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스름한 빛이 낡고 허름한 부엌으로 슬금슬금 스며드는 새벽녘이다
새까맣게 윤기나는 가마솥에선 자작자작 뜸이 드는지 솥뚜껑 가장자리 하얀 김이 잦아들고 밥 냄새가 구수하다.
맞은편 안쪽 큼직한 양은국솥엔 미역국이 팔팔 끓고 있다 팔 팔 끓는 국 솥에 작은 체구의 엄니가 날렵한 손길로 숭덩숭덩 토막낸 살이 오동통 싱싱한 숭어를 국 솥에 집어 넣어신다
바닷가가 바로 집앞이라 싱싱한 생선이 흔할 때다 그 중 유일하게 미역국에 넣어 먹던 생선이 도다리랑 숭어 였었다
식구 많은 살림살이에 딱히 먹을 반찬은 마땅 찮고 국물이라도 한 대접씩 먹을 수 있게 넉넉하게 끓이셨다
도시 사람들은 비리겠다 생각 들겠지만 바닷가에선 육고기는 구경하기도 힘든 시절이라 싱싱한 숭어 넣고 끓인 미역국 맛은 일품이었다
가마솥에는 보리가 칠 할이고 고구마가 이 할에 한 가운데 하이얀 쌀이 한 주걱될성 싶게 올라져 있다
뜸 들이는 솥안엔 호박잎도 데치고 마늘 쫑도 찌고 다양한 채소들이 더운 가마솥에서 찜질을 하고 나온다
검불이 자작 해진 아궁이 석쇠 위엔 할매가 물가에서 뜯어 네모난 발에 말린 거칠은 파래가 섞인 김을 앞뒤로 휘리릭 차라락 날랜 솜씨로 구운 김도 챙기고 국솥 아궁이엔 꾸덕하게 말린 큼직한 가자미 두어마리 노골노골 구어지는 맛있는 냄새로 가득한 부엌 풍경이다
가마솥을 열고 커다란 나무주걱으로 가운데 하얀 쌀밥 한주걱 낼름 퍼서 스덴 주발에 담고 뚜껑을 얼른 덮어 버린다
그 밥은 우리집 독제자이자 왕인 아버지 밥이다
그리곤 보리랑 고구마 휘휘 저어 주발에 할아버지밥 큰오빠밥 작은오빠밥 바로위 오빠밥 바로밑에 남동생 둘 밥그릇도 퍼고선 나머지 누룽지 붙은 밥솥 박박 긁어서 동그란 양은 양푼에 수북이 담아 놓는다
둥그런 상에 할아버지와 남자 형제들 빙 둘러 앉았고 할매랑 엄니랑 나는 납작하게 눌린 꽃그림이 희끗희끗 긁힌 동그란 양은 쟁반 상에 양푼 밥 앞에 놓고 앉았다
우글우글 복작복작 한겨울의 아침상에 뜨끈한 미역국 한그릇씩 후루룩 쩝쩝거리는 맛있는 아침 풍경이다
비록 찬은 없지만 남새 밭에서 뜯어온 해풍머금은 시금치 밥솥에 살짝 숨죽여 소금에 무쳐낸 나물은 살강살강 단맛이 나고 줄기랑 귀달린 미역 나란히 줄마춰 접시에 놓였다 쿰쿰한 멸치 젓갈에 그놈 찍어 먹는 맛은 시방도 입맛을 다신다
참기름이 없어도 마늘 쫑 집간장에 검붉은 집고추장에 무친 그 맛도 일품이었는데 지금은 참기름에 깨소금에 마늘이다 파다 온갖 양념을 다 넣어도 옛날 엄니가 해 주시던 그 손맛이 안난다
하루 중 유일하게 한 방에 빙 둘러 앉아 먹는 한끼 밥상이다
아버진 언제나 나중에 혼자 독상을 하신다
하얀 쌀밥에 노렷노렷 잘 구운 생선 한마리 얌전히 올랐고 꼬실한 김이 왜간장 종지랑 나란히 앉았다 우리는 구경도 못하는 달걀 후라이도 보인다
그럼에도 아버진 뭐가 못마땅한지 투덜투덜 반찬 타령이고 수 틀리면 그 하얀 쌀밥도 내동댕이 쳐 진다.
엄니는 늘 아버지 비위 맞추느라 쩔쩔 매셨다
할매는 슬금슬금 눈치보며 건너편에 사는 작은 삼춘네로 휑 하니 마실 가버리시고 우리는 그런 아버지가 집에 계실땐 슬슬 피하느라 허둥지둥 숨기 바빴다
큰 기침 소리만 나도 움찔거리고 쥐 죽은듯 온 집안이 조용해 진다
무슨놈의 팔자인지 이래저래 엄니는 늘 살얼음 판을 걷는 듯 사셨으니.......
점심은 고구마나 감자로 때우고 저녁엔 밀가루 반죽해서 빈 소주병으로 밀어 상마다 펼쳐 놓는 칼국수가 태반이다
굵은 멸치 육수에 큼직큼직 썰어 논 호박이랑 감자가 다인 칼국수, 한 창 먹성 좋을 사내들이 우글대는지라 기나긴 겨울 밤은 또 얼마나 허기가 지는지 가마솥에 남겨진 불어터진 칼국수라도 먼저 먹는놈이 임자다
어느 해 겨울이 였던가 서울에 올라와 고모님 댁에 얹혀 살 때 였다 아직 장가도 못간 서른이 코 앞인 바로 위의 오빠가 넌지시 내게 하소연 한다
"옥아 숭어국 먹고 싶은데 니는 안먹고 싶나?"
"나도 먹고 싶다 끓여 주까"
서울의 한겨울은 살을 에이듯 매섭게 추웠다 남대문 시장을 몇 바퀴나 돌아서 꽁꽁 언 숭어 두마리 사다 미역 넣고 팔팔 끓이다가 그 놈을 넣고 끓였다
오빠랑 둘이서 맛있게 먹겠다고 커다란 대접에 한그릇 가득 퍼서 한 숫갈 먹자마자 바로 뱉어버렸다
오빠도 엄청 실망한 눈치다
예전에 엄니가 끓여주던 그 맛이 아니었다 비리고 퍽퍽한 숭어미역국 한 솥 다 쏟아 버렸다
어릴때 서로 더 먹겠다고 덤비던 오동통 야들야들 싱싱한 숭어 맛이 아니었다
그랬던 오빠도 작년 이맘 때 저 세상으로 떠나고 까탈시럽게 유난 스러웠던 절대 왕으로 군립한 잘난 아버지도, 팔자 오지게 사나운 불쌍한 엄니도 오래전에 가셨고 제일 큰 오라버니도 코로나가 한 창일때 멀리 멀리 가셨다
이제는 어디가서 그 싱싱하고 맛난 숭어 미역국을 먹을 수 있을까?
첫댓글 아마도 남도 출신이신가 본 데 고향이 어디쯤이십니까?
숭어 미역국에 대한 추억이 저와 똑 같습니다.
숭어 기름이 둥둥 떠 있는 미역국은 정말 맛이 좋은 갱이었습니다.
가끔 집에서 숭어를 사다 재현을 해보지만 어림없습니다.
전혀 옛날 그 맛이 아닙니다.
매 끼 밥 짓는 풍경이나 식사 광경이 평소 저도 똑같이 겪은 일입니다.
아버님의 제왕 같은 가부장 적 권위에 대해서도 십분 이해 합니다.
아버님 독상은 아래 가족들 밥상과 천양지차가 있었습니다.
요즘 남자들이야 원! 대접은 커녕 푸대접이 일상입니다.
과거를 일깨우는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지속적인 건필을 기원합니다.
감사합니다
길고 지루한 글 읽어 주시니
곡죽전님 글 잘 읽고 있습니다
저는 저 아랫녘 거제도 바닷가 출신입니다
외도 해금강이 지척인 곳이지요
예전에는 어느 곳이고 사는 방법이 비슷했습니다.
단지 바닷가와 육지로 나뉘어 먹거리가 조금씩 달랐을 뿐이지요.
아주 오래 전 50년 대 시절 정경 소상하게 잘 보고갑니다. ^^*
50년대는 아니고 60년 후반 쯤으로 기억 합니다 ㅎㅎ
제가 57년 생이거던요
저기 아래녘 아주 깡촌,어촌이다 보니 50년대로 보이셨나 봅니다
제가 군복무를 하던 서해의 K 섬에서는
밀물때가 되면 숭어가 갯뻘을 타고 쭈욱 ~
올라오더라구요. 그때 그물로 잡아서
생선회로 먹었던 맛이 지금도 입안에
아련하게 남아있습니다.
엄마의 손맛은 재료의 품질보다 한단계
높을 것 같아요. 그러니 같은 숭어라도
맛이 안났을것 같고...(^_^)
맞아요
그때 숭어랑 고등어 였나
아주 엄청 흔했어요
지금은 예전 맛이 안나네요
나이 탓인지^^~
글 잘 읽었습니다.
아래 비슷한 분위기의 글도 읽었습니다.
우리는 대부분 이전 어머니가 해주시던 음식을 잊지 못하고 그리워 하지요.
그 음식이 그리워 직접 만들어 보지만 이전 맛과 다름에 실망을 합니다.
세월을 지나온 나이탓도 있겠지요
그런데 우리는 그 음식을 그리워하는 것이라기 보다
사실은 그 음식을 만들어주던 어머니와 그리고 어머니와 함께 했던 그 때를 함께 그리워하는 것이지요.
어머니가 그리운 음식맛이고
그리운 음식이 곧 어머니인 셈이지요. 내 자식들도 마찬가지일 자신의 뿌리일겁니다 ~~~~~~
그런것 같아요
나이먹으니 어머니가 그리운 음식맛이 그때 가족 들과 함께 했던 소박한 밥상이 그리운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
외도와 해금강 지척이 고향이면?
어딜까요?
제일 먼저 떠오르는곳이 학동이네요
올해도 거제도 저구항에 수국보러 갔었답니다
거제도 사람들 똑똑한줄은 알고있었지만
이렇게 글 잘쓰시는 분도 계시는군요
요요현상은 없으시지요?
너무 잘읽고 꼰대개그 한마디 던지고 갑니다
ㅎㅎ
학동은 아니고 바로 그 옆이예요 가끔 울적할때 몸부림님 글 보려 남성방에 간답니다
무조건 기분이 좋아진답니다
요 요현상 무지 왔답니다
서방도 나도 집구석구신이 된지 6개월만에 10키로나 불어서
말이 아니네요
고마워요^^~
이 좋은 글 ㅡ아름문학방에 올리시지요? 저희 엄니는 미역국에 참가자미를 가시발라내고 종종 넣으셨는데 그게 또 참 맛있었지요. ~^^
좋다고 하시니
감사합니다
앚아요 가자미가 담백한 생선이라
미역국에 많이들 넣고 끓여 드시더라구요
댓글 감사합니다
늘 건강하세요 ^^~
아 경남 쪽은 미역을 끓인 다음 생선을 넣군요 숭어라서 그렁가?
이쪽 강원도 바닷가는 도다리 아니면 흔한 노랑 가자미 참 가자미라고
두툼한 놈 서너 마리 참기름 넣어 바글바글 끓입니다 노란 기름이 나올 때까지
그렇게 자글자글 끓이다가 가시와 머리뼈 채로 건져내고 미역을 넣어 푹 끓입니다
진짜 맛있어요 ㅎㅎ 요요님 맑은 기억 속 엄니의 음식 치성을 이렇게 구수하게
풀어 놓으셨네요 그 대식구 세끼 밥상 차리시고 옷 푸세 다 하시고 남편 비위 맞추느라
전전 긍긍 에휴! 여자로 태어난게 죄인지 요요님 엄마 너무 ㅠㅠ 진짜 옛날 엄마들
불쌍했어요 자식도 그렇게 많이 낳으시고 층층시하에
슬프면서 맛있는 글 감~사 합니다 요요님
우리는 항상 풔든 팔팔 끓는 물에 생선은 넣었던것 같아요
우리 엄니는요 산골 출신이라 처음에 비린생선을 못드셨는데 유일하게 된장풀고 호박넣고 털게라고 하는 그넘 넣고 자작하게 끓어드시던게 기억에 남네요
멸치다시에 국수삶아 국물에 말아 후루룩 드시던 모습도 생각나고 엄니는 입이 짧으셨어서 조금만 드셔도 배 부르다고 ㅎㅎ에공
사람이 좋아서 동네 친구분들도 많으시고 상여나갈때 동네 엄니들 죄다 하얀 소복들 갖춰 입고 상여 뒤 따르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 하네요
진말순 여사님 ㅎㅎ
참 양반이셨는데
엄니가요
우리아버지 인물에 반해서 그 모양그고생 하셨어요
여하튼 인물은 근동에서 제일가는 인물이라 유명했다더라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