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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엽선(梧葉扇) :
부채살의 끝을 휘어 오동나무잎 맥(脈)모양으로 만든 부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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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엽선(蓮葉扇) :
부채살의 끝을 연잎의 연맥모양과 비슷하게 휘어서 만든 부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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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초선(芭蕉扇) :
부채의 모양을 파초잎 모양으로 만든 부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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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태극선(太極扇) :
중앙에 태극모양을 그려 만든 것인데 오늘날 얼리 사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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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팔덕선(八德扇: 일명 부들부채) :
왕골, 갯버들, 죽숙의 껍질, 등널쿨 등으로 얽은 것으로 여덟가지의 이덕이 있다고 해서 얻어진 이름이다. 즉 팔덕이란 싸고, 손쉽게 만들고, 파손될 염려가 적고, 앉을때는 방석으로도 되며, 해가리게도 되며, 여름철에 의복속에 넣으면 등의대용도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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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까지선 :
부채의 면을 X자형으로 나누어 위와 아래는 붉은 색, 왼쪽은 누른색, 오른쪽은 푸른색으로 바른 부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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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주선(眞珠扇) :
부채의 테두리를 은으로 두리고 진주를 박아 꾸민 것으로 손잡이는 은으로 되어 있다. 이것은 조선조말까지 궁중혼례때 공주나 옹주가 얼굴 가리게로 사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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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작선 :
공작의 깃으로 만든 부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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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홍선(紅扇) :
신부부채, 혼례때 신부가 얼굴을 가리는데 사용한 것으로 홍색을 바른 부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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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원선(大圓扇) :
큰 방구부채, 두손으로 부치게 되어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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접부채는 부채살의 수와 부채꼭지의 모양과 부속품 그리고 부채바탕의 꾸밈에 따라 그 명칭이 부쳐 지는데 주로 백선(白扇)·칠선(漆扇)·유선(油扇)·복선(服扇)·승두선(僧頭扇)·어두선(魚頭扇)·사두선(蛇頭扇)·반죽선(班竹扇)·외각선(外角扇)·삼대선(三臺扇)·채각선(彩角扇)·광변선(廣邊扇)·합죽선(合竹扇)·화선(花扇)·윤선(輪扇)·표정선(杓庭扇)·무선(舞扇)·무당부채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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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채의 역사
인류가 언제부터 부채를 만들어 사용하였는가에 대해서는 중국의 순임금이 오명선(五明扇)을 만들었다는 이야기가 있는데, 현인을 구하여 문견을 넓히고자 오명선을 만들었다고 한다. 한나라 때와 당나라 때에는 착한 사람을 추거하는 사람에게 주는 기념물로서 사용하였는데, 부채의 기원에 대한 서양학자들의 통설은 중국 주(周)나라 때부터 시작된 것으로 보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문헌 가운데 부채에 관한 가장 오래된 기록으로는 《삼국사기》 견훤조에 『우리 태조를 추대하여 즉위하였다. 견훤은 이 말을 듣고 그 해 8월에 일길찬(一吉飡) 민극(閔筐)을 파견하여 이를 하례하고 드디어는 공작선(孔雀扇)과 지리산 대화살〔竹箭〕을 보냈다.』라는 대목이 있다. 이로써 우리나라에는 10세기(고려 초)에 이미 부채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공작선은 남방의 여러 나라에서도 공작의 깃으로 둥근 부채를 만들어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견훤이 하례품으로 주었던 공작선도 둥근 부채(방구부채)였다고 보인다.
접는 부채(접부채)는 세계 최초로 우리나라에서 만든 것으로, 송나라 사람 곽약허의 《도화견문지 圖怜見聞志》에 고려사신 최사훈이 1076년 신종 희녕 병진년(문종 30)에 접는 부채(摺疊扇)를 사용하였다는 기록과 1123년 송나라 사신 서긍(徐兢)이 『고려인들은 한겨울에도 부채를 들고 다니는데 접었다 폈다 하는 신기한 부채』라고 《선화봉사고려도경宣和奉使高麗圖經》에 남긴 것으로 보아 11세기 중엽 이전에 우리나라에 있었던 것을 알 수 있다.
◈ 가장 유명한 부채
아무래도 제갈공명이 들고다닌 백우선이 되겠다. 제갈공명이 백우선을 들고다닌 이유에 대해 학계(?)에서 많은 논란이 있으나 여기서는 전설 하나를 소개한다. 전하는 말에 따르면 제갈량의 부채는 그의 부인 황월영이 신선 세계의 거위털로 만들었다고 한다. 황월영은 당대의 명망있던 선비 황승언(黃承彦)의 딸. 용모가 그다지 출중하지는 않았지만 현명하고 박학다식한 여인이었다.
그녀는 제갈량과 결혼하기 전에 일찍이 오매산의 선녀에게 도를 배우고 무예를 익혔다고 한다. 그녀가 선녀와 작별하고 산을 내려올 때 선녀가 그녀에게 선계의 거위털을 주며 재삼 당부하면서 "조만간 너는 이것을 사용해 부채를 만들어 남편에게 줄 것이다. 그것은 너의 낭군이 대업을 이루는데 도움이 될 것이야"라고 말했다.
이후 황월영과 제갈량은 결혼했으며 그녀는 그 깃털로 부채를 만들어 제갈량에게 주었다. 제갈량의 보물이 된 거위털 부채는 소설 삼국지 이후 '행운을 주는 물건'이 됐다. 그래서 중국의 일부 지방에서는 거위털 부채를 호신물로 삼는다. 제갈량의 거위털 부채는 제갈량을 상징하는 하나의 이미지를 넘어서 중국인들에게 '지혜의 상징물'이 된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