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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정례법회 102.02.04
초벌 : 임도운
완성 : 송밀운
법훈편 질의응답에 앞서 두 강연자(이경주 교우, 김성현 간사)에 대해서 코멘트 간단히 하겠습니다.
먼저 이경주 교우님께서 선방 다녀온 것을 이야기해주셨습니다.
소득을 나눠주셔서 고맙습니다. 경주 교우님의 성격이나 어떤 마음으로 훈련을 났는지 알 수 있었습니다.아직 젊으니까 판단의 가치 기준을 조율하면서 충분히 잡아 갈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경주 교우가 예뻤습니다. 훈련 가기 전에 훈련을 어떤 것을 갈까 저에게 묻는 거 에요. 보통은 훈련을 안 가려고 저를 피하죠. 훈련을 가라고 해도 핑계를 댑니다. 이 사람은 둘 다 가고 싶은데 어떤 것을 갈 것인지 묻는 것이에요.앞으로 상당히 무서운 사람이 될 수도 있겠다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왜냐하면, 아까 성현 교우도 이야기 했잖아요.대학교에 들어가면 자유잖아요. 부모로부터 떨어져서 자유를 만끽합니다. 그때 많이 놀잖아요. 고등학교 때 못 놀았던 것들을 노는 것으로 풀죠. 대부분이 그렇습니다. 그러면서 대게 건강도 상하고 안좋은 인연들을 만나면서 습관이 됩니다. 1, 2학년 때 놀아보자는 학생들이 많습니다. 그런데 경주 교우는 배우려고 하는 마음, 열심히 하려고 하는 마음을 대학교 1학년, 2학년 때 가진다는 것이 앞으로 크게 성장할 것이라 생각이 듭니다. 그러면서 놀 것도 놀아야죠. 사물놀이도 하시면서. 강연 내용도 좋았지만 보기가 좋았습니다. 아까 본인의 감정, 본인의 성향, 습관 문제들을 대종사님께서는 어떻게 말씀해주셨고 어떻게 판단을 하고 행동하셨을까 생각하면서 대조를 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다음 김성현 간사님 강연에 대해서 이야기해보겠습니다. 성현 간사는 외동아들입니다. 외대를 다니고 있을 때 부모님이 저를 찾아왔습니다. 아들을 저에게 맡겠다고 책임져 달라고 저에게 이야기를 했습니다. 과거 대종사님께 그런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많은 분들께서 양아들 삼고 그랬습니다. 성현 교우 부모님도 저에게 부탁을 했습니다. 아들을 마음나게 해주면 좋겠다고 하셨습니다. 결국 마음이 나서 출가하겠다고 했는데 아무도 반대하지 않았습니다. 외아들 혼자였는데 불구하고 신심있는 공부심있는 부모님 밑에 성장했다는 것이 얼마나 고마운 일인지 살아 보면 잘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아까 은혜를 아는 방식에 대해서 두 가지 설명을 했습니다. 없어서는 살 수 없는 절대적인 은혜를 느끼고 아는 것도 중요합니다. 특히 실천을 통해 몸으로 느끼는 것이 중요합니다. 몸에는 식(識)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이것은 기억할 필요가 없습니다. 실천한 것은 그냥 되는 것입니다. 운전과 같죠. 이렇게 해야지 회상해서 하는 것이 아니죠. 운전할 때 하다보면 하는 것이죠. 몸에는 식(識)이 있어서 실천을 하다보면 자동이 되어 버립니다. 최고의 교육은 몸으로 하는 것입니다. 몸으로 하다보면 생각과의 거리, 차이를 느끼게 됩니다. 예를 들어, 건축을 할 때 100만원 정도 예상하고 시공을 하지만 실제로 150~200만원이 들죠. 생각으로는 판단하지 못했던 것이 하다보니까 나타나는 것입니다. 다른 말로는 해보지 않으면 잘 모른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젊을 때는 그것을 몸으로 느끼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 중에 하나가 은혜를 느끼는 것이 정말 중요합니다. 결혼하고 애 낳고 사니까 어머니의 마음을 알겠다. 돌아가시니까 어머니의 마음을 알겠다 그러죠. 그것을 빨리 아는 방법은 적극적으로 몸으로 해보는 것입니다. 그러면 자동으로 알아집니다. 생각과 관념에 속을 것이 아니라 몸으로 직접해봄으로써 느껴지는 이것은 절대 잃어버리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젊을 때 고생을 사서 하고,고난은 축복인 거 에요. 젊은 시절에는 눈빛을 보면 알아요. 젊은 사람이 눈빛이 흐리다거나, 젊은 사람이 편한 것만 찾는 사람들 절대 성공하기 어렵습니다. 젊을 때는 그런 기운이 있기 때문에 두려움이 없고 겁이 없고 과감하죠. 그래서 진보를 선택합니다. “나이 먹고 진보다.” “젊었을 때 보수다.” 문제가 될 수 있죠. 기질이 그런 것입니다. 그래서 진보를 선택하는 것은 기질 때문일 수도, 또는 몰라서 일수도 있죠. 젊을 때는 젊음이라는 것이 있죠. 청춘, 기백, 용기, 도전, 희망, 과감함, 모험이 있죠. 젊은이가 그것이 없다면 몸만 젊은이지 생각은 아닌 것입니다. 젊은이는 몸으로 한 번 과감히 해보는 것입니다. 이것이 공부입니다. 여러분들이 마음의 원리를 알면 나중에 경험한 모든 것이 다 자산이 됩니다. 그것이 또 공적으로 활용이 됩니다. 제가 교무를 안했다면 아마 미사리에서 아주머니들과 놀러 다녔을 것입니다. 제가 미사리에서 노래하면 아주머니들이 얼마나 좋아했겠어요? 노래하는 재주가 사적으로 쓰이는 거 에요. 죄업으로 쓰이는 것이죠. 배우는 것도 좋지만 더 중요한 것은 공심이 들어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영찬 교우님이 태권도도 했기 때문에 이렇게 요가도 진행하죠. 내가 공부심이 있고 공심, 신심이 있으면 나의 모든 장점, 기능이 다 쓰입니다. 하다못해 아픈 것도 쓰입니다. 내가 아픈 것도 아픈 사람의 마음을 이해해주고 배려하는 힘을 얻게 됩니다. 모든 것이 다 쓰입니다.
아까 윗사람을 모실 때 상봉을 하려면 본의와 공감 이야기를 해주셨습니다. 아주 중요한 이야기입니다. 사람마다 특질이 다른데 대장 기질이 있는 사람들은 묘하게 윗사람을 피하고 약한 사람만 찾아다닙니다. 밥 사주면서 자신의 패거리를 만들죠. 이런 사람은 인연 맺으면 곤란해요. 이런 사람들은 그 집단을 망하는 사람입니다. 회사에서 돈 빼먹는 사람보다 이간질 하는 사람이 제일 첫째 경계 대상입니다. 사장들은 이런 사람들을 먼저 잘라야 합니다. 그래서 옛날 교당 식당 아주머니를 뽑을 때 첫 째 조건이 말을 옮길 사람인가 아닌가를 판단했습니다. 건강도 둘째, 밥 잘하는 것도 둘째에요. 첫 째는 이 사람이 하려는 마음이 있으면서, 말을 옮길 사람인가 아닌가가 첫째입니다. 즉 심법(心法)이 중요합니다. 전체를 보는 안목이 중요한 것이죠. 영어 잘한다고 잘 되는 거 아니에요. 회사에서 쫓겨난 사람도 많아요. 심법(心法)이 더 중요합니다. 요새 젊은이들이 공감능력이 부족하다고 하죠. 공감능력은 자기 혼자는 키워지지 않습니다. 함께 할 때 키워집니다. 오해도 받아보고, 소통이 안 되서 고민도 해보면서, 경험도 해보고, 이러면서 공감능력이 커지죠. 공감능력은 우리 교리로 신앙부분입니다. 대타관계입니다. 자기 마음을 방심하지 않고, 자신을 챙기는 것은 수행하는 것입니다. 이게 삼학(三學)이거든요. 결국은 삼학을 해서 사은보은(四恩報恩)하자는 거고, 공감능력을 갖추자는 거고, 배려하고 보은하자는 것이 핵심이죠. 아무리 자기가 영어를 잘 하고 일을 잘 해도 공감능력이 없으면 회사에서 팀 활동을 할 때 어렵죠. 사람관계가 힘듭니다. 다른 사람도 싫어하죠. 문제는 공감능력이 없는 사람은 자기도 모릅니다. 그것을 해결하는 길은 스승에게 지도를 받고 지적을 받고 해결을 해야 합니다. 공감능력이 없는 사람의 특징이 자존심을 세우고 다른 사람 말을 듣지 않습니다. 악순환이죠. 문제아는 문제아인지 모르니까 문제입니다. 문제아인 줄 알면 해결할 수 있겠죠. 그래서 본의를 파악해라. 우리가 경전 공부를 할 때도 대인 관계 속에서 본의를 파악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본의를 못 파악할 수 있죠. 그 때는 보류하는 것이죠. 일단 시키는 대로 하는 것입니다. 일을 잘 하는 것보다 지시한 사람의 뜻을 받들고 그 사람과 기운이 통하고 신뢰를 형성하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또 하나는 다양성에 대한 이해입니다. 여러분 나도 움직이는 사람이고 다른 사람도 움직이는 상황입니다. 또 시대도 변화합니다. 상황도 변화합니다. 서로를 맞춘다? 얼마나 어렵습니까? 그 다양함을 이해하려면 내 마음을 넓히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래서 공감능력이 부족하면 이해를 못하는 것입니다. 내가 수요일에 공연하라고 했어요. “아 이래서 하라고 했구나!” 알아차리면 되는데 무슨 뜻인지 모르는 사람은 왜 이리 촉박하게 하는지 짜증을 내죠. 짜증내는 것도 습관이 됩니다. 짜증은 일어날 수 있어요. 감사심도 날 수 있어요. 하지만 같은 경계인데 어떤 사람은 짜증을 내고 어떤 사람은 짜증을 내지 않을까요? 이것이 자신의 업입니다. 그건 자기가 무엇에 길들여졌느냐에 따라 다른 것입니다.
원고를 보니까 이것저것 다 이야기했네요. 능력이 뛰어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신뢰를 형성하고 공감능력이 더 중요합니다. 시비(是非), 옳다 그르다 하는 것은 마음입니다. 마음이 하나가 되고, 공감이 되고, 신뢰가 형성되면, 이것도 맞고 저것도 맞을 수 있어요. 자신이 마음에 든 여자는 무슨 일을 해도 예뻐요. 옳고 그름을 넘어서는 마음이 있고 이런 마음이 더 중요합니다. 마음의 신뢰가 형성되지 않으면 옳고 그름만 따지죠. 그래서 사업에 성공한 사람은 이 마음을 다룰 줄 아는 사람입니다. 옳고 그름만 따지는 사람은 큰 사람이 될 수 없습니다. 어떻게 사람이 다 잘 살아요? 실수도 하죠? 그러면서 크는 것입니다. 제 앞에서 거짓말 많이 해요. 거짓말 하는 것을 알면서 크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크는 것이에요. 대종사님께서 “너희들 마음 다 안다. 너희들 마음 다 말하면 내 앞에 앉아 있을 사람 한명도 없다고”말씀 하셨어요. 그러면서 크는 것입니다. 그래서 심(心)이 중요한 것입니다. 그 속에서 공감이 일어나고 용서도 되고 이해가 되고 단합이 되고 시너지 효과가 나는 것입니다. 자기한테는 너그러우면서 왜 다른 사람한테 그래요?
그 다음 스텝병 입니다. 이것이 그일 그일에 일심하지 못한 전형적인 것입니다. “스텝병” 멋진 용어네요. 제가 어느 교당이나 교당에 하는 첫 법문이 있습니다. 여러분 약국에 가서 약사에게 무엇을 달라고 해야 할까요? 중국집은 무엇을 주문해야 합니까? 중국집에 와서 약을 달라고 하고 약국에 와서 자장면 두 그릇 달라고 하면 되겠습니까? 교당에 왔으면 교당에서 줄 수 있는 것을 줘야 하고, 온 사람도 본래 교당에 온 그 목적이 중요합니다. 살다보면 묘하게 핵심을 놓칩니다. 당연한 것을 많이 놓칩니다. 묘합니다. 당연하다고 하면서 안 해요. 당연한 것을 하는 것이 나중에 보면 탄탄해지고 성장하게 됩니다. 새로운 것을 하는 사람이 재주 있는 것 같지만 당연한 것을 하면서, 여백이 있을 때 새로운 것을 하는 것입니다. 큰일을 하는 사람은 그렇게 산뜻한 새로운 일을 하는 것이 아니에요. 쭉 하는 것이죠. 그래서 스텝병의 해결은 결국은 그 일 그 일 일심하는 것, 그것이 무시선(無時禪)입니다. 기도를 하든 맞이를 하든 촬영을 하든 정말로 내가 여기 온 목적이 무엇인지 알아야 합니다. 이 세상의 은혜 중에 큰 은혜는 은혜가 없는 것입니다. 대은(大恩)은 무은(無恩)입니다. 진짜 큰 은혜입니다. 마찬가지로 살짝 바꾸면 진짜 큰 일은 진짜 큰 일 같지 않은 것입니다. 그것이 큰 일입니다. 요란한 것 그게 큰 일이 아닙니다. 우리가 시간을 보면 노는 시간이 있고, 쉬는 시간이 있고, 일하는 시간이 있고, 공부하는 시간이 있습니다. 그것을 다 주관하는 것이 바로 마음입니다. 항상 그것을 주관하고 있는 것이 바로 마음입니다. 그 마음이 깨어있으면 스텝병이 나지 않습니다. 쉬어도 그것이 휴식입니다. 그래서 대종사님은 일분 일각도 끊임없이 마음공부를 할 수 있다고 한 것이 바로 그것입니다. 꼭 책만 보는 것이 공부가 아니고 마음만 깨어있다면 그것은 쉬어도 공부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마음이 들어가면 돈 벌려는 사람은 돈을 더 벌게 해주고, 건강하게 해주고 싶은 사람은 더 건강하게 해주고, 시험에 붙고 싶은 사람은 시험에 붙게 해주는 것이죠. 왜 마음이 들어있기 때문인 것입니다. 이 무형인 마음의 가치에 대해서 아직 잘 모르는 사람에게 제일 가치 없는 것이 마음이죠. 마음의 가치를 아는 사람은 최고의 가치가 마음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서로 안타까워하고 비웃습니다.
헌공금 이야기 나왔습니다. 성현 간사님은 수업료라고 생각했죠. 헌공금은 내가 한 주일간 순간순간 사은의 은혜로 무사히 배우고 산 것을 헌공하는 것입니다. 사은님께 보은해야 하는데 이것밖에 못해서, 계문을 지키면서 교법을 실행하면서 얻는 자산, 사은에 대한 고마움에 나의 진리 통장에 저금을 하는 것이죠. 또 헌공하는 것이 욕심에 대조하는 공부 길이 됩니다. 욕심이 많은 사람은 헌공금 못내요. 별일이 다 있어요. 큰 돈 내면 제 앞에서 살짝 보여줘요. 신심이 있는 것 같아도 헌공하는 것 보면 알아요. 그것도 공부에요. 출석하는 것 보면 알아요. 말 뿐인 사람 많아요. 수업료라고 생각한다? 아직 인과의 이치, 사은의 원리를 모르는 것입니다.
나중에 직장에 취업을 하고 결혼을 해서 시집에 살 것입니다. 제일 중요한 것은 사람입니다. 사람은 육근(六根)이 움직이지만 마음이 들어서 움직입니다. 어떤 마음이 제일 좋을까요? 불신하고 원망하고 계교하는 것이 좋습니까? 아니잖아요. 인격은 평등하고, 기회도 평등하지만, 평등하지 않는 것이 있습니다. 업무, 능력, 지와 우에서 평등하지 않습니다. 그것을 인정할 줄 알아야 합니다. 권한도 차이가 있습니다. 이것을 구분하지 못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차별을 생각해야 할 때 평등을 주장하고 있고, 무념할 자리에 유념을 주장하고 있습니다. 아랫사람은 철저히 아랫사람인 것입니다. 건의는 얼마든지 할 수 있죠. 요구하는 것이 아닙니다. 왜 위에 사람이 시킨 것에 평등을 주장합니까? 아니죠. 분명히 다른 것입니다. 윗사람은 책임을 지는 사람이죠. 책임만큼 권한이 비례합니다. 교당 문 닫으면 책임질 것입니까? 책임이 진 사람이 그 책임을 져야하는 것 때문에 권한을 행사하게 되어 있어요. 권한에 따라오는 것이 도(道)입니다. 일단 하는 것입니다. 회사도 마찬가지입니다. 괜히 저항적인 사람이 있습니다. 정 안 맞다 싶은 사람들은 내가 그런 권한을 가졌을 때 수정하면 되요. 건의할 수 있어요. 조심히 부드럽게! 저도 부교무때 그랬죠. 제가 간사 안 살았겠어요? 엄청 큰 건물에 교무님 아홉 분 모시고 살았어요. 저도 다 경험이 있습니다. 윗사람에 있어서 배우는 마음으로, 수많은 경험이 있는 사람에게 판단을 따르는 것이 중요합니다. 하면서 “이런 뜻이 있구나.” 나중에 확인도 하고 아닌 것 같으면 나중에 장이 되었을 때 “내가 개선을 해야겠다.” 생각하면 됩니다. 아무리 옳은 소리라도 기분 나쁘게 하면 때리잖아요. 한 쪽이 5원 손해보고 다른 쪽은 10원 손해 봐요. 윗사람이 10원 손해나는 것을 선택하더라도 하세요. 5원 차이 밖에 아니잖아요. 괜히 더 손해납니다. 전세 사는 사람이 주인이 전세값을 올렸더니 기분이 나빠서 이사 간다고 합니다. 더 손해가 날 수 있습니다. 가구 찍히고 이사 비용 더 들잖아요. 내 감정으로 할 것이 아닌 것입니다. 저는 성현이 같이 책 편집 시켰으면 좋겠어요. 매일 창고 정리하고, 어린이 집 운전하고 그랬어요. 앞으로 성현 교우님 얼마든지 책을 낼 수 있습니다. 논문도 쓸 수 있을 것입니다. 불경 찾는 것도 다 압니다. 제가 항상 생각합니다. 간사를 데리고 있을 때 이 사람은 간사로 계속 살 사람이 아니다. 언젠가 큰 사람이 될 사람이고 지도자가 될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똑같은 간사라도 앞으로 지도자가 될 사람으로 그것에 대한 제시를 해줘야 하죠. 사람을 키우는 것 중요합니다. 때로는 약간 과한 것도 고의로 줄 때가 있죠. 그 다음 단계로 올리기 위해서죠. 그 과정에서 신뢰를 잃거나 불신이 생기면 튕겨져 나갑니다. 자기 손해입니다. 여러분 누가 충고해주죠? 이 세상에 어떤 사람이 속도 모르고 충고를 합니까? 충고 기분 나쁘다만 생각하면 안 돼요. 어떤 사람이 손해 보려고 충고를 합니까? 믿으니까 충고를 하는 것입니다. 한 생각 더 해야 합니다. 제가 학사, 책 같은 것은 당대 때는 고생만 하지 도움이 많이 안 됩니다. 사람 키우는 것은 20년,50년,100년 후를 바라보는 것입니다. 큰 성자들은 당대에는 욕먹으면서 사형 당하고 했어요. 그 때 박수 받는 것 그것은 소인들입니다. 대종사님께서 일원주의(一圓主義)는 대세계주의(大世界主義)라고 하셨습니다. 성현 교우님은 앞으로 세계일을 하는 것입니다. 세상에 도움을 주는 사람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자기 마음의 힘을 기르는 삼학 공부를 마음공부를 해야 하는 거죠. 마음 공부해서 세계일을 하자고 하는 것입니다. 이 가치를 아직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먼 나라 이야기입니다. 나는 거기까지 못하겠으면 합력이라도 해주세요.
아까 질문에 답을 했는데 명답을 했죠? 성현 교우가 기가 막힌 답을 했습니다. 가장 잘한 일가 가장 힘든 일이 무엇인가 했을 때 하나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간사 때는 배우는 것이 핵심입니다. “물어보라.” “보고해라.” “배워라.” 정말 큰 사람이 되고 싶거든 역량을 키우라고 이야기합니다.
법훈편 질문 받겠습니다.
문) 김화중 교우님
1장에 보면 정산종사께서 육신생활은 부업이고, 정신생활이 원업이라고 하셨습니다. 육신생활과 정신생활 둘 다 원업이라고 하는 것이 맞지 않을까 생각해보았습니다.
답) 김제원 교무님
주(主)와 종(從), 원(原)과 부(副)를 설명하죠. 그렇다고 해서 부(副)를 무시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그 가치를 주(主)와 종(從)을 놓고 본다면 주가 정신생활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육신은 길어봤자 100년이지만 정신은 수백 배 수천 배, 넘어서 무량수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부업이고 원(原)업입니다. 정신생활의 가치를 모르는 사람들은 자기 직장을 1순위로 잡습니다. 진짜는 정신생활이 원업이고 직장이 부입니다. 그것을 아셔야 합니다. 현재 청년 회장 오 변호사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 사람이 강연을 하는데 변호사지만 부업이라고 이야기했습니다. 그것이 진짜라면 정말 대단한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밥하고 법의 차이입니다. 육신 생활은 밥이 필요하고, 정신생활은 법이 필요합니다. 법은 불변의 가치입니다. 밥은 변하는 것입니다.
문) 이도심 교우님
9장에 말씀하시기를 [결심은 특이하게 하고, 처신은 평범하게 하라.]고 하셨습니다.
어디까지 특이하게 하는 것인지 제 생각엔 결심을 특이하게 하면 처신도 특이하게 나올 것 같습니다. 어떻게 평범하게 하라고 하는 것일까요? 예를 들어, 살을 빼겠다는 결심을 한다면 평소의 모습과 다르게 특이하게 결심을 했는데, 어떻게 처신을 평범하게 하는 것인지 자세한 예가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답) 김제원 교무님
결심은 마음속에는 큰 포부와 경륜, 원력을 세우는 것입니다. 그리고 실지 현실 경계 속에서는 요란하지 않게 작은 것부터 이소성대(以小成大) 하나씩 해나가는 것입니다. 중용에서는 잠룡(潛龍)이라고 하잖아요? 특이하게는 약간 괴짜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큰 원력을 가진 사람을 특이하게 생각한다는 것이죠. 남들이 볼 때는 특이한 것이죠.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다른 사람을 무시하거나, 철학과 학생들이나 예술 하는 사람들이 괴짜스럽게 하는 것이 예술이라고 하는 것은 아직 부족한 생각이죠.
문) 송밀운 교우님
14장 [미신이 따로 없나니라. 모르고 믿으면 미신이니라.] 법문과 관련된 질문입니다. 미신이라는 것이 점술일 수도 있을 텐데 점술의 원리나 이치를 알고 있으면 미신이 안 될 수 있는지, 원리를 알고 있으면 미신이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 다른 사람들이 봤을 때 합리적으로 볼 수 없으니까 미신이라고 하는데 제가 볼 때 미신이 아닌 것도 맞는 것도 있는 것 같아 질문합니다.
답) 김제원 교무님
미신(迷信) 쌀 미 (米)자입니다. 정신이 흐트러진 것입니다. 정신이 퍼져버리는 것이죠. 그래서 미라는 것은 일심을 하지 못하고 퍼져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정상적인 사고보다는 정신이 없는 것이죠. 이것을 정확히 알면 흐트러지지 않고 집중할 수 있습니다. 신(信)이 들어갑니다. 처음에는 미신입니다. 그런데 분(忿)를 만나고 의(疑)를 만나면 계속 놓지 않고 정성(精誠)이 들어가는 것입니다. 신(信)->분(忿)->의(疑) 즉 마지막에 정신(精神)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신(信)보다 더 중요한 것이 인연(人緣)입니다. 다 인연 따라 오는 것입니다. 원불교 모른다면 그때는 미신이나 마찬가지죠. 그래서 교화가 중요한 것입니다. 부모의 인연, 형제의 인연, 법의 인연 그래서 사람의 보배요, 인연이 보배라고 하는 것입니다. 의심을 통해 알아질 때 미신을 넘어서 정신이 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미신이니까 아예 안 믿겠다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럼 어떻게 나아갈 것이죠? 그래서 “일단 믿고 의심을 통해 알아라.” 하는 것입니다. 어떤 종교는 생각도 없고, 의심도 못하게 하는 종교가 있습니다. 결국 미신이죠. 모르고 믿는 것은 미신입니다.
문) 신대룡 교우님
법훈편 2장
계(誡),정(定),혜(慧) 그것이 뜻하는 바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답) 김제원 교무님
정(正)-계(戒)-의(衣) 육신의 의식주가 있고 정신의 의식주가 있다고 하죠.
공(空)-정(定)-주(住)
원(圓)-혜(慧)-식(食)
정신의 의식주는 삼학(三學)이에요.
계문을 지키는 것은 옷과 같습니다. 깨끗해야 되요.
정(定) 안정입니다
사람이 정을 통해서 흔들리지 않는 중심을 잡아야 합니다. 그래서 주(住)
집 같이 안택(安宅) 편안한집입니다. 수양을 하면 편안하죠.
혜(慧)는 법식입니다.
육신의 의식주는 한생입니다. 그래서 그 가치가 다른 것입니다.
그래서 육영쌍전(肉靈雙全)이 아니라 영육쌍전(靈肉雙全)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더럽히지 않는 확실한 옷 그것이 바로 계인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계를 어긴 사람은 흉터가 있고 장애가 있는 것입니다. 영겁다생의 더러워 진 것을 내가 가지고 온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계문 어기는 것이 너무 쉬운 사람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계문을 어기는 것이 너무 어려워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생명을 못 죽입니다. 전생부터 살생은 거의 안한 것 같아요. 계 영혼이 더럽혀 진 것이죠. 성품적으로도 가지고 나와요.
수양을 많이 한 사람은 기운이 밝아요. 법식을 많이 하면 지혜가 있죠. 죽으면 이 옷과 같습니다. 옷을 이쁜 것 찾고 하지만 아무 필요 없습니다. 진짜 옷은 영원한 옷이죠. 죽으면 밥 못 먹죠. 진짜 먹는 것은 지혜의 법식이라.이건 영겁 다생을 가지고 가거든요.
정이 마음의 계자리 이고, 공이 마음의 정자리이고, 원이 마음의 혜자리이거든요.
내가 수완이 좋아서 돈 버는 것만 아니라 마음만 맑아도 장사가 되게 되어 있습니다 계만 잘 지켜도 인물이 좋게 나옵니다.
문) 양도인 교우님
법훈편 16장
“ 꽃은 진흙 속에 뿌리 박았으되 그 잎이 더러움을 받지 않으며, 그 꽃은 아름답고 향기롭나니, 새 세상 수도인들의 상징이니라.” 진흙 속 안 좋은 상황 속에서도 온전한 정신을 유지한다고 하셨는데, 정산 종사님께서는 세상을 그렇게 보지 않으셨을 것 같에서 어떤 본의로 말씀하셨는지 궁금합니다.
답) 김제원 교무님
기독교에서 소금이 되라 하셨습니다. 소금이 들어가면 썩지 않죠. 그래서 소금이 되라고 한 것입니다. 연꽃이 되라고 하는 것도 비슷해요. 연꽃이라는 것은 거진출진(居塵出塵)을 말하는데요. 발은 속세에 있지만, 마음은 속세를 떠난 것입니다. 연꽃을 보면 잎이 깨끗해요. 또 연 잎, 꽃도 향기도 납니다. 씨, 뿌리까지 쓸모가 있습니다. 비록 진흙에다가 뿌리를 내리고 있지만, 그 연꽃은 누구나 좋아 한다.그리고 쓸모가 있다. 또 향기도 있다. 그러니 우리 사람이 그렇게 쓸모 있는 사람이 된다면, 얼마나 좋겠느냐! 어떻게 보면 외부 경계가 와도 오염되지 않는 다는 것이에요. 여러분 나이 먹으면서 어때요? 오염 되버리잖아요. 영혼이 메마르고, 차지고, 탁해지고, 그러자나요. 그런데 연꽃은 설사 경계를 겪어도 그 외부 경계에 침투되지 않는다. 지금 교당 안 다니는 나이 먹은 사람들 가만히 봐보세요. 그 사람들도 아기 때는 뽀송뽀송한 아이였을 것 에요. 그런데 이 세상에 아부하고, 때로는 거짓말 하고, 때로는 사기도 치고, 때로는 싸우기도 하고, 때로는 양심을 속이고, 그러면서 자기가 스스로 자기가 자기가 미워지고, 자기가 탁해지잖아요. 여러분 여기에 온 이유 중 하나 아니에요? 여러분의 영혼이 더 오염되고 싶지 않아서 온 것도 있자나요.
감사합니다.
첫댓글 와~ 밀운교우님! 감사합니다. 짱짱!!
감사합니다. 헤헷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