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가 / 대표 손성경
프롤로그
2019년 하반기에 오픈한 수라바야의 ‘손가’ 매장이 인도네시아 내 한국식당 중 규모가 가장 큰 매장이라고 다들 이야기합니다. 오늘로써 매장을 개업한 지 만 4개월이 지나고 있습니다. 그동안 인도네시아 진출을 위해 자카르타를 중심으로 사업기획부터 시장조사까지 만 5년을 준비하고 시작한 일입니다. 제 학부 전공이 인도네시아어임에도 재차 어학능력 증진을 위해 현지 대학(UGM)에서 5학기 동안 연수를 하며 치밀한 준비를 해왔습니다. 그러나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저는 여전히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고 있습니다.
저의 이 짧은 소회의 글이 기회가 된다면 인도네시아 진출을 꿈꾸는 한국의 또 다른 외식기업과 식품 관련 기업인들에게 다소라도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이번 오픈이 제게는 32번째입니다. 지난 1994년 경기도 부천에 냉면 전문 매장으론 당시 국내 최대 규모(대지 1,000평, 동시 주차 120대)로 함흥냉면 전문점을 오픈한 것이 그 시작입니다. 당시 외식업계에 여러 신선한 화젯거리를 남기며 성공적인 출발을 했었습니다. 예컨대, 한식당 업계 최초로 기업 심벌, 슬로건, 이미지 색감 등 기업 CI 등을 도입하고, 일간지, 방송 등에 대대적인 광고 마케팅을 하며 기업형 외식업의 첫 모델을 제시했었습니다. 26년 전 당시, 총 투자비 9억 2천만 원 중에 광고비로만 1억 2천만 원을 지출했고, 3대 일간지의 매체 광고와 신문 전단도 200만 장 가까이 배포했습니다. 대기업 계열의 백화점도 50만 장으로 오픈을 하던 시절이었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참 겁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광고는 뿌린 만큼 거둔다는 저의 확고한 신념이 있었습니다.
결과는 대성공이었습니다. 오픈 당일 날 하루 내방 고객 4,750명의 기록은 업계에서 지금도 신화처럼 회자하고 있으며 그 기록은 여전히 유효합니다. 초기 1년 내방고객 97만 명, 부천시 전체 인구를 상회한 숫자였습니다. 오픈 3년 만에 580평의 신관을 개점하고 총 1,500석의 매머드급 매장으로 확장하면서 동시에 롯데백화점 등 직영 체인을 17개까지 늘려나갔습니다. 한때 ‘손가’는 매출 규모로도 한국 외식업계 2~3위를 기록하기도 했습니다.
이어 2002년 대만 타이베이에서 열렸던 대만 정부 주관 ‘국제패션쇼’에 초대되어 ‘손가’ 한국 미식제(식수 인원 각 1,500명)를 두 차례 열면서 한국 요리에 대한 현지 언론들의 큰 주목을 받기도 했습니다. 이후, 한식 세계화를 위해 대만 타이베이점과 미국 뉴저지 등에도 안테나숍을 내기도 했었습니다만 기대만큼 큰 성과를 내지는 못했습니다. 생각해보면 당시엔 한류 바람도 미미했던 시절이었습니다.
인도네시아 수라바야 출점과 관련하여
1. 왜 인도네시아인가?
이것은 지극히 개인적인 연유 때문입니다. 학부 전공이 인도네시아어인 덕분에 제게는 낯선 나라가 아닐 뿐더러, 여러 동문이 많아 초기 창업에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인프라 구축이 돼 있다는 장점이 있었습니다. 사실은 동남아를 염두에 둔 해외 출점은 현재 시류로 볼 때 베트남 진출이 우선되어야 함이 옳습니다. 실제 베트남에도 KOTRA 하노이 무역관 방문상담 등을 통해 4회에 걸쳐 현지 시장조사를 했었습니다. 현재 하노이의 경우 한국 식당은 오픈 경쟁이 과열되고 있는 상황이지만, 베트남은 임차료 등 초기 투자비 부담이 덜하고 식자재 수급이 용이한 점 등 여러 장점이 많은 것은 사실입니다. 때문에 베트남에도 머지않은 시간 안에 출점할 계획을 하고 있습니다. 더불어 베트남 하노이에는 외식업 외에 한국국제학교와 캐나다 국제학교 설립을 진행 중이고 상당 부분 준비 작업을 마친 상태입니다.
2. 왜 수라바야에 Flagship store를 세웠는가?
수라바야 고객 시장 규모는 화교 인구와 비(非)이슬람인을 합해 대략 45~50만 명 정도로 추산했으며 이들을 주요 타깃층으로 삼았습니다. ‘손가’ 인도네시아 출점의 목표는 고객 타깃을 철저히 화교 대상으로 하고, 현지화를 하겠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 측면에서 수라바야는 자카르타 다음으로 화교들이 가장 많이 사는 인도네시아의 제2 도시라는 것과 비교적 큰 무역항이 있다는 것에 방점을 찍었습니다. 이는 향후 식품 원료 등 한국과의 쌍방향 무역업을 염두에 둔 것이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자카르타는 도시 중심가에 ‘손가’가 지향하는 단층 규모의 장소를 찾기가 매우 어려웠습니다. 한때 자카르타 주변 Kapuk 지역을 후보지로 찾아보았지만, 그 역시 여의치 않았습니다.
3. 화교들의 외식 소비 형태와 미각에 대하여
지금도 여러 시행착오를 거듭해가며 오픈 4개월 차에 메뉴 북을 세 차례나 인쇄 수정 작업을 해야 할 정도로 까다로운 시장이라는 것을 절감하고 있습니다. 맛에 대한 미각 또한 아주 예민하고 정확합니다. 수라바야 화교들은 놀라울 만큼의 예민한 미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결국은 메뉴 북의 블록 편집을 통한 메뉴 재배열, 가격과 메뉴의 첨삭 등을 통해 Up-Scale Dining에서 일반화, 대중화로 진입장벽을 크게 낮추었습니다. 현재 ‘손가’가 겪고 있는 예상치 못했던 어려운 상황들과 여러 문제에 대해 몇 가지 말씀드리겠습니다.
- 한국에서 조리사 3명을 데리고 와 초기 오픈 준비를 했습니다. 그 과정에 인도네시아에서 20년 이상 일해 온 한국인 조리사 2명을 더 투입해 가며 오픈을 했지만, 식자재들의 물성이 한국과 다르고, 한국 식자재들의 수급에 어려움을 겪으면서 제대로 된 맛을 구현해내지 못했습니다. 무엇보다 인도네시아 현지 조리사들의 한국 요리에 대한 전문성이 부족해, 이들을 대상으로 한국 음식문화가, 위생관리, 조리 실습부터 여러 차례 워크숍을 통해 기본 교육부터 해 나가야 했습니다. 결국은 추가로 한국 본점 조리 이사까지 불러들여 맛에 대한 퀄리티를 한국 본점 맛으로 기준을 맞추어 내면서, 이와 관련한 불 관리, 염도 관리, 발효 조건 등 조리법 작업을 병행했습니다. 지금은 그나마 어느 정도 맛은 잡아냈지만, 아직도 플레이팅 등의 고품격화는 성에 차지 않아 지금도 계속 노력 중입니다.
- 소고기의 품질이 한국과 비교해 너무 형편없다는 것에 충격을 받았습니다. 미국산이든, 호주산이든 브랜드 상관없이 원하는 고 퀄리티의 고기를 찾을 수가 없었고, 가격 역시 터무니 없이 비싸다는 것입니다. 수급 또한 원할하지가 않습니다. 실제로 인도네시아에 수입돼 오는 모든 고기(와규 포함)의 샘플링 작업을 브랜드별, 등급별, 부위별로 모두 다 해보았을 정도입니다. 소위 등심 부위의 마블링을 본다는 것은 언감생심입니다. 이들이 말하는 프리미엄 급은 한국의 쵸이스 급에도 한참 못 미치거니와, 수입업체 역시 부위별 정밀도와 그에 비례하는 맛의 차이 등 퀄리티 개념이 많이 부족하다는 것입니다. 결국 저의 결론은 등급과 품질 판단은 제가 직접 작업해 보면서 한다는 것입니다. Indoguna, Sekenia, Sukanda 등 인도네시아의 메인 고기 수입 업체들 모두 불러 어찌된 일인지 그 연유를 캐묻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이들의 답변은 이러했습니다. “인도네시아가 소고기를 대중적으로 먹기 시작한 게 불과 10여 년이다. 미국이든, 호주든 가장 품질 좋은 소고기는 한국에서 우선 전량 가져간다. 그 다음 일본, 중국 순이다. 그 이후에 남은 고기를 가지고 등급을 새로 분류해 수입해오는 게 사실이다. 인도네시아는 늘 뒷전으로 밀린다. 그래서 고 퀄리티의 고기를 수입하는데 한계가 있다. 더군다나 내장류 등 부속물은 수입이 금지되어 있다”
- 화교들의 외식은 절대 충동구매가 없으며 계획한 외식비를 절대 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95% 이상이 술을 찾지 않으며 소비에 있어 철저히 계산적이고 까다롭다는 것입니다. 소비의 깐깐함이 유별납니다. 가격 저항선의 경계를 터득하는 데 애를 먹었습니다.
- 비즈니스를 위한 접대 등의 고객이 별로 보이지 않습니다, 매장의 위치가 베드타운이고 패밀리레스토랑이라는 것 때문인지는 좀 더 지켜봐야 할 부분이지만 비즈니스에 있어 대단히 침체한 도시라는 것은 확실해 보입니다. 수라바야는 전혀 역동적인 도시가 아닙니다.
- 수라바야는 금요일 주말의 술렁임이 없다는 것에 놀라고 있습니다. 다른 평일과 매출 차이가 전혀 나질 않습니다. 이것은 전 세계적으로도 유례를 찾아보기 어려운 모습입니다. 이를 확인해 보기 위해 금요일 저녁 시간대 인근 외식타운 등을 여러 차례 둘러보았는데, 현지 타 대형매장들 역시 동일한 모습이었습니다.
평일과 주말(토, 일)의 매출 편차가 심하게는 13배 이상이 납니다. 이것은 상상도 안 해본 결과로 종잡을 수 없는 매출 편차를 보입니다. 물론 오픈 초기이고 아직 매장이 안정화가 덜 된 결과라고 생각되지만, 이 또한 처음 경험해보는 일입니다. 때문에 다른 도시는 어떤지 자못 궁금합니다. 이는 차후 프랜차이즈 사업이 본격화되면 이들의 소비 형태 등 시장 흐름의 확인이 가능할 것으로 여겨집니다.
- 화교들은 인도네시아 내 시위, 데모 등 이슈에 아주 예민합니다. 지난 대통령선거와 최근 부패방지위원회의 입법 등을 앞두고 시위가 일면 화교들은 외부 출입을 삼가고 예약모임 또한 취소합니다. 이런 경우 내방고객 수가 현저히 줄고 도로마저 한산해집니다.
- 주류 판매 허가 등 모든 행정 프로세스가 지나치게 복잡하고 느린 것에 답답함을 넘어 화가 치밀어 오를 때가 많습니다. 또한 여러 관청은 물론이고 매장 지역 유지들이 요구하는 간접비가 부담스러울 정도입니다. 간판, 현수막 하나 거는 데도 모두 세금을 납부해야 하는데 그 비용이 상당하다는 것입니다.
아세안 최대 인구와 영토를 보유한 국가로서 다양한 규제로 방패막이를 세우고 있다는 인상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 외식업에 필요한 기구, 기계류, 식자재 수출입에 있어 자유롭지 못한 것은 지금까지 경험한 국가에서 가장 어려웠습니다. 너무도 힘든 과정들을 겪어 왔습니다. 저의 경우 이삿짐을 포함해 컨테이너 4개를 들여왔는데, 그 중에 식료품은 거의 몰수를 당했고 과태료까지 납부하는 경험을 했습니다. 특히나 사기그릇류(keramik)는 수입 자체가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SNI라는 허가를 득해야 하는데 이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현재 ‘SON GA’ 매장에서 사용 중인 한국산 주문형 맞춤 도자기 그릇들은 제작비용도 많이 들었지만 들여오기까지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습니다.
- 우리 회사 인력은 초기 110여 명에서 현재는 80여 명 내외이며, 인도네시아 인력들의 업무능력과 노동 효율성을 제고시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느끼고 있습니다.
- 수라바야 내 한국 식당의 시장규모는 월 RP 40억 미만으로 대략 37~38억 정도로 추산하고 있습니다. 당초 월 RP 50억으로 조사됐으나 이는 잘못된 추산이었습니다. 겉보기와 달리 소비시장이 예상보다 작다는 것에 적잖이 놀랐습니다.
한국 음식에 대한 시장 규모 확대는 다소 시간이 소요될 것이고, 이를 위해 다양한 마케팅과 기획 행사들이 절실히 필요하다는 것을 절감하고 있습니다. 적극적 마케팅을 위해 Suara Surabaya 방송국과도 미팅을 하고 라디오 CM 광고 등을 해보려 했으나, 광고비가 한국보다 비쌌습니다. 고단가 광고비용 대비 그만큼의 매출 성과를 기대하기가 어렵겠다는 판단이 들어 매체 광고는 일단 보류했습니다. 현지 주문 플랫폼 GO-JEK과의 미팅을 했는데, 그들 또한 주문 매출의 30%의 수수료를 요구했습니다. 그럴 바에는 음식배달 전문 플랫폼사업을 직접 진행하고 말겠다고 생각하게 만듭니다. 올 12월까지는 매출 흐름, 메뉴 선호도, 내방고객 계층분석 등 가성비 중심으로 여러 통계를 집계, 분석하여 다음 행보를 모색해 나갈 계획입니다. 현재는 온라인 마케팅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아울러 프랜차이즈 사업 진행을 위한 매뉴얼 작업을 우선해 가면서 서플라이 제품개발을 진행 중이며 이를 위해 현지 식품유통 전문 회사를 찾고 있는데 이 또한 쉽지가 않은 실정입니다. 하지만 인도네시아 전역의 프랜차이즈 사업의 빠른 진행을 위해 현지 외식기업과 조인트벤처도 고려 중으로 여러 채널을 통해 찾고 있습니다.
인도네시아 외식산업 전망
유네스코 통계에 의하면 한 국가의 외식업이 산업화 단계에 접어드는 것은 국민 1인당 GDP $1만 불 이상부터라고 했습니다. 이는 한국의 26년 전 상황이었습니다. 인도네시아를 도시별로 볼 때 현재 자카르타와 수라바야, 메단 등 화교 중심의 대도시는 이미 $1만 불을 넘어섰다고 봅니다. 그런 의미에서 미래는 충분히 긍정적이라고 판단합니다. 인니에 진출해 있는 ‘마포갈매기(마갈) 경우 인니에 이미 50개가 넘는 매장을 냈을 정도입니다. 결국 인니에도 한국에 본점을 둔 유명브랜드 매장이 한국식당을 주도해나갈 것으로 내다보입니다. 예컨대, ‘본가’, 인니에서 성공한 ‘청기와’ 등이 프랜차이즈로 명성을 얻을 것입니다. 물론 ‘손가’도 이 대열에 합류코자 합니다. 한국 가공식품 관련해서도 변변한 김치공장 하나 없는 게 현실입니다.
최근 들어 한인 사업가인 엄정호 대표, 문정완 대표가 운영 중인 세계라면, 어묵-떡볶이 떡(대표 문정완) 등이 서플라이 제품으로 유통망에 선보이고 있습니다. 이제부터 시작이라고 봅니다. 이렇듯 희망적이긴 하지만 치열한 분투를 요하는 대목입니다. 안타까운 것은 일본 식품은 이미 인니에 상당한 인프라를 구축하고 있으며 ‘고가’의 타겟군을 선점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에필로그
역대 가장 힘겨운 오픈이었습니다. 인도네시아 시장은 그동안 저의 식품, 외식사업 경험치의 방정식에 들어오지 않는, 예측이 어려운 시장으로 여전히 배워나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현지 진출을 계획 중인 프랜차이즈 업계의 많은 분들과 경험을 공유하고, 장차 인도네시아에서의 한식 부흥을 이끄는데 많은 보탬이 되고 싶습니다.
※ 해당 원고는 외부 전문가가 작성한 정보로 KOTRA의 공식의견이 아님을 알려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