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리엄 에드워드 피터스는 요나가 물고기 배 속에 있는 장면도 그렸습니다. 그림에는 체구가 작은 남자
가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싼 채 구부리고 있습니다. 절망에 빠진 모슴입니다. 물고기 내부는 흡사 미로 같습
니다. 그리고 화살표가 길 안쪽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그길은 어디로 나있는 걸까요?
혹시 터널이 아닐까요? 어둠 속을 향해있지만, 끝이 보이는 터널로 볼 수도 있지 않을까요?
요나가 거친 바다와 풍랑을 피해 피난처를 발견했더라도, 물고기 배 속 또한 피난처로 묘사될 수 있습니
다. 이같은 상황이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지 요나는 모릅니다. 이제 그는 물고기 배 속에서 죽게 될까요?
한 줄기 빛이 요나를 비추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는 이 빛을 감지하지 못합니다. 자신 안에 갇혀있기
때문입니다.
빛이 변화를 암시하듯이, 요나의 자세도 변화를 암시합니다. 그는 무릎을 꿇고 있습니다. 믿는 이들이 하
느님 앞에서 취하는 자세이지요. 무릎을 꿇는 행위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첫째, 하느님 앞에서 자신
을 낮추고, 그분을 공경한다는 뜻입니다. 곧 그분을 하느님으로 받아들인다는 것입니다. 둘째, 부활을 준비
한다는 뜻입니다. 이러한 태도를 취할 때 빨리 일어설 수 있습니다.
요나가 이때에 무엇을 하려고 했는지 우리는 모릅니다. 아마도 하느님 앞에 무릎을 꿇고 새롭게 일어설
마음의 준비를 한 것일까요?
더 묵상해 볼 점이 있습니다. 여기에서 말하는 사흘을 72시간이라는 물리적 시간으로 풀이해서는 안
됩니다. 고대 이스라엘 사람들은 새로 시작된 날을 완전한 날로 여겼습니다. 예를 들어 이 말은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에도 적용됩니다. 우리가 알고 있듯이, 예수님은 성금요일 오후에 돌아가셨고, 부활 주일
새벽에 되살아나셨습니다. 부활하신 것이죠. 그럼에도 성경은 "사흘 밤낮"(마태 12,40)이라고 합니다.
새로 시작된 사흘이기 때문입니다.
요나가 물고기 배 속에서 사흘을 있었다는 것, 그리고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 이 두 사건은 사흘 밤낮
이상의 연관성이 있는 것은 아닐까요?
그렇다면 이 두 사건이 나와는 어떤 연관이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