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명훈 때리기,언제까지? 제발 까려면 좀 알고나 까라

[tosca]

                                                               네이버 블로거 Chinadrum 님의 글 입니다.

얼마 전에 프레시안에서 낸 정명훈 관련 기사에 대해 글을 쓴 적이 있다. 

정명훈에 20억 특권 대우?? 

일단 위의 글과 그 글이 대상으로 삼고 있는 기사를 먼저 읽어보길 바란다.

실제 이 기사가 나간 후 어느 정도 반응이 있었는데 과연 그것을 제대로 검토해보고 글을 썼는지 의심스럽다.

음악인 정명훈, 그리고 "세계적 지휘자"

이 글은 '칼럼'이기 때문에 기사와는 성격이 다르다. 즉, '사실 확인' 같은 문제에 있어서는 이견이 있더라도 어느 정도 인정하고 넘어가도 된다는 얘기다. 반면 주장에 대한 근거는 논리적인 관계를 갖춰야 한다. 주장이 편향적이라던가 하는 건 전혀 문제가 아니다.(편향적이니까 칼럼이지) 가령, 먼저 나왔던 기사의 경우 연봉과 같은 '사실' 관계를 가지고 야바위를 쳤다는 점에서 기사로서의 자격을 상실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 글은 (칼럼으로서의 기본이라 할) 논리를 갖추고 있을까?

천박한 의식의 문제

이 글은 정명훈을 대상으로 하는 것 같지만 어디까지나 표면적인 것에 불과하다. 핵심은 이명박과 오세훈이며, 그들이 대표하는 '한나라당 세력'이다. 이는 글쓴이가 서두에 분명히 밝히고 있다. 이건 전혀 문제될 일이 아니다. 그에 대한 비판이 제대로 논리를 갖췄는지만 따져보면 될 일이니까. 이들 전임 시장들이 전시행정을 시행했다는 말 또한 충분히 납득할 만하다. 설령 그에 동의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글쓴이 주장의 핵심, 그 전시행정이 문화예술의 영역에도 그대로 적용됐는지만 확인하면 '논리'는 획득된다. 이것이 첫 번째 확인사항이다.

우선, 이명박의 수준이 예술 영역에도 그대로 적용됐다는 건 맞는 듯하다. 그의 지적 수준이 천박하다는 거야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고, 오페라 하우스 기획이나 '세계 10대 오케스트라' 같은 말들은 그저 형식일 뿐이라 하더라도 문화, 예술도 단순히 '성과'로만 판단하는 그의 원시적 사고 수준을 그대로 보여준다. 그의 "후속 예술문화정책"이 어떤 것이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일단 그런 식이었다고 보기로 하자. 글쓴이는 이를 다음과 같이 표현한다.

소위 '문화인 이명박'의 교양이나 소양, 그 실체까지, 이미 서울시장 4년 청와대 4년 가까이, 그의 진면목은 그의 말과 행동거지로 충분히 차고 넘치며 유감없이 입증되고 있다.

김어준이 "닥치고 정치"에서 언급하듯이, 이명박이라는 인간의 사고회로는 '먹고 산다'는 선사시대 수준에 머물러 있어서, 이런 주장은 확실히 설득력이 있다. 단순히 정리해 '이명박 = 문제있음'으로 등식화하기로 하자. 여기까지는 별 문제가 없다. 정명훈 영입도 분명 그런 '사고'에서 나온 것일게다.

 

가카의 수준 높은 문화의식이야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사진출처 : 연합뉴스)

의도와 결과의 구분 

그런데 우리는 조금 더 섬세해질 필요가 있다. 내가 어떤 생각을 가지고 행위를 한다는 것과, 그 행위가 어떠한 결과를 가져오는가는 별개라는 것 말이다. 칸트는 이를 동기와 결과의 관계로 오래 전에 개념화 했으며, 사회학에서는 '의도하지 않은 결과'라는 말로 표현된다. 한편으로는 '의지'(혹은 의도)와 '행위' 사이의 차이로 볼 수도 있다. 예컨대, 나는 빨간색이 악귀를 쫓는다는 '믿음'을 가지고, 병을 치료하기 위해 붉은 색 옷을 입었다. 그런데 과학적 연구를 통해 빨간색이 악귀를 쫓는다는 건 근거없는 믿음임이 입증됐다. 하지만 빨간색의 파장이 병을 치료하는데 도움을 준다는 결과가 나왔다. 그래서 나는 병의 치료에 도움을 얻을 수 있었다. 이러한 사례가 있다고 할 때, (과학적 시각에서 볼 때) 어떤 식의 비판이 가능할까? 일단 빨간색이 악귀를 쫓는다는 믿음을 비판할 수 있다.(이는 '악귀'의 존재에 대한 비판, 악귀와 병의 관계에 대한 비판으로 나뉠 것이다) 하지만 이는 내가 '빨간색이 악귀를 쫓아 병을 치료할 것'이라는 믿음에 대한 것이지 '빨간 옷을 입은' 행위에 대한 것은 아니다. 내가 어떤 근거에서 그러했든 빨간 옷을 입은 것은 병을 치료하는데 기여했다. 따라서 내가 그릇된 믿음에 근거했다는 이유만으로 행동 전체를 비판할 수는 없다.

이 구분을 이해했다면, 이제 한 걸음 더 나아갈 수 있다. 이명박의 인식에 문제가 있고, 실제로 그 인식을 가지고 어떤 행동을 했을 때, 그 행동의 결과 또한 문제가 있을까? 토시의 말을 빌려보자. "그럴수도, 아닐 수도 있죠." 의도와 무관한 결과는 언제든 나올 수도 있고, 그가 미처 몰랐던 요소들이 작용해(빨간색의 파장과 같은) 좋은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다.

자, 다시 빨간색의 문제로 돌아가보자. 만약에 우리가 과학자라면 '무엇'을 비판해야 할까? 비과학적인 사고, 주술적 사고에 대해 비판하는 것이 목적이라면 '빨간색이 악귀를 쫓는다', '악귀를 쫓아야 병을 치료할 수 있다'와 같은 믿음을 비판해야 한다. 이는 '의지', '의도'의 영역으로 행위 당사자가 대상이다. 한편으로는 행동을 논할 수도 있다. 빨간 옷을 입은 행위가 병의 치료에 어떠한 영향을 미쳤는지를 검증해 볼 수 있다. 아마 여기에는 그 병과 빨간색의 파장에 대한 인과관계 등을 검토하던가 등등을 할 것이다. 여기서의 대상은 '빨간색과 질병'의 관계와 같은 행위의 결과이다. 글쓴이가 이명박(오세훈)의 천박한 의식(위 사례의 경우 비과학적 사고)을 비판하는 게 목적이라면, 그들의 믿음이 잘못된 것임을 보여줘야 한다. 이에 대해서는 나 자신도 수긍한다고 말한 바 있다. 그런데 그러한 믿음에서 나온 행위가 낳은 결과를 비판하는 게 목적이라면 그 이상이 필요하다. 빨간 옷을 입은 행동이 비과학적 믿음의 산물이라고 말하는 것만으로는 병과 빨간색 사이의 관계가 해명되지 않는 것이다. 그리고 첫 머리에 언급한대로 글쓴이는 단순히 그들의 천박한 의식을 지적하려는 게 아닌 듯 하다.

이 두 가지를 구분하는 건 매우 중요하다. 앞선 기사에서 연봉과 지원금의 구분을 흐릿하게 만들어 야바위를 친 것처럼, 글쓴이 역시 이를 두고 야바위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물론 이러한 구분이 있는지조차 모르고 글을 썼으리라고 보지만) 이명박(행위자)의 인식에 대한 부분을 '행위자의 문제'로, 그의 행위에 대한 부분을 '행위 결과의 문제'라고 표현하기로 하자.

우선, "이명박의 하드웨어로 음악인", "이명박의 서양클래식 음악 취향", "이명박의 허언 '세계 10대 오케스트라'", "예술의 정치화는 예술을 피폐화한다"와 같은 소제목 아래의 내용들은 행위자의 문제에 해당된다. 글쓴이의 말대로 "서울시향이 수년 내에 세계 10대 오케스트라가 될 것이라는 공개적인 언사는 철저하게 허언이고 허구임이 드러났다." 왜냐하면 "수년 안에 세계 10대 오케스트라가 되리라는 이명박의 2005년 공언은 애초부터 현실성이 없거나 틀린 주문이고 공표"였기 때문이다. 여기서 하나의 야바위가 들어간다. 수년 안에 세계 10대 오케스트라가 된다는 건 글쓴이의 말대로 현실성도 없고, 잘못된 주장이다. 이는 이명박이 예술을 어떤 식으로 바라보는지를 여실히 보여주는 예다. 즉, 행위자의 문제다.

여기에서 멈췄다면 별 문제가 없었다. 그런데 느닷없이 행위 결과의 문제, 즉 정명훈을 지휘자로 앉힌 문제로 들어간다. 글쓴이의 근거는 둘로 나뉜다. 첫 번째는 정명훈이 예술 감독으로 들어오면서 조직이 개편됐다는 것, 둘째는 그가 정말로 세계적인 지휘자라고 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는 이명박의 의식 수준이 형편 없다는 것과는 아무 관련이 없다. 단순히 정명훈의 예술 감독으로서의 행적만 살피면 될 일이니까. 어쨌든 첫 번째는 사실 관계의 문제이기 때문에 당시의 상황에 대한 지식이 없는 나로서는 뭐라고 할 말이 없다. 다만, 글쓴이가 이 조직 개편을 오직 부정적인 것으로만 대하고 있는데 그에 대한 제대로 된 근거가 없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다. 단원들의 오디션제는 좋을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한편으로는 단원들의 경력과 그간의 공로를 인정하지 않는 무자비한 구조조정일 수 있지만, 다른 관점에서 본다면 타성에 젖은 단원들을 교체하는 과정일 수도 있다. 졸지에 직장을 잃는 것으로도 볼 수 있고, 철밥통 속에서 대충 유유자적 하던 사람들을 내치는 것일 수도 있다. 이 과정이 실제로 어떠한 것이었는지 나는 알지 못지만, 이 글은 단순히 구조조정이라는 것만으로 이를 나쁜 것으로 몰아가고 있다. KBS교향악단의 경우엔 이 문제로 내분이 심해 얼마 전에는 공연이 취소될 뻔한 적도 있었는데, 이 역시 비슷한 경우였다. KBS와 관련해서는 단원들의 문제도 상당히 많이 지적되는 것으로 아는데, 이 역시 그들의 생계를 위협하는 것이니 나쁘다고만 봐야 할까?

 

KBS 교향악단은 오랫동안 비어 있던 상임 지휘자 자리에 함신익을 앉혔지만, 문제는 좀처럼 사그라들지 않고 있다.

단원들은 함신익의 연임을 거부했고, 지난달 20일 정기 연주회가 취소될 뻔 했다(사진출처 : 뉴시스)

세계적 지휘자?

이건 그렇다고 치고, 두 번째 근거, 그가 세계적 지휘자가 아니라는 주장으로 들어가자. 일단 글쓴이는 말끝마다 인용부호로 '세계적 지휘자 정명훈'이라고 표현하고 있는데, 그 수식어를 조롱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와 관련한 내용들은 '어떻게? 무엇으로? "세계적 지휘자"인가?'와, '22세 때 정명훈'이라는 소제목 아래에 나와 있다. 그런데 이건 할 필요가 없는 말들이었다. 그리고 "세계적 지휘자"라는 표현과 그가 세계적 지휘자인지를 확인하는 건 별개의 일인데, 이를 구분하지도 못하고 있다.

자, 특정 개인의 활약을 국가적 위상으로 착각하고 과대 포장하는 습성에는 문제가 있다. 가령, 박지성이 경기만 뛰면 평점을 뒤지고, 언론들의 수식어들을 갖다 쓰는 언론들이 그러하다. 그런데 그러한 행태와 박지성의 실력은 별개다. 박지성의 실력은 그라운드에서 평가하면 될 일이다. 마찬가지로, 정트리오나 장한나 등과 같은 사람들에 대해 '한국이 낳은 세계적인' 같은 수식어는 촌스러운 것이긴 하지만 그들의 실력에 대한 평가는 어디까지나 '콘서트홀'에서 이뤄져야 한다. 정명훈도 마찬가지다. 이명박이 그를 데려온 건 교양이라곤 쥐뿔도 없는 상황에서 오직 그 천박한 의식(세계 10대 오케스트라)에 기반한 것이겠지만, 정명훈의 실력에 대한 평가는 '지휘대'에서 이뤄져야 한다.

그런데 이 글에는 전혀 그러한 부분이 없다. 고작해야 '세계'라는 말을 두고

그가 활동했고 거주하고 있는 프랑스가 '세계'를 대표한다는 것인지? 그가 공부했고 이따금 지휘하는 미국이, 일본이, '세계'란 말인지? 아니면? 그가 연주자로 지휘자로 음악적 깊이, 즉 그의 음악사상이나 철학이 '세계적'이란 말인지? 서양 고전 음악이 널리 애청 되고 유통되니 그런 척도로 '세계'를 말하는 것인지?

와 같은 말장난이나 하고 있을 뿐이다. 가령, 이건 어떻겠는가. 크리스티아누 호나우두는 세계적인 축구선수다라는 주장에 대해 "그가 활동하고 거주하고 있는 스페인이 '세계'를 대표한다는 것인지? 그가 태어났고, 활동했던 포르투갈이, 영국이 '세계'란 말인지? 아니면? 그가 스트라이커로 축구적 깊이, 즉 그의 개인기나 득점력이 '세계적'이란 말인지? 축구가 널리 퍼지니 그런 척도로 '세계'를 말하는 것인지?"와 같은 것이다.

물론 우리는 호나우두의 개인기와 득점력이 세계적 수준이라는 걸 알고 있으며, 스페인 리그는 세계 최고의 리그 중 하나라는 것 또한 안다. 그래서 호나우두에게 세계적인 축구선수라는 수식어를 붙여도 어색하게 여기지 않는다. 그렇다면 정명훈은 어떨까? 그가 외국에서 어떤 대접을 받는지 잘 모르겠다. 그런데 최소한 그 수식어에 의문을 제기하려면 근거를 제시해야 하지 않을까?

 

호나우두는 세계적인 축구 선수 맞나영? 들어본 적이 없어서(사진출처 : OSEN)

오히려 이 사람은 그런 수식어를 쓰는 '분위기'(박지성이나 박찬호에 대한 영웅주의와 같은)에 대해서는 문제의식도 없는 모양이다. "그러나 한국의 매스컴이 일방으로 얘기하고 줄곧 시민 대중들에게 들려주는 "마에스트로, 세계적 지휘자, 세계적 연주자, 거장 지휘자" 등으로 정명훈을 말하는 우리나라 매스컴의 저 관습적인 찬사나 표현을 따라서 말하거나 동의하는 태도에 나는 거리를 둔다"고 분명히 얘기해 놓고, "이것은 오늘의 정명훈이 있기까지에는 자기가 태어난 조국의 사람들에게 온전하게 감사해야 할 덕목이다"(문법에도 안 맞는다)라고 말한다. 이 무슨 자가당착? 혹시 고단수의 비꼼인가? 정명훈이 당시 국가적 수준의 찬양을 받은 건 맞는데 그가 지금만큼 잘 나갈 수 있었던 건 그 자신의 노력과 재능이 있었겠지만, 정명훈네 집안이 무지 잘 살았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그의 집안 배경은 마음에 안 들지만, 그건 그냥 그럴 뿐이다. 74년 차이코프스키 콩쿠르 2등 이후 매스컴이 흥분하고 오색 종이를 날린 건 글쓴이의 개인적 기억이다. 그래서 뭐 어쩌라고? 마땅히 조국에 봉사해야하지 않겠느냐는 말이라도 하고 싶은 건가? 이것이야말로 "매스컴의 저 관습적인 찬사"와 가까운 정도가 아니라 아예 찰싹 달라붙은 꼴 아닌가?

비교 대상은 분명히 하자

마지막으로 논란이 됐던 '연봉' 문제에 대해 얘기하고 있다. 여전히 연봉과 지원금으로 야바위짓 하는 건 그렇다치자. 그 기사가 나온 뒤의 반응들을 보기는 한 모양이다. 내 글에도 적어뒀던 미국 주요 오케스트라 음악 감독들의 연봉을 Top10으로 올려 놓았다.("자본주의 극단을 달리는" 같은 유치한 표현은 넘어가도록 하자) 정명훈의 연봉이 2위인 제임스 레바인의 것과 같다 치자. 자, 그렇다면 무엇이 문제일까? 글쓴이는 정명훈이 미국 두 번째인 레바인만큼 받으면서 왜 10대에 못 들어가냐고 징징댄다. 자기 논리를 스스로 뒤엎는 이 건망증. 글쓴이 스스로 언급한 대로 몇 년내 10대 오케스트라라는 말은 애초에 불가능한 허언이며, 그저 천박한 문화의식의 표현에 불과하다. 그런데 갑자기 왜 그걸 달성하지도 못하면서 돈은 많이 받느냐고 한다. 이 사고구조를 대체 어떻게 이해해야할까? 설마, 레바인이 한국에 오면 단숨에 10대 오케스트라가 될 거라고 생각하는 건가? 만약에 그런 의미라면 글쓴이도 이명박과 동일한 사고회로를 갖고 있는 셈이다.

또 한 가지. 그렇다면 레바인은 한국에 오면 얼마를 받아야 할까? 미국에서 20억 가까이를 받으니 그에 비하면 수준 미달인 한국에 오려면 더 많은 돈을 받아야 할 것이다. 그러면 그가 단숨에 10대 오케스트라로 만들 수 있을까? 당연히 불가능할 것이다. 글쓴이 말대로 "서울시향 지휘자와 예술감독 역으로 파격적인 계약으로 영입하면, 서울시향이 "세계 10대 오케스트라"가 될" 거라고 믿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면 무엇이 문제일까? 레바인이 20억을 받는 게 문제인가, 레바인만 데려오면 10대 오케스트라가 될 거라고 말하는 허무맹랑한 믿음인가. 글쓴이의 논리는 레바인에게도 그대로 적용돼야 한다. 20억이 넘게 받는 레바인은 서울시향을 10대 오케스트라로 만들지 못했으니 더 이상 계약하면 안 된다고 말이다.

글쓴이는 정명훈과 레바인을 비교할 능력이 있는 듯 하다. "오직 정명훈만 미국 오케스트라 최상 그룹의 수익을 챙기지만 오케스트라의 질이나 음악성, 단원의 처우는 국제 수준에는 아직 미치지 못한다"고 자신만만하게 이야기하는 것을 보니 말이다. 그런데 그 근거라는 게 "서울시향이 세계 10대 오케스트라 반열에 이르렀다는 평가를 나는 아직까지 들어본 바 없다"는 거다. 자기가 못 들어봤으니 아니다? 물론 서울시향은 세계 10대 오케스트라가 아니다. 그런 기준이 딱 정해진 건 아니라 해도 말이다. 그런데 한 번 생각해 보자. 당신이 브라질 국민이다. 브라질에서 열리는 2014년 월드컵에서 4강에 올랐다. 감독인 둥가에게 뭐라고 할까? 아마도 4강 밖에 못 갔다고 엄청 비난할 것이다. 그런데 2002년 4강에 머문 히딩크 감독은 국민적 영웅이 됐으며, 그의 성취는 전 세계가 인정하고 있다. 똑같이 4강인데 왜 평가가 다를까? 어린 아이도 이해할 수 있는 얘기다. 브라질과 한국 축구 대표팀은 애초에 급이 다르다. 브라질이 영원한 우승 후보라면 한국은 16강은 커녕 1승도 못 해 본 팀이다. 그런데 둥가는 그 팀으로 4강으로 체면 치레를 했지만, 히딩크는 4강이라는 엄청난 향상을 이뤄냈다.

 

베를린 필 정도의 수준을 몇 년 한다고 따라잡을 수 있을 거 같은가?

세계 10대에 들어갈 만한 오케스트라들, 베를린 필이나 빈 필 같은 오케스트라와 서울 시향의 차이는 브라질과 한국의 수준 차이보다 훨씬 크다. 더군다나 이전의 서울시향은 국내에서조차 KBS에게 밀리는 3, 4등 정도의 오케스트라라는 평가를 받았다. 그런 악단을 끌고 세계 10대 운운한 게 문제지 10대에 오르지 못한 게 문제일까? 솔로몬 제도 축구팀의 감독이라면 월드컵에 진출만 해도 영웅이 될 것이고, 중국팀의 감독이라면 1승만 거둬도 영웅이 될 것이다(중국인들의 습성상 어떨지 모르지만). 이건 마치 전년도 최하위 팀이 시즌 시작 전 올해 목표는 우승이라고 해 놓고 4등 했다고 감독 자르라고 말하는 꼴이다. 그리고 오케스트라가 단지 10대 수준이 아니라 "국제 수준"에 미치지 못한다는 말은 이 사람이 기본적인 조사라도 했는지 의문을 품게 한다. 당장 올해 유럽 순회 공연을 다녔고, 꽤 좋은 평을 받았다. 그리고 얼마 전에 도이치 그라모폰과 계약한 말러 실황 음반이 나온 건 알기나 하나? --;; DG같은 음반사가 국제 수준이 아니면 뭐가 국제 수준인지 모르겠다. 정명훈과 비슷한 나이의 프란츠 벨저-뫼스트(클리블랜드, 연봉 6위)가 낸 음반의 수는 정명훈과 비슷하다. 물론 DG나 EMI, 데카 등과 같은 "국제"적인 음반사, 빈 필, 필하모니아, 로열 콘서트헤보 같은 "국제"적인 오케스트라와 함께 낸 것이다. 영국의 음악 평론가 노먼 레브레히트는 클래식 음반 판매고 순위를 알려준 적이 있는데, 정명훈과 안드레아 보첼리가 만든 99년 음반이 500만장 팔려 6위에 올라 있다.(1위는 솔티의 니벨룽겐의 반지 앨범으로 1800만장) 특정 시기가 아니라 그냥 100년간 나온 모든 클래식 음반 중에 그렇다는 얘기다. 그리고 대중 음악에 KO 당한 현재 이 순위가 바뀔 가능성은 거의 없다. 이 앨범은 전혀 "국제"적이지 못한가?(이런 성향의 앨범을 별로 좋아하진 않지만) 그와 함께 오페라를 만든 체칠리아 바르톨리는 국제적이지 않은가?

 

요 앨범이 500만장이 팔렸댄다

단원들이 얼마나 받는지는 실제 그들의 실력에 비추어 판단할 문제다. 지휘자는 자유 계약 신분이지만, 단원은 '직원'이다.(존 바비롤리는 지휘자도 노조에 들어와야 한다는 규정 때문에 뉴욕 필을 나오긴 했다) 애초에 둘을 비교하는 게 무리인데다가 오케스트라 내에서 비교 자체가 불가능한 지위다. 이런 식의 비교라면 오케스트라 단원들이 한진의 비정규직 노동자들보다 몇 배나 많은 연봉을 받으니 정말로 불공평하다는 논리도 가능할게다.

진짜 할 얘기를 해라

마지막을 공공성 얘기로 마무리 짓는 건 참으로 뜬금없다. 애초에 이걸 '주제'로 삼았어야 했다. 자본주의의 첨단을 달리는 미국 지휘자들 같이 많은 돈을 받아가는 게 불만이라면, 그 제도에 대해 의문을 제기했어야 한다는 얘기다. 정명훈이 돈을 '많이' 받아서 문제가 아니라 지급 내역이 불투명한 게 문제의 전부이기 때문이다. 글쓴이 역시 "서울시가 정명훈에게 연 20억 내외의 돈을 지불한 것에서 투명성과 정당성을 묻는 것이다"라고 말하면서 슬슬 빠져나가고 있는데, 앞서의 내용들은 이와는 아무 관계도 없는 것들이었다. 오케스트라의 계약 과정, 회계 처리 등을 다른 국내 시향이나 외국 사례와 비교해서 문제가 있는 것인지를 판단해야 했다. 유럽 지휘자들의 연봉이 낮다면 래틀, 샤이, 게르기예프 같은 사람들이 얼마나 '낮게' 받는지에 대해서도 말해야 했다. 미국에 가면 레바인 수준은 가볍게 받을 이들을 어떻게 낮은 연봉으로 데리고 있을 수 있는지 유럽의 오케스트라 시스템에 대해 살펴봐야 했다.(10대 오케스트라 연봉 얘기를 하고 있는데 솔직히 믿음이 안 간다) 시향이 정명훈을 데려오고도 효과를 못 봤다면, 오케스트라가 좋은 지휘자를 영입해서 어느 정도 수준까지 향상될 수 있고, 어느 정도의 시간이 걸리는 것인지를 이야기하고, 그에 따라 평가해야 했다. 가령, 래틀이 본머스 심포니를 맡아서, 바비롤리가 할레 오케스트라를 맡아서, 첼리비다케가 뮌헨 필을 맡아서 그 악단들이 지명도를 갖추기까지 걸린 시간과 향상의 정도 말이다.

본문에 그런 얘기가 있는가? 하나도 없다. 애초에 그런 논의를 할 생각도 없다. 그냥 단순한 등식만이 적용되고 있다.

이명박, 오세훈 = 나쁜 놈

이명박, 오세훈 = 정명훈

정명훈 = 나쁜 놈

QED.

이런 논리는 그저 비웃음만을 살 뿐이다. 그런데 어디서 이런 자신감이 나올까? 아마도 클래식이 대중과 친숙하지 않다보니 막 써갈기는 게 아닌가 싶다. 자기도 두다멜이 누군지, 마린 알솝이 누군지 알지도 못하지만, 읽는 니네들도 모를 거라고 생각하는 거다. 즉, 대중들 무시하는 거다. LA필을 맡아 승승장구 잘 나가며 100만달러를 받는 두다멜더러 한국에 들어와 듣보잡 악단을 맡아달라고 하려면 대체 얼마를 줘야 할까? 자, 2000만달러를 받는 라이언 하워드더러 한국 리그에 와서 뛰어달라며 계약을 맺자고 한다. 얼마면 되겠냐? 메이저리그 평균 연봉인 300만달러?

아, 연봉 얘기를 또 끄집어 내길래 찾아보니, 말레이시아 필하모니의 상임 지휘자 클라우스 피터 플로는 한 달에 13만 링깃(RM), 한국 돈으로 약 4600만원을 받았다고 한다. 연봉으로 환산하면 5억 5천쯤 된다.(유명한 지휘자다) 최초 기사에 나온 미국 평균 7만달러나 이번 칼럼에 나온 유럽 10대 평균 9천만원보다 훨씬 많네? 혹시나 내가 해석을 잘못했을 수도 있으니 관련 기사를  첨부한다.1 지휘자들이 얼마를 받는지는 제대로 알려진 경우가 별로 없다. 유럽의 경우엔 베를린 필의 사이먼 래틀을 찾아보았는데, 2002년 영국 '가디언'지는 50만유로(대강 현재 환율로 7억5천)라고 보도한 바 있다.2 최근 기록으로는 클라이드 스틱니(Clyde Stickney) 등이 쓴 'Financial Accounting: an introduction to concepts, methods, and uses'의 136쪽 주석에 언급된 것이 있다.(회계에 대해 설명한 것으로 베를린 필을 예로 든 것 같다) 2012년 래틀에게 베를린 필하모닉이 연간 200만유로(약 30억)를 지급할 것이라고 하는데, 정확히 어떤 의미인지는 잘 모르겠다. 주석으로 첨부한다.3(이 부분은 예상대로 내가 잘못 인용한 것이니 뛰어 넘어가도 된다.) 최소한 5만9000유로(약 9천만원)라는 말이 믿기 어려운 건 분명하다. 출처로 밝힌 사이트도 들어가 봤지만, 지휘자의 연봉을 알아볼만한 곳은 아니었다.(각종 직종의 평균 임금을 소개하는 곳인 듯) 2006~2007년을 기준으로 뉴욕 필하모니 단원의 평균이 13만달러(약 1억5천만원)다.4(건강보험 등등의 혜택은 모두 제외한 것) 글쓴이말대로라면, 래틀이나 게르기예프, 샤이, 얀손스 같은 지휘자들이 뉴욕 필의 단원의 3분의 2정도만 받고 있는 셈이다.

1. http://www.pinolobu.com/2011/11/05/the-conductor-of-the-malaysian-philharmonic-orchestra-mpo-is-paid-rm130000-month
2. http://www.guardian.co.uk/uk/2002/aug/25/arts.artsnews
3. The Berlin Philharmonic signs a five-year contract with Sir Simon Rattle, present conductor of the Philharmonie, to be the spokesman for the symphony at the end of his current contract in 2012. Under the terms of the deal, the Berlin Philharmonie will pay compensation of 2 million euro a year to Sir Simon, beginning in 2012. Sir Simon will earn this compensation regardless of whether the Berlin Philharmonic asks him to perform any speaking engagements each year.
4. http://www.musicianwages.com/musician-profile/average-income-of-a-musicia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