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나비의 꿈
장주몽접이란 고사성어가 있다. 장주, 곧 장자가 꿈에 나비가 되었다는 뜻으로서 호접몽이라고도 한다.
‘장자’ 제물론에 나오는데 장자가 꿈에 나비가 되어 훨훨 날다가 깬 후 자신이 꿈에 나비가 된 것인지 나비가 꿈에 자신이 된 것인지 알 수 없었다는 유명한 이야기다. 조선 전기의 문신 최항이 안견이 그린 몽유도원도를 보고 ‘이 몸이 나비 된 줄 뉘가 알아으랴’라고 읆은 것은 나비의 꿈을 신선이 되는 꿈으로 해석했음을 말해준다. ‘장자’ 추수론에 나오는 호량지변도 비슷한 뜻이다. 호수휘의 다리가 호량인데. 이 다리를 거닐던 장자가 친구 혜자에게 “피라미가 나와서 조용히 노니, 이것이 물고기의 즐거움일세” 라고 말하자 혜자가
“자네는 물고기가 아닌데 어떻게 물고기의 즐거움을 알겠는가”라고 반박했다. 그러자 장자는 “자네는 내가 아닌데 어찌 내가 물고기의 즐거움을 모르리라 생각하는가”라고 받았다는 이야기다. 여기에서 친한 벗들끼리 물가에서 노닌다는 호량유란 말도 나왔다.
중국인들은 집밖에서는 유교지만 집안에선 도교라는 임어당의 말처럼 현실적 이익에 유독 집착하는 중국인들에게 장자는 그 너머의 가치를 보라고 가르치는 것이다. 우리의 시각이나 생각은 만물의 변화상에 불과할 뿐 외물과 자아는 본질적으로는 구별이 없다는 것이다. ‘장자’ 추수편에는 황하로 몰려드는 가을 물을 보고 황하의 신 하백이천하의 미관을 다 지녔다고 자부하다가 끝도 보이지 않는 북해를 보고는
백 개쯤의 진리를 깨달은 자가 천하에 자기 만한 자가 없다고 여긴다는 말이 있는데 바로 나를 두고 한 말” 이라고 자책했다는 이야기도 마찬가지로 현실 너머의 것을 보라는 교훈이다.
한창 친행 중인 함평 나비축제는 나비의 꿈을 현실화 시킨 희귀한 사례이다. 온갖 유언비어가 난무하는 이 세상을 떠나 하루 이틀 함평 나비가 되어보는 꿈이 현실도피만은 아니리라.
2008.5.9.조선일보 이덕일님글
첫댓글 꿈과 현실의 경계 없음을 불가에서도 이야기 하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