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음악계의 대작곡가 최영섭 선생
최영섭 가곡선집 제6권 131곡집 출간
‘아 영원하라 나의조국’ 등 山, 江, 祖國을 주제로
광복-작곡, 쌍70주년 기념 맞는 작곡계 巨匠
금년은 광복 70주년, 그리고 대한민국 작곡계의 거장인 최영섭 선생의 작곡 70주년을 맞는 해로 쌍 70주년의 뜻 깊은 해다.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가곡 <그리운 금강산>을 작곡한 원로 작곡가 최영섭 선생이 최근 그의 가곡집 제6권 131곡집이 출간되었다. 이번 작품 131곡에는 총신대 서요한 교수가 작사한 작품도 25편이 포함되어 있다.
이번에 출간된 최영섭 선생의 작품 중 국내 최고의 서예가 초당 이무호 선생은 "아 독도야"와 남북한 통일 애국가 "영원하라 무궁화야"는 직접 친필로 돌비에 새겨 경상북도(울릉군)와 청와대에 헌정할 계획이며 그밖에 "삼각산아", "내장산아"도 친필로 돌비에 새겨 서울시 성북구청과 정읍시에 헌정할 계획이다.
그리고 "그리워라 풍악산아"는 금강산의 가을을 노래한 가곡으로 지난 해 4월 세종문화회관에서 초연된바 있다. 몇 년 전 최영섭 선생은 ‘설악산아’ 우리혈맥 ‘독도야’를 한국을 대표하는 성악가 소프라노 조수미에게 헌정하기도 했으며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베토벤, 모차르트, 차이코프스키, 스트라우스 등등의 작곡가들이 자신들의 조국을 노래한 작품은 몇 편 안되지만 최영섭 선생은 조국인 대한민국에 태어나 강, 산, 바다, 그리고 정을 주제로 한 작곡이 가장 방대한 것이 특징이다.
특히 총신대 서요한교수가 작사를 하고 최영섭 선생이 작곡한 노래를 보면 ‘낙동강은 알고 있다’. ‘흘러라 압록강아’, ‘그리워라 풍악산아’, ‘내장산아’, ‘삼각산아’, ‘설악산아’, ‘마니산아’, ‘아, 독도여!’ ‘아, 우리 동해여!’ ‘아, 우리 서해여!’ ‘아, 이어도’. ‘우리혈맥 독도야’, ‘겨레의 숭고한 별이라네’, ‘낙화암의 꽃님’, ‘마르지 않는 위안부의 눈물’, ‘무너져라 3.8선 장벽아’, ‘사당골에 피는 꽃은’, ‘순교자의 흘린 피로’, ‘어서 오라 그날이여’, ‘영원 하라 무궁화여’, ‘살아 백년 죽어 천년’, ‘하늘보고 별을 보며’, ‘한겨레의 불꽃이여’, ‘한산도 달빛’, ‘아 영원 하라 나의조국’ 등 강, 산, 조국을 표현했다.
그러나 작사 중에 ‘흘러라 압록강아’ ‘아 독도여’는 작품의 백미가 되며 그의 작곡 ‘그리운 금강산’이 발표된 지 올해로 꼭 54년이 된다. 최영섭 선생의 작품은 그동안 ‘통일 주제가’이자 ‘민족 가곡’으로 널리 사랑받아 왔다. 국내뿐만 아니라 플라시도 도밍고, 루치아노 파바로티, 그리고 세계적인 음반회사 데카에서 낸 소프라노 안젤라 게오르규의 ‘마이 월드’(My World)에도 수록될 만큼 국가 대표급 가곡으로 알려져 있다.
총신대 서요한교수가 작사한 25편도 포함
서 교수가 준 ‘주홍글씨’ 詩 한편이 인연 맺게 해
특히 최영섭 선생은 25편의 작사를 해준 총신대 서요한 교수에 대해 “시인의 시에서도 간혹 인위적인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하지만 서요한 교수의 작품은 꾸밈이 없다. 느낀 그대로를 작시해서 작곡하는데도 막힘이 없다. 그의 시를 읽으면 동감이 되고 바로 멜로디로 나온다”면서 “서 교수가 작사한 ‘설악산아’는 오케스트라만 잘 어우러진다면 ‘그리운 금강산’보다 훨씬 높은 평가를 받을 곡”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앞으로 저의 콘서트에 피날레는 ‘그리운 금강산’이 아니라 ‘설악산아’가 장식할 것이며 5년전인 2010년 2월에 만난 서 교수는 나를 다시금 일으켜 세운 분으로 그가 준 시 한편 ‘주홍글씨’가 내게 커다란 울림과 충격으로 다가와 그 시를 읽으면서 다시 태어난 느낌을 받았다”고 말하는 것을 볼 때 한국 음악계의 대작곡가인 최영섭 선생과 신학교수이자 시인인 서요한 박사와의 인연은 필연의 만남인 것 같다.
그가 작곡한 노래는 대부분 조국, 강산과 연관이 있다. 우리나라의 강과 산, 바다, 그리고 인정을 소재로 한 가곡이 100곡이 넘고 있다. ‘그리운 금강산’부터 시작해 ‘압록강은 흐른다’, ‘백두산은 솟아 있다’, ‘낙동강 칠백리’, ‘한강의 노래’, ‘남산에 올라’ 등 주로 조국의 산하를 작곡했다. 그는 그동안 300여곡을 작곡했으며 그 가운데 3분의1은 민족 가곡, 그러니까 조국을 생각하면서 작곡한 것이 100곡이 된다. 예를 들어 ‘그리운 금강산’은 그리움과 금강산의 아름다움, 통일의 염원을 담았으며 최근 발표한 ‘아 우리 독도여’에는 한국인의 기백을, 위안부 노래에는 슬픔을 녹였다.
현재 인천종합문화예술회관 앞마당에는 그의 노래를 기념하는 한옥집 만 한 크기의 노래비가, 그리고 강화도 통일평화전망대에도 그만한 크기로 노래비가 세워졌다. 이에 최영섭 선생은 “해외에 다니면서 수백개 노래비를 봤는데 ‘그리운 금강산’만 한 크기의 노래비는 보지 못했다”고 말했다. 그는 또 “슈베르트의 ‘보리수’ 노래비는 숲속에 묻혀 잘 보이지 않을 정도인데, 그만큼 한국 사람들이 노래를 많이 사랑하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그의 고향은 강화도이며 학창시절은 인천에서 보냈다.
‘그리운 금강산’ 탄생의 일화를 보면 특별한 사연이 있다. 1961년 8월이다. KBS가 남산에 있던 시절, ‘남산에 올라’, ‘한강의 노래’, ‘낙동강 칠백리’, ‘백두산은 솟아 있다’ 등의 곡을 발표할 때였다. 하루는 한용희(‘파란 마음 하얀 마음’ 작곡자)씨가 남산 ‘산실다방’에서 차를 마시자고 했다. 다짜고짜 “최 선생. 한강, 백두산, 낙동강을 다 작곡하면서 정작 금강산은 왜 안 하는 거요”라고 말했다.
이때 최 선생은 “아차 싶구나” 하는 생각에 평소 친하게 지내는 한상억(1992년 작고)씨를 찾아갔다. 자초지종을 얘기했더니 “안 그래도 가사를 이미 써 놨으니 가져 가시오”라고 했다. 그날로 그는 밤새 오선지에 음표를 그렸다. 이튿날 방송국에 악보를 전달하고 녹음에 들어갔다. 서울대 음대 동창인 이남수씨가 지휘했다. 3일 뒤부터 KBS 가곡프로그램 ‘이주일의 노래’에 연달아 방송됐다.
그 후 팬레터가 쇄도했고 32세의 청년 최영섭은 일약 가곡계의 스타로 떠올랐다. 지금에야 밝히는 진실. ‘그리운 금강산’의 첫 대목에서 ‘누구의 주제련가~’의 주제는 ‘주재’(主宰)라는 것이다. 하느님이 아름다운 금강산을 주재했다는 뜻인데 처음 악보집을 인쇄할 때 ‘주제’라고 나온 것이 그대로 굳어졌다는 것이다.
그는 6살 때 강화도 동네 병원에서 축음기를 통해 클래식 음악을 자주 들었고 마니산에 올라 연평도 쪽에서 들려오는 ‘경기 뱃노래’에 매료됐으며 초등학교 3학년 때는 호르겔 피아노를 처음 접하면서 음감을 확인했고 이화여고에 다니는 누나한테 음악을 배웠고 인천중학교 시절에는 바이엘과 체르니를 독학으로 배우면서 1949년 경복중학교 6학년 때 첫 작곡 발표회를 가졌고 그 후 서울대 음대 시절 김성태 선생을 만나면서 오늘날 민족 작곡가의 거장이 되었다.
한국 작곡계의 거장 최영섭 선생
금년은 광복 70주년, 그리고 대한민국 작곡계의 거장인 최영섭 선생의 작곡 70주년을 맞는 해로 쌍 70주년의 뜻깊은 해다.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베토벤, 모차르트, 차이코프스키, 스트라우스 등등의 작곡가들이 자신들의 조국을 노래한 작품은 몇 편 안되며, 최영섭 선생님께서 조국 대한민국에 태어나 자신의 강, 산, 바다, 그리고 정을 주제로 한 작곡이 가장 방대하고 가장 본 작품 131곡에 저의 작품이 25편 포함되었습니다.
그 중에 한국의 현존하는 최고의 서예가 초당 이무호 선생님께서 "아 독도야"와 남북한 통일 애국가 "영원하라 무궁화야"는 직접 친필로 돌비에 새겨 경상북도(울릉군)와 청와대에 헌정할 계획이며 그밖에 "삼각산아", "내장산아" 또한 친필로 돌비에 새겨 서울시 성북구청과 정읍시에 헌정할 계획입니다.
그리고 "그리워라 풍악산아"는 금강산의 가을을 노래한 가곡으로 지난 해 4월 세종문화회관에서 초연되었습니다. 몇년 전에 선생님께서는 기사에 있는대로 설악산아와 우리혈맥 독도야는 한국을 대표하는 성악가 소프라노 조수미에게 헌정되었습니다.
본 작품 집에는 3.8선, 통일염원노래 어서오라 그날이여, 일본의 아베 정권을 타도하며 조국을 노래한 아 독도여를 포함하여 아 우리 동해여, 아 우리 서해여, 이어도를 비롯하여 애국 소녀 유관순, 만인의 어머니 신사임당, 의사 안중근, 성웅 이순신, 명성황후, 부여의 삼천궁녀의 낙화암 꽃님, 위안부의 노래, 조선 개국을 선포한 마니산, 마지막으로 선생님의 조국 대한민국을 노래한 "아 영원하라 나의 조국"이 있습니다.
작사 중에 백미는 흘러라 압록강아와 아 독도여 입니다. 그밖에 선생님이 작곡하신 성가곡 15편과 함께 향후 한국의 현존하는 최고의 소프라노와 테너, 바리톤을 통해 CD로 제작될 계획입니다.
‘그리운 금강산’이 작곡·발표된 지 올해로 꼭 54년. 그동안 ‘통일 주제가’이자 ‘민족 가곡’으로 널리 사랑받아 왔다. 국내뿐만 아니라 플라시도 도밍고, 루치아노 파바로티, 그리고 세계적인 음반회사 데카에서 낸 소프라노 안젤라 게오르규의 ‘마이 월드’(My World)에도 수록될 만큼 국가 대표급 가곡으로 알려져 있다. 이 노래를 작곡한 최영섭씨. 나이 87살에도 불구하고 작곡에 여념이 없는 최씨를 지난달 30일 오후 서울 광화문 인근 카페에서 만났다.
먼저 최근 작곡한 노래 ‘아 우리 독도여’와 일본 위안부들의 한을 달래는 ‘그 누구가 알리오 소녀의 눈물을’이 담긴 CD 한 장을 받았다. ‘아 우리 독도여’라는 가사를 들여다봤다. ‘삼천리 이 강산에 바위섬 하나/내 한 점 고운 살 던진 독도여~’ “ 아 우리 독도여, 그 누가 알리오 소녀의 눈물을 작곡했고 이산가족 상봉의 노래인 ‘금강산 가는 길’이 완성 그러니까 ‘그리운 금강산’부터 시작해 조국을 생각하면서 곡을 만든 것이 100곡이 되는 것
‘금강산 가는 길’의 가사 내용을 잠깐 살펴봤다. ‘볼수록 아름다운 우리 금강산/망향가 부르다가 흘러간 청춘/저 하늘 달빛 속에 어리는구나/이제야 보고 싶은 그리운 얼굴~’ 작시는 시인 고산 최동호씨가 했다. ‘그리운 금강산’에서 시작해 ‘금강산 가는 길’이라는 노래여서 사뭇 감동으로 다가온다. 그가 작곡한 노래는 대부분 조국 강산과 연관이 있다.
우리나라의 강과 산, 바다, 그리고 인정을 소재로 한 가곡이 100곡이 되더군요. . ‘그리운 금강산’부터 시작해 ‘압록강은 흐른다’, ‘백두산은 솟아 있다’, ‘낙동강 칠백리’, ‘한강의 노래’, ‘남산에 올라’ 등 주로 조국의 산하를 작곡했거든요.”
그는 그동안 300여곡을 작곡했으며 그 가운데 3분의1은 민족 가곡, 그러니까 조국을 생각하면서 작곡한 것이 100곡이 된다. 예를 들어 ‘그리운 금강산’은 그리움과 금강산의 아름다움, 통일의 염원을 담았으며 최근 발표한 ‘아 우리 독도여’에는 한국인의 기백을, 위안부 노래에는 슬픔을 녹였다.
이어 ‘그리운 금강산’으로 얘기를 옮겼다. 2000년 8월 15일 인천종합문화예술회관 앞마당에 한옥집만 한 크기의 노래비가 세워졌다. 2009년 강화도 통일평화전망대에도 그만한 크기로 노래비가 세워졌다. 최씨는 “해외에 다니면서 수백개 노래비를 봤는데 ‘그리운 금강산’만 한 크기의 노래비는 보지 못했다”면서 기네스북에 올려주면 안 되겠느냐며 웃는다. 그러면서 슈베르트의 ‘보리수’ 노래비는 숲속에 묻혀 잘 보이지 않을 정도인데, 그만큼 한국 사람들이 노래를 많이 사랑하는 것 아니냐고 반문한다. 그의 고향은 강화도이며 학창시절은 인천에서 보냈다.
“저는 ‘그리운 금강산’ 덕분에 명성과 부를 얻었습니다. 197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 학교 교가나 회사 사가들을 많이 작곡했습니다.”
‘그리운 금강산’ 탄생 당시로 화제를 돌렸다. 1961년 8월이다. KBS가 남산에 있던 시절이다. ‘남산에 올라’, ‘한강의 노래’, ‘낙동강 칠백리’, ‘백두산은 솟아 있다’ 등의 곡을 발표할 때였다.
하루는 한용희(‘파란 마음 하얀 마음’ 작곡자)씨가 남산 ‘산실다방’에서 차를 마시자고 했다. 다짜고짜 “최 선생. 한강, 백두산, 낙동강을 다 작곡하면서 정작 금강산은 왜 안 하는 거요”라고 말했다. 최씨는 아차 싶구나 하는 생각에 평소 친하게 지내는 한상억(1992년 작고)씨를 찾아갔다. 자초지종을 얘기했더니 “안 그래도 가사를 이미 써 놨으니 가져 가시오”라고 했다. 그날로 최씨는 밤새 오선지에 음표를 그렸다. 이튿날 방송국에 악보를 전달하고 녹음에 들어갔다. 서울대 음대 동창인 이남수씨가 지휘했다. 3일 뒤부터 KBS 가곡프로그램 ‘이주일의 노래’에 연달아 방송됐다. 팬레터가 쇄도했고 32세의 청년 최영섭은 일약 가곡계의 스타로 떠올랐다. 지금에야 밝히는 진실. ‘그리운 금강산’의 첫 대목에서 ‘누구의 주제련가~’의 주제는 ‘주재’(主宰)라는 것이다. 하느님이 아름다운 금강산을 주재했다는 뜻인데 처음 악보집을 인쇄할 때 ‘주제’라고 나온 것이 그대로 굳어졌다는 것이다.
최씨는 6살 때 강화도 동네 병원에서 축음기를 통해 클래식 음악을 자주 들었다. 또 마니산에 올라 연평도 쪽에서 들려오는 ‘경기 뱃노래’에 매료됐다. 초등학교 3학년 때 호르겔 피아노를 처음 접하면서 음감을 확인했고 이화여고에 다니는 누나한테 음악을 배웠다. 인천중학교 시절에는 바이엘과 체르니를 독학으로 배웠다. 1949년 경복중학교 6학년 때 첫 작곡 발표회를 가졌다. 서울대 음대 시절 김성태 선생을 만나면서 오늘날 민족 작곡가의 길을 걷게 된다.
최영섭 작곡가, 애국심을 이렇게
- '아! 영원하라, 나의 조국' 출간 -
올해는 온 국민이 잘 알고 있는 광복 70주년이 되는 해이다. 그 기쁨을 기념하고자 정부와 사회 여러 단체에서 다양한 행사를 준비하고 있다.
자기의 삶이 조국의 광복과 함께 힘차게 진행되었다는 작곡가 최영섭(87) 씨를 서대문구 자택에서 만났다.
선생은 '그리운 금강산'을 작곡했는데, 한국인이 가장 선호하는 성악곡으로 조사되었고 광복 70주년과 작곡인생 70주년이 겹쳐 이를 특별히 기념하고자 ‘최영섭 가곡 선집’<Ⅵ권·131곡집>을 새해 1월에 출판했다.
선집에 수록된 곡들의 내용을 살펴보면 신작 70여 곡과 이미 발표했던 곡 중에서 조국의 아름다운 산하를 노래한 작품들을 선정하여 편집하였다.
1장엔 강(江)을 노래하고 2장에선 산(山)을, 3장에서는 바다(海)와 섬(島), 4장에서는 한겨레의 얼과 정(情)이 배인 곡으로 분류함으로써 나라를 사랑하는 그의 마음이 오롯이 담겨 향기로 내뿜고 있다.
악보를 통한 그의 음악 세계관에는 국가와 민족의 얼을 살려내고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이 가득 차있다고 주변에선 입을 모은다. 그의 노래는 더는 한글로만 쓴 악보에 머물지 않은 지 오래되었다.
‘그리운 금강산’은 88년에 테너 플라시도 도밍고와 소프라노 홍혜경, 러시아 볼쇼이 합창단까지 연주하여 전 세계에 널리 알려졌다. ‘지금은 영어 불어 독일어 이탈리아어 스페인어 러시아어로까지 번역된 악보를 보면서 노래할 수 있게 되었다’라고 설명했다.
- 선생님께선 훈장을 받으신 것으로 아는데요.
“수많은 동요와 ‘그리운 금강산’을 비롯한 500여 곡이 넘는 가곡, 합창곡 칸타타 곡 등을 창작하여 국민문화향상에 이바지하였고 국위를 선양했다며 '은관 문화훈장'을 2009년도에 받았습니다. 이에 조국과 국민들께 보답하는 차원에서 ‘아! 영원하라 나의 조국’을 출판하게 되었습니다.”
- 작곡공부를 시작한 특별한 동기가 있었던가요.
“일제 강점으로부터 해방되던 1945년은 경복중학교 3학년 재학생 시절이었습니다. 2~3년 전부터 구연소 선생님(훗날 숙대 피아노과 주임교수)으로부터 피아노 연주를 지도받고 있었는데 실력이 어느 정도 채워지니까, 너는 손가락이 짧아 피아노 연주로 성공하기엔 적합하지 않으니 그간 배운 실력으로 작곡분야로 진로를 전환하는 게 좋겠다고 권면해 주셨습니다.
그 말씀을 듣고 곧바로 이화여대 음악 작곡가 주임교수 '임동혁' 선생님으로부터 작곡 수업을 받기 시작했고 서울대학교에 입학하여서는 김성태(작곡가) 스승으로부터 본격적인 공부를 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