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랑 결혼해 줄래?
오래전에,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32년 전, 화이트데이에 ‘나랑 결혼해 줄래? 하면서 손을 내밀던 청년에게 “평생 함께할게요.”라고 화답했다. 아침에 일어나서 ‘나랑 결혼해 줄래?’노래 부르며 남편에게 초콜릿을 선물했다. 그리고 나의 목에 빨간 리본을 매고 퀵 서비스로 배달 온 선물이라고 했더니 웃음이 ‘빵’ 터져버렸다. 택배는 얌전히 그대로 있으라고 하면서 종이가방을 건넸다. <휠라> 속옷이었다. 인디핑크 속옷 세트다. 벚꽃 향기가 가슴으로 들어왔다.
속옷에 유독 욕심을 낸다. 이왕이면 나에게 예쁜 속옷을 입혀주고 싶어서다. 첫눈이 오는 날이나 생일이나 성탄절에 마음을 내서 시내로 나간다, 매화꽃을 처음 본 날에도 매화꽃을 닮은 속옷을 샀다. 어느 해에는 아들 속옷을 사러 갔다가 연초록 속옷에 그냥 반해버렸다. 며칠 전에 속옷을 사서 또 사는 것이 충동구매 같아서 “첫눈이 오면 사러 올 게요”하면서 아쉬운 마음으로 돌아왔었다. 얼마 지나서 첫눈이 거짓말처럼 겨울왕국처럼 내렸다. 눈이 내리는 것이 드문 이곳에서 내 마음을 아는 것처럼 눈이 펑펑 내렸다. 두근두근 설레는 마음으로 버스를 탔다. 오로지 연초록 속옷만 그리며 마음은 버스보다 먼저 달려가고 있었다.
“첫눈이 오면 사러 온다고 했었는데, 연초록 속옷 사러 왔어요.” 어린아이처럼 해맑게 웃으며 가게로 들어오는 나를 신기하게 바라보았다. ‘맞아요! 생각나요. 그날 첫눈이 내리면 온다고 해서 기억에 남은 손님이었는데 진짜 오실 줄은 몰랐어요.’하면서 반갑게 맞아주었다. 매장 언니가 예쁘게 선물 포장을 해주었다. 나에게 주는 첫눈 선물이었다.
언제나 속옷을 살 때는 예쁜 스토리를 만들어서 산다. 결혼기념일에 어떤 선물을 받고 싶으냐고 해서 백화점에 함께 갔다. 마음에 드는 속옷을 선택해 주었다. 인디핑크 색이 봄처럼 사랑스러워 보였다. 자꾸 입고 싶어지는 그런 마음이 드는 속옷이었다. 남편이 자기 서재에 깊숙이 감춰두고 오늘 ‘짜잔’하면서 주었다. 미리 보았지만, 은근히 기다린 날이기에 너무 좋았다. 아이처럼 말이다.
퇴근길에 내가 좋아하는 회를 사 왔다. 그다지 생선회를 좋아하지 않는 남편이 마음을 내주니 고마웠다. 포항 여행에서 돌아온 아들과 술 한잔하면서 결혼기념일을 서로 축하해주었다. “평생 함께 살아요.”라고 내가 건배사를 했더니 ‘그럽시다!’ 경상도 남자답게 짧고 간결한 멘트로 분위기를 띄워준다. 전반전은 예행연습이고 후반전은 실전이다. 우리 긴 시간 충분히 연습했으니, 서로에게 최선을 다하는 괜찮은 삶을 꾸려나갑시다. - 2024년 3월14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