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은 밤 서주가 편의점으로 알바를 하러 가려는데 비가 후두둑 떨어졌다. 우산을 쓰고 길을 나서자 비에 젖은 길고양이 한마리가 주차된 차 밑에서 냐옹하면서 서주의 발아래로 쪼르륵 들어왔다. 서주는 깜짝 놀랐지만 털은 비에 젖고 어두운 밤보다 진한 검정색 생명체가 자신에게 기대는 것 같았다. 서주는 원래 고양이를 그리 좋아하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무서워하지는 않았다. 길고양이는 사람들 손을 많이 탓는지 서주의 우산 밑에서 발주위로 서서는 털을 한 번 문지러고는 서주를 올려다 보았다. 반짝이는 눈이 조금 애처로워 보였다. 서주가 쓰다듬으려고 몸을 구부리자 고양이는 이내 깜깜한 어둠속으로 달아나 버렸다. 서주는 아무도 자신을 찾지 않는 여기 우주공간에서 유일하게 자신을 찾아 온 친구를 놓쳐 버린 것 같았다.
서주가 편의점에서 알바를 마치고 귀가하는 시간은 아침 7시였다. 교대시간이 되면 외국인 처럼 보이는 여학생 하나가 의례 그렇듯 '아녕하세요'라고 어설픈 한국말을 하면서 편의점으로 들어온다. 서주도 '신짜오'하고 무의식적으로 답변을 한다. 그녀는 서주보다 키가 좀 작은 동남아 유학생이었다. 그녀는 서주의 분치를 살피며 카운터에 베낭을 조심스레 내려놓고는 서주의 옆에 서서 카운터 인수인계를 받았다. 서주가 문을 열고 퇴근을 하려는데 밖은 늦은 겨울이라 아직 찬바람이 불고 비는 오지 않았지만 비오는 날처럼 어둑했다. 길가에 가로등은 꺼지고 어디선가 사람들이 하나 둘 나타나 잰 걸음으로 지하철 역으로 버스 정류장으로 향했다. 밤새 잠을 못 잔 서주가 멍한 모습으로 옥탑방 집 현관 앞에 도착했을 때 지난 밤에 만 고양이가 기다리고 있었다. 서주는 너무 반가웠다. 옥탑방 고양이와의 만남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그 고양이를 마치 자신의 모습과 똑 같은 처지라고 생각이 들어 친구가 되어 주기로 했다.
서주가 이곳 편의점에서 일한지 이제 두달이 채 되지 않았다. 서주는 편의점에서 일하기전부터 불면증과 대인공포증이 있어서 낮에는 자고 밤에만 깨어서 혼자 지내는 생활을 했다. 그래서 낮 밤을 바꿔서 생활할 수 있는 편의점이 좋아 보였다. 야간 편의점에는 손님도 별로 없고 나름 시간이 많았고 나름대로 편안하게 지낼 수 있었다.착한 주인은 손님이 있거나 없어도 알바비는 시간급으로 정확히 계산해 주었다. 손님이 없는 시간에는 혼자 공상을 하거나 주로 유튜브나 네플릭스를 보면서 밤을 세웠다. 물론 퇴근해서도 불안감 때문에 깊히 잠들지 못하는 생활이 계속되었다. 서주는 며칠씩 잠을 못잘 때는 머리가 아프고 혼란스러워 알바도 못나가기도 했다. 착한 주인에게 미리 전화만 하면 주인은 뭐라고 나무라지 않았다. 서주는 이런 불면증을 갖게 된 것이 일련의 사건들을 겪으면서 생긴 병이거나 남의 이야기를 곧이 곧대로 듣거나 소심하고 착해 빠진 자신의 성격 탓이라고 스스로 생각했다.
사실 서주는 몇해 전 대학교 입시에 실패하고 재수생활을 하면서 알게되었던 남자친구와 헤어진 일이 있었다. 그 남자 애는 키가 크고 수줍음이 많고 목소리도 작고 말수도 별로 없었다. 그렇지만 이상하게도 서주는 항상 조용한 그 애에게 끌렸다. 그냥 옆에 같이 있으주는 것 만으로도 행복했다. 재수를 하고 남들처럼 대학에 입학했지만 자신이 원하지도 않는 지방대에다 취업이 잘된다고 하는 학과를 무조건 들어 갔었다. 타지역에 가서 자취를 하면서 원하지도 않는 공부를 하는게 그리 쉽지는 않았다. 그 남자애는 대학에 입학하고 나서 부터는 서주에 대한 관심이 시들해지더니 다른 여자 친구가 생겼다며 서주와의 결별을 선언하고 연락이 닿지 않았다. 서주에게 그 날은 잊을 수가 없었다. 처음 실연을 당해 돌아 오는 날은 잿빛 하늘에 재수없이 비까지 왔었다. 비를 맞고 집 아파트 현관에 도착해서는 엘리베이터도 타지 않고 6층까지 계단을 올라가며 몇번이나 구토가 나고 어지러워 간신히 집에 들어갈 수 있었다. 그리고 방에 들어가 이불을 뒤집어 쓰고 심하게 몸살을 앓았었다. 그 이후로 서주는 매일같이 우울했고 친구들도 만나기 싫었다. 그러다 아버지가 다니던 회사가 부도가 나서 아버지는 직장을 그만두게 되었다. 그리고는 식당을 하신다고 시내에 조리학원까지 다니면서 한식조리사 자격증 공부를 했지만 결국 건강이 안좋으셨던 아버지는 병원 신세까지 지게 되었다. 병원에서는 신장이 많이 안좋다고 했다. 엄마는 요양원에서 요양보호사를 하면서 돈을 벌었지만 아버지 병원비 대기에는 턱없이 부족했다. 아버지는 퇴원을 하고 병세가 심해져서 신장투석을 하면서 두문불출 집밖을 나가시지 않았다. 서주는 학업을 계속할 수가 없었다. 사실 공부에 별 관심도 없었고 잘 할 자신도 없었는데 집안에 경제적인 어려움까지 겹치니 휴학을 하고 알바라도 해서 자신의 앞가림이라도 해야 겠다고 생각하고 알바를 시작했는데 쉬운 일이 아니었다.
처음에 했던 베트남쌀국수 집 알바는 사장이 싫었다. 나름 시키는 대로 일을 열심히 한다고 해도 계속되는 지적질에 진저리가 나서 사장에게 몇번 대들다가 임금도 제대로 못받고 뛰쳐나왔던 것이다. 이후에도 커피숍이나 피자가게에서도 일을 해보았지만 진상 고객들 때문에 힘들었다. 그리고 서주가 손님들과 실랑이라도 벌일라 치면 주인은 손님들 앞에서 서주 탓을 하며 비굴한 모습을 보였다. 그렇다 서주는 잔소리 해대고 비굴하게 사람들이 싫었다. 집에 오면 엄마까지 잔소리를 해대며 집안일, 방정리를 제대로 안했다고 나무라기 일수였다. 그러다 엄마의 입에서 학교다니는 이야기까지 나오면 서주는 귀를 틀어막고 방에 들어가 박혀 나오기가 싫었다. 서주는 사람들이 싫었다. 잔소리하는 엄마, 항상 집에서 앓는 소리만 하는 아버지 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싫었다. 서주는 아무에게도 지적질을 받고 싶지 않았다. 경제적인 독립을 하고 싶었지만 그렇다고 할 수 있는게 아무것도 없었다. 그래서 알바를 한다는 이유로 낮에는 자고 엄마가 퇴근하는 시간에는 집밖으로 나다니며 고등학교 다닐 때 친구들을 찾았지만 데이트하느라 바쁘고 공부하느라 바쁘고 자신을 만나줄 친구들도 거의 없었다.
어느날 엄마와 심하게 말다툼을 하고는 집을 뛰쳐 나와 자취를 하게 되었지만 마음이 편해진 건 아니었다. 세상은 매일 똑같이 돌고 있었고 서주는 낮밤이 바뀐 채로 하루하루를 보냈다. 그럴수록 마음은 더 불안하고 외로웠다.
서주는 세상을 조금씩 알아가면서 세상이 자신이 생각한 것 처럼 그렇게 만만한 곳도 안전한 곳이 아니라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자신이 해볼 수 있는 것도 희망도 없었고 낫선 사람들을 만나는 것도 왠지 모르게 불편했다. 서주는 남들에게 싫은 소리도 못하고 남들 앞에서 자기 주장도 못펴는 자신의 소심한 성격 탓이라 치부했다. 그런 생활이 하루 이틀지나다 보니 사는 것 자체가 불안하고 우울해졌고 그래서 편의점 일을 끝내고 옥탑방에 돌아와서도 이런 저런 걱정으로 잠을 제대로 잘 수가 없었다. 서주는 한참을 잠을 설치다 잠에 들었다.
오전 11시가 되어서야 서주는 잠에서 깨어났다. 잠에서 일어난 그녀는 개운하지가 않았다. 어제 문득 든 걱정 때문이었다. 하지만 잊어버리기로 했다. 걱정만 한다고 될일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서주는 자리에 일어나 방을 정리했다. 그러곤 밖으로 나왔다. 나와보니 화창한 날씨에 환히 보이는 전경이 그녀의 마음을 달래주는 듯 했다. 서주는 잠깐이지만 모든 걱정들이 사라지는 듯 했다. 잠깐의 바람을 쐰 서주는 다시 집안으로 들어갔다. 그때 또다시 두통이 서주의 머리를 강타했다. 서주는 머리가 어지러웠다. 그녀는 식탁에 있던 타이레놀을 두알 먹고 의자에 앉았다. 시간이 지나자 두통이 가라 앉았다. 전에도 두통이 있어왔지만 요즘들어 그게 더 심해져 갔다. 서주는 편의점에 출근을 하기전 병원에 가볼가 생각을 했다. 하지만 병원에 갈돈이 없었기에 그녀는 타이레놀을 먹으면서 두통을 이겨냈다.
시간이 지나서 저녁이 되자 서주는 편의점으로 갈 준비를 마치고 편의점을 향해 출발했다. 그렇게 몇분을 걸어서 편의점에 도착을 했다. 그동안에 오는 길이 천근 만근 같았다. 입구쪽에서 고양이가 서주를 기다렸다는듯이 서주에게애교를 부렸다. 서주는 힘들었지만 내색하지 않고 자신에게 애교를 부리는 고양이를 쓰다듬어주었다. 그러곤 편의점 안으로 들어가 직원조끼를 걸치고 나와 고양이에게 밥과 물을 주고 카운터로 돌아와 손님을 맞을 준비를 했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서주는 카운터에서 깊은생각에 빠져 있었다. 어제부터 계속 들었던 온갖 걱정들이 아직도 서주를 괴롭히고 있었다. 그리고 아침부터 있었던 두통은 서주를 더 힘들게 하고 있었다. 서주는 약으로 두통을 버터내었다. 당장 병원에 갈 돈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때 카운터 쪽으로 한사람이 물건을 가지고 왔다. 서주는 정신이 없었지만. 물건을 계산을 했다. 손님은 구매한 물건을 가지고 편의점을 나갔다. 그렇게 한숨을 돌린 서주는 머리 통증이 보통이 아님을 느꼈다. 그래서 그녀는 내일 당장 병원에 가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첫댓글 이동욱님 글을 읽다보니까 제 글이 올라가 있어요
잘못 편집을 하신건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