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대적이며 절대적인 지식의 백과사전》
프랑스어: L'Encyclopédie du savoir relatif et absolu)은 프랑스의 소설가 베르나르 베르베르가 1996년 출간한 잡학사전이다. 대한민국에서는 두 번째 개정 증보판이 《쥐의 똥구멍을 꿰맨 여공》이라는 제목으로, 세 번째 개정 증보판이 《상상력 사전》이라는 제목으로 출간되어 있다.
이 책이 처음 대중에 알려진 것은 《개미》 3부작, 《천사들의 제국》 등 베르베르의 다른 소설을 통해서이다. 베르나르 베르베르는 자신의 소설들 속에서 곤충학자 에드몽 웰즈라는 인물을 이 책의 저자로 설정하였다. 그리고 《개미의 날》을 출간한 이후 기욤 아르토의 권유로 이 책을 독립시켜 출간했다. 소설 속에서 책의 저자는 에드몽 웰즈이지만, 실제 출간된 책은 베르나르 베르베르가 저자로 되어 있다.
이 책에는 베르베르의 주요 모티브이기도 한 개미부터, 사라져 버린 유토피아까지 잡다한 지식이 담겨 있다. 그러나 베르베르는 이 책이 단지 생각할 거리를 줄 뿐이며, 이 책의 이름에 '상대적이며 절대적인'이라는 모순 형용을 넣은 것도 독자에게 제각기 다른 의미를 발견하고, 스스로의 기억을 개입시켜 이 책을 고쳐 나가는 몫을 맡기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또한 이 책을 읽는 것에 그치지 않고, 새로운 지평을 열고, 새로운 것을 창조하는 발명가가 되라는 것을 말하고 싶어한다.
이상: 상대적이며 절대적인 지식의 백과사전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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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가 지식의 원천이라는 것은 절대적 기준은 아니다.
학문과 지식은 서로 다른 양면을 가지고 있다. 학교가 아니어도
지식은 스스로 삼라만상을 통하여 얻을 수 있는 인간의 기본적 지혜이다.
학문은 전체적인 학적 체계를 전제로 한다. 학문은 그래서 과학이라고 한다.
그러나 지식이 과학일 필요는 없다. 지식은 인간이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영양분일 수 있다. 다시 말하여 지식은 생활의 일 부분이며 삶에 지혜와 동기를 부여하는
양념이다. 밥은 주식이지만, 김치는 밥을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다.
학교에서 제도적으로 배우는 소위, 학문은 학적 체계를 기반으로 한다.
그리하여 영원히 반박될 수 없는 과학으로서의 학문의 자리를 유지하고 지속적으로
발전시켜야 한다는 사명을 가져야 한다.
그것이 학문과 지식의 차이일 뿐, 둘 다 인간의 삶에 가치의 척도를 제시하는 것이다.
학문은 그 체계를 따르는 부류에게 한하여 가치 중립적인 자리를 차지한다.
학문에 있어서 절대적인 기준은 없다. 그러나 지식에 한하여서는 결코 절대적일 필요는 없다.
그것이 지식이 가지는 평화이다.
그러나 지식은 어떠한 가치관을 갖는 부류에게 한하여 유익을 제공하는 것은 아니다.
그만큼 보편적이고 객관화된 인간생활의 지적 가치를 제공하는 객관적이고 보편적인
도구로서의 방향을 제시하기 때문이다.
하나의 국가관 또는 정치계를 예로 든다면
공산주의 가치는 공산주의를 옹호하는 한 집단의 가치관일 뿐 학적 체계나
과학적 체계를 가질 필요는 없다.
그러나 국가란 무엇인가 또는 정치란 무엇인가 라는 과학적이고 영구불변하는
하나의 체계를 갖추고자 할 때는 반대 세력, 즉 사상과 이념 그리고 인류평화를 위하여
이런저런 구체적이고 과학적인 가치를 제시하여야 한다.
그러나 지식은 학적체계를 원하는 이념으로부터 자유할 수 있다.
예를 들어 구두를 수선할 수 있는 방법을 하나의 구두수선할 수 있는 앎, 즉 지식이라고
가정한다면 그것은 하나의 체계를 갖거나 과학적 방법을 제시할 필요가 없다.
그냥 재주일 수 있다.
학문은 절대적인 지식을 제시할 수 없다. 그러나 지식은 학문의 동반자이거나
그 방향을 제시할 수 있는기반을 제공한다.
이 세상의 변혁을 갈구했던 탐험가, 과학자 그리고 정치가들 중에 학적 체계를 온전히 갖추고
자기의 목표 또는 이상을 향하여 분투한 경우는 별로 없다.
그것은 자기 자신에게 갇혀 지내왔기 때문이다.
링컨은 자기가 원하던 목표를 향하여 학문적 기반을 쌓아온 사람은 아니었다.
소위 학벌은 없었지만, 진정한 민주주의의 정신과 이론을 제시한 사람이다.
다만 그는 변호사라는 관문을 통하여 법 지식을 쌓았을 뿐이다.
그가 법을 배울 때, 민주주의의 정신을 배우기 위해서 법공부를 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가 원했던 법공부는 변호사라는 민권의 수호자가 되기 위한 준비 단계요
하나의 제도권에 들어서기 위한 절차였을 뿐이다.
그러한 그가 이제 남북전쟁을 일으킬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당시 아메리카의
사회적 현실을 직시한 것뿐이다.
존재가 없으면 당위가 없다.
당위는 존재라는 전제를 깔아야 성립되는 현실이 된다.
그래서 당위는 현존재를 전제하지 아니하면 안된다.
현실적으로 존재는 가치를 생산하게 된다.
그것이 지금껏 인류를 변혁시킨 운동력이었다.
운동은 살아 움직여야 하는 것이다.
그것이 아메바든 공룡이든 상관없다.
현실을 존재적 가치로 변혁시킨 원천은 학문이기 보다는
지식이었다.
그래서 지식은 지혜를 낳고 그 지혜에 기반하여
학문이 설정되고 발전하게 되는 것이다.
- 이덕휴 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