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 '캠퍼스 DNA'가 달라졌다] [2] '새로운 길' 뚫는 청년들
'여성 직종' 편견 뛰어넘고 전공과 다른 길 개척 나서
명문대 화학과 휴학하고 감자튀김王에 도전하기도
"남학생이 웬 꽃을 이렇게 많이…."27일 오전 9시 서울 반포 고속터미널 3층 꽃 도매시장에 수국과 스프레이 카네이션, 리시안셔스(lisian thus) 같은 색색의 꽃을 한 아름 든 20대 남성이 점포 사이를 지나갔다. '꽃을 든 남자' 김승면(26·동아대 식물생명공학과4)씨가 자신을 쳐다보는 꽃집 주인에게 웃으며 말했다. "독일에서 자격증을 받은 정식 플로리스트(florist)입니다."
플로리스트는 '플라워(flower)'와 '예술가(artist)'를 합성한 말로, 꽃을 이용해 공간을 연출하는 전문가를 말한다. 김씨는 여성들의 전문 분야로 알려진 플로리스트의 '성역(性役)'을 깼다. 김씨는 "온몸에 소름이 돋을 정도로 꽃의 아름다움에 매혹됐다"며 "미래를 위해 후회 없이 젊음을 바치고 싶다"고 말했다.
- ▲ 나만의 목표를 이루기 위해 남들이 가지 않은 길을 묵묵히 걸어가는‘새로운 DNA’대학생들이 있다. 위쪽부터 세계 최고의 플로리스트를 꿈꾸는 김승면(26)씨, 최고의 감자 튀김을 만들겠다며 휴학까지 불사한 윤종선(23)씨, 어릴적부터 꿈꿔온 작곡가 대신 최고의 터키 음식 요리사가 되기 위해 현지로 떠나는 이민혁(27)씨. /이태경 기자 ecaro@chosun.com, 송민진 인턴기자, 송민진 인턴기자(School of Visual Arts NY 사진과 1년)
김씨는 작년 8월 독일 그륀베르크에서 치른 플로리스트 자격시험에 합격했다. 당시 함께 응시한 16명의 한국인 중 남자는 김씨가 유일했다. 현재 독일 플로리스트 자격증을 취득한 한국인은 500여명으로 남자는 20여명 정도다. 2주 동안 독일 곳곳의 플라워 숍을 돌아본 김씨는 "플로리스트를 장인(匠人)으로 인정하고 무궁한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모습을 보고 가슴이 벅찼다"고 말했다.
김씨는 매달 꽃 관련 잡지 4종을 읽고 20개가 넘는 꽃 관련 인터넷 카페에서 활동하고 있다. 작년에는 국무총리배 국제 꽃 장식대회에 참가해 장미와 리시안셔스, 벼를 이용한 꽃다발 작품 '자연의 재해석'을 출품해 동상을 받았다. 김씨의 꿈은 누구든지 편안히 들러 꽃을 감상하고 여유를 즐길 수 있는 명품 '플라워 카페'를 창업하는 것이다. 20년 뒤 전국 곳곳에 체인점을 갖춘 기업체의 CEO가 되는 포부도 숨기지 않았다.
작곡을 전공했지만 터키 여행의 감동을 잊지 못해 최고의 터키 전문 요리사로 거듭나겠다며 늦은 유학을 준비하는 대학생, 최고의 감자튀김을 만들겠다며 휴학하고 학교 앞 좁은 가게에서 소스 개발에 여념이 없는 대학생도 있다. 선배들이 다져놓은 편한 길을 따라가기보다 '미래의 노다지 밭'을 향해 험로(險路)를 뚫고 전진하는 개척자들이다.
27일 오후 강남구 역삼동 터키 문화원에서 만난 이민혁(27·연세대 작곡과4)씨는 "메르하바(Merhaba)"라고 인사를 건넸다. 터키어로 "안녕하세요"라는 뜻이다. 2006년 2월 터키 여행을 떠난 이씨는 갖가지 향신료로 만들어낸 터키 음식에 푹 빠졌다. 그는 작곡가를 꿈꾸던 음악도였다. 중학교 때 음악공부를 시작해 3수(三修) 끝에 연세대 작곡과에 입학했다. 그는 "'딴따라' 아들을 볼 수 없다는 아버지를 설득해 음대에 입학했는데, 터키 요리를 접한 뒤로는 다른 건 보이지도 않았다"고 말했다.
이씨는 "한국 사람들이 말하는 케밥은 고기를 꼬치에 꽂아 만든 음식의 한 종류에 불과하다"고 했다. "요구르트를 물로 희석시킨 전통음료 아이란(ayran), 콩으로 만든 수프 메르지멕 초르바 등 다른 음식도 많지요."
이씨는 내년 봄 터키의 요리전문학교로 유학을 떠난다. 빡빡한 도제(徒弟) 시스템에 5년 정도 자신을 맡겨 터키 요리사로 거듭날 계획이다. 요즘 그는 하루 대부분을 부엌에서 보낸다. 기본적인 요리법을 익히기 위해 지난 2월 양식조리사 자격증을 땄다. 다음 달에는 중식조리사 자격시험을 치른다. 이씨는 5년 뒤 문을 열 터키 음식점의 이름도 정해놨다. '외메르 로칸타', 외메르가 하는 식당이라는 뜻이다. 외메르는 이슬람 제2대 칼리파의 이름이다.
서울 서대문구 창천동 연세대 먹자골목에 있는 '롭도 프리츠(Lobdo Fritz)'는 윤종선(23)씨의 감자튀김 가게다. 20가지 소스를 골라 먹을 수 있다. 가게 문을 연 지 반 년 남짓이지만 입소문이 퍼져 10여분 줄을 서야 한다.
윤씨는 연세대 화학과를 4학년까지 다니다 휴학을 했다. 선배를 따라 뉴욕 여행을 나섰다가 "최고의 감자튀김을 만들겠다"는 뜻을 세웠다. "좋은 학교 안 다니고 무슨 튀김 장사냐"는 비아냥거리는 소리도 있었지만 영감(靈感)을 믿고 과감하게 도전했다.
1억원의 창업 비용은 부모님과 형님에게 빌렸다. 사업 목표, 입지 선정, 예상 비용과 매출을 꼼꼼히 기록한 사업계획서를 내보이자 윤씨 부모는 흔쾌히 '투자'를 약속했다. 농사짓는 지인의 노하우를 얻어 튀김에 가장 적합한 감자를 골랐다. 최적의 소스 배합비율을 얻기 위해 케첩과 첨가물을 배탈이 날 정도로 몇 통씩 먹었다고 한다.
윤씨는 "남들이 말하는 '스펙'은 나에겐 없다"고 했다. "변변한 영어성적, 자격증, 공모전 입상 경력은 없습니다. 하지만 보세요. 송곳니를 내밀고 있는 괴물 캐릭터 '롭도'처럼 제 도전이 어디까지 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