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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시간에는 적 그리스도에 의해 왜곡된 성소의 내용들을 살펴보았는데요.
오늘은 종교개혁에 의해 다시 회복되는 생명의 강줄기들을 살펴보려고 합니다.
아무리 사탄이 진리를 감추려고 방해하려고 해도
하늘의 역사를 막을 수 없다.
“그 빛이 어둠 속에서 비치니, 어둠이 그 빛을 이기지 못하였다. ”
(요 1:5, 새번역)
창세 이래 어둠은 단 한번도
빛을 이겨본 적이 없다.
어둠이 애를 쓰면 쓸수록
빛은 더욱 찬란히 빛난다.
“성경이 00에게 이르시되 내가 이 일을 위하여 너를 세웠으니 곧 너로 말미암아 내 능력을 보이고 내 이름이 온 땅에 전파되게 하려 함이라 하셨으니”(롬 9:17)
0에 들어갈 사람은 누구일까?
우리는 너무 쉽게 하나님이 쓰셨던 사람들, 선의 도구들을 생각할 것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 00에 들어갈 정답은 “바로”이다.
바로는 끊임없이 하나님의 일을 방해하고, 거역했는데
그가 고집을 부리면 부릴수록
더욱 하나님의 능력이
하나님의 위대하심이 드러나 결국
그가 한 모든 수고는
하나님의 “능력을 보이고 내 이름이 온 땅에 전파되게”
하는 결과를 가져온 것이었다.
사필귀정(事必歸正)
어둠은 빛을 이기지 못한다.
진리의 개혁자들이 무너진 성소를 회복하고,
오실 메시야를 맞이했던 것처럼
다시 오실 주님을 위하여
성소의 진정한 의미들이 다시 회복되어야 할 것이다.
“네게서 날 자들이 오래 황폐된 곳들을 다시 세울 것이며 너는 역대의 파괴된 기초를 쌓으리니 너를 일컬어 무너진 데를 보수하는 자라 할 것이며 길을 수축하여 거할 곳이 되게 하는 자라 하리라”(사 58:12)
“[5] 보라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내가 선지자 엘리야를 너희에게 보내리니 [6] 그가 아버지의 마음을 자녀에게로 돌이키게 하고 자녀들의 마음을 그들의 아버지에게로 돌이키게 하리라 돌이키지 아니하면 두렵건대 내가 와서 저주로 그 땅을 칠까 하노라 하시니라”(말 4:5-6)
종교개혁의 시작을 우리는 흔히 루터로 생각하기 쉬우나
루터가 오기 150여 년 전에 어둠속에서 종교개혁의 새벽별이 빛을 발하고 있었다.
1300년대: 진설병 상이 회복됨 – 위클리프 영어성경을 통하여 참 빛이 드러나게 됨
존 위클리프는 1320년에 태어났고 영국의 스콜라파 철학자이자 신학자였다. 그의 추종자들은 롤라드 교인으로 알려져 있었고 로마교회를 대항하여 항의한 첫 번째 사람들이었다. 그 운동은 개혁의 길을 닦아놓았다. 이러한 이유로 위클리프는 “개혁의 새벽별”로도 잘 알려져 있다. 1382년에 그는 라틴어 성경을 영어로 번역하는 작업을 완성했다. 사실상 그는 진설병 상을 회복한 것이고 사람들의 손에 성경을 쥐어준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읽을 수 있게 되자, 교황권 체계에 의해 공표된 오류들이 드러날 길이 닦여지게 되었다. 그에 대한 결과로, 롤라드 교인들은 로마교회에 의해 이단으로 취급 받게 되었다.
존 위클리프(John Wycliffe, 1320년경, 노스요크셔주 힙스웰 ~ 1384년)는 영국의 기독교 신학자이며 종교개혁가이다. 옥스퍼드 대학을 졸업하였으며, 1374년 교황이 납세 문제로 영국왕 에드워드 3세를 불러들였을 때 위클리프도 사절단으로 따라갔다.
그 후 교구장이 되어 로마 교황청의 부패를 탄핵하기 시작하였다. 교황 그레고리우스 11세로부터 이단이라는 비난을 받았으나, 계속해서 교황의 권력과 교황중심의 서방교회 교리에 공격을 가하였다. 후에 종교 개혁 운동의 여러 원리는 모두 그의 교설 가운데서 싹텄다고 여겨지기도 하며 위클리프의 교설은 롤라드 즉 그를 따르는 사람들에 의해 각지에 퍼졌다. 민중에게 복음의 진리를 전하기 위해 라틴어로 된 성서를 영어로 번역하여 마침내 1382년에 완성하였다. 순교자 윌리암 틴데일이 그리스어와 히브리어 성경을 최초의 영어 성경으로 번역하는 일을 하도록 큰 영향을 주었다. 화체설을 반대하고(transubstantiation), 수도원제도를 비판하고 교황의 권위를 반대하였다. 얀 후스에게 큰 영향을 주었다.-위키백과
1400-1500년대: 번제단이 회복됨 – 루터의 종교개혁
마르틴 루터는 1483년에 태어났다. 그는 수도승, 사제 그리고 가톨릭교회의 신학자였다.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하박국 2:4)의 진리를 발견한 후에, 루터는 면죄부에 대한 개념에 이의를 제기했고 그리스도의 희생만으로 한 사람이 형벌로부터 용서받고 깨끗하게 된다는 사실을 강조했다. 1517년에 루터는 그의 95개조 반박문을 면죄부의 유효성을 반대했던 독일의 비텐베르그에 있는 올세인츠 교회의 문에 못 박았다. 이는 공식적으로 개신교 개혁의 시작점이 되었다. 루터는 실질적으로 번제단에 의해 가르쳐진 진리를 회복시켰다. 그의 추종자들은 루터교인들로 알려져 있었다. 그들도 그들의 성경에 대한 입장 때문에 이단으로 취급 받았으며 로마 가톨릭 교회에 의해 박해 받았다.
1500년대: 분향단이 회복됨 – 칼뱅의 장로교회
장 칼뱅은 1509년에 태어났다. 그는 스위스 개신교 개혁의 지도자였다. 개신교와 장로교회는 그들 자신이 칼뱅의 개혁으로 거슬러 올라간다고 말한다. 그는 또한 영국국교회의 사상에 영향을 많이 받았다. 1536년에 칼뱅은 그의 <기독교 강요>를 출판했고 그 책에서 그는 진중하게 하나님과 대화를 나누는 특권이자, 또한 개인의 의무로써 기도의 개념에 대해 자세히 설명했다. 그는 실질적으로 분향단을 재강조한 것이며 성소가 온전히 회복되는 데 한 걸음 더 나아가게 하였다. 장로교인들 또한 이단으로 취급 받았다.
1600년대: 물두멍이 회복됨 – 침례교회의 탄생
암스테르담의 존 스미스 (1570-1612)와 미국의 로저 윌리엄스 (1603-1683)는 침례교회의 설립자로 간주된다. 둘은 유일하게 적법한 유형의 침례로서 물에 잠기는 침례와 침례 받는 개인의 온전한 동의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재침례 파에서 나오면서, 침례교회는 실질적으로 물에 잠기는 침례, 즉 물두멍의 진리를 회복했다. 그들은 가톨릭에 의해서 뿐 아니라 또한 루터교와 장로교에 의해 이단으로 여겨졌다.
1700년대: 촛대 – 존 웨슬리의 감리교
존 웨슬리 (1703-1791)는 영국국교회의 성직자이자 감리교 운동을 창설한 신학자였다. 그는 노방 설교에 능했으며 일곱 가지 촛대에 의해 상징되었던 전도와 선교사역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의 영향을 통해 성소의 촛대는 실질적으로 회복되었다. 감리 교인들도 또한 그들 전에 있었던 자들과 마찬가지로 박해 받았으며 이번에는 그 전에 존재했던 다른 개신교 교단들에 의해 이설을 설파하는 위험한 이단집단으로 취급 받았다.
1844년: 언약궤 – 변경된 계명의 회복, 종교개혁의 완성
이렇게 성소의 한 기물만이 회복되길 기다리게 되는데, 바로 언약궤였다. 바로 성소의 이 부분에서 교황권이 안식일을 토요일에서 일요일로 “변개(변경)”했다는 사실을 기억해두라.
“[12] 네게서 날 자들이 오래 황폐된 곳들을 다시 세울 것이며 너는 역대의 파괴된 기초를 쌓으리니 너를 일컬어 무너진 데를 보수하는 자라 할 것이며 길을 수축하여 거할 곳이 되게 하는 자라 하리라 [13] 만일 안식일에 네 발을 금하여 내 성일에 오락을 행하지 아니하고 안식일을 일컬어 즐거운 날이라, 여호와의 성일을 존귀한 날이라 하여 이를 존귀하게 여기고 네 길로 행하지 아니하며 네 오락을 구하지 아니하며 사사로운 말을 하지 아니하면 [14] 네가 여호와 안에서 즐거움을 얻을 것이라 내가 너를 땅의 높은 곳에 올리고 네 조상 야곱의 기업으로 기르리라 여호와의 입의 말씀이니라”(사 58:12-14)
우리는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오기전에 선지 엘리야를” 보낼 것을 기억한다.
“보라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내가 선지자 엘리야를 너희에게 보내리니”(말 4:5)
그것이 구약의 결론이고, 구약의 마지막 책 말라기 선지자의 외침이다.
그런데 그 엘리야가 와서 무슨 일을 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그 다음절이 엘리야가 와서 할 일을 설명한다.
“그가 아버지의 마음을 자녀에게로 돌이키게 하고 자녀들의 마음을 그들의 아버지에게로 돌이키게 하리라 돌이키지 아니하면 두렵건대 내가 와서 저주로 그 땅을 칠까 하노라 하시니라”(말 4:6)
“아버지의 마음을 자녀에게로 돌이키게 하고 자녀들의 마음을 그들의 아버지에게로 돌이키게 하리라”
죄로 인하여 깨어진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를 회복시키신다.
어떻게 그 일이 가능할까? 바로 그 앞절에서 설명해 준다.
“너희는 내가 호렙에서 온 이스라엘을 위하여 내 종 모세에게 명령한 법 곧 율례와 법도를 기억하라”(말 4:4)
바로 모세가 한일을 기억하라는 것이다. 하나님의 계명의 회복이다.
하나님의 계명은 하나님과의 언약의 내용이요 중심이다.
“내가 그들과 화평의 언약을 세워서 영원한 언약이 되게 하고 또 그들을 견고하고 번성하게 하며 내 성소를 그 가운데에 세워서 영원히 이르게 하리니”(겔 37:26)
“너희는 귀를 기울이고 내게로 나아와 들으라 그리하면 너희의 영혼이 살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영원한 언약을 맺으리니 곧 다윗에게 허락한 확실한 은혜이니라”(사 55:3)
이스라엘 백성이 선택된 백성, 곧 언약의 백성임에도 수많은 고난과 핍박, 저주를 당한 것은 언약을 깨트렸기 때문이었다.
“땅이 또한 그 주민 아래서 더럽게 되었으니 이는 그들이 율법을 범하며 율례를 어기며 영원한 언약을 깨뜨렸음이라”(사 24:5)
언약의내용이 무엇인가? 그것이 곧 하나님의 십계명이요, 그 중심에 안식일이 있다.
“이는 야곱에게 세우신 율례 곧 이스라엘에게 하신 영원한 언약이라”(대상 16:17)
“이같이 이스라엘 자손이 안식일을 지켜서 그것으로 대대로 영원한 언약을 삼을 것이니”(출 31:16)
하나님은 오늘도 우리에게 호소하신다.
“내 안식일을 지키고 내 성소를 귀히 여기라 나는 여호와이니라”(레 19:30)
“너희는 내 안식일을 지키며 내 성소를 경외하라 나는 여호와이니라”(레 26:2)
“그러나 내가 너의 어렸을 때에 너와 세운 언약을 기억하고 너와 영원한 언약을 세우리라”(겔 16:60)
“그들이 그 얼굴을 시온으로 향하여 그 길을 물으며 말하기를 너희는 오라 잊을 수 없는 영원한 언약으로 여호와와 연합하라 하리라”(렘 50:5)
“무릇 나 여호와는 정의를 사랑하며 불의의 강탈을 미워하여 성실히 그들에게 갚아 주고 그들과 영원한 언약을 맺을 것이라”(사 61:8)
하나님께서 어떤 운동을 그 장면에 일으키셔서 청사진을 완성하시고 회복시킬 것이었는가?
종교개혁으로 하나님이 세우신 다양한 교단들 (침례교인, 감리교인, 장로교인, 성공회교도, 가톨릭교인, 루터교인)을 통하여 성소의 참 의미를 하나씩 회복되게 하셨다.
다양한 교단의 학자들, 교사들, 신학자들, 그리고 사업가들과 다른 국가로부터의 사람들이 모두 신비롭게도 독립적으로 다니엘의 예언, 특히 2,300주야 예언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거의 만장일치로 그들은 뭔가 기념적인 사건이 1843년과 1844년 사이에 일어난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성소의 정결”이 예수님께서 지구를 정결하게 하시기 위해 오시는 것을 일컫는다고 믿었다.
흔히 많은 사람들이 1844년의 재림운동을 재림교회가 했다고 하지만 재림교회는 그 결과로 태어난 교파이다. 오히려 재림운동을 사람들은 다양한 여러 교파의 사람들이었다. 윌리암 밀러는 침례교인, 제임스 화잇은 감리교회 목사, 찰스 핏치 장로교, 성공회, 청교도 등 다양한 교파의 지도자와 성도들이 함께해서 재림운동을 일으켰다.
2,300년 예언에 대한 만연한 관심을 이야기하면서, 레로이 프룸은 그의 책 <우리 선조들의 예언적 믿음>에서 말하길:
“교황 비오 6세의 감금 이후 1798년에, 대서양의 양쪽의 모든 사람들에게 운명적인 1260년의 마침에 대한 세계적인 인식이 있었다. 그것은 다니엘 7장의 사건의 마침이 세상의 종말에서 엄청난 심판이 성취되기만을 남겨둘 뿐이다.”
“그리고 이제 다니엘 7장에서 8장으로, 그리고 2300주야 예언으로의 즉각적인 관심과 연구의 주목할 만한 변화가 일어났다. 다양한 해석들 가운데 비단 영국과 유럽뿐 아니라, 아프리카와 심지어 인도에까지 걸쳐, 특히 이곳 미국-예언을 연구하는 수십 명의 학자들이 다양한 교파와, 언어와, 지역에서 일어났고 비록 그 후에 무엇이 일어날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상이했지만, 2300년(주야) 예언이 약 1843년, 1844년 혹은 1847년에 끝날 것이라고 동의했다. 그리고 영국에서만 수천의 강단에서, 이 논쟁을 우리는 들었고, 또한 울려 퍼졌으며, 북미에서도 수백 명의 사람들이 동일한 주장을 외쳤다. 예언적 해석이 시작된 이후로 그러한 이구동성은 또 없었다.”
“그리고 다음해인 1836년에, 북미의 수백 명의 다른 성직자들과 평신도 전도자들이 그 주장을 펼쳤고, 비록 대립되는 결과가 있었지만, 더욱 많은 배운 사람들과 존경 받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새로운 세상에 울려 퍼졌고 이는 모든 대중들의 주의를 끌었다.”
그리스도께서 돌아오시지 않았을 때, 큰 실망이 있었다. 그러나 1844년에 있었던 2,300주야에 대한 재 연구는 성소 정결에 대한 진정한 의미를 드러냈다. 소수의 집단의 사람들의 주의가 성소를 새롭게 된 이해를 가지고 연구하는 데에 이끌렸다. 이 예언 연구자들은 성소가 이 땅이 아니라, 하늘에 있는 장소임을 깨닫게 되었다. 그들은 하나님의 법에 변경사항이 있다는 것과, 작은 뿔의 정체, 그리고 회복된 완전한 성소의 기별이 온 세상에 전해져야 한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들은 또한 그리스도께서 하늘 성소를 떠나 이 땅에서 그의 백성들을 구하기 위해 영광으로 오시기 전에 우리의 대제사장으로써의 사역의 마지막 단계에 들어가셨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 작은 집단의 사람들은 국제적이며 세계에서 가장 빨리 성장하는 교단인 제칠일 안식일 예수재림교회가 될 것이었다. 오늘날 사단은 이 교회를 부정적인 빛으로 칠하려고 온갖 노력을 다 하고 있다. 그리고 그 이유는 너무도 분명한 것이다!
“용이 여자에게 분노하여 돌아가서 그 여자의 남은 자손 곧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며 예수의 증거를 가진 자들과 더불어 싸우려고 바다 모래 위에 서 있더라”(계 12:17)
사탄의 분노가 하나님을 대적하여 싸우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둠은 빛을 이기지 못한다.
빛은 승리하여 온 세상에 어둠은 물러가고 참된 빛과 행복만이 온 우주에 가득할 것이다.
“대쟁투는 끝났다. 죄와 죄인들은 없어졌다. 온 우주는 깨끗해졌다. 오직 조화와 기쁨의 맥박만이 온 우주의 만물을 통하여 고동(鼓動)한다. 생명과 빛과 환희가 만물을 창조하신 분에게서 끝없이 넓은 우주로 퍼져나간다. 가장 작은 원자(原子)로부터 가장 큰 세계에 이르기까지, 만물은 생물계와 무생물계를 막론하고 조금도 흠이 없는 아름다움과 완전한 기쁨으로 하나님은 사랑이시라고 선포한다.”(쟁투, 678)
https://youtu.be/A01WZSnwDoY?list=PLghoOxePMNT7rzmFf1O7_HORuecwycgB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