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투리와 표준어
당나라 때의 시인 하지장(賀知章)의 작품 ‘고향에 돌아온 심정을 적다(回鄕偶書)’에 사투리에 대한 말이 나온다.
젊어서 고향 떠나 늙어서야 돌아오니 少小離家老大回
시골사투리는변함없으되머리털만세었구나 鄕音無改鬢毛衰
아이들은 서로 바라보나 알아보지 못하고 兒童相見不相識
웃으면서 어디서 온 나그네냐고 묻네 笑問客從何處來
젊어서 타지를 떠돌다가 반가움과 설레는 마음으로 고향에 돌아오니, 자신을 맞이한 사람 은 옛날의 벗들이 아니라, 낯모르는 아이들만이 시인에게 어디에서 온 나그네냐고 묻는다. 세월의 흐름에 사람들도 다 흘러가버린 것이다. 그러나 변하지 않고 남아 있는 한 가지, 그것은 사투리다. 사투리는 고향의 다정한 언어다.
사투리는 그 지방에서 오래 익은 말이기 때문에 그 지방만의 어감이 담겨 있다. 다른 지방의 말로써는 표현할 수 없는 정감이 그 속에 배어 있다. 경상도 사투리(방언)에는 경상도의 맛이 스며 있고, 경기 사투리(방언)에는 경기, 서울 지방의 맛이 스며 있다.
경상도 사투리나 경기 사투리는 똑같은 지위를 가진 방언이다. 다만, 서울은 사람들의 교류가 많고 문화의 중심지이기 때문에, 그곳 방언을 하나의 표준으로 삼아 쓰기로 약속하고 우리는 그것을 표준어로 정하였을 뿐이다.
표준어 이외의 방언을 사투리라고 명명한다. 이에서 보듯 하나의 편리성을 위해 인위적으로 표준을 정했을 뿐, 서울말이 지방말보다 우수하거나 기능면에서 뛰어나기 때문에 그러는 것은 아니다.
결국 모든 말은 사투리다. 서울 토박이의 말은 서울 사투리고, 제주 토박이의 말은 제주 사투리다. 많은 사람이 사투리와 시골말은 같은 말이고, 사투리의 반대말은 서울말이라 고 알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어느 곳의 누가 쓰는 말이든 그것은 하나의 사투리다.
그러므로 사투리는 결코 하등(下等)의 말이 아니다. 엄밀히 말하면, 할매와 할머니는 같은 말이 아니다. 경상도 사람들의 머릿속에 그려지는 할매의 어감과, 할머니라는 어감은 똑같은 것이 아니다.
또 사투리에는, 표준어로는 도저히 그 느낌을 실어낼 수 없는 말도 너무나 많다. 대구 지방 사투리인 ‘훌빈하다, 아치럽다’와 같은 말은 표준어에는 없다. 훌빈하다는 말은 물건이 있어야 할 자리에 있지 않고 빠져서 텅 비어 있다는 뜻이고, 아치럽다는 말은 보기에 매우 애처럽고 안타까워 가슴이 아프다란 뜻이다. 그런데 이런 말은 표준어에는 없다.
시적 자유(poetic licence)라는 것도 바로 이런 데서 필요한 것이다. 시적 자유란 시적 허용이라고도 하는데, 시는 다양한 감정과 사상을 응축해서 표현하는 장르이기 때문에, 그 예술적 효과를 높이기 위해서 정해진 문법이나 어법 등을 지키지 않고 벗어날 수 있다는 이론이다. ‘하얀’을 ‘하이얀’으로, ‘우리 어머니’를 ‘울엄매’로 표현하는 따위가 그에 속한다.
사투리를 적절하게 사용하여 시의 맛과 효과를 높이는 것도 여기에 해당한다. 소월의 진달래에 나오는 ‘즈려 밟고’나 접동새의 ‘누나라고 불러 보랴/ 오오 불설워’, 지훈의 낙화에 나오는 ‘꽃 지는 그림자 뜰에 어리어/ 하이얀 미닫이가 우련 붉어라’ 등에 나오는 사투리는, 그것이 아니면 시의 맛을 잃을 정도로 살가운 말이다.
이러한 시적 자유를 가장 많이 활용한 분은 박목월이 아닌가 싶다. 그는 사투리라는 시에서, 사투리는 ‘앞이 칵 막히도록 좋았다’고 읊고 있다.
우리 고장에서는
오빠를
오라베라 했다.
그 무뚝뚝하고 왁살스러운 악센트로
오오라베 부르면
나는 앞이 칵 막히도록 좋았다.
나는 머루처럼 투명한
밤하늘을 사랑했다.
그리고 오디가 샛까만
뽕나무를 사랑했다.
혹은 울타리 섶에 피는
이슬마꽃 같은 것을……
그런 것은
나무나 하늘이나 꽃이기보다
내 고장의 그 사투리라 싶었다.
참말로
경상도 사투리에는
약간 풀냄새가 난다.
약간 이슬냄새가 난다.
그리고 입안에 마르는
黃土흙 타는 냄새가 난다.
사투리를 그렇게 사랑했던 그는 실제로 사투리를 사용하여 많은 작품을 써서, 시의 맛을 한껏 올리는 데 성공하였다.
어떻든 사투리와 표준말은 병용을 위한 것이지 대체를 위한 것이 아니다. 공식적인 상황에 서 의사소통이 원활하라고 표준말을 쓰라는 것이지, 일상의 모든 말을 표준말로 대체해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표준말은 맞고, 좋은 말이고. 사투리는 틀리고 저질의 말이라고 생각하 는 것은 큰 잘못이다. 그 사투리를 사용하는 언어 권역에서는 해당 사투리로 말하는 것이 바른말이다.
사투리는 무형문화재다. 잘 보존하고, 마음껏 쓰고 잘 키워나가자.
첫댓글 박사님 귀한 글 참말로 잼납니다.
사투리는 무형문화재로 보존 하자니 더욱 신이 나구요 여태껏 표준어는 세련미와 수준이 높고 지방 사투리는 어감이 투박하다고 느꼈는데 실상은 그렇지 않군요 ㅎ
정감이 가는 우리 지방 사투리를 많이 많이 사랑할렵니다.
카페에서 종 종 뵙게되는 박사님 덕분에 많은 공부가 됩니다.
고맙습니다.
늘 평안하소서.
김 선생님, 졸고를 읽어주시고 격려해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