님께 불리한 항목만 열거하였다고 하셨는데..
그것은 님의 생각일 뿐입니다.
나머지 글들을 다 열거할지라도 제가 반박하고자 하는 바에는 변함이 없기 때문에
중요한 부분만 언급한 것입니다.
저는 아담과 하와가 죄를 범하기 이전에 서로에게 어떠한 성적인 개념을 가졌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한가지 분명한 것은 하나님이 정해주신 바 안에서 있었을 것입니다.
죄가 세상에 들어 온 후 인간에게 정욕이 갈수록 확대되고
하나님은 인류의 역사 가운데서 부부관계의 질서를 적확하게 이루어 가셨고
남녀의 관계에 있어서의 순리가 어떠함을 성경을 통해 또한 말씀해 주셨습니다.
육신의 정욕을 이길 힘은 보혈의 능력 주의 보혈이라는 찬송이 있지요.
정욕이 반드시 성적욕구만에 해당하는 것이지는 않겠으나
우리가 하나님께서 정하여 주신 부부관계 안에서
궂이 이 찬송을 힘주어 부를 이유가 있을까요?
각설하고 성경에는 날때부터 고자된 자가 있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날때부터 소경된 자 가운데는
하나님의 어떠한 뜻에 따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그리 된 바가 있다고도 하였습니다.
그것은 곧 하나님의 어떠한 목적하심에 받은 소명의 한 예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경우에도 원죄없이 태어날 수는 없는 것이겠지요.
하나님께서는 어떠한 소명을 위하여
이미 날때부터 결혼과는 무관한 삶으로 인도하시는 경우가 있습니다.
결혼이 죄짓는 일이 아닐진데 왜 그리하실까요?
불완전한 존재이며 연약한 몸으로 살아가는 존재인 인간은
마음이 나뉘어지기 마련인 것입니다.
바울의 권면처럼 결혼은 가하기도 하나 또한 증인된 삶을 위하여
마음이 나뉘지 않도록 결혼을 하지 않는 것도 좋다고 하였습니다.
제가 장황한 사설을 늘어 놓는 이유는
당연히 님의 논리를 반박하기 위해서입니다.
예수님께서 간음하지 말라고 하신 말씀을 근거로 하여
음란한 마음이 어떠한 것인지 모르는 분이
어떻게 그런 말씀을 하실 수 있겠느냐고 하신
님의 논리는 논리적 근거가 부족하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근본본체이시나 우리와 같이 낮은 몸
즉 죽을 수 밖에 없는 몸으로 오셨습니다.
우리는 죄의 값으로 죽을 수 밖에 없으나
예수님은 죄없으심에도 우리가 받을 죄의 값을 대신 받으시려고
죽을 몸으로 오신 것입니다.
즉 흠과 티가 없는 어린양처럼 희생제물로 오신 것입니다.
우리는 왜 수많은 죄들을 짓습니까?
그것은 원죄(죄성)을 가지고 태어났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원죄가 없으신 하나님의 아들로 성령으로 오셨기에
범죄가 있을 수 없습니다.
다만 죽어야 하는 몸이 가진 여러 한계 속에 스스로 들어 오신 것입니다.
이후에 부활하신 몸은 음식을 취할 수 도 있으나 음식을 취하지 않아도
무관한 몸이나..
죽어야 할 몸은 아담으로 인하여 저주 받은 이 땅의 원리 가운데
속해서 살아 가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도 목수의 아들로 땀흘려 일도 하셨고
그러시면서 톱질을 하시다가 상처도 나실 수도 있으셨을테고
못이나 칼에 깊이 찔려 피를 많이 흘리면 죽으실 수 있는 그러한 몸으로..
또 연약한 한계적 몸의 생명유지를 위해
공기와 물과 음식을 필요로 하셨습니다.
이러한 필요를 외부로 부터 얻으실 수 있으셨으나
몸자체는 모든 인간과 다르지 않는 낮은 차원의 육체성에
하늘로 부터 성령으로 오신 것입니다.
아담이 범죄하여 죄가 육신 가운데 들어온 그러한 몸을 대입하여
이와 같은 성정으로 연결하면 곤란한 것입니다.
다시 돌아가 님의 주장하는 바
간음이 무엇인지 모르고 간음하지 말라는 말을 하실 수 있느냐?는
질문은 완전한 사람의 몸으로 그리고 완전한 하나님으로 오신 예수님께는
해당되지 않는 질문인 것입니다.
완전하신 하나님이 미움이 있으셔서 미워하지 말라 하십니까?
선악과의 패러다임 속에 있는 인간은 미움이 있어서 미움을 알지만
하나님은 사랑이시지만 미움이 어떠한지를 아시는 것입니다.
너희가 땅의 일을 말하여도 알지 못하는데 하늘의 일을 말하면 알겠느냐?
하셨지요.
예수님은 하늘의 일을 알고 계실진데 간음이 어떠한 바인지 모른다 할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직접 죄를 지어야 그 개념을 알 수 있으신 분이신가요?
신성으로 오신 죽을 수 밖에 없는 인간의 몸임을 기억하십시오.
죄가 육신 가운데 들어온 아담의 몸이 아닙니다.
그 죄의 값을 대신 받기 위해 하늘로 부터 오신 낮은 차원의 몸임을..
죄가 있어서 죽을 몸이 아닌 죄의값을 대신 받기 위해 피흘려 죽어야 할 몸임을..
처음 사람 아담의 원죄 이후의 몸이 아닌 하늘로 부터 오신 성령으로 잉태되신 몸임을..
사단이 예수님을 시험한 부분으로 가보겠습니다.
사단은 예수님이 누구시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단은 예수님이 인류를 구원하실 것이라는 사실을 인정하고 싶지 않은 속성이 있습니다.
사단의 시험의 내용이 예수님이 하나님처럼 되고자 하는 바를 유혹하였고
예수님께서 이 원죄의 유혹을 이기셨다고 하셨는데
이는 정확한 논리가 못된다 생각합니다.
만일 사단이 원죄 없이 오신 예수님을
미혹하여 하나님처럼 되고자 하는 마음을 품게 하려고 하였다면
공생애 이전에 그리하는 것이 더 현명하였을 것입니다.
님의 논리대로 한다면 예수님께서 하나님처럼 되고자 하는 마음을 품는다면
곧 원죄아래 놓이게 되는 결과이니
아기 예수를 죽이려 했던 계획처럼
공생애 이전에 예수님을 시험하는 것이 더 가능하지 않았겠습니까?
그러나 예수님의 대속으로 구원의 경륜이 윤곽을 드러내는 시점에서
죽을 수 있는 몸의 연약함 가운데 광야에서 40일을 금식하시며 기도하실 때에
이 연약한 몸의 약점을 건드려 구원의 성취를 방해하고자 한 것입니다.
즉 사단은 인류의 구원인 하나님의 희생제(속량하심)을 막고자 시험한 것입니다.
돌로 떡이 되게 하라는 것을 거부하신 것은
그것이 사단의 제안이었기 때문이지 하나님이 되고자 하는 바의 각도와 다른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것으로 예수님을 논하고자 한다면
예수님이 물로 포도주 되게 하셨고 물위를 걸으셨으며
죽은 자를 살리신 사실를 근거하여
예수님이 하나님되고자 하였다라는 궤변으로 말해질 수 도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삼위일체 하나님이시나
그리스도(메사아, 구원자)로 오셨기에 아버지와 하나되어 교통하셨던 것입니다.
구원의 경륜은 성부와 성자와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의 역사하심인 것입니다.
사단의 시험이 어떠하였습니까?
높은 곳에서 뛰어 내려보라 하나님의 아들이라면 천사들이 받을 것이다.
하였지요.
그 말은 알견 타당한 말입니다.
아니 천사들이 받을 필요도 없이
친히 지으신 자연성을 초월하셔서 물위를 걸으신 예수님이십니다.
제자들이 누구냐고 물었을때 예수님은 삼위일체 하나님되신 자신의 존재를 언급하십니다.
히브리어 연구가들의 주석을 참고해 보십시오.
그런데 사단의 시험은 그것이 피흘려 죽으심으로 구원하시려 하는 예수님의
구원사역을 막아보려는 제안이었기에 예수님은 당연히 거절하시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사단은 가당챦은 제안을 합니다.
우주의 공중 권세 잡은 바 사단이 세상의 값진 듯 보이는 것으로 구원을 막아 보려 합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 되시고자 하는 원죄에 시각을 두실 이유가 없으신 것은
그분께서 삼위일체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다만 우리를 구원하시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경륜에 따라
이 땅에 메시아로 오셨기에
이 구원을 이루지 못하게 하려는 사단의 유혹에 시험을 받으신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한가지 더 말씀드리겠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라고 기도한 것은
죽음자체의 두려움이라기 보다
하나님의 버림과 저주를 받아야 할 그 잔에 대한
예수님의 심정이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겟세마네 동산에서 핏방울이 되도록 흘리신 땀은
우리가 죄로 인하여 받아야 할 저주가 어떠함을 아시고
죄의 값을 지셔서 대신 받으시는 그 대속하심으로
우리를 사하시고 구원을 이루셔야 했기 때문입니다.
죄없으신 예수님께서
우리를 대신해서
하나님의 버린 바 되셔서
십자가의 저주 가운데 달리셔야 하는 상황이기 때문인 것입니다.
사람들은 죄로 인해 하나님을 떠나 있는 상태가 어떠한지..
버림바 되어 저주 가운데 있는 상태가 어떠한지 알지 못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 고통을 우리 대신 친히 당하신 것입니다.
더구나 죄없이 받으셔야 할 잔이었습니다.
죄인 된 우리가 그 고통을 받을 때에 우리는 할 말이 없습니다.
그러나 죄없으신 주님께서 어린 양처럼 끌려 가시며
하나님께 끊어지는 버린바되는 고통을 친히 당하셨습니다.
사람들은 죽기를 무서워 하지만
예수님은 우리가 받아야 할 저주인
하나님께 버린 바되는 본질적인 고통을 대신 감내하신 것입니다.
님의 충고처럼 성경전체의 맥락 없이 부분적으로 해석하게 되면
님과 같은 결과의 논리가 나오게 됩니다.
아직 님이 피력하시고자 하시는 바를
구체적으로 나타내시지 않으셨다고 생각되어지나
'하나님과 사람이 하나되어 땅에서 하나님나라가 완성된다" 라는 님의 글만으로도
가히 짐작할 수 있을 듯합니다.
첫댓글 제 글 가운데 당연히 부족한 부분이 있겠으나 daum-hanmail 님의 논리가 지향하는 바가 무엇인지가 나타날 때에 좀 더 부연하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