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브로브니크에서 김치찌개와 카레라이스를!
가깝고 편리한 국내를 놔두고 굳이 굳이 먼 나라로 여행을 가는 이유는 뭘까?
많은 사람들의 대답은 이러하다고 생각한다.
더 많은 경험, 생활의 활력, 힐링, 낯선 곳에서 맛보는 두려움 혹은 공포, 창의력, 분위기 전환 혹은 새로움.
여행을 하면서 이 모든 것을 경험할 수 있는 단 하나를 꼽으라면 그것은 단연코 '음식'일 것이다.
해외에서 생활을 한다면 현지인들의 생활 습관, 언어, 표정, 하루 일과 등에서 '낯섬'을 경험할 수 있겠지만 고작 며칠을 머무르는 여행이라면 낯섬의 극대화를 할 수 있는 것은 '현지의 음식'이다.
한 나라의 음식은 그 나라의 환경, 기후, 풍토를 모두 고려하여 수백 년 혹은 수천 년 동안 그곳의 사람들이 적응했거나 살아가기에 최적한 것들을 조합하고 배합하여 생성해 낸 생존의 기반이요, 유구한 문화다.
우리는 경상도를 갈 때는 돼지국밥과 밀면을 먹고 전라도에서는 홍어와 백반한상을 찾으며 강원도에서는 순대와 메밀을 먹는다. 왜냐하면 음식은 그 지역을 가장 빨리 가장 깊숙이 알아볼 수 있는 척도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해외여행에서도 다르지 않다. 어떤 나라를 가든 그 나라의 대표 음식을 찾아보고 맛집을 검색하며 우리와 무엇이 다른지 궁금해한다.
두브로브니크 여행을 계획할 때도 나는 이런 심정이었다. 그리고 굳이 편한 패키지여행을 하지 않고 자유 여행을 계획했던 것도 '음식'이 가장 중요한 원인 중 하나였다. 패키지여행에서는 무미건조하게 차려진 밥상이 주어진다. 여기서 무미건조하다는 것은 나의 선택이 배제되었다는 말이다.
아침 호텔식, 점심 샐러드와 고기로 구성된 거의 동일한 자유식, 저녁 호텔식이 내가 경험한 패키지여행의 식사였다. 스페인을 갔는데 스페인 음식이 기억이 나지 않는 건 문제가 있다고 보았다. 현지 음식을 골라 먹어보고 느껴보는 것. 자유 여행의 묘미 아니겠는가.
그런데, 나의 기대와 계획은 두브로브니크로 가는 비행기 안에서 글루텐프리식을 주문해 밋밋한 닭가슴살이 제공될 때 작은 언니의 표정과 크림 양념의 닭고기와 오믈렛이 각각 서비스되어 큰언니가 속이 느끼하다며 인상을 찌푸릴 때 이미 산산이 부서지고 있었다. 기내식을 두 번 받은 후 언니 둘은 모두 볶음 고추장을 갖고 비행기를 타지 않은 자신들을 탓하고 있었다. 그러면서 둘은 다짐했다.
"숙소 가자마자 김치 꺼내서 라면부터 하나 끓여 먹자. 아니고는 아무것도 못하겠다."
두브로브니크 공항에 내려서 버스를 타고 우리가 숙소에 도착한 시간은 오후 4시. 아드리아해의 따가운 햇볕이 두브로브니크 구시가지 길거리에 깔린 편편한 돌을 바짝 구워 계란도 익힐 정도의 시각이었다. 배는 고프지 않았으나 우리는 한국인의 정신이 결여되어 있었다. 그것은 매운맛이었다.
짐을 풀기도 전에 언니들은 "야, 갖고 온 반찬이랑 라면부터 꺼내라"며 주섬주섬 먹을 것부터 꺼내 부엌으로 갔다. (우리는 3층짜리 개인 주택의 2층과 3층을 빌렸는데 3층에 부엌과 욕실이, 2층에 거실과 침실이 있는 구조였다.)
여행 전에 짐을 쌀 때에 언니들이 "먹을 거는 우리가 조금씩 갖고 갈 거니까 너는 굳이 안 챙겨도 된다"라고 했을 때 나는 "여행 가면 그 나라 음식을 먹어야지 꼴랑 며칠이나 된다고 음식을 바리바리 싸 가나? 그냥 거기 음식 먹자."라고 했다. 그러나 언니들은 "나는 김치 없인 못 산다. 컵라면이라도 먹어야 힘이 나지. 안 그러면 못 다닌다."며 기어이 가지고 갈 음식 목록을 나한테 읊어 주었었다. 나는 속으로 '그게 무슨 해외여행이냐?'라고 대들고 싶었지만 웃음으로 통화를 갈무리했었다.
언니 둘이 갖고 와서 부엌 싱크대에 올려 둔 음식 목록은 대략 다음과 같았다.
햇반 4개, 통조림 김치 2개, 볶음 김치 통조림 3개, 깻잎지 6개, 메추리알 장조림 통조림 3개, 라면 4개, 짜파게티 1개, 컵라면 3개, 3인용 카레가루, 튜브 고추장 2개, 참치캔 3개
큰언니의 캐리어가 소수점 제외하고 15kg에서 12kg로, 작은언니의 캐리어가 14kg에서 11kg로 줄었으니 대략 음식 무게만 5kg 정도 되었을 것이다. 먹고살려는 중년 한국인 여성의 생존 의지에 큰 박수를~~!!
도착 첫날 라면 2개를 끓여 김치와 함께 몸의 기를 순환시켜 주었다. 매운맛과 입안의 깔끔함으로 기운을 회복한 언니들은 그제야 시내 구경을 가자며 외출복을 갈아입었다. 그들은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숙소 바로 앞에 마트가 있어 구경을 갔다. 제법 큰 마트였다. 우리는 거기서 얇게 저민 돼지고기를 발견했다. 살라미처럼 생긴 고기였다. 고기를 200g 샀다. 왜 때문에?
다음날 아침에는 어제 산 돼지고기를 넣고 김치찌개를 끓였다. 짐 무겁게 왜 바리바리 싸들고 왔냐고 언니들을 타박했지만, 솔직히 맛있었다. 햇반과 함께 김치찌개를 먹으니 빨간 불 들어온 자동차에 가솔린을 가득 넣은 것처럼 내 몸도 기운이 넘쳐흐르긴 했다. 하지만 걱정도 들었다. 우리 이러다 현지 음식을 먹을 수 있기나 할까?
아침에 창 밖을 보니 숙소 바로 앞에 간이 시장이 열렸다. 아침과 오전에만 열리는 시장인 듯했다. 개인이 리어카 같은 데에다 야채와 과일을 가져다 놓고 팔고 있었다. 나는 눈곱도 떼지 않고 시장으로 내려갔다. 카레에 넣을 당근과 양파를 샀다. 고기는 어제 찌개에 넣고 남은 것이 있었다. 디저트로 무화과와 머루 포도도 샀다. 1kg에 2유로씩이었다.
셋째 날에는 남은 고기와 아침 시장에서 산 양파와 당근을 넣고 카레를 만들어 먹었다. 그새 햇반을 다 먹어서 마트에서 베트남 쌀도 사서 밥도 해서 먹었다. 한국 민박에 놀러 온 건지, 크로아티아 관광 도시에 간 건지 카레를 먹으면서 헷갈리는 척하면서 우리 자매는 기운차게 웃었다. 우리 음식을 먹으니 당연히 기운이 차겠지.
보스니아로 종일 투어가 있던 넷째 날에는 근처 빵집에서 크로와상을 사서 커피와 함께 먹었다. 크로와상 하나에 1유로. 다섯째 날에는 참치캔을 몽땅 다 털어 넣고 참치 김치찌개를 끓였다. 살림꾼인 언니들은 요리를 하고 막내라 늘 부엌에서 밀렸던 나는 두브로브니크에서도 설거지를 담당했다.
여행 마지막 날 아침까지 우리는 가지고 온 모든 반찬과 라면을 탈탈 털어 먹었고 남은 음식 없이 싹 비우고 두브로브니크를 떠날 수 있었다.
하루 한 끼는 현지 식당에서 밥을 먹었는데 거의 매끼 언니는 '맛있는데 느끼하다.'라든가, '억수로 맛있네. 근데 땡초 하나 넣고 매콤하게 만들면 더 좋겠다.'라든가, '고춧가루 좀 더 더 풀어서 칼칼하면 더 맛있겠고만'이라든가 하는 요리 컨설팅을 끊이지 않고 하였다. 물론 우리끼리 테이블에서만이다.
이때마다 나는 "고만 좀 해라. 여기는 한국이 아니고 유럽이다."며 여행의 묘미는 현지 음식을 맛보고 느끼는 데 있음을 일깨워 주고는 했다.
하지만 고백건대, 언니들보다 몇 살 더 어린 나조차도 언니들이 가져간 김치와 메추리알과 깻잎과 결정적 보약 라면이 아니었다면 유럽 남부의 따가운 햇살과 흘러내리는 땀을 견디지 못하였을 것이다. 유네스코 문화유산인 성벽을 두 시간 넘게 완벽하게 한 바퀴 돌 수 있었던 것도, 로크룸 섬 투어에서 바다 수영을 할 힘이 생겼던 것도, 두브로브니크 구시가지의 수많은 계단을 오르락내리락할 수 있었던 것도 전부 김치와 라면의 힘이었다. 잊으면 안 된다. 나는 50살이 넘은 중년이며 왕성한 체력의 20대가 아니라는 것을.
그리고 이렇게 직접 장을 보고 요리하고 유럽에서 김치찌개를 만들었던 것도 패키지가 아닌 자유 여행이었기에 가능하였다. 언니들은 다른 생경한 문화권으로의 여행도 이제 두렵지 않다. 왜? 자유여행에서는 김치를 들고 가서 찌개를 해 먹으면 되니까!
여행 마지막날 언니들이 말했다.
"막내야, 우리 다음에는 어느 나라로 갈까? 우리는 다 좋다~!"
김경태
대학 졸업 후 전공과 상관없는 외국계 화학회사를 25년 동안 다니다 직장보다 직업, 회사보다 본인에 집중하는 삶을 살려고 퇴사를 감행하였다. 지금은 관광통역안내사, 문화체험학습강사, 역사 강사로 활동하고 있으며, 좋아하는 일에 글쓰기가 추가되어 틈틈이 브런치스토리 홍월의 브런치(https://brunch.co.kr/@hikelly)에 글을 쓰고 있다.
2023년 2월에 에세이 겸 자녀교육서인 <엄마가 직접 하는 우리 아이 스며드는 역사공부법>을 출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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