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의 빛깔을 닮은 주민과 늘 함께 있으니 이보다 행복한 일이 없었다.
순찰을 하다가 농작물이 부지런히 자라는 모습을 보면 내 자식이 무럭무럭 자라나는 것처럼
즐겁다. 어느새 초록이 짙어지고 작물들은 스스로 고유의 색깔을 드러낸다. 이런 자연의
시간 속에서 일하고 있다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지 이제 알았다고 하는 그는 해남군 옥천면
경찰서에서 근무하고 있는데 옥천면과 계곡면의 순찰팀장 장현준 경위이다.
장현준 경위는 줄곧 광주에서 공직생활을 하였고 몇 해 전에 고속도로 순찰대 부대장으로 있다가
처음으로 지방으로 옮기게 됐는데 이곳이 해남군 계곡면 치안센터다. 여기서 20개월 근무하다가
올 초에 옥천면 파출소로 옮겨 주민의 안전을 위해 순찰팀장을 맡고 있다.
그의 고향은 함평군 나산면이다. 어릴 때 광주로 일찍 올라갔지만, 시골에 대한 전원적 풍경을
동경했고 그 속에서 살기를 간절히 소원했다. 그 뜻이 이제 이루어진 것 같다. 그동안 아이들의
교육과 여러 가지 일로 바쁘게 살아오다 보니 뒤돌아 볼 시간이 없었다. 인정 많은 해남 사람들과
깨끗한 자연 환경 속에서 다시 새롭게 꿈을 펼쳐나갈 생각에 감개무량하단다.
그는 어려운 살림에도 조선대학교 일어일문학과를 나왔다. 어머니가 양동시장에서 건어물장사로
대학을 무사히 졸업할 수 있었다. 졸업 후 의무경찰 경력으로 경찰공무원 시험을
보게 되었는데 지금까지 경찰공무원을 하고 있단다.
아내는 대학교에 들어가자마자 같은 과에서 만나게 됐다. 군 생활과 졸업후 시험공부까지
8년 열애 끝에 결혼에 이르게 됐단다. 사귀는 동안 한 번도 다른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다.
단, 서로 여행을 좋아해 가고 싶은 데가 달라 의견 조정을 하면서 약간 싸우는 적은 있었어도.
장현준 씨는 1남 1녀를 두었다. 교육의 첫 번째의 원칙은 "따뜻한 마음으로 먼저 손을 내미는
자가 되라. 좀 더 알려고 노력하는 자세는 끊임없이 해야 하나 안다고 잘난 체 해서는 절대
안된다"며 "강직한 신념을 좋으나 그것은 절대 드러내서는 안된다. 죽을 때까지 그 신념을 지니고 있어야
하니까"라고 하며 직접으로 이것을 말하지 않았다. 장현준 씨가 실제 이런 마음을 가지면 행동에 실천하니
아이들에게 스스로 알게 됐다. 아들은 고려대 보건 행정학과를 졸업하고 인도로 봉사활동을 나갔다.
딸은 공주사범대 2학년으로 다니고 있다.
해남이 마치 고향에 오는 것처럼 포근하다. 처음 계곡치안센터에 있을 때에도 온화한 그의 미소는 모든 이들이
기억하고 있다. 그래서 쉬는 날이면 농촌일을 거들어 준다. 친부모 형제자매처럼
사는 것이 그의 천성이다. 하늘이 주는 마음 그대로 실천하면 즐거움은 항상 그의 곁에 있다.
얼굴에 항시 미소를 머금은 장현준 경위는 마음 가는 대로 실천해야 직성이 풀린단다. 그래서
그가 하는 일, 모두가 자연스럽고 편안하다. 옥천파출소 소장은 "장현준 경위는 지역민들에게
친절하고 일을 잘하는 경찰관으로 잘 알려졌다"라고 전했다.
장현준 씨는 고속도로에서 순찰할 때 빠르게 지나가는 자동차만 보았다. 보다 신속 정확하게 더 빠른 세상만
보았다. 그러나 자연이 원했을까? 천성이 그랬을까? 고요한 해남을 밟고 나니 평강의 강물이
마음속에서 흐르고 있었다. 이제 해남땅에서 남해으로 천천히 흐르는 물줄기를 보며 영원히 여기서 살고 싶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