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료실에 있는건데...
조회수 미비로..
여기다가 글을 다시 올림다....
끝까지 읽어봐요..
진짜 잼있거든요....
감동적이고...
전태일의 유서 중에서..
친구여......나를, 지금 이순간의 나를 영원히 잊지 말아주게. .......뇌성번개가 이 작은 육신을 태우고 꺾어버린다 해도. 하늘이 나에게만 꺼져 내려온다 해도, 그대 소중한 추억에 간직된 나는 조금도 두렵지 않을 걸세... 그대들이 아는 , 그대들의 전체의 일부인 나. 힘에 겨워 힘에 겨워, 굴리다 다 못 굴린, 그리고 또 굴려야 할 덩이를 나의 나인 그대들에게 맡긴 채. 잠시 다니려 간다네. 잠시 쉬러 간다네. ......이 순간 이후의 세계에서 또다시 추방당한다 하더라도. 굴리는 데, 굴리는 데, 도울 수만 있다면, 이룰 수만 있다면.....
그는 참으로 어이없게도 22의 나이에 이 세상을 등지고 만다. 집안 사정으로 학교도 제대로 다니지 못했고 그렇게 학교를 못다니는 기간에도 가족의 민생고해결을 위해 쉴틈이 없었다. 그러는 동안 그는 몇번의 가출을 하게 되는데 그첫번재는 그가13살때였다. 서울에서 부산까지 내려간 그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어린 그는 구두닦이를 해도 토밖이 구두닦이들에게 몰매맞기가 일쑤였다. 그래서 그는 다시 서울행을 결심하는데.. 그것이 1년만이었다. 그동안 어린 그가 어떤 고생을 했을지는 상상하기 그리 어렵지 않을 것이다. 제대로 먹지도 입지도 못하는 생활 속에서 전태일은 하나 하나 자신의 인식을 깨우쳐 나간다. 학교에서 배우지 못하고 현실에서 사회를 배운 그는 누구보다 바르고 정확하게 이 사회의 현실을 파악해 나간다. 집에 돌아온 태일은 비교적 안정된 생활을 해나간다. 그러던 어느날 그는 꿈만 꾸던 학교에 다니게 된다. 당시에는 집이 대구에 있었으므로 그는 대구 명덕국민학교 안에 가교사를 두고 있었던 청옥고등공민학교에 입학하였다. 고등공민학교란 가정사정 등으로 중학교에 진학하지 못했던 학생들이 다니는 학교였다. 그가 일년도 안되는 기간동안 이 학교를 다니면서 그는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순간을 경험하게 된다.
전태일의 수기중에서
나는 기초지식이 없어 영어와 수학 과목은 이해하는데 무척 힘이 들었다. 그렇지만 다른 과목은 다 재미있고, 50분 수업시간이 너무 짧은것 같았다. 정말 하루하루가 나를 위해서 존재하는 것 같았다.
정말 생각하기에 따라 이렇게 다를 수 있는 것일까? 지금 우리의 젊은이들은 어떠한지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다. 똑같은 학교의 수업시간을 우리들은 지루하다고 생각하고 전태일은 너무나 재밌지만 짧아서 아쉽다고 하고 있다.
전태일의 수기중에서
우리반에서도 나는 인기있는 학생이었다. 아무리 과거에 국민학교를 졸업하지 못하였지만 서울에서 다녔고 말을 조금 재미있게 하는 재능이 있었다. 그 당시 우리반 실장은 낮에는 철공소에 다니고 밤에는 학교에 다니는 모범학생이었다. .....부실장은 김예옥이라는 예쁘게 생긴 여학생으로서 반에서는 1,2등을 다투는 수재였다. 나는 이 부실장이 좋았다. .....피나게 열심히 공부에 공부를 더한 나는 노력의 보람이 있어 우리반 실장이던 박천수가 학교에 못 다니게 되자 , 담임선생님인 손선생님께서 나에게 실장의 임무를 주셨다. 하루 일과가 마치 기계처럼 꽉 짜여서 조금이라도 쉴 시간이 없었다. 아침 6시에 기상하면 같은 반 학생인 재철이네 집에서 원섭이와 셋이 모여서 아령을 들고 역기를 들고 앞산 비행장까지 마라톤 연습을 했다. 앞산까지 뛰어갔다가 우리집까지 오면 식사를 하고, 그때부터 아버지께서 하시는 재봉일을 도와가면서 벽에 써붙여 둔 영어 단어를 열심히 외우는 것이었다. 뜨거운 다리미질을 하면서 영어단어를 외우다가 손끝이 다리미에 닿으면 깜짝깜짝 놀라는 일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점심을 먹고 나서 다시 오후 4시 반까지 일을 계속하고 학교에 가면 그때가 하루 일과 중 제일 즐거운 시간이었다. .....1학년 2학년 접어들어서는 한달 가랑은 어떻게 허둥거렸는지 아침마다 세수할 때는 코피로 세수대야를 벌겋게 물들였다.
쉽게 포기하고 편한 것만을 추구하는 많은 사람들... 나 역시도 너무 쉽게 포기란걸 하는거 같다. 어떻게든 쉽게, 또 쉽게 노력이라는 것의 대가를 확실히 알지 못하며, 더욱 부끄러운것은 무엇을 하든지 간에 우리는 대가를 바란다는 것이다. 우리들이 대가 없이 무엇을 하기란 쉽지 않다. 어려운 사람을 돕기에 앞서서.. 자신의 일 마저도 무언가 대가가 잊기를 바라는 것 같다. 내가 이렇게 전태일에 관한 글을 쓰는 것도 어쩌면 나 자신을 위해서 이다. 그를 또다시 생각해 보고 하루하루 마음을 다지지 않으면 나는 내 자신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 조차 잃어버리고 마는 것이다. 하지만 .. 태일은 .. 아마 대가라는 단어조차 입에 올리지 않았을 것이다. 그가 하는 일은 그 자체가 목적이었을 것이다. 그의 죽음 언급하지 않더라도 우리는 그에게서 충분히 삶의 방법을 배울 수가 있다. 그에게 부끄러울 뿐이다.
그의 청옥에서의 생활은..그런 행복은 1년도 가지 못한다. 아마도 우리가 그의 행복한 순간에서 삶을 배우게 되는 것은 학교생활 밖에 없을 것이다. 학교 체육대회에서 그가 느낀 삶의 의미를 우리도 깨달을 수있으면 좋겠습니다.
전태일의 수기중에서
그렇게도 마음 설레이면서 기다리던 고등공민학교 대항 체육대회가 경북대학교 사범대학에서 열리는 날이 온 것이다. 너무 흥분한 나는 4시도 되기 전에 일어나서 준비운동을 하고 부엌에서 설쳤다. 사대 운동장에 모인 우리 선수들은 너나 할 것 없이 가벼운 기대와 흥분에 가슴이 설레고 다른 학교 학생들과도 같이 사진도 찍고 내가 출전할 종목인 마라톤 경기 시간이 오기를 기다렸다. 이윽고 나는 가슴에도 선명하게 다이아몬드형의 청옥마크를 달고...... 빤쓰는 우리집에서 아버지께서 손수 만들어주신 것을 입었다. 아버지께서 그때 우리 삼총사인 철이, 원섭이, 나 셋에게 선수로서 똑같은 모양의 빤쓰를 만들어주시고 꼭 일등하기를 당부하셨다. ......원섭이 성격은 잔잔하고 입이 무거운 편이고 웬만한 일이면 절대로 입을 안 여는, 아주 친구로서는 A급에 혹하는 친구이고, 거기에 반해 재철이는 노래도 잘 부르며 그 홀쭉한 허리를 흔들면서 어색하지 않은 몸짓과 한참 유행하는 맘보춤을 춘다고 여학생의 마후라를 빌려쓰고.. 웃길 때는 정말 배가 아프고 눈물이 날 정도로 성격이 명랑한 아이고, 나는 아마 재철이와 원섭이의 중간 성격이라면 그런대로 어울릴 그런 행동을 했다. 이를테면 노래는 못 부르는 편에다가 듣기는 좋아하고....
(체육대회) 아홉번때 서부까지 성공시키고 게임이 끝났습니다. 시합장엔 요란한 박수갈채와 승리의 개가가 퍼지고 나는 일약 오늘 이 게임에서 마스코트가 되었습니다. 맑은 가을하늘은 구름 한점 없이 깊었으며, 그늘과 그늘로 옮겨다니면서 자라온 나는 한없는 행복감과 인간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인 서로간의 기쁨과 사랑을 마음껏 음미할 때 내일이 존재한다는 것이 얼마나 즐거운 일이며 내가 살아 있는 인간임을 어렴풋이나마 진심으로 조물주에게 감사했습니다.
그가 바란것은 무엇이었을까..그는 정말 그 안에서 인간임을 감사 드렸는가... 나는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 지금까지 내가 보아온 많지는 않지만 여러 사람들.. 그리고 나..우리는 무엇을 위해 뛰고 있는 것이며 우리는 왜 태일처럼 작은것에 감사할 줄을 모르는 것일까... 그는 우리와는 다른 특별한 의식 구조를 가졌던 것일까.. 아마 아닐것이다.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바로 이것이다. 우리의 어른들은 항상 강조한다. '전인 교육!' 그렇다면 과연 우리가 그들이 강조하던 그것(무엇인지 본적이 없어서 모르겠다)을 제대로 받아 왔는가..12년 동안의 감옥 생활 차라리 정말 감옥이라면 사회화 교육과 노동의 가치라도 배우지.. 우리는 그런 학교에서 과연 무엇을 배웠는가... 지금 우리를 삶의 거대한 벽 앞에서 쓰러지게 만들 수 밖에 없는 그런 교육을 우린 받았던 것이다. (내가 지금 얘기하는 것은 나의 가치수준에서 파악한 것이고 대부분은 나의 경험담일 것이다.) 대학이라는 목표 앞에 우리는 무엇이 삶인지 배울 수가 없었다. 그저 대학만 가면 만사가 해결될거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게 아니란걸 깨닫는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왜 아무도 얘기해 주지 않았을까... '우리나라에서는 대학은 나와야 되!' 'TOEIC 850은 기본이라더라!' '그래도 대학 간판은 있어야지..!' 지겹지도 않은가! 나도 어느정도 인정은 한다. 하지만 이렇게 된 원인이 무얼까..아마도 서로 다른 얘기들을 하겠지.. 나는 한가지 얘기만 하고 싶다. 왜 우리나라 모든 젊은이들은 거의가 대학을 가려고 하는 것일까.. 아마도 그들도 모르기 때문이겠지..아무도 얘기해 주지 않으니까... 그걸 스스로 깨닫고 뒤를 돌아보고 이미 늦었다는걸 알기 까지도... 소중한걸 잃었다고 후회하게 될때 까지도... 아무도 얘기해 주지 않으니까... 하지만 태일은 스스로 그것을 깨달아 나갔다. 우리가 학교에서 왜곡된 교육을 받고 있을때 태일은 삶에서 진정 중요한것이 무엇인가를 깨우쳐 나갔던 것이다. 그는 체육대회의 즐거운 순간에서도 다음과 같은 생각을 한다.
전태일의 수기중에서
점심시간에는 나는 학교 주최측에서 제공하는 식당에서 다른 선수들과 나란히 자리를 같이하면서 남녀선수들과 같이 즐거운 대화를 나눌 때 문득 내가 아직도 서울에서 방황하고 있었으면 어떻게 되었겠나를 생각할 때 가슴이 뭉클하면서......어떻게든지 공부를 끝까지 해서 지금도 서울에서 고생하고 있는 친구들을, 그리고 거리에서 허기진 배를 움켜쥐고 있는 5원의 동정을 받고 양심까지도 다 내어보여야 하는, 언제든지 밑지는 생명을 연장하려고 애쓰는 불쌍한 사람들을 위해 일하리라고 막연하게 생각을 했었다.
2. 꺾인 배움의 꿈
전태일 평전 중에서
70년대에는 대학을 우골탑이라고 불렀다. 소뼉다귀로 이루어진 건물. 농사꾼들은 뼈가 휘도록 일하고, 술 담배를 절약하고, 아플 때도 약 한첩 못 쓰고 하면서도, 심지어는 빚을 내고 소를 팔고 생명인 땅까지 팔면서도, 기어이 기어이 자식을 학교에 보내려 했다.우리는 안다. 자식의 등록금을 마련하지 못해 쥐약 먹고 죽어간 어느 어머니의 슬픔과 원한을. 아들의 입학시험 합격 소식을 듣고도 기쁨보다는 오히려 큰 걱정이 가습을 짓누르는 숱한 어머니 아버지들의 기막힌 심정을. 어린 동생들을 공부시키기 위하여 노처녀로 늙도록 생명을 갉아먹는 듯한 고통스러운 여공생활을 해야 하는, 심지어는 몸까지 파는 누나들의 이야기는 얼마든지 있다.우리 사회에서 한 인간이 배우지 못한다는 사실이 뜻하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끝없는 가난과 질병, 중노동과 멸시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게 되는 것을 뜻하는 것이며, 평생을 통하여 아무런 희망도 가질 수 없는 밑바닥 인생으로서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 뜻하는 것이다. 무슨 이유에서건 상급학교에 진학할 수 없었던 사람은 그 순간부터 평생을 열등의식 속에서 살기 마련이다. 학교를 다닐 수 없었던 소년소녀들이 학생복을 입고 거리를 오가는 같은 나이 또래들을 쳐다보는 그 쓸쓸한 눈망울에 담긴 패배감, 좌절, 자학, 절망...... 그것을 어떻게 다 말로 표현할 수 있으랴. 자식을 학교에 보낼 수 없었던 부모들이 학교에 보낼 수 없었던 부모들이 학교에 다니는 남의 집 자식을 볼 때의 그 가슴 찢는 괴로움을 무엇으로 표현하랴.
언제 부턴가 공부 못하고 못 배운 사람은 사람 취급도 못받게 되어버렸다.
사람은 누구나 잘못을 하게 된다. 그리고 각자 사는 방식도 다른다. 그런데 돈 많고 많이 배운 사람이 잘못을 하면 그건 실수가 되고 , 돈 없고 못 배운 사람이 그러면 그건 실수가 아니라 '사람이 원래 그래서..' 혹은 '배우지 못해서..'가 되어 버린다. 우리는 자세히 살펴 보아야 한다. 누가 하는 잘못이 더욱 교활하고 인간으로서 해서는 안되는 짓인지..전태일은 16살에 자신의 뜻과는 상관없이 배움을 중단하고 패배자의 길을 가게 되는 운명에 놓인다.
전태일 아버지의 말씀
지 나이 열여섯 살에 중학교 1학년인데 어떻게 공부해서 공부로 성공을 한단 말이야! 어디 장관이나 국회의원들 되는 사람이 공부 가지고 하는 줄 알아. 돈 가지고 하는거야. 돈! 이 병신 새끼야! 스무 살. 서른 살이 넘어도 돈만 있으면 공부는 얼마든지 할 수 있어. 이 병신들아. 지랄용천하지 말고 어서 못 나가겠어!
태일의 아버지는 너무도 정확히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건 알지 못했다. 태일이 공부를 하면 누구보다도 훌륭한 사람이 될 거라는 것..
전태일의 수기중에서
아버지의 그 말씀을 듣는 순간 나는 뇌성번개가 세상을 삼키는 것 같았습니다. 아버지의 분부를 거역할 수는 없습니다. 그렇지만 학업을 중단하기는 더욱 싫었습니다.
입학한 지 일 년이 채 못 되었지만. 하루하루 나의 생활 속에서 배움을 빼버리면 무슨 희망으로 살아가겠습니까. .......정말 애가 타고 불안하기만 합니다. 내 나이 열여섯 살에 중학교 1학년인데 지금 또 학업을 중단하면 나는 영영 배움의 길이 막히는 것입니다.
태일은 그 무서운 아버지의 명령을 거역하게 된다. 이 일이 빌미가 되어 아버지는 한동안 끊었던 술을 다시 마시기 시작하였고 그의 가정에는 고함, 구타, 울음의 고통스런 소용돌이가 휘몰아치기 시작한다. 그러나 태일은 굴복하지 않았다.
전태일의 수기중에서
나는 하는 수 없이 또 무섭고 괴로운 결단을 내릴 때가 온 것입니다. 그렇다. 또 집을 나가자. ......지금 이 환경에서 내가 학교를 계속 다닌다고 하는 것은 우리 집안을 완전히 파탄의 구렁텅이에 빠지게 하는 일이고, 학업을 중단하기는 죽기보다 더 싫었습니다.
태일이 학교를 다니면 식구들이 살 수가 없다? 왜일까.. 하루하루 끼니가 걱정인 집에서 태일이 하나라도 더 일을해서 돈을 벌어야 했기 때문이다.그래서 그는 집을 나가게 된다. 그는 서울에 가서 고학을 하기로 결심을 한다. 동생 태삼이까지 데리고 가서 공부를 시켜야 겠다는 생각을 한다. 그는 어느 겨울날 어버지가 만든 잠바 몇장을 들고 동생과 함께 서울행 기차를 탄다.
전태일의 수기중에서
제일 안타까운 것은 어머니 생각이었습니다. 그렇게 무서운 아버지께 제일 많은 괴로움을 당하실 것이고 객지에 나간 우리 우 형제의 염려로 많은 나날들을 눈물 속에 보내실 것을 생각하니 마음은 그지없이 무겁고 막상 부모님 곁을 떠난다고 생각하니 눈물이 앞을 가렸습니다. 나라는 인간은 왜 이런 가슴 아픈 일이 많은지 혼자 서러워서 뜨거운 눈물이 줄기줄기 흘러내리고, 나를 형이라고 믿고 따라오는 동생을 보니 한층 더 처량했습니다. 그렇지만 이 시점에서 마음을 강하게 못 가지면 서울 가서 고학의 꿈은 깨어진다고 생각하니 동심에 젖지 말고 서울에서의 생활을 생각해야 했습니다.
16살의 소년이 인간다운 삶을 찾겠다고 집을 나온다. 배움에 대한 열정하나로 집을 나오지만 현실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일단 그들이 가진 것이라고는 잠바 8장. 그것으로 태일은 사과궤짝 12개를 사서 상자를 만든다. 두 형제가 그 속에서 발을 좀 오므리면 잘 수 있을만한 크기였다. 심한 추위와 불안 속에서 태일은 일자리를 찾고 동생은 하루종일 사과궤짝을 지키지만 그들을 기다리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태일은 구두닦이, 동생은 신문팔이를 나섰지만 태일은 구두를 닦는 시간보다 이미 자기 구역을 차지하고 있는 아이들을 피해다니는 시간이 더 많았고 동생도 신문을 못팔기는 마찬가지 였다. 결국 그 사과궤짝도 얼마가지 못하고 두 형제는 온갖 밑바닥 인생이 모여서 잠을 자는 남대문 시장의 어느 합숙소로 간다. 때냄새 땀냄새가 코를 찌르는 속에서 칼잠을 자고 이까지 옮은 어린 태삼이는, 이제는 공부고 무엇이고 그저 집에 돌아가고 싶은 생각밖에 나지 않았다. 모진 결심을 하고 서울에 왔던 태일이도 마음이 흔들리기 시작한다. 며칠새 홀쭉해진 동생과 지금쯤 집에서 두 형제를 읽고 비탄에 잠겨 있을 어머니의 고통스런 모습이 겹쳐지면서 결국 태일은 집에 돌아갈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전태일의 수기중에서
공부는 이제 평생 못한다. 아버지는 심하게 꾸중 또는 매질까지도 할지 모른다. 그러나 이제 돌아가면 깊게 패인 어머니의 주름살을 조금이라도 펴게 해줄 수 있고, 어린 동생을 잠시라도 기쁘게 해 줄 수 있다. 그것이 지금 내가 해야 할 일이다.
사흘만에 태일의 '서울고학'의 꿈은 깨지고 만다. 집에 돌아오니 아버지의 매질과 더욱 어려워진 가정형편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어머니는 방세가 밀려 괴로워 하시고, 동생은 밀린 기성회비 때문에 학교에 안 가겠다고 아침마다 울고, 태일은 이때 하루가 또 돌아오는 것이 무섭다고 적고 있다. 해가 바뀌어도 아버지의 폭음과 구타는 계속되고 결국 어머니는 식모살이를 가시게 된다. 이제 태일에게는 희망도 남아있지 않았다. 결국 태일은 어머니를 찾아 다시 서울로 온다. 이번엔 순덕이를 데리고 온다. 둘이서 살아가기는 너무 힘이 들어서 순덕이를 길에 버렸다가 다시찾고 개보다 못한 생활을 하던중 태일은 뒤통수를 쇠뭉치로 얻어맞는 것 같은 일을 당한다. 서울에서 거지가 되어버린 동생 태삼을 우연히 만나게 된 것이다. 태삼은 태일과 순덕이가 서울로 떠나 벌린 후에 아버지의 구터를 견디다 못해 서울로 와서 거지가 된 것이다. 두 형제는 부둥켜 안고 마음껏 울었다. 우는 그 순간만은, 아버지의 학대와 주위의 환경이 주는 모든 슬픈 여건 때문에 설움에 설움을 더해갔다고 그는 적고 있다. 결국 만나게 되는 어머니는 산 송장이 되어있고 천호동 보육원에 버리고 온 순덕이는 바보가 되어버렸고 가족들이 다시 모여서 열심히 살아보려고 노력하지만 태일의 가족에게는 꼬리에 꼬리를 무는 시련이 닥쳐오고 있었다.
전태일의 수기중에서
과거를 생각해보라. 국립극장 앞 어느 당구장에서 어떤 여성이 하던 말을 생각해보라.
비가 오는 날이었지. 그 억센 비를 맞으며 하나라도 더 팔려고 "우산!"하는 소리에 한달음에3층까지 뛰어올라 갔었지. "우산 한 얼마니?"
"예 35원입니다."
"왜 35원이야, 전에는 30원 주고 샀는데."
"아녜요. 30원이면 본전도 안 됩니다."
"밑지기는 뭐가 밑져, 얘들은 왜 곧 죽는 소리야? 기분 잡치게......
아니 이거 헌 우산 아니야! 자루가 이게 뭐야. 곰팡이가 쓸고, 이거 헌 거로구나!"
"아-,아닙니다. 천만에요, 이건 분명히 제가 이제 금방 받아온 거에요."
변명은 말아! 너희들이 그런 지저분한 변명을 하니까 밤낮 그 모양 그 꼴이야. 이 거지 같은 자식아!"
그래요.나는 태어날 때부터 거지예요.댁에서는 태어날 때부터 그렇게 도도한 집안에서 태어났고요.
내내 도도하십시오..
전태일 평전 중에서
전태일은 그가 '밤낮 그 모양 그 꼴'인 것이 그가 나쁜 놈이기 때문이라고 뒤집어 씌우고 경멸하는 '부한 환경' 속의 사람들에 대하여 대들고 있다. "왜 그것이 내 책임이냐?" "태어날 때부터 거지가 따로 있고 도도한 사람이 따로 있느냐?" 라고 항의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는 한걸음 더 나아가서 그를 인간적으로 짓밟는 도도한 인간들을 향하여 "내내 도도하라!"고 퍼붓고 있는 것이다. "내내 도도하라!"는 것이 무엇인가? 그것은 "내내 그렇게 도도할 수 있는지 두고 보자"는 뜻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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