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 생명 말씀(2022. 7.3 ) 말씀/ 누가복음 19:11-
위대한 역사의 시작
”그 첫째가 나아와 가로되 주여 주의 한 므나로 열 므나를 남겼나이다 주인이 이르되 잘하였다 착한 종이여 네가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하였으니 열 고을 권세를 차지하라 하고“
누가복음 19장을 보면 어떤 귀인이 왕위를 받아가지고 오려고 먼 나라로 갈 때에 그 종 열을 불러 은화 열 므나를 주며 이르되 내가 돌아올 때까지 장사하라고 합니다. 그렇게 므나를 맡긴 후에 돌아와 은화 준 종들이 어떻게 장사하였는지 묻습니다. 그 첫째가 나아와 말합니다. “주인이여 당신의 한 므나로 열 므나를 남겼나이다.” 주인이 칭찬합니다. “잘하였다 착한 종이여 네가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하였으니 열고을 권세를 차지하라”. 그 둘째도 와서 말합니다. “주인이여 당신의 한 므나로 다섯 므나를 만들었나이다” 주인이 그도 칭찬합니다. “너도 다섯 고을을 차지하라”(15-19절). 장사를 하여 열 므나를 남긴 종에게는 열 고을 권세를 차지하라고 하였고, 다섯 므나를 남긴 종에게는 다섯 고을 권세를 차지하라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또 한 사람이 와서 이렇게 말합니다. “이르되 주인이여 보소서 당신의 한 므나가 여기 있나이다 내가 수건으로 싸 두었었나이다 이는 당신이 엄한 사람인 것을 내가 무서워함이라 당신은 두지 않은 것을 취하고 심지 않은 것을 거두나이다”(20-21절). 이 종은 주인을 심지 않는 곳에서 거두는 악한 주인이라는 생각을 하고 아에 장사를 하지 않았습니다. 한 므나를 땅에 묻어두었다가 그대로 가져왔습니다. 주인이 말합니다. “이르되 악한 종아 내가 네 말로 너를 심판하노니 너는 내가 두지 않은 것을 취하고 심지 않은 것을 거두는 엄한 사람인 줄로 알았느냐 그러면 어찌하여 내 돈을 은행에 맡기지 아니하였느냐 그리하였으면 내가 와서 그 이자와 함께 그 돈을 찾았으리라” 하고는 곁에 섰는 자들에게 이르되 그 한 므나를 빼앗아 열 므나 있는 자에게 주라 지시합니다. 그에게 이미 열 므나가 있었지만 주인이 주인의 말을 듣고 충성한 자아게 더 주었습니다. 그리고는 이렇게 말 합니다.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무릇 있는 자는 받겠고 없는 자는 그 있는 것도 빼앗기리라 그리고 내가 왕 됨을 원하지 아니하던 저 원수들을 이리로 끌어다가 내 앞에서 죽이라”(22-27절).
본문 비유를 통해서 우리가 배울 수 있는 것이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한 가지를 배웡보려고 합니다. 그것은 지극히 작은 것을 소중히 여기는 마음과 충성심입니다. 사람들은 대게 큰 것 많은 것은 좋아하고, 작은 것은 깔보고 무시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런데 깊이 생각해보면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스티브잡스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인생은 점들의 연속이다. 우리가 찍는 점들은 어떤 식으로든지 미래로 연결된다’. 점 하나 찍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말하는 것입니다. 선이라는 것도 알고 보면 수 많은 점들이 이어진 것입니다. 하찮은 점 하나가 우리 인생을 결정한다고 생각한다면, 한순간 하루하루가 모여져서 우리의 인생을 만든다고 생각한다면 우리는 생각 없이 한 순간의 삶을 무의미하게 쿡 찍을 수는 없을 것입니다. 순간순간 잘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한 므나의 가치기 얼마나되죠? 별것 아닌 것 같지만(노동자 3개월치 월급 1,000만원) 그것을 정성껏 활용하여 장사를 하면 다섯 므나를 만들 수 있고, 열 므나를 만들 수 있습니다. 그뿐 아니라 그 작은 일에 충성하는 태도를 보고 주인은 그것을 계기로 해서 열 고을, 다섯 고을을 차지하고 다스리는 축복도 줄 수 있습니다. 실제로 주인은 그렇게 하였습니다. 그리고 거기서 더 충성 되이 일하고, 더 경륜을 쌓으면 나라의 총리도 대통령도 될 수 있습니다. 그런데 한 므나 받은 사람은 그 원리를 몰랐습니다. 작다고 하찮게 여긴 것입니다.
창세기 요셉의 삶을 보십시오. 비록 형들의 시기심 미움으로 애굽의 노예로 팔려갔지만 운명을 탓하지 않고 보디발의 집에서 충성을 다하여 가정 총무가 되었고, 억울한 누명을 쓰고 죄수가 되어 옥에 갇혔지만 거기서도 모범수가 되고, 간수장의 은혜를 입고 죄수들을 맡아 섬기는 일을 했습니다. 그러다가 바로의 술맡은 관원장을 섬기는 기회를 얻었습니다. 그 계기로 해서 바로의 꿈을 해몽하고, 그 지혜가 인정받게 되자 하루 아침에 애굽의 총리가 되었습니다. 바로는 자신의 자신의 인장 반지를 배어서 요셉에게 주고, 거대한 애굽 제반 통치권을 요셉에게 일임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합니다. ”너는 내 집을 다스리라 내 백성이 다 네 명령에 복종하리니 내가 너보다 높은 것은 내 왕자뿐이니라“ 이롱니해서 요셉은 일약 온 세상 만민의 생명을 구하고 이스라엘의 구속역사를 지키는 우주적 통치자의 역할을 감당하게 되니다. 요셉이 어떻게 이런 위치까지 올라가게 되었습니까? 이는 하루 아침에 행운도 아닙니다. 단순한 믿음도 아닙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축복이지만 그가 노예 신분으로 작은 일에 충성하였기 때문입니다. 매사가 그랬습니다. 이런 말이 있지요. 미래를 보려면 지금을 보라. 지금을 보면 과거가 보인다. 어떤 기적도 알고보면 작은 일이 이루는 기적입니다. 그래서 위대한 사람은 작은 것을 함부로 다루지 않고, 진짜 부자는 동전 하나도 함부로 쓰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거대한 부와 재물로 어디서부터 시작되는지를 알기 때문입니다. 큰 것을 좋아하고 완성된 성공의 결과만을 바라보고 꿈꾸는 사람은 실제로 그런 은혜가 주어져도 감당지 못합니다. 그 것이 어떻게 이루어졌는지를 알 수 없고 준비도 안 되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눈으로 보는 이 거대한 세계를 보십시오, 이 세계가 어떻게 이루어졌습니까? 어느 날 갑자기 뚝 떨어졌습니까? 이 광대한 세상 우주는 사실 하나님의 한 말씀, 점조차도 아닌, 보이지 않는 일점 일획의 말씀으로 이루어진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주적인 꿈을 꾸는 사람들은 태초의 말씀을 주목해야 합니다. 거기서부터 시작해야 우주를 알 수 있다는 것입니다.
지난주 우리는 사도행전을 큐티를 하면서 하나님이 사도들을 유다이즘에서 벗어나 이방인의 빛으로 삼으시는 것을 배웠습니다. 우리는 자기중심, 유다이즘에서 벗어나야 하나님의 원대한 뜻을 품을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온 세상 만민을 구원하시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사랑과 마음을 우리가 어떻게 품고 따를 수 있겠습니까? ”주여 나를 이방의 빛으로 쓰소서. 주여, 모든 것을 버리고 떠나겠나이다“ 이렇게 기도하면 됩니까? 물론 이런 비전과 결단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더 근본으로는 아담과 이브 때부터, 75세의 아브라함을 부르신 때 약속의 말씀으로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그리고 땅끝까지 이르러 복음을 증거할 사역을 위해서 소수 12제자를 불러 키우신 예수님의 제자양성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중심에 한 영혼을 사랑하사 목숨을 버리시는 예수님의 사랑이 있었다는 것을 생각해야 합니다. 이런 시작점이 없이 우리는 세계와 우주에 접근할 수 없습니다. 지홍 집사님이 댓글을 달면서 이런 기도를 하였습니다. 우주 하나님의 마음을 품고 세계만국 백성을 위해서 기도하며 또 저에게 맡기신 한 영혼을 깊이 사랑하는 자가 되게 하소서! 이방인의 빛으로 쓰시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원대한 비전을 영접합니다. 생각과 사고가 세계와 우주로 확장되게 하시고 지금까지 이어오신 하나님의 구원역사의 한 부분의 배우로서 귀히 쓰임받고 있음에 감사를 드립니다. 우주적 하나님의 마음을 품고 기도하되 구체적으로는 한 영혼을 깊이 사랑하게 하소서! 바로 그렇습니다. 생각과 사고를 세계로 확장시켜 나가는 목표를 정했다면 구체적으로 한 영혼을 사랑하는 것 이것이 있어야 우주적 역사에 참여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주적 소망과 비전을 가질수록 작은 것의 소중함, 작은 것의 능력, 작은 것의 영향력에 대해서 많이 생각하고 집중할 수 있어야 합니다. 머더 데레사에게 어느날 기자가 물었습니다. “수녀님, 어떻게 이 큰 일을 할 수 있었습니까?” 그녀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우리는 한 사람밖에 안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 한 사람을 사랑으로 안지 않으면 오늘날 이 일은 이루어질 수 없었을 것입니다.” 위대한 성녀의 삶도 실은 이렇게 한 영혼을 끌어안는 작은 일로 시작되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99마리를 두고 잃은 양을 찾으시는 비유는 바로 그런 것입니다. 한 영혼을 사랑하고 찾아 구원으로 인도하지 못하고 99마리 양, 더나아가서 세계를 구원할 수 없는 것입니다. 지금 여기서 나에게 주어진 작은 일을 충성하지 못한다면 아무리 좋은 환경, 어디를 가도 일을 잘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누구나 희망을 가질 수 있는 것은 당장 큰 것은 못해도 작은 것은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문제는 작은 것을 대하는 태도입니다. 이 태도가 앞으로 큰 일을 할 수 있는가 못하는가 결정을 하는 것입니다. ‘작은 것이 세계이다’. ‘작은 것 속에 우주가 있다’. ‘작은 고추가 맵다’ 하는 사람은 작은 일을 통해서 큰 일도 하고 성공도 하겠지만, 작은 것이라고 불평하고 소흘이 여기는 사람은 처음부터 큰 일을 단념하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은 그냥 한 므나를 손수건에 쌓아두고 묻어두고 인생을 허비하고 살게됩니다. 그게 태도의 차이입니다.
마산의 후미진 동네에서 4.5평의 약국을 개업한 한 약사는 어느 날 택시를 탔는데 버스터미널 앞에서 택시기사가 5000원짜리 지폐를 주고 100원짜리 동전으로 교환하면서 수수료로 200원을 지불하는 것을 목격했습니다. 그 후는 약국에 동정을 잔뜩 쌓아두고 택시기사들에게 무료로 동전을 교환해 주었습니다. 택시기사들 사이에 입소문이 퍼지면서 동전을 교환하려는 택시들이 약국 앞에 줄을 섰습니다. 그러자 택시를 잡으려는 동네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약국 앞으로 몰려들고, 약국은 손님들로 북적거렸습니다. 무료 동전 교환과 함께 음료수를 대접받은 기사들의 입을 통해서 이 약국에 대한 소문이 마산뿐 아니라 인근 도시에까지 퍼져나가기 시작했고, 이 약국은 마산의 랜드마크로 자리 잡게 되었습니다. 그로부터 마산 역 앞에 대한민국에서 두 번째로 큰 약국을 열었습니다. 개업초기에는 하루 손님 10명도 오지 않던 약국이었는데 그 후 그는 탁월한 경영 능력을 인정받아 기업 CEO로 스카웃 되었습니다. 그가 엠베스트의 김성오 사장입니다. 작은 일이 이루어내 큰 역사의 스토리입니다. 이렇게 성공한 사람을 보면 평범한 사람들과 다르게 행동합니다. 그들은 사소한 일을 결코 사소한 것이 아니며, 모든 위대한 역사 성취에는 작은 시작점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는 것입니다. 노자는 도덕경에서 이렇게 적고 있습니다. “세상에 어려운 일은 모두 쉬운 일에서 비롯되고, 세상의 큰 일은 반드시 작은 일에서 시작된다.” 그러므로 어려운 일을 하려면 쉽게 시작해야 하고, 큰 일을 하려면 작게 시작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물론 실행을 해야합니다. 작은 것의 실천이 얼마나 큰 일로 이어지는가? 1972년 MIT 대학의 기상학과 교수 에드워드 로렌츠는 <예측 가능성; 브라질의 나비 한 마리의 날개 짓이 텍사스에 토네이도를 만들어낼 수 있을까?>라는 제목의 논문을 발표했습니다. 그는 대기순환 경로를 예측할 수 있는 방정식을 만들어 컴퓨터 모니터에 바람의 방향을 그려보았습니다. 그런데 실험과정에서 수많은 데이터중 하나가 1000분의 일밖에 안 되는 극히 미미한 차이로 입력되더라도 경로가 완전히 달라진다는 사실을 발견하였습니다. 초기의 극히 사소한 차이가 방정식을 돌면서 점차 증폭되어 걷잡을 수 없는 경로를 만들어내기 때문입니다. 이 논물 발표 후 사람들은 작은 차이가 시간이 지나면서 엄청난 결과를 만들어내는 것을 나비효과라고 불렀습니다.
성경 말씀도 누누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천국은 겨자씨 같다, 천국은 누룩과 같다. 또 우리의 일상 생활에서도 체험하고 있습니다. 제가 대학을 광주에서 다니면서 학생 때부터 성경공부를 하며 제자 훈련을 받았습니다. 4학년 때 한 자매를 1:1로 섬겼습니다. 그리고 졸업을 하고 떠났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그 자매는 밖에서 의사 형제를 센타로 데려왔고, 믿음의 결혼을 해서 그 분은 광주 3부를 섬기는 책임 목자(박다윗)가 되었고, 그 자매는 사모가 되었습니다. 그 때부터 지금까지 양들을 섬기고 있으니 그 수가 어마나 되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만 일 그 때 한 사람을 성경공부 시키지 않았다면 오늘 이런 일이 있었겠습니까? 제가 졸업 후 제주도에 가서 개척 역사를 섬길 때도 그랬습니다. 사실은 제주도는 많은 목자님들이 먼저 가서 섬겼지만 열매가 없었습니다. 마지막 이여호수아 목자님이 섬기시다 철수를 하였습니다. 그런데 몇 년 후 한 자매가 광주로 연락이 왔습니다. 이 여호수아 목자님은 “아이구, 이 아이가 살아있었군가” 하고 강신한 목자님을 파송하였습니다. 그 자매가 루디아 사모입니다. 당시 초등학교 교사였습니다. 그리고 2년 후 구아테말라 선교사로 떠나면서 루디아 자매가 학교 선생 사표를 내고 스탭이 되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제가 군대 제대 후 제주도로 장가를 가서 뼈를 묻는다는 믿음으로 화장터에서 제자양성을 시작하였습니다. 그 때 루디아 사모가 대학에 가서 한 형제를 전도를 했는데 그 형제는 시골 형제로 자취할 곳이 마땅찮았습니다. 잘 곳도 마련해주고 밥도 해주겠다고 해서 데려다가 성경공부룰 시켰습니다. 그 형제는 자신도 목자가 되고 싶다고 소감을 발표했습니다. 그리고 또 한 형제를 전도해서 데려왔습니다. 그 형제가 성경공부를 하고 변화되어 지금 제주 선교교회 책임 목사가 되었습니다. 조마가. 지금까지 30년 동안 얼마나 많은 양들이 구원을 받았는지 알 수 없습니다. 40년 후 지금 사라 자매는 사모가 되어 지금 저와 매일 큐티를 하고 있습니다. 놀랍지 않습니까?
결국 모든 역사의 시작점을 보면 한 사람으로 시작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교회가 세워지는 것도 한 사람으로부터, 세계 선교역사도 한 사람으로부터 시작된 것입니다. 여러분 늦지 않았습니다. 지금이 시작입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한 사람을 사랑하고 작은 일을 소중히 여기며 충성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하십니다. 한 사람을 최선을 다해 섬기려 하고, 매일 아침 큐티 말씀 섬기는 일에 생명을 다하는 일 그것이 위대한 역사의 시작입니다. 한 사람 속에 말씀이 심겨질 때 그 후 그 결과적으로 나타나는 나비효과가 일어나고, 그 다음부터는 말씀이 역사하십니다. 서광호 목사님 말대로 면 단위 청계 작은 땅에서 군ㆍ시ㆍ도를 지나 대한민국 타국을 넘어 우주로 넓히는 역사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작은 일을 소중히 여기고 한 사람을 섬기는 것, 그것이 세계화의 길이요 우주적 교회 확장의 시작이라고 믿습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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