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을 환호하는 서울역 광장과 남대문로 일대의 인파 -
만나는 이마다 서로 부둥켜 안고 목이 터져라 해방 만세를 외치면서
밤이 되어도 흩어질 줄을 몰랐다. 밤새도록 기뻐서 울었다...1945. 8.15일
8월 29일은 문약한 조선 왕실과 친일 부왜 세력, 당시의 부패한 지도층들에 의해
왜놈들에게 나라를 빼앗긴 날입니다.
나라를 빼앗긴 지난 역사를 보면 다 이유가 있었습니다. 한때 아시아의 대해상강국을 이룬 백제는 향락에 빠진 의자왕과 타락한 군신에 의하여
결국, 나당연합군에 나라를 잃었습니다. 사치와 향락을 쫒고 내부 싸움만 일삼던 신라말 호족,귀족들, 경순왕의 문약함은 결국 나라를 왕건에게
바쳤습니다. 요하와 산동 만주영토를 호령한 고구려는 남생과 남건, 연개소문등 형제와 부자의 반목으로, 당군에게 나라를 빼았겼습니다...
망국은 이렇게 군왕과 지도 세력이, 개인의 영달과 부패에 물들어 있을 때, 찾아 오는 필연의 이치입니다.
이제 다시는 지난 역사의 잘못을 반복하지말고 눈을 뜨고 정신을 세워서
우리는 이 나라를 지켜야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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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남의 땅 -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이상화(시인.독립운동가)
나는 온몸에 햇살을 받고
푸른 하늘 푸른 들이 맞붙은 곳으로
가르마 같은 논길을 따라 꿈 속을 가듯 걸어만 간다
입술을 다문 하늘아 들아
내 맘에는 내 혼자 온 것 같지를 않구나
네가 끌었느냐 누가 부르더냐
답답워라 말을 해 다오
바람은 내 귀에 속삭이며
한 자욱도 섰지 마라 옷자락을 흔들고
종달이는 울타리 너머 아가씨같이 구름 뒤에서
반갑게 웃네.
고맙게 잘 자란 보리밭아
간밤 자정이 넘어 내리던 고운 비로
너는 삼단 같은 머리털을 감았구나,
내 머리 조차 가쁜하다
혼자라도 가쁘게 나가자
마른 논을 안고 도는 착한 도랑이 젖먹이 달래는
노래를 하고 제 혼자 어깨춤만 추고 가네
나비 제비야 깢치지 마라 맨드라미 들마꽃에도
인사를 해야지
아주까리 기름을 바른이가 지심 매던 그 들이라도
보고 싶다.
내 손에 호미를 쥐어 다오
살찐 젖가슴과 같은 부드러운 이 흙을 발목이
시도록 밟아도 보고 좋은 땀조차 흘리고 싶다.
강가에 나온 아이와 같이
셈도 모르고 끝도 없이 닫는 내 혼아
무엇을 찾느냐 어디로 가느냐 무서웁다 답을 하려무나
나는 온몸에 풋내를 띠고
푸른 웃음 푸른 설움이 어우러진 사이로
다리를 절며 하루를 걷는다 아마도 봄 신명이
집혔나 보다
그러나 지금은 들을 빼앗겨 봄조차 빼앗기겠네.
이상화(1901. 4. 5 ~1943. 4. 25)시인님 대구 출생, 독립운동가, 시인.
선생은 아버지 시우(時雨)와 어머니 김신자(金愼子) 사이에서 둘째 아들로, 7세 때 아버지를 여의고
가정 사숙(私塾)에서 공부하고 1916년 중앙고를 나왔다
3·1운동시 대구학생 운동에 참여 백기만과 함께 거사/ 발각 되어 서울로 도피했고/ 1921년 현진건의
추천으로 〈백조〉동인이 되었다, 1922년 프랑스 유학을 목적으로 아테네 프랑세에서 프랑스
문학을 공부하다 관동 대지진으로 귀국. 1925년 박영희·김기진 등과 함께 조선 프롤레타리아
예술가 동맹(KAPF)에 참여했으며, 1927년 대구에 돌아 왔으나 일제순사의 가택수색을 당하고,
대구 독립투사 이종암사건동지들과 같이 구금되었다. 중국의 한인 독립군 대장인
친형 이상정 장군 만난 후에 일제 의해 체포되어 5개월 옥살이하고. 1934년 〈조선일보〉
경상북도 총국을 경영했으나 실패하고, 1937년~교남 학교에서 영어와 작문선생을 했다 .
이때 "피압박 민족은 주먹이라도 굵어야 한다"고 주장하며 권투부를 신설했다. 학교를 그만두고
한국문학의 영문번역에 몰두하다가, 위암으로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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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시대 우리나라 일부 문인들을 보면, 스스로 문약하고 지조를 지키지 못하며,
일순의 영달과 영화를 위하여
일제에 아부하고 부왜한 시인/ 문인들이 더러 있었는데
선생은 그렇지 않았다. 선생이야 말로 시인이시다---이민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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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을 맞아 모두 길거리를 나와 만세를 부르는 시민들, 8 15
일제로부터의 해방을 축하하기 위해 전남 광양 서국민학교 교정에 모인 군민들. (1945년 8월16일)
전국에 메아리진 해방의 기쁨 -
조국해방은 방방곡곡 어디라 할 것 없이 기쁨과 감격의 물결을 이루게 했다.
사진은 1945년 8월16일 전남 광양읍 목성리에서 주민들이 해방을 축하하며
환호하고 있는 모습이다. (李坰謨씨 제공)
일왕(日王) 히로히토가 45년 8월15일 정오 라디오 방송을 통하여
항복을 발표하자 서울 광화문 네거리으로 나와 환호하는 서울 시민들의 모습.
해방 경축 종합 경기대회- 1945년 10월27일에 열린 이 대회는 해방 후의 첫 전국체전,..
.태극기를 든 손기정씨가 감격에 벅차 ...눈물을 닦고 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첫돌 1월 1일, 대한민국임시정부 요인 58명이
상해에서 태극기를 배경으로 찍은 사진
대한민국 임시정부 국무원 기념 사진(1919년 10월 11일).
앞줄 왼쪽부터 신익희, 안창호, 현순. 뒷줄 김철, 윤현진, 최창식, 이춘숙.
1921년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신년하례회(두번째 줄 오른쪽에서 여섯번째가 이동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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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임시정부 제6회 임시의정원 기념사진(1919.9.17)*1,현정건 선생 포함여부 확인 불가하나, 현정선 선생이 임시의정원 활동 시기 임시의정원 사진임2,앞줄 가운데 흰옷 안창호선생님3,두 번째줄 오른쪽 첫 번째 김구선생님(콧수염) |
대한민국임시정부 제34회 임시의정원 일동(1942년)
(사진: 한국광복군 성립전례식 기념사진 - 출처: 독립기념관)
한국광복군 총사령관 임명장을 받고 있는 지청천장군, 우측 김구 (출처: 국가보훈처)
본토수복진공작전 OSS훈련을 마친 노능서, 김준엽, 장준하 선생(순서는 왼쪽부터)
한국 광복군 청년 공작대의 모습
광복군 창설의 주역이었던 김구 선생과 임시정부의 주요 요원들
(제일 아랫줄 오른쪽에서 두번째가 이시영 선생)
한영군 합동사진 OSS 훈련에 참가한 영국군과 광복군의 사진
인도지나반도/인도에 파견, 대일항전중인 광복군 대원들 - 출처: 독립기념관)
(사진: 광복군 대원들이 한국광복군 영문약자대로 배열한 모습 - 출처: 독립기념관) |
(사진: 광복군 대원들의 선서식 - 출처: 중경 대한민국 임시정부 청사 기념관) |
정부 대일 선전 포고문 (1941)
오인은 삼천만 한국인민과 정부를 대표하여
삼가 중, 영, 미, 가(加), 호(濠), 화(和), 오(墺) 기타제국의 대일선전이
일본을 격패케 하고 동아를 재건하는 가장 유효한 수단이 됨을 축하하여
자(玆)에 특히 다음과 같이 성명하노라.
1. 한국 전인민은 현재 이미 반침략전선에 참가하였으니
한 개의 전투단위로서 추축국에 선전한다.
2. 191O년의 합방조약 및 일체 불평등조약의 무효를 거듭 선포하여
아울러 반침략국가의 한국에 있어서의 합리적 기득권익을 존중한다.
3. 한국 중국 및 서태평양으로부터
왜구를 완전히 구축하기 위하여 최후의 승리를 얻을 때까지 혈전한다.
4. 일본세력하에 조성된 장춘(長春) 및 남경(南京)정권을 절대 인정치 않는다.
5. 루스벨트 처칠 선언의 각 조를 견결(堅決)히 주장하며
한국독립을 현실키 위하여 이것을 적용하며
민주진영의 최후승리를 원축(願祝)한다.
대한민국 23년 12월 10일
대한민국 임시정부
임시정부 대일 선전 포고문
1941.9.23 우천 조완구 선생 회갑기념 (뒷줄 왼편부터 시계방향으로 송병조, 차리석,
조완구, 이시영, 김구, 조성환)
(사진: 환국 직전 중경 임시정부 청사에서 단체사진)
(사진: 환국 당시 사진. 김구 주석 뒤의 군복을 입은 청년이 26세 광복군 윤경빈)
경교장에서의 대한민국 임시정부 요인들(1945.12.6)
왼쪽부터 몽양 여운형, 도산 안창호, 고당 조만식
(사진: 임시정부 청사로 활용되던 당시 경교장)
(사진: 대한민국 임시정부 마지막 청사 경교장)
BGM정보 : 브금저장소 - http://bgmstore.net/view/yG43k 8월 29일은 구한말 문약한 구왕실과 친일매국노들에 의해일제에게 나라를 빼앗긴 날입니다.......................................나라가 위태로울때 목숨바쳐 지킨 분들이 애국자입니다.그러나 기회주의자들은 몸보신과 일신의 안위 만을 위해 일제와 협력하고 민족 인사들을 탄압하면서 부와 영달을 꾀했습니다..정신적 지조란 어떤 압제에도 굴하지않는 용기의 정신입니다.목에 칼이 들어와도 민족 정기를 지키고 내 나라를 배반하지않는 정신이, 용기요, 이 용기가 곧 국방이요. 군기요, 나라 보전하는 일체감 입니다.국기(國基)입니다.우린 나라 위해 목숨 바친 선열의 정신을 추앙하고 계승해야 하며 유약과 굴종에 타협하는 썩어빠진 비굴을. 우리 후손에게 가르켜서는 안됩니다. 친일파 후손들의 재산 환수.....아주 잘한 것입니다...저는 이 나라에 아직도 부패하지 않고 건강한 지성인들이 있음을 만족 합니다. 이 분들이 나라의 기강과 정기를 지키고 이 나라를 부강케 하리라 믿습니다.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나라를 잃어버린 당시의 아픔을 읽습니다. 시인님의 詩에서 잠시나마 "내 나라 내조국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우린 얼마나 행복한 것인지" 깨닫습니다"...아 통일한국....통일 한국..."가슴이 아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