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단강 건너가 만나리”에 얽힌 70년전의 나의 이야기]
며칠 후 며칠 후 요단강 건너가 만나리
며칠 후 며칠 후 요단강 건너가 만나리"라는 가사를 생각하면서 찬송가를 올려봅니다.
내가 어렸을적 작은집과 위 아랫집으로 살았는데, 70여년전 작은집 할머니께서 교회를 지극정성으로 다니면서 “며칠 후 며칠 후 요단강 건너가 만나리
며칠 후 며칠 후 요단강 건너가 만나리 아멘“이라는 찬송가 수시로 부르던 모습을 연상하며 동탄에 거주하는 작은집 할머니 장조카(나보다 한 살 아래 조병우)에게 물어보아 확인하여 찬송가 606장이고, 제목이 “해보다 더밝은 저 천국”이더랍니다.
조병우는 나보다 한학열이 높아 김제조씨23세손이고 나는 24세손으로 아저씨벌이다.
나는 아저씨로 항상 높여 부른다.
이 찬송은 주로 장례식장에서 장례 찬송가로 많이 부르는 찬송이라 합니다.
[해보다 더밝은 저 천국]
제1절
해보다 더 밝은 저 천국 믿음만 가지고 가겠네
믿는자 위하여 있을 곳 우리 주 예비해두셨네
(후)며칠 후 며칠 후 요단강 건너가 만나리
며칠 후 며칠 후 요단강 건너가 만나리
제2절
찬란한 주의 빛 있으니 거기는 어두움 없도다
우리들 거기서 만날 때 기쁜 낯 서로가 대하리
(후)며칠 후 며칠 후 요단강 건너가 만나리
며칠 후 며칠 후 요단강 건너가 만나리
제3절
이 세상 작별한 성도들 하늟에 올라가 만날 때
인간의 괴롬이 끝나고 이별의 눈물이 없겠네
(후)며칠 후 며칠 후 요단강 건너가 만나리
며칠 후 며칠 후 요단강 건너가 만나리
제4절
광명한 하늘에 계신 주 우리도 모시고 살겠네
성도들 즐거운 노래로 영광을 주앞에 돌리리
(후)며칠 후 며칠 후 요단강 건너가 만나리
며칠 후 며칠 후 요단강 건너가 만나리 아멘
[요단강]
요단강은 세계에서 수면이 가장 낮은 강으로
시리아에서 남쪽으로 흐르며 이스라엘을 지나 요르단에 이른다. 시리아의 헤르몬 산과 레바논에서 발원한다. 요르단 강은 갈릴리호를 가로질러 사해로 흘러들며, 총길이는 360Km가 넘지만 구불구불하게 흐르기 때문에 발원지와 사해 사이의 실제 거리는 200Km도 되지 않는다. 그리스도교도, 유대교도, 이슬람교도 모두가 요르단 강을 신성하게 여긴다. 예수가 세례 요한에게 세례를 받은 곳도 이 강이었다. 성경에는 아브라함과 조카 롯이 갈라설 때 요단 강이 언급되었다. 성경에 따르면 약속의 땅 가나안과 경계를 이루는 요단 강은 죄를 씻는 곳, 천국으로 건너가는 곳 등의 상징성을 나타내고 있다
[Daum백과] 옮김
100세시대의 생존확률
임종 직전 '죽을 때 가장 후회되는 다섯 가지를 나열하면
◆내 뜻대로 한 번 살아봤었다면…
◆일 좀 적당히 하면서 살 것을…
◆내 기분에 좀 솔직하게 살았다면, 화내고 싶을 땐 화도 내고…
◆오래된 친구들과 좀 더 가깝게 지낼걸…
◆좀 더 내 행복을 위해, 도전해볼걸…
우리는 살아가면서 흔히들 100세 시대라 말한다.
실제 당연히 100세까지 살 것 같은 착각에 빠지며 위안을 얻기도 한다.
최근 통계청이 발표한 자료에 의하면, 2022년 1월 말 기준 우리나라 총인구는 5180만명(남자 2586만 명, 여자 2594만 명)으로 나타났다.
주요 연령별 생존 확률을 보면,
70세는 86%,
75세는 54%,
80세는 30%,
85세는 15%,
90세는 5%에 지나지 않는다.
즉, 통계적으로만 보면
90세가 되면 100명 중 95명이 사망하게 되고 단지 5명만이 생존한다는 의미다.
불지 않으면 바람이 아니고
늙지 않으면 사람이 아니고
가지않으면 세월이 아니지.
세월을 어찌하면 좋은거여.
세월이 덧없이 흘러가고 되찾을 수 없는게 세월이라
사소한 일에 세월을 낭비하지 맙소이다.
감사합니다.
즐겁게 삽시다.
한국인의 평균수명(통계청 2024기준)
한국 인구의 기대수명은
1970년 62.3세에서 2024년 84.3세로 약 22년 늘어났다. 기대수명은 여자가 남자보다 길다.
2024년 현재
여자의 기대수명은 87.1세로
남자의 81.4세에 비해 6년이나 길다.
통계청에 따르면, 한국인의 기대수명(2024년 기준)은 평균 83.3살이다. 남자는 81.4살, 여자는 87.1살이다. 이는 대한민국의 여성은 대략 남성보다 6년을 더 산다는 뜻이다.
50년 전인 1970년에는 어땠을까.
이 수치는 남자는 58.7살, 여자는 65.8살로 평균 62.3살이었다.
50년 새 수명이 22년이 늘었다.
해마다 평균적으로 0.4년이 증가한 것이다.
여러 요인이 작용한 결과이지만, 무엇보다 소득 증가와 기술 인프라가 영아사망을 크게 줄인 덕분이다.
☛인생무상 모두 죽으며 한 줌의 흙으로 변하며, 누구나 자연 그대로의 모습이다.
장례식에서의 화려함이나 초라함, 매장과 화장과는 상관없이
자연으로 돌아간 것에는 아무런 차이가 없다.
이스라엘의 3대왕 솔로몬도 물질적인 호화로움을 다 맛보고 1000명나 되는 천하 미인을 다 품어 보고 난 뒤에 왕관이나 재물이나 인간의 모든 욕심이 다 부질없고 오직 하나님의 영광이 중요하다는 것을 전도서(傳道書)를 통해 술회(述懷)한 내용이다.
솔로몬이 말하되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성경에 나오는 솔로몬왕은 모든것을 누렸지만 “헛되고 헛되어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했나보다.
법정스님도
“사람이 머물면 더 추해지고 남기면 더 추해진다. 내가 죽고 난 뒤에 나에 관한것은 아무것도 남기지 말라”
호화로운 무덤을 만드는 것이나 화장(火葬)을 하여 재를 뿌려 이 세상에 흔적을 없애는 것이나 모두 살아있는 사람의 감정(感情)이고 살아있는 사람이 장례(葬禮)를 통하여 얻는 위로에 불과하다.
아무리 아름다운꽃도 한철이고, 나이들고 병이 생기면 아무리 돈이 많아도 무슨 소용 있는고,,,, 거기서 거기 오십보 백보.
성현군자께서 말씀하시길,
老覺人生 萬事非(노각인생 만사비)
늙어서 생각하니 만사가 아무것도 아니며.
憂患如山 一笑空(우환여산 일소공)
걱정이 태산 같으나 한 번 소리쳐 웃으면 그만인 것을.
온 세상이 훨씬 넓고 아름답게 보이고 편하고 진실하게 보이네
人生事 空手來 公手去 (인생사 공수래 공수거)
인생사 모두 빈손으로 왔다가 빈 손으로 가는 것을........
===좋은글===
바닷 물로도 못 채운 사람의 욕심
불교에서 말하는 3대 악(惡)중에 탐욕이 있어 이를 버려야 한다고 한다. 사람들은 나이가 듦에 따라 남보다 더 갖고 싶고, 좋은 집에 살고 싶고, 지식욕, 명예욕, 권력욕 등에 집착하려 한다. 장수(長壽) 시대가 되니 노인들의 생에 대한 욕심이 100세까지를 꿈꾸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무탈하게 살아온 것만 해도 다행인데 노욕(老慾)이 생긴 것이다. 정치계에서는 노인이 권력욕에 미쳐 남을 해치며 차지하려 한다. 재계의 일부는 온갖 부정을 하면서 재산 욕심을 채우려드는 사람이 있다.
사람은 출생부터 죽을 때까지가 욕계(欲界)의 세계에 살기 때문에 무한한 욕망을 채워가면서 살아가야 한다. 욕계는 삼계(三界-색계 ,무색계, 욕계)의 하나로 지옥, 아수라(阿修羅), 축생(畜生), 인간계를 말하는데 식욕(食慾), 수면욕(睡眠慾), 음욕(淫慾)이 있으므로 욕계라 한다.
욕계에 살기 때문에 불가(佛家)에서 삼독(三毒)의 하나인 탐욕(貪慾)의 마음이 항상 일어나 자기의 욕망(慾望)을 채우려 한다고 했다. 속담에 “바다는 메워도 사람의 욕심은 못 메운다.”는 말이 있다. 사람의 욕심은 바닥없는 항아리와 같다. 아무리 채워도 채워지지 않는다. 이를 깨달아야 한다.
미국의 재벌 록펠러에게 사람들이 물었다. “당신은 미국 제일가는 갑부인데 얼마나 벌면 만족하겠는가?” 그때마다 “조금만 더”라고 대답했다. 사람은 세상의 재물, 권력, 명예로 공허함을 채워보려 한다. 그러나 그것은 헛된 일이다. 아무리 많은 돈이라도 평안을 살 수 없고, 건강도, 진정한 사랑도 살 수 없고 죽음에서 보호받을 수 없다.
톨스토이의 소설 <인간에게 얼마나 많은 땅이 필요한가.>라는 이야기가 있다. 어느 날 왕이 농부에게 “네가 하루 동안 밟고 걸어 다니는 땅은 모두 주겠다.” 조건은 해지기 전에 출발한 곳으로 돌아와야 한다는 것이다.
이 농부는 다음날 아침 일찍 일어나 뛰기 시작했다. 많은 땅을 차지하기 위해서는 빠르게 더 많은 땅을 밟아야 하기 때문에 힘을 다해 해질 때 까지 전력을 다해 뛰었다. 그래서 그는 많은 땅을 차지할 수 있었다. 그러나 출발했던 장소에 도달했을 때, 그는 모든 힘을 다 쏟아버려서 쓰러져 죽고 말았다. ‘탐욕은 일체를 얻고자 욕심내어서 도리어 모든 것을 잃어 버린다.’고 몽데뉴는 말했다. 오늘 날 이 시대에도 이런 방법으로 살아가는 사람이 많다. 나는 얼마나 많은 것을 소유해야 하는지 생각해 봐야 한다. 큰집 천간이 있어도 밤에 눕는 곳은 여덟 자뿐이요, 좋은 논밭이 만경(萬頃)이라도 하루 먹는 것은 두되 뿐이다.<명심보감>
욕심의 수준을 낮추게 수행해야 한다.
모든 파멸의 근원인 탐욕은 바닷물로도 채울 수 없다. 탐심(貪心)에는 적당이라는 말이 통하지 않는다. 가진 자가 더 가지려 한다는 속담이 있을 정도다.
중국의 회남자는 “해와 달이 밝게 비추려 해도 뜬 구름이 가리고, 감물이 맑아지려해도 흙모래가 더럽히듯 사람도 본성대로 허무평평(虛無平平) 하고자 해도 욕심 때문에 방해를 받는다.” 그러므로 욕심은 채우려 말고 수행의 마음으로 다스려야 한다. 조금만 더 채우고 움켜쥐려 말고 조금만 더 비우고 내려놓아야 한다.
나보다 앞서가는 사람과 자꾸 비교하지 말고, 높은 곳만 자꾸 쳐다보지 말아야 한다. 오늘날의 가난은 상대적인 가난입니다. 그러니 스스로 만족 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면 행복의 길이 열린다. 가난은 조금 불편할 뿐이지 불행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