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내용물을 담으려면 그릇이 있어야 합니다. 오늘 베드로와 고넬료의 만남을 통해 이들의 준비된 그릇과 그 안에 예수님이라는 내용물을 넣을 때 얼마나 풍성해지는지를 보고자 합니다.
고넬료는 악조건을 뛰어넘는 믿음이 있었습니다(1,2). 그는 순수한 로마 군인이었는데 자기가 지배하는 나라의 신을 믿는 것도 쉽지 않고 이방인으로서 예수를 믿는다는 게 용납되지 않는 상황이었습니다. 이럴 때 우리는 장벽과 함께 때문에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고 인간적으로 이해해 주고 싶습니다.
우리가 볼 때는 장벽이 있고 한계같이 보이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고 순종의 길로 나아가게 되면 하나님이 거기서 또 특별한 능력과 은혜를 부어주셔서 구원의 길을 열어주십니다. 하나님께서 고넬료의 기도를 들어 주시고 그를 기억하셔서 벽을 뛰어넘을 수 있도록 충분한 능력과 은혜를 주신 것입니다.
어떤 분은 악조건 속에서도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는 분도 있고 잠잘 시간도 없는데 열심히 기도하는 분들도 있으며 엄청난 방해와 핍박 속에서도 예배를 드리는 분도 있습니다. 항상 평탄함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도 고넬료 같이 한계를 뛰어넘는 믿음의 그릇을 갖는 하나님의 거룩한 종들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베드로에게는 설득당하는 믿음의 그릇이 준비되어 있습니다. 베드로는 유대인으로서 이방인들을 개로 여기고 가까이 가지 않는 고정관념과 한계가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하나님의 권면을 받아들이고 도무지 넘을 수 없는 장벽들을 다 돌파하고 고넬료를 만나러 갑니다. 하나님께 설득당하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를 설득하시기 위해서 보자기에 먹지 못할 음식들을 잔뜩 넣어 놓고 먹으라고 하십니다. 그런데 세 번이나 먹지 않겠다고 버팁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내가 깨끗하다 하는 것을 속되다고 하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에 설득당하니까 고넬료의 종들이 와서 권면할 때 따라간 것입니다.
변화된다는 것은 자기 고집을 내려놓고 말씀 앞에 설득되는 것입니다. 설득돼야 변화가 되고 변화가 돼야 내가 깨져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까지 자라 가게 되는 것입니다(엡4:13).
성령에 의해서 설득당하지 않았다면 베드로의 세계는 좁았을 것입니다. 지구 70억 인구 중 유대인의 인구가 600만이라고 합니다. 만약 베드로가 유대주의에 머물러 있었다면 그의 세계는 600만에 머물러 있었을 것입니다. 천분의 1의 인생을 사는 것입니다. 우리도 주의 말씀에 설득당하고 순종하게 되면 지금 있는 모습의 천 배 이상의 영역이 확장되고 깊어지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그릇이 작은 이유는 설득당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말씀을 들을 때마다 매 순간 설득이 된다면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커질 것입니다.
베드로가 벽을 뛰어넘어 고넬료를 받아들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런 그릇을 사용하십니다. 이 시대도 익숙한 것과 결별하고 말씀에 의지하여 선을 넘어갈 때 하나님이 놀라운 능력 가운데 일하실 것입니다.
믿음으로 살고 의로 산다는 것은 하나님 앞에 설득당하는 인생을 산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입술로만 믿음이 있다고 하면서 실제로는 자기 고집대로 삽니다. 베드로가 하나님 앞에서 설득당하니까 해석이 되고 깨닫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런 그릇을 사용하십니다(34, 35). 악조건 속에서도 하나님의 뜻을 받아들이고 주를 믿는 믿음, 한계를 뛰어넘고 설득당하는 믿음이 준비될 때 내용은 하나님이 채우십니다.
고넬료가 베드로를 만나고 엎드려 절할 때, 베드로는 나도 사람이라고 말하면서 자기를 부인합니다(25, 26). 우리는 예수님을 바라봐야지 사람을 쳐다봐선 안 됩니다. 그건 예배가 아닙니다. 눈에 보이는 일꾼들은 양몰이 개에 불과합니다. 오직 목자 되신 예수님만 봐야 합니다.
베드로는 그들의 준비된 그릇에 예수님을 채워 줍니다(36-38). 예수님으로 채워 주니 예수님을 발견하게 되고 내가 증인임을 발견한 것입니다(41). 십자가는 믿는 사람이나 믿지 않는 사람이나 누구든 다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부활은 제한된 사람에게만 보여 주셨습니다. 500인이 보았고 사도 바울도 만났습니다. 우리도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고 있습니다. 우리 속에서 살아 계신 예수님을 체험하고 있습니다. 택함 받은 백성이 날마다 살아 계신 예수님을 체험하는 것입니다(40,41).
십자가뿐만 아니라 부활을 체험한 사람이 증인 되는 것입니다. 십자가에만 머물러 있는 사람은 증인이 될 수 없습니다. 부활하신 주님을 만난 사람은 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예수님을 알게 되면 나를 깨닫게 되는데 내가 증인이라는 것입니다.
증인 되지 못한 사람들은 부활을 체험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내가 살아있는 예수님을 만났는지 아닌지는 내가 전도하는 자인지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고전1:21). 전도의 미련한 방법을 통해서 영혼들을 구원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죄 사함을 받고 구원받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전도밖에 없습니다. 성도가 전도하지 않으면 한 명도 구원시킬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구원 방법은 증인을 통한 전도입니다.
전도의 내용은 장대에 매달린 놋 뱀을 보는 것 같이 예수님을 주셔서 그를 쳐다보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는 것입니다. 이거 외에는 구원받을 방법이 없습니다. 천국은 예수 믿는 자가 갑니다. 그게 구원받는 유일한 길입니다. 예수님 외에는 구원받을 길이 없습니다.
베드로가 고넬료의 준비된 그릇 안에 예수님으로 꽉 채우니 구원받는 능력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이렇게 복음을 전할 때 성령께서 임재해 주십니다(44). 교회가 성령 충만하고 능력 있는 교회가 되기 위해선 전도해야 합니다. 예수로 가득 채워지게 되면 부활의 주님을 만나게 되고 전도의 미련한 것들이 우리 속에서 나타나기 시작하며 그때부터 지옥 갈 사람들이 천국으로 변화되는 역사를 보게 될 것입니다. 그게 교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