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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 엉덩이처럼 토실토실한 분홍빛 복숭아가 단내를 풍기는 듯합니다. 매실, 달걀, 현미, 새우젓, 부각, 두유, 이강주, 어란, 쇠고기, 차, 천일염, 장아찌 등 우리 밥상에 오르는 갖가지 먹을거리를 이렇게 차려놓으니 한 폭의 정물화처럼 아름답습니다. 이 건강하고 멋스러운 먹을거리는 모두 우리나라 식품 장인들이 자연이라는 재료에 공을 들여 지은 귀한 ‘작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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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사는 작품으로 지어야 한다 ‘시건방진 부산 가스나’였던 홍쌍리 씨는 전라남도 광양으로 멋모르고 시집을 와, 시아버지의 산에 돈 되는 밤나무를 베고 돈 안 되는 매화나무를 심었다. 시아버지는 내내 그것을 싫어하셨지만, 홍쌍리 씨는 매화를 딸 삼고 매실을 아들 삼고 싶어서 매화나무를 심고 또 심었다. 그가 꿈꿨던 대로 이제 청매실농원은 매년 3월이면 흐드러지는 매화로 천국 같은 절경을 이루고, 그 열매는 2천2백 개의 항아리 속에서 매실차, 매실주, 매실장아찌, 매실된장으로 발효된다. 그리고 ‘매실’ 하면 ‘홍쌍리’라는 이름을 빼고 이야기할 수 없을 만큼 그는 매실 명인이 되었다. “콩밭을 매다가 옆에 떨어진 매실 열매에 손을 비비니 시커먼 때가 말끔히 없어지대요.
재래식 방법으로 농사짓는 교수님 ‘농사짓는 교수님’. 그에게 붙은 별명이다. 대학에서 경영학을 가르치는 김성주 씨는 8년 전 대대로 내려오던 농토를 물려받아 본인이 직접 경작하기 시작했다. 농부들이 농약과 화학비료로 땅을 마구 다루는 것을 그대로 볼 수 없었기 때문이다. 쓰면 쓸수록 더 쓰게 되는 농약에 위기감을 느끼고 땅을 살리는 것이 장기적으로는 사람에게도, 땅에게도, 경제적으로도 이익이라는 확신을 갖게 된 것이다. 경기도 여주에서 농사를 시작한 지 8년째, 마을 이름을 따서 만든 ‘토골미’라는 브랜드 네임으로 그의 고집 센 유기농법은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모종의 이랑 사이를 넓혀 오리가 지나다니게 하여 면적당 수확량은 적지만 농약 없이 벼를 키울 수 있게 되었다. 단, 올해는 조류독감 때문에 오리를 쓰지 않고 우렁이만 이용했다.
자연산 채소의 생명력을 담은 발효식품 음식을 맛있게 만들기 위한 최우선 조건은 질 좋은 최고의 재료를 사용하는 것. 사계절이 뚜렷한 우리나라에는 봄부터 늦가을까지 먹을 수 있는 생명력 가득한 나물이 지천이다. 박광희 씨는 식물이 생장하는 데 최적의 조건을 갖춘 강원도 평창 고랭지에서 자란 자연산 약초를 채취하고 자연산이 없을 때는 친환경적으로 재배한 재료를 써서 김치와 장아찌를 담근다. 제철에 나는 당귀, 오가피, 산초, 개두릅, 지구자, 나물취, 곰취, 곤드레, 산마늘, 마늘종, 버섯, 양파, 오이 등이 장아찌의 주재료. 그리고 질 좋은 젓갈을 한지에 밭여 거른 뒤 맛있게 장물을 달여 깨끗이 씻은 채소에 붓는다.
짧게는 3개월에서 길게는 5년까지 ‘시간’이라는 양념에 발효되고 나면 약초 특유의 쓴맛도 향기롭게 변해 맛깔스러운 밥도둑으로 변신한다. 제대로 된 발효식품은 오래 묵을수록 맛이 좋다. 맛의 비결은 ‘자연이 키우고, 자연에서 숙성시키는 것’. 2002년 MBC 김치 명인으로 선정되기도 한 박광희 씨는 한국 음식 홍보차 해외에 두루 다니면서 최근 절임류의 가능성을 재발견했다.
그가 부각 사업에 뛰어든 지 20여 년, 오희숙 씨의 전통 부각은 국내 판매는 물론 ‘한스타일 스낵Hanstyle Snack’이라는 이름을 달고 전 세계로 수출하고 있다. “우리는 보통 밥반찬으로 많이 먹는데 외국인들은 부각을 ‘건강 스낵’으로 인식하더군요. 우리 전통 식품을 해외에 알리는 데 앞장선다는 자부심으로 힘이 드는 것도 모른 채 열심히 일하고 있습니다.” 그의 노력으로 우리의 전통 식품 부각이 전 세계 식탁 위에 오를 날을 기대해본다. 글 이화선 기자 사진 민희기 기자
자연에 순응해 느릿느릿 만드는 우리콩 두유 경기도 안성에 있는 희망나무공동체. 이곳의 대표 일꾼 정요섭 씨는 5년째 직접 기른 콩으로 두유를 만든다. 두유를 만들기 시작한 것은 8년 전. 고향인 대구에서 먹던 콩국의 맛을 못 잊어 콩으로 하는 사업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수입콩의 문제점도 알게 되고, 가공 과정에서의 오류도 발견하게 되었다. 절대로 첨가물을 넣지 않겠다 다짐하고 개발한 정요섭 씨의 두유는 일단 저온살균을 한다. 기업체에서 만든 것은 유기농 콩을 썼다고 해도 고온살균 과정에서 콩의 좋은 성분이 모두 날아가므로 그는 시간이 걸리더라도 저온살균으로 콩의 영양을 살린다.
콩이 끓으면서 생기는 거품도 자연적으로 없어지기를 기다리지 절대 다른 것을 넣어 거품을 없애지 않는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하루 생산량이 많지 않아도 자연에 순응하여 만든다는 고집이다. 콩 농사를 시작할 때는 유전자 변형이 된 종자가 아닌 토종 콩을 찾고 찾아서 영주 부석사에서 내려온다는 부석태를 선택했다. 이곳 두유의 유통기한은 겨우 한 달. 예전과 달리 요즘은 두유가 상하면 고객이 오히려 고맙다고 인사를 한단다. 그래서 그는 오늘도 느릿느릿 두유를 만든다. 글 이유진 사진 박건주 기자
대부분의 염전이 하얗고 깨끗한 소금을 생산하기 위해 염전 바닥에 타일이나 PVC 장판 등을 깔았기 때문이다. “저 역시 토판염 외에 일반 염도 생산합니다. 토판염에 비하면 일반 염작업은 매우 쉽죠. 해수를 끌어다 말린 뒤에 소금이 생기면 고무래로 긁어 모으기만 하면 되니까요. 그런데 토판염은 일반 염에 비해 열 배 이상의 노동력을 필요로 합니다. 또 비가 오면 개펄이 굳을 때까지 며칠을 쉬었다가 다시 결정지에 롤러를 굴려 평평하게 한 뒤라야 작업을 시작할 수 있기 때문에 생산량도 무척 적습니다.
” 토판염이 일반 염보다 점수를 높이 사는 이유는 미네랄이 풍부하기 때문이다. “자연 그대로의 것보다 좋은 것이 있을까요? 우리나라 토판염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프랑스 게랑드 지방의 소금에 비해도 결코 뒤지지 않습니다. 언젠가는 우리나라 토판염의 우수성이 널리 알려질 것입니다.” 일반 염보다 작업이 고되고 생산량은 20%밖에 안 되지만 김막동 씨가 토판염을 포기하지 않는 이유다. 글 이화선 기자 사진 민희기 기자
전국에서 가장 맛있는 한우 작년 10월 제10회 전국한우능력평가대회에서 최우수상을 수상한 경상북도 성주 가나안 농장의 구진모·구교철 씨 부자. 전국 1백31개 농가 중 단연 육질 좋기로 손꼽힐 만큼 소 잘 키우는 비결을 묻자, 구진모 씨는 “소가 사는 동안 편하게 해주는 것밖에 없다”고 말한다. 단순한 대답이지만 이것이 진리. 드라마 <식객>에서 주인공 성찬은 누렁소 ‘꽃순이’를 고속도로가 아닌 흙길로, 느리지만 편안하게 싣고 와 육질 대결에서 승리하지 않았던가. 최고 등급인 1++, 그리고 1+, 1, 2등급순으로 나뉘는 한우 육질을 결정하는 요소는 무엇일까?
“사육 환경과 유전자죠. 부모 소에게서 얼마나 좋은 유전자를 물려받았느냐와, 사육 환경이 얼마나 좋으냐가 한우의 맛을 좌우합니다.” 16년째 한우를 키워온 이들 부자는, 아버지 구진모 씨의 숙련된 안목과 노하우로 우수한 종자를 고르고, 아들 구교철 씨의 합리적인 판단으로 축사를 관리하고 농장을 운영한다. 수질 검사 등의 환경 검사를 완료했고, 축사에 톱밥을 정기적으로 깔아 소의 퇴비가 잘 건조되도록 한다고. 과연 털에 윤기가 자르르 흐르는 한우들이 살고 있는 축사에는 ‘소똥’ 냄새가 거의 나지 않는다. 수입 소가 밀려오는 요즘, 이들은 꼭 한우임을 확인하고 먹으라는 당부를 잊지 않는다. “외국에서 소가 들어와도 6개월만 우리나라에서 살면 국내산 소가 됩니다. ‘국내산’이 아니라 ‘한우’ 표기를 확인하고 드십시오.” 안남미와 우리 쌀 맛이 다르듯 수입 소와 한우의 맛 또한 차이가 나는 것은 물론이다. 글 손영선 사진 박건주 기자
‘야생’이 아니라 ‘자생’이라 말하는 이유는 일부러 산에 심었거나 사람이 드나드는 길에서 자라는 나무가 아닌, 산속 깊은 곳에서 스스로의 힘으로 자란 나무에서만 잎을 채취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채취한 잎은 모두 화순의 맑은 물로 씻어 말린 후 직접 손으로 썰고, 황토방에서 발효시키고, 가마솥에서 수차례 손으로 덖으며 차 잎 하나하나에 열기가 닿도록 정성을 들인다. 삼경차를 마시면서 혈액 순환으로 고생했던 지병이 나아졌다는 오금자 씨. 건강을 돌봐주는 고마운 차를 만들면서 그가 지키는 원칙은 ‘자연스러움’이다. 잎을 채취할 때도 나무가 다치지 않게 하는 것이 우선이고, 반드시 사람 손으로 썰고 덖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그의 정성스러운 마음결이 삼경차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어디 그뿐인가, 벌레들과 숨 막히는 전쟁을 벌여야 하는 까닭에 열 손가락에 노란 ‘벌레물’까지 들어가며 자식 키우듯 애지중지 복숭아를 키운다.
그런데도 벌레가 갉아 먹고 새가 쪼아 먹은 것을 제하고 나면 남는 게 겨우 ‘반타작’이다. 그는 화학비료와 농약의 달콤한 유혹을 뿌리치고 자연농법을 실천하는 고집 센 농부, 유기농으로 과일을 키우는 게 얼마나 힘든지 해를 거듭할수록 뼈저리게 느끼면서도 통통하게 여문 복숭아를 보면 그저 고마운 소박한 농부, 껍질째 먹는 안전한 복숭아를 생산하는 정직한 농부, 자기가 키운 복숭아가 전국에서 가장 맛있다는 자신감 넘치는 농부, 고객에게 보내는 복숭아 상자에 손으로 쓴 감사 편지를 동봉할 줄 아는 부드러운 농부, 그래서 믿음이 갈 수밖에 없는 농부다. 그런 농부가 키웠으니, 당연히 ‘정도령’ 복숭아의 육질은 부드럽고 맛은 꿀처럼 달다. 글 구선숙 기자 사진 양재준 기자
“우리 달걀 드시면 일반 달걀은 비려서 못 먹겠다고 하세요. 노른자가 얼마나 크고 싱싱한데요. 생명이 담긴 유정란이기 때문에 실온에 한 달을 두어도 상하지 않아요.” 최근에는 큰 달걀을 원하는 소비자를 위해 육계와의 개량종을 개발하기도 했다. 그가 키우는 토종닭도 최고의 건강식품. 성장 호르몬, 항생제 먹여가며 60일간 키운 ‘병아리닭’하고는 차원이 다르다. 6개월 이상 운동을 많이 하고 자란 탓에 육질은 훨씬 쫄깃하다.
19세에 광주에서 여학교를 졸업하고 영암으로 시집와 시어머니에게 어란 제조 비법을 배운 김광자 할머니의 나이는 올해로 여든셋. 집안 대대로 내려온 전통 방법으로 어란을 만든 지 60년이 넘었다. 시어머니 때부터 헤아리면 1백 년은 족히 넘는다는 김광자 할머니네 ‘어란의 집’은 영암군청 옆에 자리 잡고 있는데, 매년 4월부터 6월까지 이 일대에서 가장 분주하고 바쁜 집으로 소문이 나 있다.
알이 밴 숭어를 고르는 특별한 안목과 상처가 나지 않도록 알을 채취하는 기술, 천일염에 직접 담근 조선간장을 섞어 만드는 간수의 염도, 간수에 담갔던 알을 꺼내 아침저녁 서너 번씩 참기름을 바르며 바람과 빛이 넉넉한 곳에서 말리는 정성…. 이 모든 것이 김광자 할머니의 어란을 대한민국 대표 어란으로 인정하는 이유다. 글 이화선 기자 사진 민희기 기자
고두밥과 누룩을 섞어 술을 만들고 증류식으로 소주를 내린다. 소주고리에 불을 지펴서 알코올이 먼저 증기가 되어 올라가는 것을 항아리 위쪽의 공간에서 식혀 추출한다. 여기에 계피, 생강, 배, 울금, 꿀을 넣어 저온에서 오랫동안 발효해 향을 내면 이강주가 된다. 배의 시원하고 달콤한 맛과 소화를 도와주는 기능, 생강의 알싸한 향, 계피의 시원한 향이 더해진다. 이강주의 특징은 마셔도 다른 술에 비해 머리가 아프지 않고 숙취가 없다는 것. 그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이 울금이다.
예전과 달라진 점은 예전에는 소금 반, 새우 반이라고 할 정도로 짜게 만들었던 것을 요즘은 사람들의 입맛에 맞게 염도를 많이 낮췄다는 것이다. 간을 한 새우젓은 그의 아버지가 지은 40년 된 토굴에서 숙성을 거친다. |
기자/에디터 : 기획과 구성 <행복> 음식문화팀 캘리그래피 강병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