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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장엽 : 개인주의와 이기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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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개인주의에 대해서 이야기 하겠습니다.
최근에 개인주의와 집단주의에 대해서 질문들도 많이 받고 있고
또 여기서 잘못 생각하는 것도 있기 때문에 여기에 대해서 설명하려고 합니다.
우선 “인간이 개인적인 존재인 동시에 집단적인 존재다.”
이에 대한 인식부터 가져야 합니다.
모든 사람들은 다 자기의 생명을 가지고서 개인적으로 살아 나가고 있습니다.
자기의 생존과 발전을 위해서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고립된 개인으로서는 살 수 없고 반드시 사회적으로 결합돼서
집단적으로 서로 협력하면서만 살아나갈 수 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사람은 개인적인 동시에 집단적인 존재다.
처음에 개인들이 있다가 그것이 결합돼서 집단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사람은 개인적인 존재인 동시에 집단적인 존재입니다.
만약에 처음부터 처음엔 개인적으로만 있다가 집단으로 됐다고 하게 되면
어떻게 집단으로 되겠는가.
개인만 있던 것이 어떻게 집단으로 결합 되겠는가.
개인이 생겨날래도 부모가 있어야지, 부모는 또 그 위에 부모가 있어야죠.
부모의 보호가 없이 어린 아이가 자라날 수 없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벌써 가족이라고 하는 걸 떠나서
개인의 존재에 대해서 생각할 수 없습니다.
가족이라는 게 벌써 하나의 작은 집단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개인의 이익만 생각하는 그런 순수한 개인주의는 있을 수가 없습니다.
개인의 이익만 생각하고 집단의 이익은 생각하지 않는
그런 개인주의란 있을 수 없습니다.
또 동시에 집단의 이익만 생각하고 개인의 이익은 전혀 생각하지 않는 다는 것,
이것도 있을 수 없습니다.
벌써 집단의 이익을 생각한다고 하게 되면
그 안에는 그 집단을 이루고 있는 개인들의 이익도 포함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개인주의와 집단주의의 차이는 어디 있는가?
사람의 생활에서 개인의 생활을 위주로 보고
즉 사람은 사람의 생명이라고 하는 건 개인적인 생명입니다.
개인의 생존과 발전을 위해서 사람은 개인적으로만은 살 수 없기 때문에
집단이 필요하고 집단이라고 하는 것은
개인의 생존과 발전을 보장하기 위한 필수적 조건이다,
이렇게 생각하는 것이 개인주의적 사고방식입니다.
여기서 “개인의 이익만 생각 한다” 이건 개인주의가 아니고 이기주의입니다.
이기주의는 어느 사회에서나 누구든 다 반대합니다.
집단주의라고 할 때도 집단의 이익만 생각하고 개인의 이익은 생각하지 않는 건
집단주의가 아니며 그런 집단주의는 있을 수가 없습니다.
‘집단주의에서는 인간의 운명을 규정해나가는 그 생명은
개별적인 생명이 아니라 사람들이 결합되는 집단의 생명이다.
집단의 생명은 계속 대를 이어 계속 생존하고 발전해 나간다. 그게 진짜 생명이다.
그래서 집단의 생존과 집단의 발전을 보장하는데 있어서
그건 개인을 떠나서 있을 수 없기 때문에 개인들의 역할이 필요하다.’
한 마디로 말해서 집단주의는 집단의 이익과 생존과 발전을 위주로 해서 보면서
거기서 개인의 생존과 발전도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어느 것을 위주로 보는 가에 따라서 달라집니다.
여기서 만약에 개인의 역할에 관한 것을 고려함이 없이
집단의 이익만을 생각해서 한다면 이것은 집단주의가 아니고 평균주의입니다.
같이 나눠먹자는 평균주의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집단의 이익을 고려하지 않고 개인의 이익만 자꾸 생각한다 이럴 때에는 이기주의가 되고
개인의 역할에 대한 차별을 두고 개인이 많은 역할을 하게 되면
그에 상응하게 많은 대우를 해주고 그래야지
일하는 사람이나 안하는 사람이나 다같이 집단에 속해있는 사람은
다 같이 살아야 된다 이렇게 생각할 때는
그것은 평균주의지 집단주의가 아닙니다.
집단의 이익을 위주로 해서 생각한다고 할 때는
예를 들면 협동농장에서 양곡을 생산했는데
농장원이 일 년에 먹고 살만한 양곡이 일만 톤이라고 생각을 해봅시다.
그런데 1만1천 톤 정도를 생산했다.
그러면 개인주의적인 입장에서 보며
우선 여기서 일을 많이 한 사람과 일을 적게 한 사람에 따라서
분배를 달리해야 되겠다,
그리고 나머지가 있으면 그걸 가지고 우리 공동의 이익에 맞게 분배를 한 다음에
못 사는 사람이 있다면 도와줘야 되겠다,
분배 많이 받은 사람들이 조금씩 모아서 도와줘야 되겠다,
이렇게 생각하는 것이 개인주의적인 입장입니다.
집단주의적인 입장은 어떤가?
우선은 전체 성원들이 먹고 살만 하게 분배해주고
나머지 1천 톤만 사람들의 능력에 따라서 분배해줘야 되겠다, 이렇게 합니다.
그러니까 뭘 위주?해서 보는가 하는데 따라서 달라집니다.
그런데 1만 톤이 필요한데 9천 톤 밖에 생산 못했다.
이럴 때에는 집단주의적 견지에서 볼 때는 다 나눠먹을 수밖에 없습니다.
9/10씩, 이렇게 분배해서 나눠 먹을 수밖에는 없어요.
노동을 잘하고 못하고에 대한 분배를 할 수가 없습니다.
그럼 평균분배가 되지요.
그러나 개인주의적 입장에서 볼 때는 9천 톤 생산 했어도
일 안한 사람과 일 한 사람과는 구별이 있어야 되겠다 해서
그 때는 ‘굶은 사람도 있고 한데 굶어 죽지 않게 좀 도와줘야 되겠다’
이렇게 해서 좀 도와줄 수 있어도 우선은 분배를 그렇게 해버리고 맙니다.
그러면 여기에서 집단의 이익에도 맞고 개인의 이익에도 맞는 그런 기준이 없겠는가,
뭘 기준으로 해서 평가해야 되겠는가?
개인들의 이익은 각각 다 차이가 있기 때문에
어느 한 개인의 이익을 기준으로 해서 평가 할 수는 없습니다.
모든 사람들에게 공동의 이익으로 되는 것은 집단의 이익입니다.
집단의 이익에 맞게끔 따라서 집단의 이익에 기여한 것만큼 분배를 해줘야 되겠다,
이것은 이기주의도 아니고 평균주의도 아니고
이건 집단의 이익에도 맞고 개인의 이익에도 맞는 거란 말입니다.
집단의 이익이 한 개인의 이익보다 더 귀중하다 하는 것은 집단주의가 아닙니다.
그걸 부인한다면 그건 바보이죠.
한 개인의 이익보다 집단의 이익이 더 귀중하다는 걸 부인하고서,
그것은 이기주의지요.
그런데 지금 북한에서 보게 되면 집단의 이익이 아니라
수령개인의 이익을 기준으로 해서 분배를 합니다.
그러니까 이건 집단주의도 아니고 개인주의도 아니고
철저한 수령이기주의입니다.
처음에는 집단주의를 하면서
계급주의적인 집단주의를 한다고 하면서 독재를 실시하다보니까
수령개인의 이익을 가지고서 평가를 하게 되었습니다.
북한에 있을 때 정치적 이익이다 할 때는,
정치적 이익이라 할 때는 전체 인민의 이익으로 되어야 하는데 수령의 이익이다,
김일성과 김정일에 대해 조금이라도 나쁜 말을 하면 죽인다 하는데 이게 뭐입니까?
그게 무슨 놈의 집단의 이익인가?
또 여기 사회에서 보면 집단의 이익이 아니라 개인의 이익이 중요하다 하면서
개인 자유방임주의로 나가면서 자유가 중요하지 왜 구속하는가,
자꾸 이렇게 나옵니다.
법도 무시하고.... 이게 사실 이기주의입니다.
사회적 집단 전체가 발전해야 합니다.
그걸 기준으로 해서 사회 전체 발전에 기여한 사람들한텐 더 많은 분배를 해주고
기여하지 못한 사람들은 적게 주고 이게 정의의 원칙입니다.
또 이렇게 하는 것이 집단의 이익에도 맞는 것입니다.
사람이 일 안하면 어떻게 되는가?
평균주의적으로 하게 되면 일을 안 합니다.
일을 안 하면 다 못살게 됩니다. 지금 저곳을(북한) 을 보십시오.
다 같이 잘 살자고 했는데 다같이 못살지 않습니까?
우리가 여기서 이 문제와 관련해서
평가의 기준은 언제나 집단의 이익이라는 것 그래서 앞으로 우리나라가,
우리민족이, 우리국가가 발전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되는가
이렇게 생각해서 전망계획도 세우고 나가야 되겠습니다.
거기에 맞는 것이 정의의 원칙에도 맞고 사랑의 원칙에도 맞습니다.
그러면 여론만 따라가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여론이 잘 될 때는 괜찮지만 여론이 잘못될 때는 어떻게 하겠습니까?
개인주의 개인의 이익을 존중히 여겨야 되겠다.
개인이 주장하는 건 공통적인 주장하는 건 다 옳다고 해서
그걸 따라가면 되겠습니까?
전쟁이 일어났다. 어느 개인이 전쟁에 나갈 것을 원하겠습니까?
전쟁이 일어났는데 죽으러 나가겠다는 사람이 있겠습니까? 나는 그만 두겠다,
다른 사람 나가시오 하고 백 명이면 백 명 다 이렇게 생각합니다.
이게 공동의 생각입니다.
그러니까 그걸 존중히 여겨야겠다, 전쟁 그만둬야겠다,
적이 들어와도 그만 둬야겠다 이렇게 하는 것이,
공통적인 여론 공통적인 요구에 응하는 게 정치인가,
정치는 집단의 이익이여야 합니다.
전쟁이 일어날 때 사람들이 다 전쟁을 반대다고 하면
정치하는 사람들은 국민들을 보고 '이 전쟁 안하면 우리가 노예가 된다.
우리나라가 망한다.
그러기 때문에 무조건 다 나가야 된다,
싸워서 그 가운데서 일부가 희생되더라도
우리가 싸워서 이겨야 만 살아나갈 수 있다.‘
이렇게 이끌어 나가야 합니다.
그런데 지금 자꾸 민주주의라고 하면서 여론정치를 한다고 말합니다.
여론을 물어보고 한다. 참여정치다.
법을 잘 지켜야 될 사람도 여론이 어떤가 이걸 생각하고 그럼 지도가 필요 없죠.
지도의 원칙은 그게 집단의 이익에 맞게 지도하라는 것이거든요.
학교에서도 학생과 선생과의 차이가 있어야지.
병원에 들어가면 의사와 환자와의 차이가 있어야지.
기술자와 육체노동자와의 차이가 있어야지. 지도하는 사람이 있어야지.
그저 평균주의적으로 해서 어떻게 하겠는가?
그저 다수결로만 해결하자고 해서 어떻게 하겠는가.
다수결은 봉건적인 전체주의를 반대할 때는
긍정적인 역할을 했지 봉건말기에 어떻게 되었습니까?
이 통치자들은 일을 하나도 안하고 놀고만 먹고
모든 어려운 일들은 다 평민들이 했습니다.
프랑스에서 보면 총리도 월급을 안 받고 했습니다.
콜베르라고 하는 총리는 월급을 안 받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말하자면 평민들이지요.
나라를 움직이는 건 다 평민인데 권한을 쥔 건 귀족 들이구요.
그러기 때문에 거기서 실지 나라를 움직여 나가는 건 평민인데
권력은 하나도 없다,
역할 한 것하고 지위하고 일치해야 되겠다.
그래서 유명한 시이에스라고 하는 사람이 책을 썼어요.
제3계급이란 무엇인가. 제3계급이란 평민을 말합니다.
제3계급은 처음은 뭔가, 전부다 전부라는 말은 전체사회를 움직여 나간다,
모든 걸 다 제3계급이 한다, 그 다음에 또 질문을 했습니다.
제3계급이란 뭔가? 제로다. 권한은 아무것도 없다, 결론은 어떻게 나왔는가?
구속돼서 자기 지위를 찾지 못하는 전부가 실질적인 전부가 돼야 되겠다
이렇게 결론을 내렸습니다.
결국은 개인이기주의나 평균주의나 실질에 있어서는 이기주의나 같다고,
북한이 평균주의를 주장하다가 집단주의가 평균주의로 나가다가
결국에 가서는 수령 한사람의 이기주의로 변하지 않았는가?
다 같이 잘 살자는 걸 주장하면서 지금 개인독재를 실시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 민주주의를 하는데 있어서
개인주의와 집단주의를 결합해서 나가는 문제,
그런데 지금 현 단계에서는 어느 것을 위주로 해서 봐야 되겠는가,
개인주의를 위주로 해서 봐야 합니다.
정의의 원칙을 위주로 해서 봐야 합니다. 왜 그런가?
사람이 먼저 개인의 생존과 발전의 문제를 해결하고서야
집단의 이익에 대해서 생각하게 됩니다.
그러기 때문에 일한 것만큼 자격이 있는 것만큼
대우를 해주고 분배를 해주는 원칙을 그것이 정의의 원칙이야.
정의의 원칙을 지키면서 점차 수준이 높아감에 따라서
같이 잘 살게 되는 문제를 해결해야 됩니다.
국가로 말하게 되면 우선 철저하게 법을 지켜야 합니다.
우선 법을 지켜야 합니다. 그게 공정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부족할 때는 개인들이 자꾸 주장하는 것도 봐야 됩니다.
여론은 법을 지키는 한도에서 여론을 생각해야지
여론에 의해서 법이 자꾸 달라지며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래서 이런 점에서 우리가 민주주의를 옳게 이해하는 점에서
개인주의와 집단주의를 옳게 이해하는 문제가 중요한 의의를 가집니다.
여기에서는(한국) 그저 집단주의라면 다 나쁘다,
저쪽에서는(북한) 또 개인주의라면 다 나쁘다 그건 옳지 않은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