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인돌이 놓아준 다리
광주 불로 초등학교
5-6 이민석
영수는 현장 체험학습을 가는 날이라 매우 들떠 있었다. 아침도 거르고 곧바로 학교로 가 버스 맨 앞자리에 타려고 달려갔다. 다행히 영수는 가장 빨리 도착해서 시야가 확 트인 제일 앞자리에 앉았다. 거북이 같이 하나 둘 차에 오르는 친구들을 의기양양 내려다보며 단짝 철수에게 물었다.
“철수야, 오늘 체험학습 어디로 가?”
“헉, 그것도 모르고 그렇게 빨리 왔냐? 화순고인돌 유적지로 가잖아!”
“맞다. 알림장에 써 있었지.”
역사에 관심이 없는 영수는 화순 고인돌이 뭔지도 모르고 대답했다. 따분한 교실에서 공부를 안 한다는 사실만으로 들떠 있는 영수는 체험학습이면 그곳이 어디든 그냥 좋았다. 뭘 보게 될지 기대가 된 영수는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체험학습 장소를 찾아보았다. 그런데 영수는 전혀 체험 학습 장소가 어디 있는지 알 수 없었다. 박물관 같은 건물도 안 보이고 작품들이 세워진 동상 같은 것도 없고 그냥 허허벌판이었다. 영수는 철수를 툭툭 치며 물었다.
“화순 고인돌은 어디 있어?”
철수가 어이없다는 듯이 쳐다보았다. “바보냐? 등잔 밑이 어둡다더니, 네 바로 앞에 있는 게 고인돌이잖아.”
“뭐라고? 이런 돌덩이가 네가 말 한 그 고인돌이라는 거야?”
그 순간 갑자기 불빛이 번쩍 했다. 아이들은 눈 깜짝할 사이에 없어지고 앞에는 원시인들이 있었다. 그 중 한 사람이 걸어 나왔다.
“너는 이런 고귀한 유적을 모르고 겨우 돌덩이라고 하는구나. 그것을 알려주려고 너를 이곳으로 데려왔다. 고인돌의 가치를 알 때까지 너는 계 속 이 곳에 머물러야 할 것이다.”
갑자기 호통을 치는 소리에 순간 겁이 난 영수는 앞으로 역사시간에 열심히 공부하겠다고 빌었다. 하지만 이미 목소리의 주인은 사라졌고 영수는 허공에 빌고 있었다. 어쩔 수 없이 영수는 원시인들을 따라갔다. 그 원시인들은 곰을 믿는 부족이었다. 그들은 족장이 돌아가셔서 제사를 지내기 위해 많은 양의 고기를 준비해야 한다고 했다. 사람이 부족한 탓에 영수도 사냥을 하러 따라나섰다. 컴퓨터 게임에서는 화살도 잘 쏘고 검도 잘 다루는 용사였지만 영수는 사냥은커녕 길을 잃어버리고 헤맸다. 다행히 사람들을 만나 겨우 토끼 한 마리를 잡고 터덜터덜 돌아왔다. 고인돌은 사냥이 끝나고 세우기 시작했다. 어디서 떼어냈는지 엄청나게 큰 돌 세 개가 있는 곳으로 수백 명의 사람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그 돌들을 가져와 땅에 박는다고 했다.
“저렇게 큰 돌을 어떻게 땅에 넣어 요? 포크레인도 없고, 크레인도 없 는데?”
“차차 알게 될 거다.”
수염이 하얀 할아버지 한 분이 지나치듯 말씀해 주셨다. 고인돌을 세우는 작업은 며칠 동안 계속됐다. 먼저 큰 구멍 두 개를 팠다. 다음에 통나무를 레일처럼 바닥에 깔고 그 위에 무거운 돌을 굴려 이동해서 두 개의 구멍에 각각 넣었다. 깎아지른 거대한 두 개의 기둥이 태산처럼 높게 섰다. 마치 영국의 스톤헨지를 보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하나 남은 거대한 돌은 어디에 쓰는지 알 수 없었다.
“이제 끝난 건가요?”
“가장 중요한 작업이 남았다. 저 두 바위를 거대한 석판이 덮어야 끝 이 난다.”
영수는 믿을 수가 없었다. 틈만 나면 레고로 집짓기가 취미인 영수의 판단으로 마지막에 올리는 돌은 아파트를 지을 때 쓰는 크레인 없이는 도저히 들어 올릴 수 없을 만큼 크고 거대했기 때문이다. 주변을 아무리 살펴보아도 도르래나 거중기 비슷한 것도 없었다. 그런데 사람들은 예상치도 못한 방법을 썼다. 마을 사람들이 모두 망태기에 흙을 담아서 두 받침돌 사이에 쌓는 것이었다. 모래산이 만들어지자 그 위에 다시 통나무를 이용해 덮개돌을 밀어 올리기 시작했다. 그 작업은 웅장하고 신성했다. 모두들 땀을 비오듯 흘리면서 힘들어했지만 정성을 다하고 있었다. 두 돌 위에 덮개돌을 올리자 사람들은 다시 한 줄로 서 모래산을 파내기 시작했다. 그 모든 작업은 며칠 동안 이어졌고 밤이 돼서야 거대하고 웅장한 고인돌이 완성됐다. 사람들은 모두 경이로운 표정으로 고인돌 앞에 무릎을 꿇었다. 그 모든 걸 지켜본 영수는 현대적 도구 하나 없이 망태기와 통나무 하나로 거대한 고인돌을 세우는 그 지혜에 입을 다물 수 없었다. 영수는 곰부족들이 고인돌을 세우는 지혜를 보면서 많이 부끄러웠다. 레고의 중요부속 하나만 사라져도 건물 세우는 걸 중단했던 영수는 고인돌이 왜 가치 있는지 깨닫게 되었다. 고인돌에는 곰부족의 피땀과 정성, 족장에 대한 무한한 존경이 들어있었다.
그날 밤 모아두었던 고기로 고인돌 앞에서 제사를 지냈다. 족장은 매우 관대하고 용맹한 사람이라고 했다. 사람들은 슬픈 분위기였지만 족장을 추모하기 위해 최고의 잔치를 했다. 영수는 그 기쁜 순간에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도움을 받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예상한 대로 사람들은 영수의 말을 전혀 믿지 않았다. 영수는 변화된 자신의 모습을 어서 가족과 친구들에게 보여주고 싶다는 기대에 부풀었다가 돌아갈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불안했다. 고인돌도 만들었으니 이제는 돌아가게 해주세요. 영수는 슬픈 마음을 누르지 못하고 고인돌 앞에서 울먹이며 기도했다.
“저는 고인돌의 가치에 대해 몰랐지 만 지금은 잘 알게 되었습니다. 저 를 돌려보내 주신다면 문화유산을 사 랑하고 아끼는 사람이 되겠습니다.” 그 때 처음 보았던 원시인이 다시 나타났다.
“너는 고인돌의 가치가 뭐라고 생각 하느냐?”
“과거 조상들의 지혜와 숨결을 현 재로 이어주는 다리라고 생각합니다.”
그는 예상보다 더 멋진 답을 한 영수를 현재로 보내 주겠다고 약속하고 사라졌다. 그리고 빛이 번쩍 하더니 영수는 화순 고인돌 유적지로 돌아왔다. “드디어 돌아왔다!”
영수는 눈을 뜨고 크게 소리를 질렀다. 그때 머리를 툭 치는 손이 있었다. 옆에 앉은 철수였다.
“너 머리만 나쁜 줄 알았는데 상태 도 많이 이상하구나. 입가에 침이나 닦아. 어젯밤에 뭘 했기에 그렇게 잠만 자니?”
영수는 철수에게 고인돌 만드는 방법을 매우 구체적이고 상세하게 말해주었다. 철수의 입이 떡 벌어졌다.
“너 내가 알던 영수 맞아? 왜 이 리 똑똑해졌어? 어제 잠 안 자고 고인돌 공부했니?”
영수는 철수의 놀란 얼굴을 보며 비밀이라고 했다. 그때 선생님께서 마이크로 말씀하셨다.
“어, 너희 둘. 조용히 좀 해라. 이제 여러분은 화순 고인돌을 견학할 거다. 견학 후 체험 보고서를 작성 해야 하니까 열심히 보도록.”
집에 돌아온 영수에게 엄마께서 고인돌 유적지가 지루하지 않았냐고 물어보았다.
“정말 재미있었어요. 고인돌은 조상 님들의 지혜가 한 곳에 집약된 정말 멋지고 위대한 문화유산이에요.”
영수의 진지한 대답에 놀란 나머지 엄마는 아들이 아픈 줄 알고 방에 들어가서 한숨 자라고 했다. 엄마가 당황스러워 하는 것을 눈치 챈 영수는 아픈 것이 아니라 제가 많이 똑똑해진 것 같다고 너스레를 떨자 엄마는 그제야 우리 아들이 맞다고 하면서 웃으셨다. 영수는 가까운 일요일에 부모님과 함께 이번에 보지 못한 고인돌 채석장에 가보자고 말씀드릴 생각이다. 그렇게 큰 덮개돌을 자연 암반에서 어떻게 떼어내는지 자세히 알고 싶어서이다. 영수는 자신이 살고 있는 고장에 이렇게 엄청난 과학과 기술이 모여 만들어진 문화유산이 있다는 게 자랑스러웠다. 이번 체험학습을 계기로 앞으로 더 고인돌에 대해 자세히 알기로 다짐하고 오랜만에 침대에서 아주 편한 잠을 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