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시작하면서
故 김경률 감독이 시작하고, 오멸 감독이 대단원을 장식한 영화 <지슬>이 상영되고 있다. 지슬은 제주말로 감자를 뜻한다. 개봉 1주일 만에 누적관객 4만 4천명을 넘어서는 흥행을 보이고 있다. 영화는 1948년 4월 3일 발발한 제주 4.3항쟁을 다룬다. 해방공간의 격동기에 여순사건과 대구봉기와 더불어 한국 현대사에서 도저히 잊히지 않는 4.3항쟁!
이승만의 단정수립에 반대하는 제주 사람들을 겨냥하여 경찰이 1948년 3월 1일 발포하여 6명이 사망하고 8명이 부상당한다. 미군정은 이 사건을 정당방위로 해석하고 제주도민을 폭도로 몬다. 4.3항쟁은 이 사건이 도화선이 되어 발생한다. 350명의 무장대가 제주도 안의 12개 경찰지서를 습격함으로써 7년여에 걸친 항쟁이 시작되는 것이다.
영화는 사건의 전말을 다루지 않는다. 작은 마을 주민들의 평온한 일상을 긴박한 사태전개와 맞물리게 함으로써 4.3항쟁의 처절한 양상에서 한 발짝 비켜나도록 관객을 인도한다. 사태의 한가운데서 길을 잃으면 태풍의 눈 속에 들어 있는 것과 같은 이치일 터이므로! 그러하되 <지슬>은 곳곳에 극복하기 어려운 아픔과 상실과 절망을 부설한다.
치유되기 어려운 이야기들
1948년 11월, 해안선 5킬로미터 바깥에 머무는 사람들은 모두 폭도로 간주하고 사살하라는 초토화 작전이 시작된다. 제주도 중산간지역에 살고 있던 주민들은 흉흉한 소식에 더 깊은 산으로 들어간다. 그들은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 줄도 모른 채 당장 급한 물품만 챙겨들고 서둘러 집을 나선다. 며칠 지나면 다시 돌아올 것이라 굳게 믿고서.
<지슬>이 아프게 다가오는 것은 전혀 예정돼 있지 않은 사태가 주인공들을 덮치기 때문이다. 순덕이를 사랑하는 만철은 자신의 흉중을 상표에게 털어놓는다. 순덕 아버지보다 항렬이 위인 상표는 만철과 순덕의 일이 잘 되기를 기원한다. 하지만 순덕이 실종되고 두 사람은 그녀를 찾아 나선다. 만철이 마주한 진실은 상상조차 하기 어려운 것이었다.
이런 이야기는 경준과 상표에게도 적용된다. 절체절명의 위기상황에 처한 마을 사람들을 구하려고 상표가 나선다. 자신이 총알보다 빠르다고 우기는 상표가 총알받이를 자처하기 때문이다. 군인들이 총을 쏘면서 상표를 몰고 다니는 장면은 <플래툰>의 마지막 장면과 겹쳐진다. 상표가 감내해야 할 죽음의 공포가 극대화되고, 사태는 더욱 뒤얽힌다.
토벌대를 대동하고 나타난 상표와 그를 맞이하는 경준. 극한상황에 몰리는 두 사람과 그들을 둘러싸는 불가피한 죽음의 그림자. 이 같은 상황은 오직 돼지 걱정에만 정신 팔려있는 원식이 삼촌에게서도 찾을 수 있다. 피난행렬에 끼지 못한 어머니를 모시러 갔다가 처절한 죽음을 목도하는 무동의 상황은 필설로 다할 수 없는 것이 아닐 수 없다.
<지슬>은 다채로운 인간군상의 이야기를 흑백영상에 담아낸다. 제주도의 아름답고 평온한 오름에 겹치는 순덕의 벌거벗은 나신은 관객의 눈물샘과 영혼을 깊이 자극한다. 무동 어머니의 죽음과 어머니가 남긴 따끈한 감자는 또 어떤가! 가장 가까운 인간 상표를 죽여서라도 마을 사람들을 구해야하는 경준의 절박한 심사는 어떤 것이었을까, 가늠하기 어렵다.
서북청년단과 민간인학살
<지슬>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제주도민들과 토벌대의 두 부류로 나뉜다. 쫓는 자와 쫓기는 자들의 선명한 이분법이 화면을 가득 채운다. 하지만 토벌대 내부에 작은 균열이 만들어진다. 그것은 토벌대의 민간인학살을 어떻게 바라보는가, 하는 문제에서 발생한다. 특히 서울내기 군인 상덕이 바라보는 제주 4.3사건의 본질은 혼란스럽기 그지없다.
순덕을 겨냥하는 상덕의 총부리가 흔들리고 순덕은 도망친다. 용눈이 오름에 칼바람이 부는데 상덕은 끝내 방아쇠를 당기지 못한다. 왜 무고한 처녀와 어린아이, 할머니까지 폭도로 몰려 학살되어야 하는지 상덕은 토벌대의 행위를 받아들이지 못한다.
영화에서 인상적인 인물로 등장하는 신병이 있다. 정길이다! 그는 온몸을 적셔가며 물통을 지고 나른다. 학살 장면에서 정길의 눈은 언제나 가려져 있다. 프란시스코 고야의 그림 <1808년 5월 3일>에 등장하는 프랑스 군인의 모습을 빼닮았다. 착검한 상태에서 민간인을 향해 총을 겨누는 군인들! 그들에게는 눈이 보이지 않는다. 화가가 눈을 감춰버린 것이다.
정길은 마침내 눈을 뜨고 잔악한 학살자 김 상사를 커다란 솥에 넣어 죽음으로 인도한다. 지극히 순종적이고 저항능력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던 나약한 인간 정길이 제주도 민간인학살에 가장 강력하게 이의를 제기한 것이다. “이제 제발 그만 좀 죽이세요!”
영화의 구성과 구현방식
<지슬>은 프롤로그와 신위, 신묘, 음복, 소지 그리고 에필로그로 이루어져 있다. 프롤로그는 제주 4.3항쟁의 발단에 대한 서술로 시작하며, 네 가지 이야기는 제사형식을 차용한 것이다. 에필로그에서는 감독이 말하고자 한 사태의 핵심을 이야기한다.
죽은 자의 영혼을 모셔 앉힌다는 의미를 가진 ‘신위 神位’. 이 장면에서 영화는 1948년 11월 어느 날 제주도로 돌아가서 토벌대에 참가한 군인들과 그들에게 쫓기는 마을 주민들을 모두 불러낸다. 영혼이 머무는 곳을 뜻하는 ‘신묘 神廟’. 여기서 영화는 그들이 살아가는 양태와 여러 가지 방식으로 죽음에 처하게 되는 과정을 보여준다.
귀신이 남긴 음식을 산 자가 나눠먹는 것을 의미하는 ‘음복 飮福’. 우리는 여기서 무동 어머니가 죽음과 대면하면서도 끝내 지키려 했던 감자와 만난다. 그녀가 남긴 감자를 먹는 사람들과 무동의 울음소리가 겹친다. 신위를 태우고 극락왕생을 기원하는 ‘소지 燒紙’. 토벌대든 주민이든 4.3항쟁 당시 세상을 버린 이들을 향해 울려 퍼지는 만가가 소지 장면이다.
영화는 연극, 특히 마당극의 형식을 차용한다. 이것은 마을 주민들이 피신했던 ‘큰넓궤동굴’ 장면에서 현저하게 드러난다. 마을 사람들 하나하나의 얼굴을 조명하면서 그들이 당면하고 있는 갖가지 사연과 상황을 넋두리하듯 풀어놓는 장면은 압권이다. 누구랄 것도 없이 모두 하나가 되어 4.3항쟁의 시공간 하나를 재연하는 기막힌 장면이 탄생하는 것이다.
에필로그를 바라보는 아쉬움
<지슬>을 숨죽여 보면서 나는 에필로그의 문제점을 지적하고자 한다. 사건이 발생한 지 65년이 넘었는데도 미국은 여전히 침묵하고 있다는 것이 <지슬>의 결말이다. 제주 4.3항쟁의 근본원인을 한반도 내부에서 찾는 것이 아니라, 미군정과 제국 아메리카에서 찾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민족모순과 분단모순의 절반 이상의 책임은 우리 몫이 아닐까?
영화에서 누차 “나는 빨갱이가 싫어! 우리 어머니도 빨갱이가 죽였어!” 하고 내뱉는 서북청년단 토벌대장의 발언은 에필로그와 상치된다. 4.3사태는 미군정이 주도하고, 남한정부가 추종하며, 그 선봉에 서북청년단과 우익세력이 자리했음은 주지하는 바다. 그럼에도 당대 시공간에서 한국인과 한국정부의 역할과 반성에 대해서 침묵하기는 어려운 노릇 아닐까.
2차 세계대전 이후 세계 곳곳에서 탄생한 신생정부와 폭력적인 정권수립은 우리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그것을 극복하고 민주화와 경제발전을 이룩한 자랑스러운 우리는 이제 남에게 책임을 돌리는 것이 아니라, 우리 자신에게 손가락질을 할 때가 되지 않았는가, 생각한다. 결국 공동체의 최종적인 책임은 외세가 아니라, 공동체 구성원의 모두의 몫이기 때문이다.
글을 마치면서
<지슬>은 ‘선댄스 영화제’ 심사위원 대상을 수상했다.
“깊이 있는 서사와 더불어 시적인 이미지까지 <지슬>은 우리 모두를 강렬하게 사로잡을 만큼 매혹적이었다.” (선댄스 영화제 심사평)
영화는 지나치게 잔인하지도, 지나치게 무겁지도, 지나치게 교훈적이지도 않다. 더러는 따뜻한 웃음이, 더러는 무거운 침묵과 깊은 슬픔이 다가온다. 그것은 “제주 4.3 당시 이름 없이 돌아가신 분들의 제사를 지낸다는 마음으로 <지슬>을 만들었다”고 술회한 감독의 지향점과 잘 맞아떨어지는 것이다.
65년 전 사건을 돌아보고 거기 연루되어 불귀의 객이 되어버린 허다한 영령을 위로하는 소박한 씻김굿이 <지슬>의 본령이다. 이제 그들을 평안하게 보내드리는 일이 남았다! 그것과 더불어 우리가 살아온 지난날들에 대한 전면적인 성찰과 다가올 날들에 대한 미래기획도 우리 몫으로 남아 있다. 반성하지 않는 불행한 역사는 반드시 되풀이되기 때문이다!
첫댓글 벙개관람계획은 없나요?
벙개는 누구나 칠 수 있습니다. 기다릴거 없이...^^
4.8일 현재, 독립영화 최초로 8만 관객 기록했다는군요. 선댄스 영화제는 다큐멘터리 영화제에서는 세계 최고의 권위를 가진 영화제이지요. 심사위원 만장일치의 대상 수상은 여러 가지로 의미가 있는 수상입니다. 잊지 않기 위해서 더 많이 봐줘야 하는 영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