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루뭉술 살아갈 일이다
서 병 진
어느 설문 조사에서 걱정거리의 40%는 절대로 일어나지 않을 일, 30%는 이미 일어난 일들, 22%는 사소한 사건이고, 걱정하는 일 중 40%는 해결할 수 있는 일이라 조사되었다, 해결할 수 없는 일은 불과 4% 정도란다. 너무 걱정하지 말고 살 걸 그랬나 싶다. 가장 소중한 것은 시간, 시간이 약인 것을.
티벳 속담에 “해결할 수 있는 일은 걱정할 필요가 없고, 해결할 수 없는 일은 걱정해도 소용없다.”라 했다. 해결할 수 있는 일은 걱정하는 시간에 노력해서 해결하고, 걱정해도 해결되지 않을 일은 아예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기우(杞憂)에 해당하는 쓸데없는 걱정은 당연히 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사람이 지나치게 욕심을 가지게 되면 걱정이 생기고, 행복이란 존재는 멀리 도망가게 된다. 행복은 사소한 곳에 숨어 있다. 소소한 행복이 주변에 많이 있다. 누리고 있으면서 느끼지 못한다. 지나친 욕심 때문에 주변의 소소한 행복을 찾지 못하고, 걱정거리만 눈에 보이는 것이다.
한편으로 걱정은 사고를 미리 방지하는 역할을 한다. 유비무환이다. 걱정도 필요한 것이다. 태풍이 다가올 계절이 되면 미리 걱정하고 대비해야 한다. 천재지변이라도 피해를 줄일 수 있다. 태풍 힌남노가 경주, 포항 등 동해안을 심하게 할퀴고 지나갔다. 인력으로 재난을 다 막을 수는 없지만, 안전불감증을 반성하지 않을 수 없다. 좀더 걱정하고 대비했어야 했다.
천고마비(天高馬肥)도 걱정에서 나온 말이다. 중국 북방 흉노 등의 이민족이 중원에 쳐들어올 시기가 천고마비의 계절이다. 하늘이 높고 날씨가 건조하여 활시위에 탄력이 붙는다. 화살이 멀리 날아가고 강하다. 말이 살찌고 튼튼하여 잘 달린다. 강물도 줄어들고 겨울이 되면 강이 얼어붙어 도강(渡江)이 쉽다. 중원의 농가는 곡식을 거두어들여 곳간에 가득 쌓아놓고 있다. 빼앗아 갈 것이 많고, 전쟁 무기의 성능이 좋아졌으며, 말까지 힘이 붙었으니 전쟁하기가 좋다. 천고마비는 전쟁에 대비하라는 것이다.
천고마비는 걱정을 자초하자는 것이 아니다. 걱정으로 사전에 막을 준비를 하자는 것이다. 작은 걱정으로 대비하여 큰 걱정을 없애자는 것이다. 걱정이라도 쓸데없는 걱정이 아니라, 대비해야 할 걱정이다. 피해를 줄이자는 준비성이다. 걱정은 계획적인 삶의 과정인 것이다.
하지 않아도 될 걱정을 자꾸 하거나 남의 일에 참견하는 사람에게 놀림조로 “걱정도 팔자다”라는 말을 한다. 결혼하기도 전에 애 낳을 걱정부터 하는 사람을 두고 “걱정도 팔자”라 한다. 아니다. 당연히 해야 할 걱정이다. 걱정이 아니라 사전 계획이기 때문이다. 결혼 이후의 삶에 대한 설계다. 이런 걱정은 골머리 아픈 걱정이 아니라, 행복한 걱정이다. 걱정이 아니라, 삶의 청사진이다. 꿈이 있는 삶을 살겠다는 의지다. 삶에 대한 욕심이 걱정으로 나타난다.
삶에 완벽은 없더라. 물어보면 사연 없는 사람 없더라. 들어보면 힘들지 않은 사람 없더라. 가까이 가보면 근심 없는 사람 없더라. 아파하지 않은 사람 없더라. 다들 괜찮은 척 살아갈 뿐이더라.
걱정 없이 살아가는 사람이 어디 있으랴. 한두 가지 걱정은 가슴에 묻고 산다. 모든 걸 내려놓고 오유지족(吾唯知足)으로 살자. 세상없이 좋아 보이는 삶도 들여다보면 아픔이 있고 고통이 있는데, 내 인생만 부족하다고 탓할 건 없다. 서로 위로하고 위로받으며 두루뭉술 살아갈 일이다. 산비탈 자드락길 걸으며 잊을 건 잊고 살아갈 일이다.
동기생 여러분, 입동이 지났습니다. 만추를 즐기시고 따뜻한 마음으로 겨울을 맞으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