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릉 수목원 가는 길.
그런데...
장수하늘소 전시 보러 간 건데 허탕쳤어요. 포스터에 미리 예약해야 한다는 말이 없어 그냥 갔더니 주차를 하려면 반드시 예약해야 한다고 하네요.
광릉숲 구경할 때만 예약하는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어요.
그냥 돌아오기 섭섭해 인근 봉선사에 들렀어요.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엇!
예전에는 보지 못했던 표지판이 있네요.
승려를 중심으로 만세 운동을 벌였다니 참말 존경스럽습니다.
아름답고 화려한 문양.
우리나라 절에서만 볼 수 있는 고고한 미.
이 연자방아는 인근에 있던 것인데 절을 방문하시는 분들을 위해 전시를 해 놓았답니다.
오늘의 목적은 연꽃 구경!
수크령이 가장 먼저 맞아주네요.
연꽃 향이 이렇게 은은하고 좋은지 몰랐어요.
참 기분 좋은 향입니다.
최근 연꽃 구경을 잘 못했는데 오늘 호강하고 있습니다.
앗! 뭐지?
홀련밭에서 느꼈던 향기가 안 느껴지네.
지금 몹시 당황하고 있는 중.ㅋㅋ
불교 신자는 아니지만 절에 오면 마음이 편안해집니다.
봉선사는 인기가 많은 절이어서 사람들로 시끌시끌.
그래서 오늘은 연꽃 구경으로 만족하고 돌아가려고 합니다.
참! 이곳에는 이광수 기념비가 있어요!
그토록 존경받는 작가가 친일 행각을 벌이다니!
휙 고개를 돌리고 지나쳤지만....
왜 이곳에 기념비가 있는지 궁금해져서 찾아보았습니다.
친일 이력 때문에 해방 무렵 갈 곳이 없었던 이광수를 거둬준 이가 운허(당시 봉선사 주지, 이광수의 팔촌 동생)였는데 그는 이광수가 인근 사릉 근처에 터를 잡고 살 수 있도록 배려를 해주었다. 이광수는 사릉에서 1944~1948년까지 살았는데 해방 직후인 1946년에는 사람들의 시선을 피하기 위해 운허의 도움으로 봉선사에 들어가 은거하기도 하였다. 이 무렵 사릉과 봉선사에서 생활하는 동안 이광수가 쓴 작품이 <도산 안창호>, <나의 고백>, <돌베개>이다.
기념비는 이광수의 전처인 허영숙이 세운 것으로 그녀는 홀로 자녀들을 키우고 말년인 1971년에 미국으로 건너가 생활하였는데 납북된 이광수의 생사를 알기 어렵게 되자 추모비 건립을 추진하였다. 이를 위해 1975년 5월 귀국하였는데 갑자기 여러 병을 얻어 기념비를 세우기 직전인 9월에 사망하였다. 사실 이런 기념비가 있다는 사실 자체를 잘 알기 어려운데 경기도에서 친일 문화 잔재 청산을 위한 조사를 하고 있고 이 기념비가 경기도에 소재한 대표적인 친일 잔재물로 꼽히고 있어 향후 청산 대상이 될 지, 보존 대상이 될 지 현재로서는 알 수 없는 상황이다. <펌글>
국민의 존경을 받는 작가라면,
아무리 일제가 위협을 가하고 친일을 종용한다 해도 굴복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해요.
꿋꿋한 기상과 소신으로 행동했다면 길이길이 문학사에 남는 작가가 됐을 텐데....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생각해보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봉선사 정문.
'운악산 봉선사'라고 한글로 쓰여진 거 보이시죠?
예전에 이 한글 현판을 구경하러 왔던 기억이 납니다.
한글 현판이 얼마나 친근하고 다정하고 아름답고 예쁜지요.
원래 목적이었던 국립수목원 장수하늘소는 못 보았지만,
연꽃 구경할 수 있어 참 좋았던 하루였습니다.
첫댓글 극단의 선택을 강요받지 않아도 되는 시대에 살고 있다는 게 감사하죠.
예, 그렇긴 해요.
알고 보니 봉선사 꽤 유명한 절이네요.ㅋ 이래서 사람은 끊임없이 배워야 한다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