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에 일어나 대전 정부청사에 출장을 갔다가 방금 돌아왔다.
회의 시간에 혹시나 늦을까봐 잠을 설쳤다.
4시반쯤 일어나 출발준비를 하느라 부산을 떨다가 5시10분에 집을 나섰다.
부산역에 도착하여 빠른 열차편을 물어보니 6시50분발 수서항 SRT는 이미 매진되고 없었다.
할 수 없이 7시출발 KTX를 탔다. 대잔역에 도착하니 8시36분이었다.
다시 지하철을 탔다.
아침 출근시간이라 사람들이 빽빽하였다.
안쪽으로 파고 들어 일단 먼저 내릴만한 사람 앞에 섰다.
다행히도 한 정거장 가니 내 앞에 앉아 있던 젊은이가 벌떡 일어서 내렸다.
주위를 둘러 보아도 나보다 더 나이가 든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혹자는 자리를 얻는 것이 우연이라고 주장할 지 모르나 절대로 그렇지 않다.
나도 나름대로 머리를 굴려 나온 데이터에 의해 그 자리에 섰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독심술을 발휘했다고 할 수 있다.
독심술이란 상대방의 의중을 파악하는 기술이다.
미신과는 질적으로 다른 분야이다.
무당이나 점쟁이는 떠돌이 잡신의 도움으로 길흉을 점치거나 하지만
독심술은 심리학을 바탕으로 인문지리 및 사회경제학 등 모든 분야를 아우르는 학문의 통계학적 분석이라고
볼 수 있다.
내가 독심술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은 배를 타고 일본에 갔을 때 '독심술'이란 책을 접했기 때문이었다.
버스에서나 전철에서 자리를 잡기 위해서는 빈자리가 없을 때 앉은 사람중에서 가장 먼저 내릴만한 사람을 찾는게 급선무다.
학생들이 있을 경우에는 가까운 학교가 어디에 있는지, 교복은 어떤 모양인지 알 필요가 있다.
그리고 짐을 가지고 탄 사람들은 대개 멀리 여행을 가는 사람들이므로 역이나 버스 터미널에서 내릴 확률이 높다.
또한 가방을 만지작거리거나 옷 매무새를 고치거나 하면 곧 내릴려고 하는 에비행동이라는 것쯤은 알고 있어야 한다.
내가 구서동에 살 때는 시내에 볼일이 있어 자주 시내버스를 타고 나왔다.
집사람과 함께 시내버스를 타고 나오는 길에 버스에 오르니 빈 좌석이 없었다.
마누라에게 중간쯤에 앉은 사람곁에 붙어 서라고 했다.
버스가 한 두어구역 지나자 옆에 앉았던 사람이 일어나 내렸다. 집사람이 그 자리에 앉을 기회가 온 것이다.
집사람은 내게 고맙다는 눈짓을 했다.
나중에 어떻게 그 사람이 미리 내릴 것을 예견하고 있었느냐고 물었다.
버스를 몇번 타다보니 늘 타는 시간이 정해져 있는 사람을 보게 됐고, 내가 눈여겨 본 그 사람은
버스에 올라 일본문고판 책을 읽고 있었다. 또 그사람이 어디서 티서 어디서 내리는지 자연히 기억에 남았기 때문이었다.
시간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주어진다.
그 시간을 무의미하게 낭비하느냐 아니면 유용하게 쓰느냐에 따라 그 결과는 엄청나게 달라진다.
생각을 바꾸면 행동이 바뀌고 행동이 바뀌면 습관이 바뀌고 습관이 바뀌면 운명이 달라진다.
아프리카에서의 나비의 날개짓이 뉴욕에서는 무서운 폭풍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