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기법과 시공(時空)의 초월
윤회하는 인간에게는 누구나 예외 없이 연기가 회전한다. 이때 내가 윤회하는 것이 아니고 업이 윤회한다. 업은 의도를 가진 행위를 원인으로 이에 따라서 생기는 결과를 말한다. 이러한 원인과 결과가 바로 지은 대로 받는 인과응보(因果應報)다. 이런 원인과 결과에는 처음부터 나는 없고, 오직 조건에 따른 일련의 흐름만 있다.
이때의 흐름은 누구도 개입할 수 없는 오직 한 개인의 의도를 가진 행위와 이에 따른 결과만 있다. 하지만 자의로 내가 있다고 판단해서 누구나 내가 윤회한다고 믿는다. 있는 그대로의 실재는 무상, 고, 무아지만, 이런 사물의 이치를 아는 지혜가 없어 처음부터 내가 있다고 알고 인생을 시작한다. 이러한 시작은 역시 과거로부터 상속받은 무명과 갈애의 영향을 받은 결과다.
이때 있는 그대로의 진실을 발견하지 못하는 것은 모든 대상이 워낙 빠르게 움직이는데 나는 아직 이것을 좇아가는 힘이 없기 때문이다. 이렇게 빠른 대상을 좇아가는 힘을 키우는 것이 바로 알아차림과 집중이다. 그러므로 알아차림과 집중이 있어야 빠른 무상을 아는 지혜가 난다. 이것을 계정혜 팔정도라고 한다. 이처럼 알아차림과 집중과 지혜에 의해 사물의 이치를 알 수 있다.
연기를 빠띳짜사무빠다(paṭiccasamuppāda)라고 한다. 이는 합성어로 빠띳짜(paṭicca)는 ‘~을 원인으로’이고, 삼(sam)은 접두사로 ‘바르게, 정확하게, 확실하게, 정(正), 잘(well)’이고, 우빠다(uppāda)는 ‘발생, 생성, 출현, 태어남’이다. 이것은 원인에 의해 결과가 일어난다는 뜻이다. 이것을 의존적 발생의 법칙, 윤회라고 한다.
연기법의 중요한 의미는 원인이 있어서 결과가 생기는 것이다. 이때의 원인은 어떤 누가 아니고, 오직 자기가 의도를 가지고 행한 원인으로 결과가 생기는 것을 말한다. 이러한 원인과 결과는 한 생명의 원인과 결과지 여기에 누구도 개입할 수 없다는 의미가 있다. 그러므로 어떤 초월적 존재도 부정한다. 그리고 알 수 없는 탄생과 죽음은 모두가 업에 의해서 일어나고 사라지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런 지혜가 나면 비로소 모든 의문에서 풀린다. 이것이 의심에서 해방되는 청정이다. 연기법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원인이 없으면 결과가 없는 새로운 법을 안다. 이때 새로운 원인을 만드는 것이 사념처 위빠사나 수행이다. 누구나 몸과 마음을 알아차리면 무상, 고, 무아의 지혜가 나서 집착이 끊어진 깨달음을 얻는다.
연기법은 다시 태어날 원인이 없으면 다시 태어나는 결과가 없는 것을 밝힌다. 이때 비로소 윤회가 끝난다. 이것이 지고의 행복이고 해탈의 자유다. 여기서 과거에 행위를 한 내가 없는 무아를 알아야 한다. 어리석음으로 살 때는 내가 있다고 알아서 과보를 받는 내가 있다. 하지만 과거에 행위 한 내가 없으면 이것을 받을 나도 없어야 비로소 자유를 얻는다. 이것이 무아가 주는 큰 보상이다.
이처럼 연기가 회전할 때는 업이 있고,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시간이 있고, 또 존재가 머무는 장소가 있다. 이때는 내가 있고, 연기가 있어 원인과 결과가 있고, 업이 있다. 그러나 위빠사나 수행으로 집중할 때는 연기가 회전하지 않아 업이 없고,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시간이 없고. 또 존재가 머무는 장소가 없다.
이때 오직 대상과 아는 마음만 있다. 이처럼 집중이 된 상태를 시공을 초월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시공을 초월하는 것에는 두 가지가 있다. 일반적으로 집중이 된 상태나 열반을 얻은 상태에서는 일시적으로 시공을 초월한다. 하지만 이것은 완전한 초월이 아니다. 붓다나 아라한이 되어서 모든 번뇌가 완전하게 종식될 때 비로소 완전히 시공을 초월한다. 이때 원인과 결과가 끝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