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로왕과 허황후 이야기
지난해 대통령 부인 김정숙 여사께서 인도 아요디아에서 열리는 '허황후 기념공원' 착공식에
참석하기 위해 인도를 방문하였다. 허황후는 삼국시대 이전 김해 일대에 존재했던 가락국의 첫 왕비를 말한다. 본명은
허황옥(許黃玉)으로 알려졌으며 서기 32년 인도에서 태어나 189년까지 살았던 것으로 전해진다. 가락국의 초대 왕인 김 수로왕의 부인으로 '허황후'
또는 '보주태후'라고도 부른다.
허황옥은 인도 야유타국의 공주로 서기 48년 오빠 장유화상과 수행원들을 대동하고 배를 타고 가락국에
와서 왕비가 되었다. 결혼 후 거등 왕을 비롯해 아들 10명을 낳았다. 허황후는 김해 김씨(金海 金氏)와 김해 허씨(金海 許氏)의 시조모이다.
김수로왕과 허황후 사이에서 태어난 열 명의 아들 중 맏아들인 거등(居登)으로 하여금 김해김씨로 가락국 왕통을 잇게 했다. 일곱 아들은 불가에
귀의했다. 나머지 두 아들에게는 허 씨 성을 쓰게 했다. 모계인 허황후의 성씨를 잇게 한 것이다. 오늘날 김해 허 씨가 바로 허황후의 후손이다.
이러한 기록들은 삼국유사에 나온다. 삼국유사는 가락국기 편에서 허황옥 스토리를 자세하게 기록하고 있다. 그 기록에 따르면 허황옥은
본래 아유타국의 공주로 그 아버지 부왕과 왕후의 꿈에 상제가 나타나 공주를 가락국 수로왕의 배필이 되게 한 것으로 되어있다. 공주는 많은 종자를
거느리고 김해 남쪽 해안에 이르렀다. 수로왕은 신하들을 보내어 맞으며 허황옥을 맞아 황후로 봉했다. 서기 188년 157세의 나이로 죽자 가락국
구지봉 동북쪽 언덕에 장사를 지냈으며 경남 김해시 구산동 고분이 허황후의 능으로 전해지고 있다.
그런데
학계에서는 허황후 스토리를 오래 전 이야기라 신화로 받아들일 뿐 역사적 사실로 인정하지는 않고 있으며, 승려였던 승 일연이 불교발상지인
인도로부터 하황옥 왕비가 왔다는 이야기를 만들어 불교의 역사적 정통성을 만들어냈다는 것이다. 그리고 사실 한반도 고대 왕국인 가야국의 김수로왕과
바닷길로 수십만 리 떨어진 인도 아유타국 공주인 허황옥의 혼인 이야기를 역사적 사실로 믿기에는 많은 의구심이 든다. 그래서 우리 국민들도 설화
정도로 생각하는 것 같다.
그러나 김해 김씨 출신인 고고학자(옥스포드대 박사) 한 분이 대학 시절 자신의 시조인 수로왕의 능을
방문했다가 왕비의 무덤 앞 능비에 ‘가락국 수로왕비 보주태후 허씨릉’이라고 씌어 있는 것을 보고 과연 지금부터 2천여 년 전에 인도 여인이
머나먼 인도에서 한반도까지 어떻게 왔는지 궁금하였다. 그래서 46년에 걸쳐 중국과 일본을 비롯하여 인도·네팔·파키스탄·영국·독일·미국·이란 등을
구석구석 답사하며 조상의 뿌리를 찾아 평생을 연구하여 "허황옥 루트, 인도에서 가야까지"라는 책을 세상에 내놓았다.
그 결과
아유타국이 기원전 7세기경 아리아족이 세운 인도 코살국의 중심 도시는 아요디아이고, 중국에서 일어난 한나라와 흉노의 대립에 영향을 받아
아요디아의 지배계급과 지식인들이 동쪽으로 이주해 지금의 중국 사천성 안악현(보주)에 자리를 잡았으며, 그곳에서 태어난 허황옥이 서기 47년 배를
타고 황해를 건너 가락국으로 왔음을 밝혀냈다.
저자가 직접 탐사해본 결과 인도 공주 조상 일행은 인도-미얀마-운남성을 거치는
내륙지방을 왕래하던 마방들이 다나던 길을 따라 중국으로 이동한 것으로 추정하였다. 일반적으로 우리가 알고 있던 중국과 서역간의 통로가 실크로드,
히말라야를 통하는 차마고도 이외에도 미얀마의 오지를 통과하는 험한 산비탈 길이 기원전 3세기부터 개척되어 있었다. 결론적으로 허황후가 인도에서
직접 온 게 아니라 세대를 이어 미얀마와 중국을 거쳐 조선반도에 온 것이다.
허황옥의 이름 앞에 보주태후라는 칭호가 붙은 이유를
밝히는 과정에서 중국 안악현에 보주 허씨들이 집성촌을 이루며 살고 있는 지역을 방문하여 허씨의 종산 암벽에 새겨진 '신정(神井)'에서
‘허황옥’이라는 이름을 발견하였다. 이로써 아득한 옛날의 전설 같은 이야기로만 알려진 허황옥의 혼인 여행의 진실이 드러나게 된 것이다.
우리는 살아보지 못한 과거인의 생활을 상상해가면서 복원해 내는 작업에는 고고학과 역사학이 있다. 옛사람들이 기록한 글을 재구성하면
역사학이 되고, 옛사람들이 사용한 토기 한 조각이나 무덤의 흔적을 보고 옛날 일을 추리하면 고고학이 된다. 훌륭한 고고학자에게는 풍부한 상상력이
필요하다. 단순한 상상력으로 과거를 복원하면 픽션이 된다. 그러나 증거를 객관적으로 분석하여 과거사를 그려나가면 역사학이나 고고학이라는 학문이
된다.
첫댓글 이번에는 안 빠지도록 저도 챙겨볼께요. 미안합니다.작년에는 내가 마을들 책 3권 책때문에 바쁘고 몸이 안좋아서 정말 힘들었거든요. 작년 가실에 심장스탠트 두번째로 넣고 체력이 히 바닥이엇는데
계속해서 여러
위궤양, 위염 식도염, 까지 먹기도 어렵고 먹으면 올라오고 그래서 다 귀찮고 신경을 쓸 수가 없어 허거나 말거나 했어요.
지금은 많이 회복되고 있고 올해는 바쁜 일이 없으니 챙겨볼께요.
선생님!
관심 가져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