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해군항공의 선각자로 일컬어지는 해군 초대 항공대장 고(故) 조경연(趙敬衍·1918~1991년)중령의 업적이 재조명된다.
해군6항공전단은 국내 최초의 수상항공기 해취호(海鷲號)를 제작하는 등 도전 정신과 개척자 정신의 표상이 되고 있는 조중령의 업적을 기리는 기념관을 건립, 그의 업적을 증명하는 각종 유품과 자료들을 전시할 계획이다.
조중령은 해취호를 비롯, 서해호(誓海號) 등 모두 8대의 수상 및 육상항공기를 제작해 이중 7대를 성공시킨 한국 해군항공 역사에 가장 중요한 인물로 꼽히고 있다.
조중령은 1951년 파손된 미 공군 AT-6 항공기를 수리·개조해 만든 단발 수상비행정 해취호를 시작으로 54년 엔진을 제외한 전 부분을 순수 국내기술로 설계·제작한 서해호에 이어 57년에는 중형 쌍발 수상비행정 제해호(制海號)를 제작했다. 이런 그의 항공기 제작 역사는 압록강함(경비함) 전기사관이던 51년 진해 해군 공창에 항공반을 조직할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를 계기로 본격적인 항공기 제작에 착수, 4개월 만에 첫 항공기를 만들어 냈다.
은성 무공훈장과 금성·충무 무공훈장 등 네 차례 훈장을 수훈한 그는 58년 4월 초대 항공대장으로 취임했으나 이후 항공기 제작과 관련해 끊임없이 제기된 미국 군사고문단의 압력으로 63년 3월 함대 항공대가 해체되면서 전역, 고향인 전남 강진에서 74세를 일기로 타계했다.
그의 고향인 강진에는 아직도 그를 ‘발명가’ 내지 ‘비행기 만드는 사람’으로 기억하는 이가 많다.
한 고향 마을 주민은 “어린 시절부터 기계 만지기를 좋아해 마을 사람들에게 라디오를 만들어 주거나 간단한 농기계 수리를 도맡아 했다”며 “군에 가기 전에는 오토바이 엔진으로 모형 항공기를 만들어 논바닥에 멍석을 깔고 시험비행을 했을 정도”라고 기억했다. 한편 조중령이 제작한 수상 및 육상항공기는 대부분 수장되거나 해체되고 육상 비행기 1대가 인천 정석공고에 유일하게 전시돼 있다.
부대는 교육관으로 사용할 ‘경연관’ 건립이 마무리됨에 따라 조중령이 항공기 개발을 시작한 4월1일을 기념해 유가족과 6전단 장병 및 군무원 등이 참석한 가운데 준공식을 갖는다.
3만4760㎡의 대지에 지하 1층·지상 2층 규모로 건축된 경연관은 900여 석의 강당과 접견실·소회의실·방송실 등 최신식 시설을 구비하고 있다.
특히 1층 로비에는 조중령의 생애를 조명하고 업적을 증명하는 비행기 제작 사진, 당시 이승만 대통령 친필 휘호, 그가 받은 무공훈장, 유품 등 각종 자료 100여 점을 전시한 기념관이 들어서 있다.
해군은 조중령의 뜻이 서린 경연관에서 대내외 초청 강연 등 부대교육을 비롯해 영화 상영·초청 공연 등 문화활동과 부대 행사 등을 개최, 해군 항공의 명맥을 이어 나갈 계획이다.
해군6전단 관계자는 “조중령은 격동의 시기에 대한민국 항공 발전의 초석을 다졌음에도 불구하고 뜻을 모두 펼쳐 보이지 못한 채 역사에 묻힌 항공 선각자”라며 “우주 항공계, 더 나아가 꿈을 향해 전진하는 모든 국민의 귀감이 된 그분의 뜻을 기리기 위해 경연관을 준공하게 됐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