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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강원 고성 금강산 화암사(禾巖寺)를 찾다 ②
- 설법전 앞, 야외 미륵전 그리고 부도전 -
고운 단풍을 담는 모습
바로 이 사진!
대웅전 마당에서 내려다본 모습입니다.
설법전(說法殿) -강원도문화재자료 제114호-
설법전은 사찰에서 경전강의를 하거나 참선수행을 하는 법당의 건축양식을 따르고 있 으며 현재는 인법당(因法堂)과 종무소로 사용되고 있다고 합니다.
인법당(因法堂)이란 법당과 생활공간의 기능을 함께하는 법당을 말합니다. 즉 살림집 이 곧 법당인 것이죠.
무량수(無量壽) 편액이 걸려 있습니다.
무량수(無量壽) 편액을 보니 많이 본 필체입니다. 낙관을 보니 승련노인(勝蓮老人)이 라 했습니다. 승련노인(勝蓮老人)이 누구이겠습니까? 바로 추사(秋史) 김정희(金正喜) 선생의 다른 호입니다. 김정희 선생은 잘 알려진 추사(秋史)와 완당(阮堂) 외에도 원춘 (元春)ㆍ예당(禮堂)ㆍ시암(詩庵)ㆍ노과(老果)ㆍ과파(果坡)ㆍ농장인(農丈人)ㆍ천축고선생 (天竺古先生)ㆍ병과(病果)ㆍ보담재(寶覃齋)ㆍ담연재(覃硏齋)ㆍ염옹(髥翁) 등 무려 343개 의 별호를 가지고 있다 합니다.
감로수(甘露水)
이 감로수를 보니 20년 전에 여러 법우님들과 둘러서서 기념사진 찍은 생각이 납니다. 그때 감로수는 발우형 감로수대로 그 주변을 열 명이 둘러서도 반쯤 밖에 안 되었는데 지금의 감로수는 그 크기가 줄었을 뿐만 아니라 위치도 변한 것 같습니다.
그때의 기억을 더듬어 현재의 감로수를 처음 보았을 때 참 이상하다 생각되었었지요. 기억이 잘못되었나 싶어 사진첩을 들춰서 살펴보니 그 모습은 현재와는 완전히 달라 기억이 잘못되지는 않았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때의 감로수대에 이런 명문이 있었습니다. "한 모금의 청정수로 갈증을 가시옵고 원컨대 위없는 깨달음을 얻으소서" 불기 2537(1993)년 4월에 조성했다고 했었지요.
지금의 감로수는 연잎형에 그 위에 코끼리 조각까지 해놓았는데 언제 조성되었는지는 몰라도 최근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 제 생각에는 단순하면서도 운치가 있었던 그것이 더 좋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때는 몰랐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감로수대를 크게 조성하여 물이 가득하게 했던 것은 저 수바위의 화기를 막기 위 한 비보가 아니었나 생각해 봅니다. 지금도 그런 용도가 없지 않으리라 생각합니다.
이 감로수로 갈증을 면하고 위없는 깨달음을 얻으소서.
전통찻집 란야원
여기에 들어가서 전통차 한 잔을 나누면 좋았을 터인데 그런 시간을 가질 여유가 없어 돌아서 나와 미륵전으로 향했습니다.
미륵부처님께 가는 길
설법전 뒤 장독대, 멀리 전통찻집 란야원이 보이네요.
수바위의 풍광
빼어난 수바위 모습
미륵전이 보입니다.
미륵전은 산을 깎아 조성되었는데 진입로부터 미륵전까지 축대를 쌓아 기반을 다진 듯 한데 비니초님은 진입로로부터 형성된 그 축대가 위험하게 보인다고 하더군요. 저는 미처 살피지 못했는데... 그 소리를 들으니 '화암사는 숟한 화재와 수재로 곤욕을 치뤘 는데 자칫 방심하면 큰일인데...'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통일대불 야외 미륵전 모습
「 2011년 4월 5일(음력 3월 3일 삼짇날)부터 온 민족의 염원인 통일을 위한 야외 미륵 대불 조성과 해맞이 공원조성 불사 1000일기도정진을 회향, 2014년 10월 25일 야외미 륵부처님 점안법회를 봉행하였고, 현재 미륵원불(소원불) 1080불 조성불사 모연 중에 있다.
전국 불자들의 수희 동참과 함께 미륵부처님의 나투심으로 하루속히 통일이 이루어지고 이 나라가 미륵부처님의 무량한 가피와 복덕으로 불국 안락정토가 구현(具顯)되기를 간 절히 발원하고 있다.」 -화암사 홈피 중에서-
밀적금강(密跡金剛) 나라연금강(那羅延金剛)
나라연금강(那羅延金剛)은 입을 벌리고 ´아´ 소리를 내며 공격 자세를 취하고, 밀적금강 (密跡金剛)은 입을 다물고 ´훔´ 소리를 내며 방어 자세를 취하고 있습니다. ´아´는 범어 의 첫 글자이고 ´훔´은 끝 글자로, 나라연금강은 출발하며 진취적으로 나아가는 의미로 공격 자세를 취하고, 밀적금강은 소멸의 단계에서 거두어들이는 것을 의미하며 방어 자 세를 취하는 것입니다. 또, 이 두 역사가 내는 소리는 합쳐서 우주 만물의 처음이자 마 지막을 상징하는 진언 ´옴´을 의미한다고 합니다.
나라연금강은 힘이 엄청나게 세서 코끼리의 백만 배나 된다고 합니다. 밀적금강은 금강 의 무기를 가지고 부처님을 수호하는 야차신으로 항상 부처님에게 친근하여, 부처님의 비밀한 사적을 들으려는 본서(本誓)가 있으므로 밀적(密迹)이라 합니다.
미륵대불(彌勒大佛)
미륵(彌勒)은 범어 Maitreya, 파리어 Metteyya의 음사로 한역어로는 자씨(慈氏)입니다. 현재 일생보처보살(一生補處菩薩) 즉 한 번만 태어나면 성불하실 것이 예정된 보살님 으로 도솔천에 머물고 계시는데, 아주 먼 미래에 이 땅에 내려와 성불하신 후 세 차례 에 걸쳐 설법하여 수많은 중생을 구제하실 것이 예정된 미래불입니다.
현재는 보살이기 때문에 미륵보살(彌勒菩薩)이라고도 하고, 미래에 성불하실 것이 예 정된 보살님이기에 미륵불이라고도 합니다.
미륵은 부처님 재세시 바라문집에 태어나 부처님의 제자가 되어 미래세에 성불할 것이 라는 수기(授記)를 받은 것으로 전해집니다. 도솔천은 욕계(欲界) 6천의 네 번째 하늘 로, 지족천(知足天)이라고 한역합니다.
도솔천에는 내원(內院)와 외원(外院)이 있는데 도솔천의 내원은 장차 성불하실 보살이 머무는 곳으로 지금은 미륵보살이 머무시면서 늘 설법을 하고 있다고 합니다.
자씨(慈氏)라는 이름은 세 가진 인연에 의한 것입니다. 첫째는 과거세에 대자여래(大 慈如來)를 만나 중생구제의 대원(大願)을 세운 일이며, 둘째는 이로 말미암아 자심삼 매(慈心三昧)를 얻은 일이며, 셋째는 어머니가 잉태하셨을 때 자비로운 마음을 품었던 일 등입니다.
옆에선 본 모습
부처님께서 우바리(優婆離)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열반에 든 뒤 내 제자로서 부지런히 정진하며 온갖 좋은 일을 실천하고, 행동거지를 바르게 하여 탑을 청소하고 흙을 발라 보수하거나, 온갖 이름난 향과 아름다운 꽃을 바치거나, 온갖 삼매를 행하여 올바른 선정에 깊이 들어가거나, 경전을 읽고 외기를 지극한 마음으로 한다면, 비록 번뇌의 결박을 끊지 못하더라도 여섯 가지 신통력을 얻은 것과 같을 것이다.
또 오로지 생각을 붙들어 매고 부처님의 모습을 생각하며 미륵의 이름을 부르는 사람들이 만일 잠시 동안이라도 팔재계를 받아 지키고 깨끗한 수행을 하며 큰 서원을 세우면, 목숨을 마친 뒤 마치 장사가 팔을 굽혔다 펴는 사이 같이 잠깐 사이에 곧 도솔천에 태어나 연꽃 위에 가부좌를 하고 앉게 될 것이다."
미륵상생경(彌勒上生經) 말씀입니다.
미륵전 모습
제가 무엇을 찍을까요?
미륵부처님 바로 뒤에는 미륵존불 거불(擧佛)이 새겨져 있습니다.
거불(擧佛)
나무현거도솔미륵존불(南無現居兜率彌勒尊佛) 나무당래교주미륵존불(南無當來敎主彌勒尊佛) 나무삼회도인미륵존불(南無三會度人彌勒尊佛)
현재 도솔천에 계시는 미륵존불께 귀의합니다. 미래에 오실 교주이신 미륵존불께 귀의합니다. 세 차례로 중생을 제도하실 미륵존불께 귀의합니다.
미륵존불의 탄백(嘆白)입니다.
高居兜率許躋攀 고거도솔허제반 도솔천 높은 곳 오르도록 허락하니 遠俟龍華遭遇難 원사용화조우난 만남 힘든 먼 훗날 용화세계 기다리네 白玉毫輝充法界 백옥호휘충법계 흰빛 나는 옥호광명 법계를 비추시고 紫金光相化塵寰 자금광상화진환 자마금색 모습으로 티끌세계 교화하네.
그런데 벽에 새겨진 탄백의 글씨를 보니 오자(誤字)가 보입니다. 이 일을 어찌하리...!
제1구 高居兜率許躋攀의 '躋'를 '蹄'라 하였는데... '躋'는 '오를 제'이고 蹄'는 '발굽 제, 밟을 제'입니다. 법요집에서 가끔 이 '蹄'를 써서 오자를 내는 경우가 많습니다만 '躋'가 정자(正字)입니다. 제반(躋攀)이라야 맞습니다.
제2구 遠俟龍華遭遇難의 '遇'를 '愚'라 하였으니... '遇'는 '만날 우'이고 '愚'는 어리석을 우입니다. 조우(遭遇)는 만난다는 뜻입니다.
돌에 새겨진 글은 고치기 어렵지요. 그러기에 시공할 때부터 글자는 눈여겨 볼 일입니 다. 글을 새기는 사람들은 써 준 대로 착실하게 하니 이는 이 글을 처음 써 준 사람 책 임입니다. ^^
여기에 미륵부처님을 찬탄하는 게송이 또 있습니다.
六時說法無休息 육시설법무휴식 육시로 설법하여 휴식이 없으시고 三會度人非等閑 삼회도인비등한 용화삼회 대법회로 중생구제 등한 없네. 切念勞生沈五濁 절념노생침오탁 오탁에 빠진 중생 간절히 생각하사 今宵略暫到人間 금소약잠도인간 오늘 잠깐 제도하려 인간계에 오셨다네.
미륵전을 물러나 내려갑니다.
화암사 경내를 두루 살피고 예경을 마쳤으니 떠날 차례입니다. 이제 부도전으로 향합 니다. 부도전은 통상 경내에서 좀 떨어진 일주문 위에 위치하고 있지요. 들어오면서 부도전을 보았으나 내려오는 길에 참배하려고 뒤로 미루었습니다.
정성 들여 멋지게 돌탑을 쌓아 올렸네요.
금강산 화암사 미륵대불 조성 대시주 공덕비 및 탑묘 金剛山 禾巖寺 彌勒大佛 造成 大施主 功德碑 及 塔廟
좌로부터 남평후인 문영생 제주유인 양효녀 탑묘(塔廟), 청신사 벽천(闢川) 문창환지탑 (文昌煥之塔), 청신녀 수미산(水彌山) 신향인(申嚮靷之塔)입니다.
이 분들은 미륵대불 조성에 공덕주로 혁혁한 공덕을 쌓은 가족인 것 같습니다. 이 공덕을 길이 잊지 않기 위하여 불망공덕비(不忘功德碑)를 세우고 탑묘를 세운 것 같습니다
조금 떨어진 곳에 화암사를 일으켜 오셨던 주인공들이신 고승들의 부도전이 있습니다.
부도전 모습
부도(浮屠)란 Buddha의 음사로, 스님들을 다비하고 나온 사리를 수습하여 안치한 탑인 데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모신 탑(塔)과 구분하여 부도라 부릅니다.
각종 부도군
춘담당 대선사 비(春潭堂 大禪師 碑)
철종 11년(1860), 산불로 인해 큰 절과 암자까지 완전히 소실되었고, 이에 춘담(春潭) 스님을 중심으로 중건에 착수하여 전국을 다니며 시주를 모으고 왕실의 도움을 받아 화엄사와 안양암을 중건하였으며, 탱화를 조성하였습니다. 그런데 중건 4년만인 고 종 1년(1864), 화엄사는 다시 산불 속에 휩싸였습니다. 그리하여 불타지 않은 승당에 임시 법당을 마련하고 지장탱화와 신중탱화, 현왕탱화를 조성 봉안하고서 화재를 면 할 방책을 찾았습니다.
선교양종도원장겸도총섭춘담당대선사(禪敎兩宗都院長兼都摠攝春潭堂大禪師)에 대한 정보는 위에 있는 내용이 다입니다.
탑비와 부도군
담연당 도명 대선사 비(湛然堂 道明 大禪師 碑)
담연당 도명 대선사(湛然堂 道明 大禪師) 부도
영담당(影潭堂)부도
원봉당(圓峯堂)부도
부도의 여러 모습
주인공을 알 수 없는 석탑형부도
주인공을 알 수 없는 팔각원당형부도
주인공을 알 수 없는 석종형부도
주인공을 알 수 없는 팔각원당형부도
오증무생수연행화 강산당 정휴 대종사 탑비 悟證無生隨緣行化 剛山堂 正休 大宗師 塔碑
강산당 정휴 대종사지탑(剛山堂 正休 大宗師之塔)
이 밖에 많은 부도가 있으나 다 담지 못했는데 이 모든 부도의 주인공들께서는 화암사 를 지키고 일으키고 화재와 수재를 지켜보면서 고난을 함께 하시면서도 수행과 교화의 끈을 놓지 않았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러므로 합장하고 고개 숙여 예를 올리고 돌아섰 습니다.
이 순례를 통해 약1250년을 헤아리는 화암사는 숱한 화재와 수재, 그리고 6.25사변의 상흔 속에서 폐허가 되다시피 했는데 이를 다시 일으켜 세우려 노력하신 스님과 신도 들의 원력으로 오늘날 대찰의 면모를 갖추게 되었음에 감사한 마음에 저절로 합장한 손이 떨려 옴을 느꼈습니다.
아무쪼록 산불조심, 화재조심, 안전시설점검 등을 통해 더 이상의 재난이 없기를 합장 하고 4시 35분경 일주문을 나섰습니다.
지금까지 길고 긴 고성 일대의 순례기를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음은 안성 삼사순례에 대한 순례기가 이어집니다.
감사합니다. 백우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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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백우님과 비니초님 덕분에 고성일때 순례기를 즐감했습니다. 감사합니다.
삼사순례기도 빨리 보고 싶어요.()()()
20년 전에는 남산 대원정사의 합창단을 이끌고 건봉사에서 수련대회를 하고 이어 화암사도 찾았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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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는 아무 정보도 알지 못하여 무슨 사연이 있었는지도 몰랐었지요.
다시 20년 만에 가서 느끼는 바는 그렇게 화재가 많았더군요. 그 애환이 어떠했을까 생각하니
눈시울이 붉어지네요. 정말 조심조심 불조심 자나 깨나 불조심 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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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고 싶으다요~~~~^^
날만 잡으시면 언제든지 오쾌이(五快怡)로 순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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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쾌 상쾌 통쾌 장쾌 호쾌하게요.
감사합니다()
20년 전 화암사에 갔을 때 묘법님 등 많은 사람들과 함께했었는데 그때 청안님은 없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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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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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륵대불 올라가는 길 오른쪽은 거의 절벽인데 흙과 돌이 벌써 흘러내리고 있었는데, 위치상 보수도 쉽지 않을 것 같았습니다. 아무쪼록 관리 잘하여 아무탈이 없기를 바랄뿐입니다. _()_
화재, 수재사고가 많았던 절 안전이 제일입니다. 미륵대불이 지켜 주시기 전에 사고의 원인을 안 만드는 것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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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책입니다.
20년전 모습은 수각 뿐이고 모두가 새롭게 불사 된듯, 즐감~ 감사합니다....나무묘법연화경()()()
20년 전 그 수각이 아닙니다. 그때의 수각은 꽤 컸지요. 그때의 것과는 전혀 다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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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명을 잘 안 읽으신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