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자연에서 길어 올린 반짝이는 동심
어린이의 목소리로 새로운 평화를 노래하는 동시집
맑고 정직한 눈으로 자연과 어린이의 생명력을 노래해 온 성명진 시인이 6년 만에 신작 동시집 『밤 버스에 달이 타 있어』를 펴낸다. 은은하면서도 단단한 서정으로 어린이의 마음속 작은 파문까지 살뜰히 포착해 내면서도, 현실에 굴하지 않고 단단하게 성장을 이룩해 나가는 어린이의 모습을 섬세하게 그려 냈다. 동심의 근원에서 성심을 다해 길어 올린 ‘환하고 환한’ 마음은 갈등과 불화에 지친 아이들의 현실을 포근하게 위로할 것이다.
목차
제1부 자주 웃어요 우리는
나의 구름 버스 | 봄꽃 사진사 | 휴식 | 파꽃 | 담장 위 | 물병 | 자리 | 풍선을 불자 | 밤 | 아저씨가 밭을 갈 때 | 도마뱀 기차 | 재밌는 녀석이야 | 잎사귀들 | 콜라 좋아 | 수박 속 | 막대기
제2부 호박덩이를 옮기는 법
알 | 자기의 길 | 산 메아리 | 그 눈망울 | 자유 | 소금쟁이 | 또 다른 우리 | 얼음덩이 | 한 번만이라도 | 졌다 | 쉬워요 | 농부 | 가느다란 발 | 개 둘
제3부 함께 노래 부르면서
겨울 떠나보내기 | 자목련 | 큰언니 | 아버지 | 어떤 초승달 | 벌써 열 살 | 눈 폭탄 | 길 | 바다 | 밀물결 | 연필심 2 | 새로운 왕 | 작은 모닥불 | 자전거의 의견 | 노을 길 | 슬픔
제4부 저녁에 언덕을 넘어오는 것들
어젯밤에 태어났어 | 장다리꽃 | 녀석도 참 | 아직 꺼지지 않은 불빛 | 산골의 밤 | 웬 아저씨가 이사 왔는데 | 겨울 끄트머리 | 얘들아, 포도알들아 | 안 돼요 | 조각달은 몰래 | 담장 위의 꽃미남 | 아무리 바위라고 해도 | 봄 새 학기 | 굽잇길 | 저녁에 언덕을 넘어오는 것들
해설|환하고 환한 것에 대한 무한 경외_유강희
시인의 말
책 속으로
자주 웃어요 우리는/조그만 일에도/팔랑거리면서요//즐거우니까요//꽃요?//에이,/또 비교하려고 그러시네//꽃은 꽃이고/우리는 우리랍니다
--- 「잎사귀들」 중에서
나는/갓 생겨나 알 속에/웅크리고 있습니다//좀 더 자라면/스스로 나가려고/껍질을 얇게 지었습니다//밖에서 아무나/함부로 깨뜨리라고/그런 게 아닙니다
--- 「알」 중에서
얼음덩이를 빠져나온/물방울들/모여 소곤거린다//우리 일단/흐르자//흐르지 않고는/못 살겠다
--- 「자유」 중에서
멀리 언덕을/구물구물 넘어오는 것들//마을로 다가오면 보여요/염소들이에요/그게 좋아요//사납거나/징그러운 것 아닌/염소들이라서 좋아요//그것들을 따라/우리 마을로 살며시/하나도 안 무서운 저녁이 오지요/달도 따라서요
--- 「저녁에 언덕을 넘어오는 것들」 중에서
호박 싹이 돋았어요//이 작은 녀석,/실은 힘이 장사랍니다/가을까지 큰 호박덩이 여러 개를/높은 언덕 위에 너끈히 올려놓지요//저는 이 일을/조금 거들어 주는 사람이고요
--- 「농부」
누렇게 늙도록/일을 했군요 호박덩이 님//근데 그렇게 크고 둥그런 몸으로/높은 언덕배기에서/어떻게 내려오나요?//아, 그거/어렵지 않다오//저 농부 님이 내려 주시지요/품에 꼭 안아서요
--- 「쉬워요」 중에서
출판사 리뷰
자연에서 길어 올린 ‘환하고 환한’ 동심
지극한 마음으로 눈부신 생명력을 노래하다
겸허하고 진중한 목소리로 자연과 동심을 노래해 온 성명진 시인이 그의 네 번째 동시집 『밤 버스에 달이 타 있어』와 함께 다시금 어린이 곁에 섰다. 자연의 생명력과 어린이의 뭉클한 성장기를 더불어 포착해 낸 전작 『오늘은 다 잘했다』(창비 2019) 이후 6년 만이다. 시인은 여전히 작고 여린 것들에 순수하고 투명한 마음을 내어 준다. 창가의 파꽃에, 담장 위의 덩굴장미에, 물 위의 소금쟁이에, 그리고 추운 날 홀로 버스 정류장에 앉은 어린이에게 눈길을 준다. 시인은 그들에게 건넬 순하고 다정한 말을 세심히 다듬는 것은 물론, 이번 동시집에서 좀 더 심지 곧은 언어를 벼려 냈다.
자주 웃어요 우리는/조그만 일에도/팔랑거리면서요//즐거우니까요//꽃요?//에이,/또 비교하려고 그러시네//꽃은 꽃이고/우리는 우리랍니다 _「잎사귀들」 전문
시인은 자연과 어린이를 믿는다. 그들의 넘치는 생명력이 다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소중한 것임을 알기에 그렇다. 이 든든한 믿음은 “꽃은 꽃이고/우리는 우리랍니다”라며 천연스럽게 말하는 잎사귀들처럼 어린이가 “자신의 존재이자 본성을 당당히 선언하도록 이끈다”(유강희, 해설 「환하고 환한 것에 대한 무한 경외」). 다른 누구도 아닌 ‘나’이자 “우리”가 되어 보는 가운데, 어린이 독자의 내면은 더욱 단단해질 것이다.
“위험한 데서, 내 꽃은 더 예뻐진다네.”
어린이가 성장하는 찰나를 포착하다
어린이의 성장은 세상 무엇보다 귀하고 중요한 사건이다. 그렇다고 해서 그것이 꼭 어른들의 뜻대로 이루어지리란 법은 세상 어디에도 없다. 어른들은 결코 상상할 수 없는 자리에서, 예상하지 못하는 방식으로 어린이는 훌쩍 자란다.
나는/갓 생겨나 알 속에/웅크리고 있습니다//좀 더 자라면/스스로 나가려고/껍질을 얇게 지었습니다//밖에서 아무나/함부로 깨뜨리라고/그런 게 아닙니다 _「알」 전문
얼음덩이를 빠져나온/물방울들/모여 소곤거린다//우리 일단/흐르자//흐르지 않고는/못 살겠다 _「자유」 전문
시인은 알 속에 웅크린 생명이 새롭게 탄생하는 순간이 다른 누구도 아닌 “스스로”의 의지로 말미암는 것임을 분명히 한다. 어린이가 ‘나답게’ 성장할 수 있도록 돕기는커녕 “함부로 깨뜨리”려는 현실에 대한 시인의 예리한 문제의식이 느껴지는 대목이다. 이처럼 『밤 버스에 달이 타 있어』는 단지 자연과 동심에 대한 예찬에서 그치지 않는다. 답답하고 외로운 현실을 어린이가 스스로의 힘으로 멋지게 헤쳐 나가길 바라며, 시인은 고유한 생명력으로 충만한 자연을 세심히 표현해 냈다. “우리 일단/흐르자” 단호히 외치며 자유를 찾아 나서는 “물방울들”의 모습은, 어린이의 현실과 공명하며 큰 울림을 선사할 것이다.
“하나도 안 무서운 저녁이 올 거야.”
화목하고 평화로운 세계를 소원하다
멀리 언덕을/구물구물 넘어오는 것들//마을로 다가오면 보여요/염소들이에요/그게 좋아요//사납거나/징그러운 것 아닌/염소들이라서 좋아요//그것들을 따라/우리 마을로 살며시/하나도 안 무서운 저녁이 오지요/달도 따라서요 _「저녁에 언덕을 넘어오는 것들」 전문
물론 자연과 동심이 언제나 현실과 불화하는 것만은 아니다. 『밤 버스에 달이 타 있어』에는 이 세상이 두렵고 울적하지는 않으리라는 희망의 이미지 역시 명징하다. 간밤에 태어난 송아지는 자신을 푸근하게 맞아 주는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모습에서 “집 밖은 무섭긴 해도/분명 재밌는 일도 많을 거라는 걸” 깨닫고(「어젯밤에 태어났어」), 하늘엔 그런 “누렁소”를 비추는 “먼 하늘 새 별”의 불빛이 환하다(「아직 꺼지지 않은 불빛」). 「시인의 말」에서 직접 밝혀 놓았듯, 시편들 사이사이에는 “폭력을 미워하고 화목을 좋아”하는 마음을 나누고자 하는 시인의 바람이 스미어 있다.
“하나도 안 무서운 저녁”은 어떤 모습일까? 시인은 승자와 패자를 나누는 싸움 없이 화목한 풍경을 재치 있게 스케치한다. 아래서 콩 싹이 밀고 올라오는 바람에 기우뚱한 채로 자리하게 된 조각돌 사이에 긴장감이 흐르지만, 이내 “끄덕/고개를 주억거”리며 “인정!” 하고 외치는 모습은 서로를 배려하는 가운데 찾아 낸 평화의 순간일 것이다(「졌다」).
호박 싹이 돋았어요//이 작은 녀석,/실은 힘이 장사랍니다/가을까지 큰 호박덩이 여러 개를/높은 언덕 위에 너끈히 올려놓지요//저는 이 일을/조금 거들어 주는 사람이고요 _「농부」
누렇게 늙도록/일을 했군요 호박덩이 님//근데 그렇게 크고 둥그런 몸으로/높은 언덕배기에서/어떻게 내려오나요?//아, 그거/어렵지 않다오//저 농부 님이 내려 주시지요/품에 꼭 안아서요 _「쉬워요」
시인은 서로에게 의지해 힘든 현실을 너끈히 이겨내는 모습 역시 담백하게 그려 낸다. “높은 언덕배기”에 올라선 호박덩이를 만드는 것은 “농부의 품”이면서도 “힘이 장사”인 “호박 싹”이다. 사람과 자연이 서로를 돌보고 어울려 살아가는 풍경을 함께 떠올려 보는 것은 오늘날 어린이에게 꼭 필요한 상상력이다. 『밤 버스의 달이 타 있어』를 읽으며 어린이 독자가 저마다의 평화를 마음속에 그려 나가길 바란다.
* 출처 : 예스24 <https://www.yes24.com/Product/Goods/1426916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