤 태도를 취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율법적인 사람은 자신의 부족함을 인정하기를 싫어합니다. 자신의 부족한 모습이 드러나면 그런 자신을 인정할 수가 없어서 크게 고통합니다. '왜 내가 그렇게 못했을까? 조금만 더 열심히 했더라면 그런 결과는 초래하지 않았을 텐데.'라고 생각하면서 끊임없이 자학합니다. 이것은 자신의 부족함을 인정하고 싶지 않은 교만한 마음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의 특징은 끊임없이 자학하고 절망하면서 정작 중요한 영적 투쟁은 별로 하지 않습니다. 반면에 은혜로 사는 사람은 어떻습니까? 이 사람은 자신의 부족한 모습이 드러나면 자학하기 보다 자신의 부족함을 솔직히 인정합니다. '그래 내가 원래 이렇게 실력이 부족하지. 그래 내가 원래 죄에 약한 사람이야.'라고 하면서 솔직히 자신의 부족함을 인정합니다. 그리고 겸손하게 기초부터 다시 배우고자 애를 씁니다. 이런 사람은 끊임없이 성장하게 되고 심령에 기쁨과 감사가 넘칩니다.
우리가 구원의 은혜를 받은 것은 주님의 일방적인 은혜 때문이었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가 신앙 생활하는 것도 일방적인 주님의 은혜 때문입니다. 원래부터 잘나서 신앙 생활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신의 부족함을 솔직히 인정하고 율법적인 생각에서 벗어나 은혜로 사는 법을 배워야합니다.
3. 자기의 책임을 인정하는 생활을 합니다.
인상을 쓰면서 신앙 생활하는 사람들의 또 다른 특징은 자신의 힘든 형편에 대해서 다른 사람이나 환경에 핑계를 많이 댄다는 것입니다. '부모님이 나를 제대로 안 도와줘서 그렇다. 학교와 학과가 안 좋아서 그렇다. 주위 환경이 나를 받쳐주지 안 해서 그렇다. 요즘 젊은 세대들은 너무 영적 소원이 없다.' 등 별의별 이유를 많이 댑니다. 그리고 주위 사람이나 환경에 대해서 끊임없이 불평과 원망을 쏟아냅니다. 이런 사람은 모든 것을 부정적으로 보고 비판적으로 봅니다. 이런 사람 옆에서 하루만 같이 지내다보면 만사가 부정적으로 보이고 세상살이가 피곤하게 느껴집니다.
그러나 기쁘고 즐겁게 사는 사람들의 특징은 어떠합니까? 무슨 문제가 발생하면 자기 자신에게 많은 책임을 돌립니다. '나의 영적 노력이 부족했구나. 하나님의 나의 믿음을 연단 시키는구나. 하나님이 나를 더욱 겸손하게 만들고 깨어 투쟁하게 하는구나.'하고 적극적이고 긍정적으로 생각합니다. 그리고 나서 전보다 더 적극적으로 영적인 노력을 해서 문제를 극복해 나가고자 합니다. 이런 사람 옆에 있으면 '나도 영적인 투쟁을 더 해야 되겠구나.'하는 자극이 생기고 즐겁고 힘차게 문제를 극복해 나갈 수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사단은 끊임없이 우리의 마음에 원망하는 마음을 심고 자학하고 만들어서 신앙 생활의 재미를 빼앗아 가고자 합니다. 우리가 이런 사단의 흉계를 간파하고 적극적으로 물리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진정한 프로는 자기가 하고 있는 일을 기뻐하며 즐길 수 있는 사람입니다. 우리도 신앙 생활을 기쁘고 즐겁게 함으로, 진정한 영적 프로가 될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탈주자 신창원의 이야기를 요약해서 말씀드립니다. 신창원도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참으로 마음씨가 착한 분이라고 생각됩니다. 그가 어쩌다 그렇게 되었는지.... 어릴때 하나님은 만났더라면,,,,,,,,,,,,이것이 나의 기도제목입니다. 할렐루야 ~~~~~~~~~
신창원이 스스로에게 한 말은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말입니다. "초등학교 때, 담임 선생님이 해주시기를 바랬던 말 한 마디, ' 너는 착한 아이다.'라고 했더라면,,,," 이 말만 해주었어도 창원이는 이런 삶을 살지 않았을 것입니다. -dhleepaul
신창원 탈주기 -신창원의 일기장에서 먼저 고통을 견디지 못하고 스스로 목숨을 버린 사람들. 가혹행위를 견디다 못해 반항하다 모진 구타를 당하다 죽은 이. 몸이 아파도 치료를 받지 못하고 피를 토하며 죽은 이. 이들에게 저승에서는 이승에서와 같은 고통이 없게 하소서! 죽어야하는 죄인이지만 국민 여러분이 꼭 알아야 할게 있어서 이 글을 남깁니다. 내가 죽는 날까지 도망자의 신분이기에 남을 속이고 있지만 여기에 적은 말은 진실뿐임을 밝힙니다. 저의 잘못된 생각으로 인하여 젊은 나이에 죽은 피해자와 그분의 가족들에게 용서를 빌며 아무 것도 모르는 나이에 젊음을 구속당한 채 보내야 하는 여린 마음의 동생들에게 깊이 사죄한다. 나는 아마 이 세상에서 제일 나쁜 놈일 것이다. 나는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선한 일을 해본 적이 없다. 어떤 이들은 나에 대해서 얘기하기를『그놈 참 난놈이야, 의적이야!』하고 말하는 것을 들었다. 그러나 그들은 나에 대해서 잘못 아는 것이다. 나는 의적도 난놈도 아니고 나쁜 놈에다 죄인일 뿐이다. 나는 그간 내 이름을 밝히지 않고 소년소녀가장들을 도왔다. 전엔 그게 잘하는 짓인 줄 알았지만 그게 아니라는 걸 이제야 느꼈다. 단돈 천 원을 도와도 내가 정당하게 힘들여 땀흘려 번 돈이 진정한 도움이라는 것을■ 나는 교도소에서도 문제수였다. 처음 무기형을 선고받고 자포자기 식으로 살았다. 술도 먹고 담배도 피워서 징벌을 여러 차례 받았고 내일이 아닌 남의 일로 인해서 나 혼자 교도관에게 맞고 잡힌 적도 있다. 물론 내 행동이 잘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교도관들의 행동도 잘한 것은 아닐 것이다. 소내 규율은 잡는다고 운동 잘하는 교도관들을 선출해서 이유 없이 막무가내로 두목 급들을 구타했다. 이에 대한 항의로 나 혼자서 난동을 부렸다. 이로 인해 나는 문제수로 낙인이 찍혔고 교도소 네 곳을 거쳐서 청송 제2교도소에 가게되었다. 청송을 가기 전에 대전에서 교육을 받는데 아마 예전 삼청교육이 힘들었어도 이만했을까 싶다. 30㎏의 모래 가마니를 어깨에 매고 훈련을 받는데 3시간을 땅위에 내려놓지 않고 훈련을 받는다. 앉았다 일어서기를 시작해서 여러 가지를 하는데 젊은 나도 감당하지 못하는데 연세 많은 사람은 어떠하겠는가. 입에 거품을 물고 쓰러지시는걸 옆에서 부축했더니 머리, 어깨를 안 가리고 몽둥이가 날아왔다. 그것도 웃으면서 하는 말이『너희들은 죽이지만 않으면 돼. 병신이 되어도 우리에겐 책임이 없어. 국가에서 허락한 일이야! 8주 동안 계속된 훈련은 정말 그들이 인간으로 보이지 않았다. 그 훈련으로 인하여 허리, 관절 등에 고질병이 생긴 이들이 무수하다. 이유 없이 날라 오는 몽둥이 고통 때문에 괴로워하면 손가락질하며 웃는 그들의 모습은 악마 그 자체였다. 그곳에서 교육을 받은 사람 중 절반 정도는 자기가 교육을 받기 전의 교도소로 다시 가고 나머지는 청송으로 갔다. 그곳에 도착하자마자 모두 수갑을 찬 채 몽둥이 세례를 받아야만 했다. 열두 시에 그곳에 도착해서 6시경에 방에 들어갔으니 얼마를 맞았겠는가. 연세 많으신 분들도 머리를 맞아 피가 나는데도 멈추지 않고 매질과 기합이 계속됐다. 한겨울에 방안에 있는 물이 꽁꽁 어는데 정좌를 하고 문 앞에 경비교도대의 얼굴만 보여도 머리가 마루바닥에 꽝 소리가 날 정도로 절을 해야 했다. 운동시간을 15분 정도 그것도 기합으로 시작해서 기합으로 끝났다. 새로 지은 특별교도소로 옮기기 얼마 전에서야 자유롭게 운동을 할수 있었다. 새로 지은 교도소에 옮겨서 생활하는 도중에 영하 15도쯤 내려가는 추운 날씨가 계속되는데 마루바닥에서 담요 세 장으로 살아야 하고, 방안에 있는 물이 꽁꽁 어는 데, 얼굴을 내놓고 자야한다는 것이었다. 하루종일 정좌하고 앉아있어서 몸이 꽁꽁 얼어붙어서 발을 손으로 문지르면 자세 불량으로 얻어맞고 밤에 얼굴을 내놓고 자면 추워서 잠을 잘 수가 없었다. 얼굴을 수건으로 덮고 자면 깨우고, 그래도 너무 추워 수건으로 덮으면 자다말고 끌려나가 두드려 맞기를 여러차례, 추워도 참고 그냥 자자고 해도 잠이 오질 않았다. 그래서 위장병과 간염이 생겨 열이 39도를 오르내리고 너무나 아파서 방안을 굴러다니면서 치료를 받게 해달라고 하니까 보건의가 와서 체온계를 떼고는『열이 있네』하면서 해열제만 한 알 주고는 그냥 갔다. 해열제를 먹었는데 고통은 가시지 않고 속에서 피가 넘어오기 시작했다. 그래서 의사를 불러달라고 소리치니까 대답이 없어 방문을 발로 찼다. 방문을 발로 차니 교도관 여러명이 오더니『이새끼가 방문을 차 어디 한 번 죽어봐라』하면서 끌고 나가 온 몸을 묶인 채 얻어맞고 밟혔다. 그것도 약1시간 반 동안 아마 내 체력이 강해서 살 수 있었지 보통사람이었다면 견디지 못하고 죽었을 것이다. 나를 밟으면서 그들이 하던 말과 얼굴 표정을 아직도 잊을 수 없다.『이 새끼가 쌩 까네』하면서 웃는 모습 그들은 때리면서 상대방이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을 보며 희열을 느끼는 것 같았다. 내가 그때 조금이라도 움직일 수 있었다면 그들의 목이라도 물었을 것이다. 그 뒤로 나는 죽음을 많이 생각했다. 죽으려고 몇 번 생각했지만 죽을 수 없었다. 죽음이 두려워서가 아니다. 이렇게 죽을 수 없다는 생각에서였다. 그 때부터 나는 탈옥을 계획했고 내 계획이 성공할 때까지는 5년이 걸렸다. 5년 동안 나는 간과 쓸개를 빼놓고 살았다. 나는 나쁜 짓을 많이 했다. 그렇지만 남에게 고통을 가하면서 희열을 느끼는 짓은 하지 않았다. 5년 동안 허점을 찾느라 보냈고 허점을 발견하고 실행까지 3개월이 걸렸다. 쇠창살 2개를 절단하는데 2개월이 걸렸고 체중을 빼느라 밥을 거의 먹지 않았다. 실행당일 나는 못으로 만든 칼 하나에 팬티 하나만을 걸치고 나왔다. 만일 발각되면 죽으려고 했기 때문이다. 창살을 빠져 나오는데 너무 힘이 들었다. 억지로 몸을 밀어 넣어도 몸이 꽉 끼어 움직이기도 힘이 들었다. 무리를 주어 빠져 나오는데「힘이 들지만」성공했다. 등과 어깨는 찢어서 피가 흐르고 있었다. 남은 것은 3개의 담간이 벽 위로 쳐진 5m의 담을 밑으로 뚫고 들어가는데 2시간이 걸렸고 공사장에서 쓰는 철근을 담에 대고 1번째 담을 넘었다. 나를 발견하고 총을 쏘는데 걸리는 시간을 5,6초잡았고 내가 담을 넘는 시간을 5초잡았는데 내가 담 위에서 발견되면 3초 정도의 시간이 나에게 있고 그 시간이면 어둠 속으로 사라질 수 있을 것 같았다. |
기도합니다.
주님! 이제 우리가 더 이상 힘들게 신앙 생활 하지 않기를 바라오며, 어떤 상황 속에서라도 항상 기뻐하며 범사에 감사하며 살 수 있도록 도와주시옵소서 그리하여 심령 깊은 곳으로부터 은혜와 기쁨을 누릴 수 있는 만나 공동체가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오늘은 언제나 마치는 말씀(살전5:16-18)이 본문 말씀이되었습니다. 그래도 다시 한번 더 봉독하면서 말씀을 마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