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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0회 반 클라이번 콩쿠르(Van-Cliburn-concours) 결승 무대에서
라흐마니노프 피아노협주곡 3번(Rachmaninoff Piano Concerto No.3)을 연주하며
지휘자 마린 알솝과 호흡을 맞추고 있는 임윤찬./ 반 클라이번 콩쿠르
✺ KBS1 <예썰의 전당> [14회] 일상을 예찬하다-페르메이르. 2022년 08월 07일 방송 다시보기
‘예썰의 전당’ 열네 번째 주제는, 일상을 예찬한 화가 페르메이르.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의 화가로 유명한 페르메이르. 그는 평범한 일상을 눈부시고 아름답게 표현하는 화가였다. 17세기 네덜란드 가정생활이 그려진 우유 따르는 하녀부터 고요한 네덜란드 항구 풍경이 담긴 델프트의 풍경까지! ‘예썰박사’ 들과 함께, 페르메이르가 포착한 ‘위대하고 눈부신 일상’의 모습을 만나보자.
트레이시 슈발리(Tracy Chevalier, 1962- ) 미국 워싱턴 D.C 출생, 역사소설 베스트셀러 작가,
1999년 《진주 귀고리 소녀(Girl With a Pearl Earing)》저자
트로니tranic: 과장된 얼굴 표정이나 인물의 특색을 포착해서 그리는 작품/ 프란츠 할스, 웃고 있는 소년, 1625년, 패널에 유채, / 주반 크레스벡, ‘담배를 피우는 사람(The Smoker)’, 1626년경, 32x41cm, 루브르미술관 파리
주반 크레스벡, ‘담배를 피우는 사람(The Smoker)’, 1626년경, 32x41cm, 루브르미술관 파리
네덜란드 독립전쟁(1567-1648, 80년 전쟁), 네덜란드 17개 주가 스페인(합스부르크군주국)에
대항한 지브롤터 해전, 캔버스 유화. 136.8×187㎝. 암스테르담 미술관 소장
울트라마린(ultramarine), 라피스 라줄리(Lapis Lazuli: 靑金石)의 준보석에서 얻은 금보다 귀한 파란색.
울트라마린(ultramarine)의 어원은 ‘바다를 건너다’라는 의미이다. 아주 진한 파란색 안료로, 아프카니스탄에서 나는 귀한 청금석(靑金石) 또는 라피스 라줄리(Lapis Lazuli)는 불투명하고 짙은 파랑에 하얀 줄이 나 있고 황금빛 조각이 섞여 있는 대리석과 비슷한 준보석으로, 중세 라틴어로 ‘천상의 돌’이란 뜻으로 ‘하늘의 푸른 돌’이라고도 번역했다. 이 청금석을 곱게 갈아 접착제를 섞으면 '울트라마린'이라는 안료가 된다. 명도가 낮고 채도가 높은 군청(群靑)색의 일종이다.
사소페라토(Sassoferrato)의 기도하는 성모 마리아(The Virgin in Prayer), ‘울트라마린(ultramarine)’은 영구적인 귀한파란색 안료다. 가격이 비싸서 성모의 옷처럼 가장 중요한 부분에만 한정적으로 사용 한다. 아프가니스탄의 광산에서 채굴된 청금석을 수입해 갈아 만든 안료다.
페르메이르, ‘열린 창가에서 편지를 읽는 여인(Girl reading a letter at an open window' by Johannes Vermeer)’,
1659년, 캔버스에 유채, 83x63.5cm, 드레스텐 고전 거장 미술관요하네스 페르메이르,
✵ 예썰 하나,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는 존재하지 않는다?
페르메이르의 대표작으로 손꼽히는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 ‘네덜란드의 모나리자’로도 불리는 이 작품은, 신비로운 분위기로 사랑받는 명작이다. 특히, 오묘한 미소를 짓는 그림 속 소녀는 오랜 기간 사람들에게 호기심과 관심의 대상이 되어왔다. 그런데, ‘예썰 박사’에 따르면 그림 속 소녀는 실존하는 인물이 아닐 수도 있다는데. 과연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는 누구일까.
✵ 예썰 둘, 보통의 삶을 찬란하게 기록하다!
하녀가 회화의 주인공이 된 이유는? 페르메이르의 〈우유 따르는 하녀〉는 하녀가 식사를 준비하는 일상을 세밀하게 표현한 명작이다. 또 이전의 유럽 회화와는 달리 하층민인 ‘하녀’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점도 특별하다. 심지어 페르메이르는 하녀의 앞치마를 칠하기 위해 금보다 비싼 안료를 아끼지 않은 탓에 빚까지 졌다는데. 페르메이르는 왜 평범한 일상을 이토록 공들여 그렸던 걸까. 우유 따르는 하녀를 통해, 페르메이르가 화폭에 담아내고자 했던 ‘일상의 가치’를 들여다본다.
렘브란트 반 레인, ‘천사들과 함께 있는 성가족(聖家族)’, 1645년,
캔버스에 유채, 91×117cm, 상트페테르부르크 에르미타주 미술관
베일에 싸인 신비주의 화가, 요하네스 페르메이르, ‘뚜쟁이(The Procuress)’,
1656년, 캔버스에 유채, 143x130㎝, 독일 드레스텐 알테 마이스터 미술관
자화상 하나 없는 베일에 싸인 신비주의 화가 요하네스 페르에이르, ‘회화의 기술’, 1666-69년경
페르메이르의 첫 작품, ‘다아나와 그녀의 일행들(Diana and her nymphs)’, 1653-54년경
페르메이르의 유일한 종교화, ‘마르다와 마리아의 집에 있는 그리스도’, 1654-55년경
바흐의 <커피 칸타타(BWV 211)> 제 4곡 <아, 커피의 맛이란 정말 기가 막혀!>
그의 커피 사랑을 마치 작은 오페라처럼 표현한 경쾌한 아리아이다. 가사는 이렇다. <아, 커피의 맛은 천 번의 키스보다 더 황홀하고, 오래 숙성한 포도주보다 더 달콤해요. 누가 내게 즐거움을 주려거든 아, 내게 커피 한 잔을 주세요!>
✺ 바흐 - 커피 칸타타, BWV 211 / 호그우드
1. Racitativo (나레이터(Tenor))
Schweigt stille, plaudert nicht
조용하게! 떠들지 말고,
여기서 일어나는 일에 주의를 기울여보세요.
여기 헤르 슐레드리안이 딸인 리첸과 같이 있군요.
그는 곰처럼 으르렁대고 있어요.
딸이 아버지에게 한 일을 좀 들어보세요!
2. Aria (슐레드리안(아버지-Bass))
Hat man nicht mit seinen Kindern
자식들은 늘 끝없는 시련과 고난을 일으킨답니다.
제가 매일같이 딸 리첸에게 말하는 것은
아무 소용이 없군요!
3. Recitativo
(슐레드리안(아버지-Bass)& 리첸(딸-Soprano))
Du boses Kind, du loses Madchen -슐레드리안-
이 말도 안 듣는 나쁜 녀석아.
아, 언제야 내 말을 들을 거니.
커피를 끊어!-리첸-
아버지, 잔인한 말씀은 하지도 마셔요!
만약 제가 하루에 세 번 커피를 못 마시게 된다면
저는 고통 속에서 구워진 염소고기처럼
시들어 갈 것이랍니다.
4. Aria (리첸(딸-Soprano))
Ei! wie schmeckt der Coffee susse
이 커피는 너무나 달콤하구나!
천 번의 키스보다 더 달콤하고
백포도주보다도 더 부드럽구나.
커피, 커피야말로 내가 마셔야 할 것이고
만약 누가 나에게 한 번 쏘고 싶으시다면
아, 커피나 따라주세요 !
5. Recitativo
(슐레드리안(아버지-Bass)& 리첸(딸-Soprano))
Wenn du mir nicht den Coffee lasst -슐레드리안-
만약 네가 커피를 끊지 않겠다면
널 시집보내지 않을 것이고,
집에서 내보내지도 않을 거야.
오, 언제야 내 말을 들을 거니. 커피를 끊어!-리첸-
좋아요, 커피만 주신다면요!-슐레드리안-
이 말괄량이야, 유행하는 고래수염 치마도 못 입게 하겠다.-리첸-
그런 것은 참을 수 있어요.-슐레드리안-
창가에 서서 사람들 구경하는 것도 못하게 할 거야.-리첸-그것도 괜찮아요, 하지만 커피만은 마시게 해 주세요!-슐레드리안-
게다가 너는 모자의 은장식 금장식도
모두 압수당하게 될 것이야.-리첸-
좋아요, 좋아요! 제 기쁨만은 빼앗아가지 말아주세요.-슐레드리안-
말도 안 듣는 리첸, 결국 포기하지 않겠다는 것이구나.
6. Aria(슐레드리안(아버지-Bass))
Madchen, die von harten Sinnen
고집 센 딸들은 쉽게 말을 듣지 않지.
그러나, 약점을 알면
아, 그러면 말을 듣게 할 수 있지.
7. Recitativo
(슐레드리안(아버지-Bass)& 리첸(딸-Soprano))
Nun folge, was dein Vater spricht-슐레드리안-
자, 이제 아버지가 하는 말을 주의 깊게 들어라.-리첸-
커피 말고는 무엇이든지 다요!-슐레드리안-
그래, 그럼! 넌 절대로 남편을 가지지 못할 거야.-리첸-
오, 아버지 남편이라니요!-슐레드리안-
맹세컨대, 절대 남편은 없을 거야.-리첸-
제가 커피를 끊을 때까지요?
지금부터 커피는 만지지도 않을게요.
아버지 들어보세요.
저는 아무것도 마시지 않을 거예요.-슐레드리안-
그럼 넌 신랑을 맞이할 수 있을 거야.
8. Aria (리첸(딸-Soprano))
Heute noch, lieber Vater tut es doch
사랑하는 아버지,
오늘 당장 신랑을 보게 해 주세요.
오, 남편이라니 이건 정말 멋진 일이야.
만약, 오늘 잠자리에 들기 전에
그렇게 된다면,
커피 대신에 훌륭한 신랑을 얻을 수 있다면!
9. Recitativo (나레이터(Tenor))
Nun geht und sucht der alte Schlendrian
슐레드리안은 딸 리첸을 위해
신랑을 즉시 찾을 수 있는지 알아보러 나가는군요.
그러나 리첸은 그녀가 원할 때에는
언제든 커피를 마시게 할 수 있도록
결혼 계약서에 몰래 약속을 쓰지 않으면,
어떠한 남자가 오더라도
구혼을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랍니다.
10. Trio
(나레이터(Tenor), 슐레드리안(아버지-Bass),
리첸(딸-Soprano))
Die Katze lasst das Mausen nicht
고양이는 쥐 잡는 일을 그만 둘 수가 없고,
처녀들은 커피를 마시지 않을 수 없는 것이지요.
엄마도 커피를 마신답니다.
할머니도 그랬고요.
누가 딸을 혼낼 수 있겠어요?
요하네스 페르메이르의 또 다른 걸작 <음악수업(The music lesson)> 그림 속에 피아노의 전신인 하프시코드가 나온다. 그 하프시코드 건반 위 몸체에 새겨진 문구 또한 유명하다.
"Mvsica Letitiae Comes Medicina Dolorvm"
"음악은 기쁨의 동반자, 슬픔의 치유약"
✵ 예썰 셋, 위기를 기회로! 위축된 미술 시장을 살린 화가들의 전략은?
스페인으로부터 독립해 개신교 국가가 된 17세기 네덜란드. 당시 종교 미술이 금지되었고 미술 시장은 위축되고 마는데. 생계가 어려워진 화가들은 타깃을 교회가 아닌 시민으로 바꾸고, 종교화 대신 시민들이 쉽게 공감할 수 있는 ‘일상’을 그리기 시작! 페르메이르 역시 이때부터 ‘일상’을 화폭에 담았다는데. 예술 작품에 담긴 당시의 일상, 그리고 역사의 소용돌이를 겪으며 변화한 예술가들의 삶을 살펴본다.
요하네스 페르메이르, ‘뚜쟁이(The Procuress)’,
1656년, 캔버스에 유채, 143x130㎝, 독일 드레스텐 알테 마이스터 미술관
❁ 요하네스 페르메이르(Johannes Vermee, 1632~1675) 또는 얀 베르메르(Jan Vermeer)는 바로크 시대에 활동했던 네덜란드출신 화가이다. 그는 네덜란드가 정치적, 경제적, 문화적으로 전성기를 구가하던 네덜란드의 '황금 시대'에 활동했던 화가였다. 델프트에서 살면서 작품활동을 했기 때문에, ‘델프트의 페르메이르(Vermeer van Delft, 페르메이르 판 델프트)’라고 부르기도 한다. 역사소설 《진주 귀고리 소녀(Girl with a Pearl Earring)》와 동명영화의 소재가 된 인물이기도 하다.
요하네스 페르메이르, ‘진주 귀고리 소녀(Girl with a Pearl Earring)’,
1665년경, 캔버스에 유채, 44.5x39cm, 헤이그 마우리츠하이스 미술관
요하네스 페르메이르, 진주목걸이를 한 젊은 여인
페르메이르의 작품은 옛 경매 기록상으로는 다른 것도 많았던 것으로 전해지나, 오늘날 남아있는 것은 37점으로 이루어진 전체 작품의 규모는 아주 작은 편이다. 페르메이르의 첫 번째 작품들은 역사화였다. 하지만 그는 작품의 상당 부분을 이루고 있는 장르화로 알려졌다. 가장 널리 알려진 작품은 《델프트 시의 전경》과 《진주 귀고리를 한 소녀》다. 알려진 그림의 숫자가 적었던 관계로 19세기에 다른 미술가의 작품을 잘못해서 그의 작품이라고 결정하는 일들이 일어났었다. 하지만 오늘날 그의 작품 규모는 연구자들에 의해서 일반적으로 인정을 받고 있다.
페르메이르, ‘델프트의 풍경(Gezicht op Delft)’, 1660~1661년,
캔버스에 유채, 98.5x117.5cm, 마우리츠하위스 미술관 소장
생애._. 그의 생애에 대해서는 자세하게 알려져 있는 것이 거의 없다. 그는 1632년 델프트의 니외베 케르크에서 세례를 받았으며, 두 번째 아이였고 독자였다. 그의 아버지 라이니에르 얀츠(Reynier Jansz)는 원래 안트베르펜 출신이었고, 1611년 암스테르담으로 가서 그곳에서 견직공으로 일했다. 1615년 그의 아버지는 디그나 발텐스와 결혼을 하고, 보스라는 이름으로 델프트로 갔다. 그리고 그곳에서 여관을 운영했다. 부업으로 그는 계속 직물공으로 일을 했으며, 수공업자로 델프트에 있는 성 루가 길드에 공식적으로 가입했다. 그곳에서 얀츠는 피터르 스텐비크(Pieter Steenwyck), 발타사르 판 데르 아스트(Balthasar van der Ast )와 피터르 그뢰네베겐(Pieter Groenewegen)과 같은 화가들과 만났다.
요하네스 페르메이르, ‘레이스를 뜨는 소녀’, 1669-1670년, 24.5x21cm, 프랑스 파리의 루브르 박물관
페르메이르가 받은 미술 교육에 관해서는 확실한 정보가 존재하지 않는다. 그는 1653년 예외적인 경우지만 조합에 귀속되지 않은 마이스터로 성 루가 길드의 조합원이 될 수 있었다. 이런 가입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길드에서 인정한 화가에서 6년에 걸친 교육기간을 미리 거쳐야만 했다. 페르메이르가 레오나에르트 브라머의 제자였을 수도 있다고 추측을 할 수도 있지만, 이 가정은 두 사람의 양식에서 보이는 커다란 차이 때문에 거의 동의를 얻지 못했다. 하지만 그와 페르메이르가 관련되어 있다는 것은 원본 서류에 의해서 입증이 되었다. 제라르드 테르보르흐(Gerard Terborch)와의 접촉도 입증되었다. 그 밖에도 페르메이르가 램브란트에게서 교육을 받은 카렐 파브리티위스(Carel Fabritius)의 제자였을 것이라는 가정도 있다. 이런 가정은 19세기에 윌리엄 토레 뷔르거가 제기한 이후로 오랫동안 일반적으로 인정을 받았으며 오늘날에도 여전히 널리 퍼져 있지만, 미술사학자들에 의해서 의심을 받았다. 대신 1652년서부터 1661년까지 델프트에서 살았던 피더르 데 호흐(Pieter de Hooch)의 양식이 페르메이르의 장르화에서 확실하고 세련된 형태로 다시 나타나고 있기 때문에 그가 얀 페르메이르에게 결정적 역할을 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요하네스 페르메이르, ‘화가의 아틀리에(L'atelier de l'ariste)’, 1666~73년, 캔버스에 유채
요하네스 페르메이르, 글을 쓰는 여인
가정과 경력은 1653년 델프트의 화가조합인 신트 뤼카스(성 루가) 길드에 등록되었고 같은 해에 카타리나 볼너스와 결혼하였다. 결혼하기전 페르메이르는 개신교 신도였으나, 결혼하면서 로마 가톨릭으로 교회를 옮겼다. 이는 볼너스의 집안이 로마 가톨릭 집안이었기 때문으로 추정된다. 두 부부는 무려 11명의 아이를 낳았다. 1662년∼1663년과 1669년∼1670년, 두 번에 걸쳐 길드 간부를 지냈다. 이 날짜들만이 그의 생애에서 유일하게 확실한 이야기다. 나머지는 갖가지 의문, 불확실, 그리고 추측들로 뒤덮여 있다. 평가도 오랫동안 감추어져 있다가 19세기 중반에야 겨우 진가를 인정받았다. 이름조차도 2가지 다른 설이 있다.
요하네스 페르메이르, ‘천문학자’, 1668년, 프랑스 파리의 루브르 박물관
화가의 아들로 태어나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후 직업을 계승한 화가 카렐 파브리티위스의 영향을 받았는데, 두 사람 사이에 사제관계가 있었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그의 작품 중 현존하는 것은 37점이다. 남은 작품만을 기준으로 놓고 봤을 때 1년에 고작 두어 점 정도 그림을 그렸다는 계산이 나온다(물론 전해지지 않은 작품들이 더 있을 수는 있다). 이것은 페르메이르가 예술 시장을 위해서 작업했다기보다는 예술 후원자들을 위해 작업했을 것이라는 추측을 낳게 했다. 특히 11명의 아이를 가진 대가족의 가장이 1년에 그림 2점을 그려서는 부양의 의무를 지킬 수 없으므로, 그는 그림 이외의 다른 밥벌이 수단을 가졌는지도 모른다.
요하네스 페르메이르, ‘신사와 와인 마시는 여인’, 1660년, 베를린 국립회화관
1653년 결혼 후에 그가 화가 조합이던 신트 루카스 길드에 등록한 이유도 이때문일 것이다. 그 당시에는 화가를 포함한 예술가·상인·수공인 등은 길드에 등록해야만 영업을 할 수 있었다. 그리하여 그는 생계를 이어나가기 위해 화가뿐만이 아니라 화상(畵商)으로서 그리고 예술 전문가로서의 이름도 얻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이름을 얻기 위해서가 아니라 단지 살기 위해, 생활의 연명을 위해 그랬을 것이다. 이 때문에 그의 일생에는 시련이 계속되었다고 한다.
요하네스 페르메이르, 빨간 모자를 쓴 소녀
현존 작품 40점은 거의 대부분 소품들로서 한 두 사람의 가정생활을 그린 것이 대부분이다. 그 밖에 루가 복음서에 나오는 베타니아의 마르타와 마리아 자매 이야기를 소재로 그린 그림처럼 성서속의 이야기들을 주제로 한 것도 있고, 불과 2점이지만 풍경화도 있다. 풍경화 중에 《델프트 풍경》(헤이그 국립미술관 소장)은 명작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옛날 카탈로그에서 언급된 몇몇 작품들은 영원히 소실되어 버린 것 같다. 제2차 세계 대전 중 메이헤런 사건의 여파로 페르메이르의 새로운 작품이 발견되어도 전문가들은 별로 믿으려 하지 않는다. 한편 《델프트의 조망(眺望)》(또는 '델프트 풍경')은 당시 네덜란드의 부국과 원양어업의 전성기를 반영하는듯 회화적 기법의 극치와 평화로움의 절정을 잘 균형잡고 있다.
요하네스 페르메이르, ‘우유를 따르는 하녀(The Milkmaid)’,
1657-1658년, 45.5x41cm츠, 암스테르담 국립미술관 소장
그의 그림은 색조(色調)가 아주 뛰어났으며 적 ·청 ·황 등의 정묘한 대비로 그린 실내정경은 마치 개인 날 북구의 새벽 대기(大氣)를 생각나게 한다. 맑고, 부드러운 빛과 색깔의 조화로 조용한 정취와 정밀감(靜密感)이 넘친다. 초기의 밝은 부분과 어두운 부분의 뚜렷한 대비는 만년이 될수록 완화되었다. 그 밖에 《편지를 읽는 여성》(드레스덴 미술관 소장) 《우유를 따르는 하녀》(암스테르담 국립미술관 소장)·《터번을 쓴 소녀》(헤이그 국립미술관 소장)·《레이스를 뜨는 소녀》(루브르 미술관 소장)·《화가의 아틀리에》 등이 있다.
요하네스 페르메이르(Johannes Jan Vermeer), ‘연애 편지(The Love Letter)’
, 1666년경, 캔버스에 유채, 44×38.5cm,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국립미술관
요하네스 페르메이르(Johannes Jan Vermeer), ‘잠이든 여인(Girl Asleep at a Table)’,
1656-57년경, 캔버스에 유화, 87.6×76.5cm,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참고문헌 및 자료출처: KBS1 <예썰의 전당> [14회] 일상을 예찬하다-페르메이르, Daum·Naver 지식백과/ 글과 사진: 이영일 ∙ 고앵자, 채널A 정책사회부 스마트리포터 yil2078@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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