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사마천이 47세가 되던 해 뜻하지 않은 불행한 일이 발생합니다. 바로 ‘이릉(李陵)의 화(禍)’입니다.
무제는 이전 황제와는 달리 흉노에 대해 강경책을 내어 흉노토벌에 나섭니다. 위청과 곽거병이 큰 공을 세우게 됩니다. 나중에 이광리가 출정하게 되었을 때 한나라 초기 유명했던 장군 이광의 손자 이릉이 합류하게 됩니다. 이릉이 보병 5천명으로 흉노 기병 3만 명과 싸워 크게 이깁니다. 그런데 이릉의 부하 관감이 한 교위에게 모욕을 받고 흉노에 항복하면서 이릉 부대의 허실이 흉노의 선우에게 들려집니다. 후퇴하려던 선우가 생각을 바꿔 군사를 총집결하여 이릉부대를 공격합니다. 군사가 적고 게다가 무제로부터 지원군을 받지 못한 이릉은 결국 군사 태반을 잃었고 이를 견디지 못한 이릉, 결국 항복을 하고 맙니다.
이릉이 패전에다가 항복까지 해버렸다는 보고를 받은 무제가 대노하고 신하들도 전전긍긍하며 아무도 이릉을 변호하는 말을 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강한 처벌을 주청합니다. 무제가 사마천에게 어찌 생각하느냐고 묻습니다.
“이릉은 효도하고 신의가 있으며 그간의 공적도 많은데 군신들이 그의 죄를 만들어 내니 통탄할 일입니다. -중략- 이릉의 병졸들이 8일간 천리를 전전하면서 사투를 벌여 맨주먹으로 죽기로써 싸웠으니 옛날의 명장일지라도 이릉보다 낫지 않을 것입니다. 적은 군대로 많은 군대를 맞아 흉노의 예봉을 꺾은 공로가 큽니다. 그가 죽지 않고 항복한 것은 다시 적당한 기회를 얻어 공을 세워 한나라에 보답하기 위한 것일 겁니다.”
사마천의 강경한 변호 발언은 무제의 감정을 크게 상하게 합니다. 자기 애첩 이부인의 오라비인 이광리가 기병 3만을 이끌고도 패전한 것을 비난한 것으로 여깁니다. 결국 괘씸죄를 더하여 사형을 내립니다.
이러한 이릉의 항복에 대해 당시 신하들은 ‘이릉이 군사가 부족하여 졌다.’는 것을 알고 있었으나 무제 앞에서는 말도 못 꺼냈던 것입니다. 훗날 사가(史家)들은 이들의 ‘비겁함’을 들먹이며 일찍이 맹자(孟子)가 말한 중과부적(衆寡不敵 무리 중, 적을 과, 아닐 부, 원수 적)이라는 성어를 써서 사마천과 이릉을 두둔하고 그들의 불운을 애석하게 여깁니다.
전국시대에 맹자는 통치자의 인과 덕을 바탕으로 한 왕도정치를 주장합니다. 제후의 우두머리인 패자(覇者)가 되고자 한 제(齊)나라 선왕이 맹자에게 그 방법을 묻습니다. 가소롭게 생각한 맹자가 선왕의 무모함을 일깨우기 위해 이렇게 묻습니다.
“왕께서는 소국인 추나라가 대국인 초나라를 이길 수 있다고 보십니까?”
“당연히 초나라가 이길 것이오.”
“그렇다면 소국은 결코 대국을 이길 수 없고, 적은 숫자로 다수를 대적할 수 없습니다(중과부적). 지금 천하에 사방 천리나 되는 나라가 아홉인데 제나라 혼자 나머지 여덟을 굴복시킬 수 있겠습니까? 근본으로 돌아가 백성에게 인정을 베풀어 그들 스스로 기꺼이 복종하게 한다면 어느 누가 막겠습니까?”
맹자가 말한 이 중과부적은 훗날 역량 차이가 커서 상대가 되지 못함을 비유하는 말로 사용하며 그런 불운을 동정하는 말로 쓰입니다. 그 후 사람들은 전쟁에서 패하거나 운동경기에서 질 경우 등에 이 말을 인용하여 ’어쩔 수 없었지.‘하며 변명의 말로 사용하기도 하였습니다.
다시 사마천의 얘기로 돌아갑시다.
옥에 갇혀 사형을 기다리고 있던 사마천은 아버지의 유언을 받들어 사기를 계속 써나가야 했기에 살아날 방도를 찾습니다.
사마천이 감옥에 있을 때 친구 임안으로부터 편지를 받고 이런 답장을 보냅니다.
“만약 내가 죽어도 아홉 마리 소에서 털 하나 없어진 것과 같으니 개미와 같은 미물에 다를 것이 없게 되었다. 그리고 세상 사람들이 나의 절개를 지키다가 죽은 것이 아니라 지혜가 다해 나쁜 말을 하다가 죽은 것으로 여길 것이다.”
그는 이어서 살아남아 역사서를 저술해야 하는 여러 이유를 말하면서 구명을 호소합니다.
여기에서 구우일모(九牛一毛 아홉 구, 소 우, 한 일, 터럭 모)라는 성어가 나옵니다. 훗날 ‘아무것도 아닌 하찮은 존재나 일’을 비유하는 말이 되었습니다.
당시 사마천이 사형을 면하려면 자결을 하든지 속죄금 50만 금을 내거나 고환뿐만 아니라 남근까지 잘라내는 거세형벌인 궁형(宮刑)을 받든가 해야 했습니다. 가난한 사마천은 결국 사대부로서는 죽음보다 더 치욕스러운 것이었지만 결국 궁형을 선택하였고 2년 후(50세)에 출옥하게 됩니다.
사마천이 형기를 마치게 되자 무제는 사마천의 재능을 아껴 환관으로서 고위직책인 중서령(中書令)으로 등용합니다. 고자(鼓子)가 된 사마천, 오히려 기회였습니다. 환관이니 궁을 마음대로 출입하게 되어 많은 자료를 열람할 수 있게 되었고, 그간 모아 놓은 많은 자료들을 정리하면서 다시 책을 쓰기 시작합니다. 딸 사마영(司馬英)의 도움을 받아 BC90년 마침내 20여 년의 각고 끝에 기전체로 쓰인 역사서 <태사공서(太史公書)>를 완성합니다. 사마천의 나이 55세였습니다. 사마영은 10대 선제(宣帝) 옹립에 공을 세웠던 양창(楊敞)에게 시집을 갑니다.
이 책은 역사상 제왕의 계보를 정리한 본기(本紀) 12권, 제후의 계보를 정리한 세가(世家) 30권, 유세객, 정치가, 학자, 장군, 자객뿐만 아니라 대장부다운 호탕한 기질이 있는 유협(遊俠, 유사와 협객)과 재물을 늘린 화식(貨殖, 재물을 늘린 자)들에 대한 이야기인 열전(列傳) 70권, 예서, 악서, 율서, 역서, 천인관계(天人關係)인 천관서(天官書), 귀신에 관한 봉선서(封禪書), 하거서(河渠書, 산천에 관한 것), 시폐(時弊)를 이어 세변(世變)에 통하는 것 평준서(平準書) 등 서(書) 8권, 역사에 있어서의 사건 연차인 표(表) 10권 등 총 5부 130권으로 되어 있습니다. 사마천은 열전의 마지막에 태사공자서(太史公自序)를 넣습니다. 자기 집안의 내력과 자신의 일생과 주관을 열거하고 역사서를 써야할 이유와 사기의 주요내용을 요약하여 기술합니다.
죽간(폭 0.6센티, 길이 23-27센티, 두께 0.2센티, 죽 1칸에 30자, 15,100개, 총 50-60킬로그램)에 52만 6500여 글자를 쓴 방대한 책이었습니다. 사마천은 유사시를 대비해 2부를 만들어 사위 양창(楊敞)의 집에 숨겨 두었습니다. 선제에 이르러 사마영의 둘째 아들 양운(楊惲)이 이를 읽고 감격하여 선제에게 바칩니다. 마침내 세상에 그 모습이 드러나게 되었고 이후 책 이름이 <사기>가 됩니다.
훗날 사가들은 사마천이 허세와 미화를 배제하고 악행을 숨기지 않는 객관적인 잣대로 저술하였다고 평가합니다. 이후 천하의 인재들이 이 책을 필사하여 애독하는 역사서의 본보기가 됩니다. 특히 열전은 각양각색의 인물(약 4천여 명)과 얽힌 수많은 일화가 쓰여 있어 많은 사람들의 필독서가 되었고, 우리나라에도 이를 번역하여 널리 읽히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자주 접하는 사자성어가 제일 많이 등장하는 것도 열전입니다. 그래서 제가 앞으로 강의하는 내용에는 열전에 나오는 얘기에서 유래된 고사성어가 주를 이루게 될 것입니다.
첫댓글 박사논문으로 <조선후기 실존인물의 사전>에 대해서 쓰면서 열전의 전범이 되었던 사기 열전을 통독한 적이 있었지요. 흥미진자하게 읽으면서 소설 이상의 감동을 받았지요. 마찬가지로 삼국사기 열전도 역사기록 이상의 문학성을 담지하고 있음을 발견하고, <삼국사기 열전의 문학성>이란 논문을 쓴 적이 있지요. 잠시 논문을 쓰기 위해 밤을 지새우고 뇌장을 짜내던 시절로 돌아가 봅니다. 잘 읽었습니다.
본기와 세가 그리고 열전을 통독하지않고서는 세상과 인간을 이야기할 수없는 필독서중의 필독서지요. 서양 의 어떤 역사서와도 비교해도 손색없는 최고의 수준인데 감히 어찌 그들의 문화와 사람을 폄훼하리요!
이곳에서 종이로 된 책이 없어 답답했는데 송백이 사기를 올려주니 천군만마를 얻은 느낌이오. 젊은이들에게 아는 체 하려면 지식을 좀 빌려야 하니까. 집 서재에 꽂아만 두고 잘 읽지 못했는데 좋은 기회가 될 것 같군요. 기대가 큽니다.
중과부적ᆞ구우일모등 사자성어를
많이 배우겠습니다.
궁형을 택하지 않으면 안되었던 사마천의 절박함과 선친의 유지를 받들고자 했던 사명감이 눈물겹군요. 그리고 그리 길지 않은 - 옥에 갇혀 있던 시간을 제외하면 약 15년 정도 - 기간 동안에 그 방대한 저술을 완성하다니, 또 그 기록의 보전을 위해서 그 저작물의 출시를 자신의 죽음 이후로 담보하다니... 개인적인 편견이 전혀 없지 않았을까만, 비교적 중립적인 입장에서 저술된 역사서가 아닐까 짐작됩니다.
중과부적, 구우일모의 사자성어도 새롭게 리마인드 했네요. 공부 잘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