훈요십조(訓要十條)에 대한 몇 가지 생각들
최근 고려사에 있는 훈요십조 전문을 읽어보았습니다. 그간 간략하게 소개된 정도의 훈요십조만을 보다가 전문을 읽어보니 태조 왕건에 대하여 다시 느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삼국통일을 이룩한 왕건의 예지가 느껴지고 매우 유연한 사고를 가진 사람이라는 것을 깊게 느꼈습니다. 자제할 줄 알며 합리적인 사고를 하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자세가 바로 제왕이 가져야할 자세라는 것을 다시 한번 확인하였습니다.
내용을 살펴보면 첫 번째에서는 종교의 힘을 알고 있으되 타락하는 종교가 어떻게 변화되는 지에 대하여 경계하라는 내용이며, 두 번째는 종교의 힘을 빌어 국가의 안녕을 구하지만 자칫 과하게 되어 폐해가 발생할 것을 예측하고 있어 그에 대한 경각심을 강조한 것입니다. 세 번째에서는 왕위계승에 있어 능력위주로 계승의 순서로 하라는 것으로 王조차도 서열에 관계없이 능력으로 하라는 것으로서 지금도 보기 드문 합리적인 사고를 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네 번째에서는 외국의 문물을 받아들이되 주체적으로 판단하여 수용하라는 의미이고, 여섯 번째는 불교 행사의 중요성을 강조하되 같이 즐기며 과하지 말라는 주문입니다. 일곱 번째는 모든 권력이 민심에서 나온다는 것을 분명히 하고 그에 따른 국왕의 마음가짐을 당부하고 있었습니다. 아홉 번째에서는 상벌의 공정성과 엄격함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으며, 또한 국방의 중요성에 대하여 강조하고 있습니다. 열 번째에서는 늘 자신을 가다듬는 것에 대하여 강조하고 미래에 일어날 가능성에 대하여 대비를 강조한 것으로, 역사를 통해 그 교훈을 배우라는 뜻이었습니다.
훈요십조 중 불교에 대한 왕건의 교훈은 그의 예지력을 느낄 수 있게 하는 부분입니다. 조금 과장하여 말한다면 고려는 불교로 흥했지만 불교 때문에 망한 나라입니다. 고려의 역사를 보면 건전함이 사라진 불교의 타락상을 여지없이 보여주고 있습니다. 고려는 이러한 불교의 타락에 의해 정신적 건전성을 잃어버림에 따라 유교의 세력에게 나라를 물려주고 말았습니다. 만일 고려의 후대 왕들이 왕건의 뜻을 잘 살폈다면 고려 불교의 타락은 어느 정도 제어되었을 것이고 따라서 고려 왕조도 더 오랜 기간 존속하였을 것입니다.
훈요십조는 일부 학자에 의하여 진위를 의심받고 있습니다. 특히 여덟 번째를 문제삼는데 그 이유는 '둘째 왕비가 나주사람인데 어떻게 차현이남을 배역의 땅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는가.' 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훈요십조의 여덟 번째 항을 읽다보면 왕건이 차현 이남 즉 舊 백제세력의 반란에 대한 두려움 같은 것이 있는 것은 아닌가 생각합니다. 글에 "백제를 통합한 원한을 품고"라는 내용이 있습니다. 이를 보아서는 왕건이 통일전쟁과정에서 백제의 힘에 대해서 매우 놀라고 그 힘이 다시 규합되는 것을 두려워했던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차현 이남이 배역의 땅'이라고 한 내용을 포함시킨 것은 백제의 반란세력의 발호를 아예 근절하자는 생각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훈요십조의 전문을 읽으며 통일의 대업을 이루는 제왕은 단순히 힘과 지혜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다룰 줄 아는 능력 그리고 미래를 내다볼 수 있는 안목까지를 가져야 된다는 것을 깊게 느꼈습니다. 이 중 어느 하나도 놓치면 결코 통일대업을 이룰 수 없다는 것입니다. 태조 왕건이 남긴 훈요십조의 내용을 고려 후대의 왕들이 잘 새겨 실천하였다면 고려 왕조가 무신란을 자초하지도 또한 몽고의 난에도 보다 효율적으로 대처하였을 것이며 불교가 저처럼 타락하도록 놓아두지도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같은 내용에 대한 이야기가 어떻게 변질되는 지를 보여주는 좋은 예가 될 것 같아
훈요십조본문 아래에 인터넷 동아백과사전에 있는 훈요십조의 소개내용을 같이 실어 놓았습니다.
* 훈요십조(訓要十條 : 신편 고려사/신서원/138-141)
첫째로, 우리 국가의 왕업은 반드시 모든 부처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그러므로 불교사원들을 창건하고 주지들을 파견하여 불도를 닦음으로써 각각 자기 직책을 다하도록 하는 것이다. 그런데 후세에 奸臣이 권력을 잡으면 승려들의 청을 받아들여 모든 사원을 서로 쟁탈하게 될 것이니 이런 일을 엄격히 금지하여야 한다.
둘째로, 모든 사원들은 모두 도선의 의견에 의하여 국내 산천의 좋고 나쁜 것을 가려서 창건한 것이다. 도선의 말에 의하여 자기가 선정한 이외에 함부로 사원을 짓는다면 地德을 훼손시켜 국운이 길지 못할 것이라고 하였다. 내가 생각건대 후세의 국왕, 공후, 왕비, 대관들이 각기 원당이라는 명칭으로 더 많은 사원들을 증축할 것이니 이것이 매우 근심되는 바이다. 신라말기에 사원들이 야단스럽게 세워서 지덕을 훼손시켰고 결국은 나라가 멸망하였으니 어찌 경계할 일이 아니겠는가.
셋째로, 적자에게 왕위를 계승시키는 것이 비록 떳떳한 법이라고 하지마는 옛날 단주가 착하지 못하여 요가 순에게 나라를 위양한 것은 실로 공명정대한 마음에서 나온 것이다. 후세에 만일 국왕의 맏아들이 착하지 못하거든 왕위를 지차아들에게 줄 것이며 지차아들이 또 착하지 못하거든 그 형제 중에서 여러 사람에게 신망이 있는 자로써 정통을 잇게 할 것이다.
넷째로, 우리 동방은 오래 전부터 중국풍습을 본받아 문물, 예악, 제도를 모두 그대로 준수하여 왔다. 그러나 지역이 다르고 사람의 성품도 각각 같지 않으니 구태여 억지로 맞출 필요는 없다. 그리고 거란은 우매한 나라로서 풍속과 언어가 다르니 그들의 의관제도를 아예 본받지 말라.
다섯째로, 내가 삼한 산천신령의 도움을 받아 왕업을 이루었다. 서경은 수덕이 순조로와 우리나라 지맥의 근본으로 되어 있으니 만대왕업의 기지이다. 마땅히 춘하추동 사시절의 중간달에 국왕은 거기에 가서 1백일 이상 체류함으로써 왕실의 안녕을 도모하게 할 것이다.
여섯째로, 나의 지극한 관심은 연등과 팔관에 있다. 연등은 부처를 섬기는 것이요. 팔관은 하늘의 신령와 오악, 명산, 대천, 용신을 섬기는 것이다. 함부로 증감하려는 후세의 간신들의 건의를 절대로 금지할 것이다. 나도 당초에 이 모임을 국가忌日과 상치되지 않게 하고 임금과 신하가 함께 즐기기로 굳게 맹세하여 왔으니 마땅히 조심하여 이대로 시행할 것이다.
일곱째로, 임금이 인민의 신망을 얻는 것이 가장 어려운 것이다. 그 신망을 얻으려면 무엇보다 간하는 말을 쫓고 참소하는 자를 멀리하여야 하는바 간하는 말을 쫓으면 현명하게 된다. 참소하는 말은 꿀처럼 달지만은 그것을 믿지 않으며 참소가 자연 없어질 것이다. 또 백성들에게 일을 시키되 적당한 시기를 가리고 부역을 정하게 하며 조세를 적게 하는 동시에 농사짓는 것이 어려운 일이라는 것을 알게 되면 자연 백성들이 신망을 얻어 나라가 부강하고 백성은 편안하게 될 것이다.
옛사람은 말하기를, "좋은 미끼 끝에는 반드시 큰 고기가 물리고 중한 상이 있는 곳에는 반드시 훌륭한 장수가 있으며 활을 겨누면 반드시 피하는 새가 있고 착한 정치를 하면 반드시 착한 백성이 있다."고 하였다. 상과 벌이 적절하면 음양이 맞아 기후까지 순조로워지나니 이것을 명념하라.
여덟째로, 차현이남 공주강 바깥은 산형과 지세가 모두 반대방향으로 뻗었고 따라서 인심도 그러하니 그 아래 있는 주, 군의 사람들이 국사에 참여하거나 왕후, 국척들과 혼인을 하여 나라의 정권을 잡게되면 혹은 국가에 변란을 일으킬 것이요, 혹은 백제를 통합한 원한을 품고 왕실을 침범해 난을 일으킬 것이다. 뿐만 아니라 이 지방 사람들로서 일찍이 관가의 노비나 진, 역의 잡척에 속하였던 자들이 혹은 세력가들에 투탁하여 자기신분을 고치거나, 혹은 왕, 후, 궁중에 아부하여 간교한 말로써 정치를 어지럽게 하고 또 그렇게 함으로써 재변을 초래하는 자가 반드시 있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지방 사람들은 비록 양민일지라도 관직을 주어 정치에 참례시키는 일이 없도록 하라.
아홉째로, 백관의 녹봉은 나라의 대소에 따라 일정한 제도를 마련하는 것이니 현재의 것을 증감하지 말라. 또 옛 문헌에 이르기를, 공로를 보아 녹봉을 규정하고 사사로운 관계로 간직을 주지 않는다고 하였으니 만일 공로가 없는 사람이나 친척이나 가까운 사람으로서 헛되이 녹봉을 받게되면 다만 아래 백성들이 원망하고 비방할 뿐 아니라 그 사람 자신도 역시 그 행복을 길이 누릴 수 없을 것이니 마땅히 엄격하게 이를 경계해야 한다. 또 우리는 강하고도 약한 나라(거란)가 인방으로 되어 있으니 평화시기에도 위험을 잊어서는 안된다. 병졸들을 보호하고 돌보아주어야 하면 부역을 면제하고 매년 가을에 무예가 특출한 자들을 검열하여 적당히 벼슬을 높여주어라.
열째로, 나라를 가진 자나 집을 가진 자는 항상 만일을 경계하며 경전과 역사서적을 널리 읽어 옛일을 지금의 교훈으로 삼는 것이다. 주공은 큰 성인으로서 <無逸>한 편을 성왕에게 올려 그를 경계하였으니 마땅히 그 사실을 그림으로 그려 붙여 드나들 때에 항상 보고 자기를 반성하도록 하라.
* 인터넷 사전에서 요약한 훈요십조의 내용
① 국가의 대업이 제불(諸佛)의 호위와 지덕(地德)에 힘입었으니 불교를 숭상할 것
② 불사(佛寺)의 쟁탈·남조(濫造)를 금할 것
③ 왕위계승은 적자적손(嫡子嫡孫)을 원칙으로 하되 장자가 불초(不肖)할 때에는 형제들 중에서 인망있는 사람이 왕위를 이을 것
④ 거란과 같은 야만국의 풍속을 배격할 것
⑤ 서경(西京)을 중시할 것
⑥ 연등회(燃燈會)·팔관회(八關會) 등 중요한 행사를 소홀히 하지 말 것
⑦ 왕이 된 자는 공평하게 일을 처리하여 민심을 얻을 것
⑧ 차현(車峴;車嶺) 이남 금강(錦江) 이외의 산형지세(山形地勢)는 배역(背逆)하니 그 지방 사람을 등용하지 말 것
⑨ 백관의 기록을 공평하게 정해 둘 것
⑩ 널리 경사(經史)를 읽고 나라 다스리는 일에 거울로 삼을 것 등이다.
첫댓글 변함없는 진리는 일곱째일 듯.
이렇게 좋은 자료 고맙습니다. 스크랩 해갈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