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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갑절의 영력을 주시옵소서!(문현화)
열왕기하 2장 7~14
이 세상을 떠날 때가 된 엘리야를 엘리사는 요단강을 건너 여리고 까지 따라간다. 이에 엘리야와 제자들은 왜 따라가느냐고 한다. 이에 엘리사는 선생님이 받으신 영역의 갑절을 받으려고 한다고 말한다. 엘리사가 받으려는 것은 성경책을 쓸 때의 영감이 아니라 영역을 받으려고 하는 것이다. 선지자란 갑절의 영역을 받은 사람, 사모하는 사람이다. 우리는 왜 갑절의 영역을 받는 것이 복된 일인가?
첫째 사도행전 1:8절에서도 너희가 성령을 받으면 권능을 받는다고 말한다. 오순절 성령을 받고나서 나타난 현상은 권능을 받는 것이다. 예수님도 성령을 받으시고 병자를 고치신다. 모세도 애굽에서 백성을 구할 때 10가지 재앙의 능력의 역사가 나타났다. 하나님의 참 종들에게는 말씀의 능력이 있고, 찔림을 주는 능력이 나타났다. 오늘 우리에게도 가장 중요한 것은 능력이다. 하나님의 일을 지혜롭게 해나가기 위해서는 능력이 필요한 것이다. 능력을 입고 행할 때 하나님의 뜻대로 일할 수 있다. 예수님은 십자가 고난을 받으셨다. 우리인간 같으면 그것을 피해서 갔을 것이다. 그렇지만 예수님은 그렇지 않으셨다. 죽음을 향해 가셨다.
우리는 하나님의 일을 한다고 하면서도 인간의 뜻을 따라 하는 경우들이 있고 하나님 앞에 가서 심판을 받게 될 것이다. 엘리사는 엘리야가 무엇이 위대한 것인지 알았다. 엘리야가 올라갈 때 내 아버지여 내 아버지여 이스라엘의 병거와 마병이여.. 라고 웨친다. 엘리야가 가지고 있던 능력의 갑절의 영역을 받아야 나라를 구할 수 있음을 알았던 것이다.
왜 갑절의 영역이 필요한가? 세상은 점점 더 악해지고 있다. 도덕적으로 타락하고, 어둠의 일들이 가득해진다. 로마교황은 동성애자들을 축복한다고 말하는 세상이다. 이 세상의 재난과 환난이 갑절이나 많아졌다. 이 세상의 유혹이 훨씬 더 많아졌다. 우리가 해야 할 일들이 갑절이나 많아진 것이다. 세상의 멸망이 빨리 찾아오고 있다. 전도할 영혼들이 많다. 주님의 오실 날이 갑절이나 앞당겨 졌기 때문에 깨어서 복음전하는 일에 힘써야 한다. 또한 세상에서 일할 시간이 짧아지고 있다. 갑절의 영역을 받기 위해서는 그 필요성을 강하게 느끼는 사람이여야 한다. 경각심과 간절함이 없는 것이 현실이다. 간절하고 진실한 기도가 있어야 한다. 또한 성경에서 말하는 장자권에 대한 감각이 없다. 환난과 시험이 오면 우리는 갑절의 능력이 없이는 믿음을 버리게 될 것이다. 또한 회계를 하지 않으면 깨끗한 은사가 임하지 않는다. 자기를 청결하고 거룩하게 만들어야 한다. 우리가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으면 여러 가지 은사들이 나타난다. 큰 은혜를 사모하면서 살아가야 한다. 우리에게는 엘리야와는 비교할수 없는 스승이신 예수님이 계신다. 그 분을 따라가는 길에 십자가도 있지만 두려워하지 말고 그 분을 따라갈 때 나라와 민족과 세계를 살리는 큰 역사를 이루는데 쓰임받게 될 것이다.
느낀점: 교회에서 유치부사역을 맡고 있으면서 함께 부서를 섬기는 선생님들과 유치부학부모님들이 무엇이 어렵고 힘들가? 세상에서 삶을 살아감에 있어서 얼마나 수고하고 애쓸까라는 마음으로 그들을 살펴본다. 그리고는 마음으로 다짐한다. 새벽마다 하나님 앞에 나아가 저들의 문제들을 놓고 간절히 기도해야 함을.. 물론기도하고 있다. 그런데 지난주는 한사람 한사람의 얼굴들을 보면서 그들의 피곤함과 지침도 느껴졌지만, 마지막 때가 성큼 성큼 다가오고 있는 때 저들의 능력 있는 신앙을 위해 간절히 기도해야 되겠다는 마음이 많이 들었다. 오늘 말씀을 들으면서 하나님의 능력을 진실되고 간절히 사모할 때 주님께서 맡기신 귀한 기도의 사명과 그 밖의 영혼을 사랑하고 구하는 일들을 잘 감당할 수 있음을 깊이 느낀다.
말라가는 시냇가에서
왕상17:1-7
본문에 엘리야라고 하는 인물이 등장한다. 그는 부모가 누구인지도, 어느 지파에 속했는지도 모르는 신비한 인물이다. 근원을 알 수 없는 이런 사람이 왜 유명한가? 아합왕과 대결을 벌리고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가를 알려주는 큰일을 했던 사람이다. 예수님이 제자들과 변화산에 가셨을 때도 나타났던 사람이 엘리야이다. 변화산에 나타난 모습을 보면 모세는 죽어서 하늘에 올라간 사람의 대표이고, 엘리야는 죽음을 보지 않고 들림을 받은 사람의 대표이다. 예수님이 오시면 두 종류의 사람들이 예수님을 영접하게 될 것이다. 오늘 17장에 갑자기 엘리야가 등장한다. 내가 기도하기 전에는 비가 오지 않을 것을 말한다. 그 기간을 구약에서는 말하고 있지 않지만 신약에서는 3년6개월 동안 비가 오지 않았다고 말한다. 하나님께서 엘리야에게 아합왕에게 이렇게 선포하라고 하시고 그 다음에는 그릿 시내가에 우거하고 있는다. 진짜로 비가 내리지 않자 완악한 아합왕은 자기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다. 우리 인간들의 모습이기도 하다.
하나님은 엘리야를 그릿 시냇가에 숨겨놓고 계셨다. 그러나 점점 시냇물도 말라 그가 마실물도 없어지자, 사렙다가부의 집에 간다. 아합왕은 엘리야를 샅샅이 찾았을 것이다. 아마 주변나라들에도 공문을 보냈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이 숨겨놓으시면 찾아낼 수 없다. 앞으로 이 땅에 큰 환난이 온다고 성경은 말하고 있다. 전쟁으로 사람들의 살림살이는 어려워질 것이다. 이러한 말라가는 시냇가에서 깨달은 것은 무엇인가? 하나님께서는 이런 훈련을 통해서 능력을 주시고 믿음의 새 역사를 만들어 가시는 것이다. 이스라엘은 계속 비가 내리지 않는다. 이러할 때 엘리야가 할 수 있는 일은 기도하는 일 밖에 없었을 것이다. 민족의 죄를 자복하면서 은총을 구했을 것이다. 그는 아침에는 까마귀가 양식을 물고 날아온다. 저녁이면 빵과 고기를 또 가져다 주었다. 하나님은 당신의 종을 보호하실 때 빵과 고기를 같이 주신다.
이런 속에서 엘리야는 하나님의 기적을 자꾸 체험하는 것이다. 하나님만이 참 하나님이시고 천지만물을 창조하시고 그 하나님이 나를 지켜주신다는 것을 체험했을 것이다. 하나님이 자신의 종들을 부르실 때 기적을 보이신다. 모세를 통해 이스라엘을 구할 때도 마찬가지이다. 하나님이 살아계시며 참 하나님이심을 나타내신다. 예수님께서 사역을 하실 때도 수많은 기적을 나타내신다. 둘째로 엘리야가 깨달을 것은 숨어있는 생활의 가치를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당신이 사랑하는 종들을 숨겨 두신다. 사람의 본심은 자기 잘남을 나타내고 싶어 한다. 스랍천사는 자기의 얼굴과 발을 날개를 가린다. 이름 없이 빛도 없이 감사하며 섬기리라.. 감추어진 삶에 비밀이 있는 것을 알아야 한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겸손하라고 하신다. 셋째로 배워야 하는 것은 하나님은 우리를 한걸음씩만 인도하신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엘리야에게 기간을 알려주시지 않는다. 예수님도 우리에게 인류의 마지막 끝에 대해서만 알려주신다. 때와 시기는 아버지만 아신다고 하시고, 성령이 임하면 복음을 전하라고 하신다. 넷째로 엘리야가 배운 것은 말라가는 시냇가에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 이 물이 말라가면 하나님이 다른 방법으로 물을 주실 것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하나님의 나라와 의가 이 땅에 이루어지기를 기도하는 삶을 살 때 하나님은 우리의 필요를 다 공급하실 것이다.
많은 나라들이 경제가 회복이 불가능할 정도로 어렵게 되어가고 있다. 경제가 어려워지면 도둑이 급성해진다. 세상은 살벌하고 어려워진다. 우리가 설사 돈은 조금 있어 괜찮다고 해도 건강은 말라가고 있다. 또한 세상 인심이 말라가고 있다. 사람의 마음도 메말라지면 먼지가 난다. 불법은 성하고.. 많은 사람의 사랑이 식어간다고 마태복음12:24절에서 말씀하신다. 이런 모습을 보면서 엘리야가 얼마나 간절히 기도했을까? 마지막 때일수록 이런 기도를 배워야 한다. 엘리야와 백성들의 다른 점이 있다. 백성들은 낙심 했을 것이지만, 엘리야는 말라가는 강물을 보면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허락하신 시련이지만,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의 시대가 올 것이라는 소망을 가지고 기도했을 것이다. 그는 능력을 받았을 것이고, 갈멜산에서 크게 승리했을 것이다. 하나님의 사람들은 어려움이 오면 올수록 더 큰 능력을 받고 은혜를 받아 살게 될 것이다.
느낀점: 엘리야에 대해 많이 배우게 되는 말씀이다. 그가 그릿시내가에서 숨어서 무엇을 했을가에 대해서는 알고 있는 것이 없었는데, 3년6개월 동안 하나님께 기도하며 주님의 능력을 힘입어 갈멜산에서 이겼을 것이라는 말씀이 많이 와 닿았다. 예전에는 그냥 엘리야가 갈멜산에 올라가서 기도함으로 하나님께서 비를 내려주셨을 것이라고 쉽게 생각했었는데, 3년 6개월이라는 긴 시간동안 엘리야의 고뇌와 그의 삶에 대해서는 깊이 생각해보지 않았다. 마찬가지고 주님의 종으로 부르심을 받은 자로 주님께 간절함으로 기도하는 하나님이 정하신 시간이 찰 때 온전히 쓰임 받을 수 있음을 느낀다. 또한 평생에 잊지 말고 자주 떠올리며 성찰해야 되는 말씀은 자신의 잘남을 드러내고 싶어 하는 욕망이라는 것이다. 나에게도 깊이 숨겨져 있는 그러한 마음을 하나님 앞에서 항상 낮추고 주님의 사랑과 은혜가 없으면 아무것도 아님을 고백하는 평생의 삶이되기를 바란다.
이 소리가 들림은 어찌됨이요
삼상15:13~21
사울이 왕이 되었다. 아말렉과 큰 전쟁을 치루고 큰 승리를 거두었다. 하나님은 아말렉적군은 다 죽이고, 짐승까지도 다 진멸하라고 말씀하신다. 하나님이 주신 승리이지만 짐승들이 아까운 생각이 들었다. 그는 좋은 것들은 남기고 못한 것들만 죽였다. 이때 사무엘이 전쟁터에 찾아온다. 사울은 사무엘로부터 큰 칭찬을 들을 줄 알았지만 그렇지 않았다. 그의 귀에 들려오는 양과 소의 소리에 대해 물은 것이다. 하나님은 세밀하신 분이시다. 주님이 우리교회에 나에게 찾아오시면 어떻게 말씀 하실가 라는 생각을 해 보아야 한다. 성전청결사건도 마찬가지이다. 제사장들은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는 것인데 무슨 문제가 되겠는가 라고 생각했을 것이지만 하나님이 보실 때에는 다르다.
오늘 우리교회에서는 어떨까. 사도바울을 딤후3장16절에서 마지막시대 사람들이 자기를 사랑하고 돈을 사랑한다고 말한다. 마지막시대 돈을 위해 부정한 짓들을 많이 하면 세상이 벌을 받을 수밖에 없다. 하나님 앞에 예배하러 나오는 우리는 짐승들의 소리가 많이 들리지 않는가? 결국 사울을 왕위를 계승하지 못하고 자기 대에서 끝나고 만다. 하나님은 짐승의 소리가 들리게 되면 하나님은 그 종을 불행으로 끝나게 하신다. 우리는 이 모든 일들에 각성을 하고 마음에 새기고 깨달아야 한다. 왜 짐승을 죽이지 않았는가? 사울은 하나님이 죽이라고 하신 것을 죽이지 않는다. 오늘도 하나님이 우리에게 죽이라고 하시는 것이 있다. 바울은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라고 고백한다. 육체와 함께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다도 한다. 우리의 옛사람은 내 힘으로는 죽을 수가 없다. 그리스도의 피가 우리의 헛된 욕심을 죽게 하시는 것이다. 사울을 핑계를 댄다. 그것으로 하나님 앞에 제사를 드리려고 남겼다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미 그의 마음중심을 꿰뚫어 보신다. 사울은 하나님 앞에 바쳐야 할 것을 다 바치지 않는 것이 둘째 죄이다. 우리도 하나님 앞에 바쳐야 하는 것이 무엇인가 잘 살펴보고 바쳐야 한다. 나의 몸도 재물도 지식도 모든 것이 주님의 것이다. 자식과 남편도 주님의 것이다. 재정적인 부분도 하나님의 것과 사람의 것을 잘 구분해야 한다. 사울을 또한 여기에 끌어들여서는 안 되는 짐승들을 끌어들인다. 사람은 평생을 살면서 끌어들이지 않을 수 없다. 친구를 잘 삼아야 한다. 이것은 나의 선택권이다. 가정과 내가 망할 수 있다. 교회도 마찬가지이다. 우리는 마지막 때 사람을 잘 택할 줄 알아야 한다, 어떻게 잘 선택할 수 있는가? 사람의 능력으로 불가능한 일이다. 하나님께서 눈을 열어주셔서 누구와 사겨야하고 거절해야 하는지 분별력을 주셔야 한다. 교회 안에는 이단들이 찾아들어오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것들은 성경으로 분별을 해 나가야 한다. 성경을 잘 아는 것은 하루아침에 되는 것은 아니다. 기도를 많이 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뜨겁게 사랑하고 진리 안에 들어가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너의 가운데 선지자가 있었던 줄을 알리라
겔33:30~33
이스라엘이 가장 자랑할 수 있는 사람은 바로 선지자이다. 에스겔 2:5절에도 똑 같은 말씀이 있다. 이방사람들과 이스라엘 사람들도 이스라엘에 선지자가 있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구약성경은 참 선지자와 거짓선지자의 대결이다. 참선지자가 가장 괴로운 것은 거짓선지자들에 대한 것이다. 참선지자가 하는 것은 항상 회개와 심판에 대한 것이다. 거짓선지자는 사랑에 대해서만 말한다. 이러한 것은 오늘 날도 마찬가지이다. 가톨릭은 이미 성경적이지 않다. 선지자는 지극히 작은 죄라도 무조건 회계 회야 한다고 촉구한다. 둘째로 참 선지자는 너희가 죄를 회개하지 않으면 망한다고 말한다. 망함을 선포하는 선지자의 마음은 괴로웠을 것이다.(눈물의 선지자 예레미야) 한국과 미국도 마찬가지로 회개하는 설교보다는 사람을 칭찬하는 설교들이 많다. 참선지자는 박해와 고난을 받으면 받을수록 하나님만 의지하면서 사는 사람이다. 참선지자들은 기도를 많이 할 뿐만 아니라 성경말씀을 많이 읽고 공부한다. 시편 1:2절처럼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사람들이다. 소이 신명기 6장 쉐마의 말씀을 행하는 것과 똑 같다. 잘 해석이 안 되고 성경말씀을 주야로 묵상하고 읽어야 한다. 옛날 어른들은 어려우면 천번을 읽어^^ 하나님께서 말씀을 사랑할 깨닫는 복을 주실 것이다. 다윗처럼 기도하고 찬송하며 말씀을 읽을 때 한량없는 복을 그에게 주셨던 것처럼 놀라운 은총을 주실 것이다. 주님께서는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누어줄 사람을 찾으신다.
느낀점: 주님께서 오늘 내게 주시는 말씀이다. 주님의 말씀을 사모하고 읽고 또 읽을 때 어느 때인가는 하나님께서 깨달음을 주시고 하나님의 말씀을 잘 전할 수 있는 능력을 주실 것이다라는 말씀을 아멘으로 받고 오늘 하루도 집념하여 주님 말씀 앞에 머물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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