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사랑 너는 어여쁘고 아무 흠이 없구나” (아4:7)
모든 사랑은 엄청난 편견을 갖습니다.
그것이 사랑의 속성이며 사랑의 생리입니다.
솔로몬의 사랑도 마찬가지입니다.
평범하기만 한 서민 여인 술람미를 사랑하기 시작한
왕의 사랑도 이 편견에서 자유하지 못했습니다.
왕의 눈에 여인은 한없이 아름다운 사랑의 대상이었고
완벽할 만큼 흠 없는 비너스였습니다.
그것은 여인의 완벽함이기 보다 왕의 사랑의 완벽함이었습니다.
이런 솔로몬 왕의 사랑의 편견은 바로 만왕의 왕 되신 하나님의 사랑의 편견이었습니다.
로마서 5장은 이런 사랑을 완벽하게 대언하고 있습니다.
그는 우리가 연약할 때 무력한 우리를 사랑하셨고,
우리가 죄인 되었을 때 그런 죄인된 우리를 사랑하셨고,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 원수 된 우리를 위한 화목의 죽음으로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가르쳐
흠과 티가 없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라고 말씀합니다.
그런 예수님이 우리의 속죄양이 되사 대속의 죽음을 죽으신 것입니다.
대속은 죄인인 우리의 자리를 대신 취하신 것을 뜻합니다.
구속은 값비싼 대가를 지불하신 그 사랑을 뜻합니다.
그 사랑으로 우리는 죄 사함을 받고 이제 그리스도의 사랑의 대상된 자리에 선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한걸음 더 나아가 십자가의 희생양 된 예수님을 구주로 믿는 우리가
그의 은혜로 ‘의롭다 함’을 얻게 되었다고 말합니다.
여기 ‘의롭다 함’의 의미는 한번도 죄를 범하지 않은 사람처럼 우리를 보아 주시는 사랑의 선언입니다.
그는 우리를 아무 흠도 티도 없는 자신의 의의 옷을 입혀 놓고 우리에게 사랑의 고백을 하시는 분이십니다.
사랑의 주님,
우리로 흠과 티가 없는 당신의 의의 옷을 입게 하신
그 사랑의 편견을 평생에 찬양하며 살게 하소서. 아멘
hannah so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