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교향악단 802회 정기연주회 후기
5.26(일) 예술의 전당
피에타리 인키넨 / 오카 폰 데어 다메라우(MS)
말러 교향곡 3번
#. 흔히들 말러를 해석함에 있어 강조하는 부분이
명(明)이냐 암(暗)이냐에 따라
아폴론적이라느니, 디오니소스적이라느니 말하지만,
이제와서 좀 더 깊이 그 의미를 되새겨보자면,
결국 메시지가 질서정연한지, 아니면 혼돈의 카오스인지라고
표현하는 것이 조금 더 적절할 것 같다.
그리고 오늘의 연주는 명백하게 전자.
#. 힘으로 메시지를 전달하지 않았고,
우아하고 작은 움직임들로 하여금.
조곤조곤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연주.
#. 즉, 최근 쯔베덴/서울시향의 연주를 듣다보면
메시지를 전달하는 방식이
설득당한다거나, 아니면 분위기에 압도되어 "차...찬성!!!"
이런 느낌이라면,
오늘 인키넨/KBS는
관객을 감저적으로 감화시키는 연주였음.
#. 힘으로 압도하지 않고,
부드러운 리더십을 보여준 인키넨에게 박수를.
#. 일전에 KBS교향악단 단장님과 이야기하던 중,
말러는 일단 프로그램으로 편성하려면
단원들 동의부터 받아야 한다고 말씀했었는데,
그나마 접근성이 높은 1,4,5,6번 정도는 아니겠지만,
아마 그 대답은 이 3번과 8번을 염두에 두셨을 터.
#. 단순히 100분이라는 시간을 차치하더라도,
강도높은 연습량이 요구되는 곡이었고,
오늘의 KBS는 그걸 연주로 증명해냄.
페이드아웃되는 플룻을 이어받는
바이올린 악장 솔로와,
호른을 이어받는 트럼펫의 연계가,
이질감 없이 물흐르듯 자연스러웠고
이 디테일은 수없는 파트/앙상블 연습의 결과일테다.
#. 금관도 객원을 거의 쓰지 않았음에도,
엄청난 연습량이 느껴질 정도로 정교했고,
"아, 오늘 얘들 각잡고 나왔구나" 가
너무 직접적으로 느껴짐.
#. 마지막까지 집중력을 잃지 않은 모든 단원에게 박수를.
#. 말러는 사실 성악가 입장에서 등장시간도 짧고,
썩 맘에드는 작곡가는 아닐것 같지만, (등장 시간등의 이유로)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악가의 중요도는 꽤나 높은 것 같은게,
성악가가 오페라 아리아 부르듯 튀어버려서
망해버리는 케이스도 있는가 하면
(대표적으로 아바도/베를린필 말러 4번의 르네 플레밍)
곡에 완전히 녹아들어 스페셜리스트의 면모를
보여주는 루치아 폽 같은 분도 있겠다.
#. 그런 의미에서 오늘 다메라우는,
짧지만 강한 존재감을 보여주었고,
역설적으로, 그 존재감의 선을 과하게 넘지 않아,
인간의 목소리로 메시지를 전달하는
곡의 분위기에 정확하게 걸맞았음.
"태초에 인간이 있었다." 라는 속삭임.
개인적으로 알토보다 오늘 메조소프라노를 기용한 것이
KBS의 정갈한 분위기에는 더 어울렸던 듯.
#. 곡의 중심을 선명하게 잡아준 다메라우에게 박수를.
#. 역대급 말러 3번 연주였다고 생각합니다.
해외오케가 내한해서 하기엔 여건상 쉽지 않은 곡이고,
우리나라 오케 중에 각잡고 연습해서
완성도를 끌어올릴 오케라 해봐야 서울시향, KBS 정도일텐데,
앞으로 10년간은 우리나라에서 보기 어려운 수준의 말러 3번 퀄리티.
#.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말러3번은
리카르도 샤이/로얄콘서트헤보우의
카오스로 뒤덮인 연주였지만,
오늘의 그 반대급부에서의 연주로,
대서사를 완성하는 그림 또한 굉장히 인상적이었음.
음원으로 비교하자면
래틀의 버밍엄심포니오케스트라 시절 연주 음원과 비슷.
이 충격이 일주일은 갈듯하며, 한동안 홀려 지낼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