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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여자의 하던 말이나 집의 모습으로 보아 남편이 있다면 그런 식으로 말하고 집을 그렇게 관리하지는 않았을 것 같고 그렇다면 과부로 사는 여자인 것 같은데 세상에 대해 많은 한을 가진 것 같다.
자식도 없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말하는 태도나 풍기는 분위기가 그런 분위기를 풍기기 때문이다.
혹 나 같은 사람도 그런 사람에게 도움을 줄 수 없을까?
아니 어쩌면 세상에 대해 모진 시련을 겪은 처지가 같은 사람이라면 서로에게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머리에 맴돈다.
나에게 작지만 백만 원 가까운 돈이 있으니, 그 돈으로 그 집의 일부라도 수리하는 데는 도움이 될 것 아닌가? 하다못해 갑판 정도라도 고칠 수 있는
그렇게 할 수 있으면 어떻게 끝날지 모르는 이 여행이 조금은 의미를 가질 수 있을 텐데.
이런 생각들이 자꾸 꼬리를 물고 일어난다.
전 같으면 별 이상한 음식점도 다 있다. 음식점도 경쟁인데 그렇게 해서 경쟁에 이길 수 있나 하고 생각하며 흘렸을 것이지만 삶의 대한 회의에 빠져 나름대로의 실의을 느끼고 있는 기철이 자기와 비슷한 처지인 사람을 만나 이런 생각이 들게 된 모양이다.
따뜻한 불가에서 저녁을 먹어 이제는 추위가 이길 수 있을 만한 상태가 된 기철은 근처에 있는 슈퍼에 들려 소주와 안주 몇 가지를 사가지고 다시 바닷가로 나갔다.
아까 음식점으로 가기 전 바닷가 햇볕이 들고 바람이 막히는 바위 뒤에서 그물을 깁고 있는 늙은 어부를 본 것이 기억나 그 어부와 술 한잔하면서 음식점 여자에 대하여 물어보아야겠다고 하는 좀 별스러운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왜 내가 처음 보는 여자가 던진 몇 마디 말에 이렇게 신경을 쓰는가 하고 스스로 반문한다.
그 사이 바닷가에는 어둠이 짙게 내리고 있었다.
바닷가 바위 뒤에서 그물을 깁던 어부는 이제 일을 마치고 그물을 개고 뒷정리를 하고 있었다.
조금만 늦었어도 어부를 놓질 뻔 했다.
어부는 기철보다 10여 살은 더 많아 육십 대 후반에 가까운 것 같다.
기철이 다가가며
“어르신 일을 다 끝내신 모양입니다?”
하고 물었다.
일을 하던 어부는 말을 걸어오는 사람을 돌아보다 낮이 선 사람이 서 있는 것을 보곤 뜨악해 하며
“그렇소.” 하고 짧게 대답한다.
“어르신 바쁘지 않으시면 저하고 소주 한잔하시겠습니까?”
기철이 웃으며 소주병을 보였다.
어부는 대답을 못하고 머뭇거린다.
초면인 사람이 같이 술을 먹자고 하니까 술을 좋아하는 어부지만 좀 별스러운 생각이 드는 모양이다.
“이상하게 생각하지 마십시오. 저는 서울에서 바다 구경이나 하려고 내려온 사람인데 술 생각은 나고 같이 먹을 상대는 없고 해서 아까 바닷가에 왔다가 어르신이 그물을 깁고 계시는 것을 보아서 아직 계시면 어르신과 소주 한잔할까 하고 이렇게 왔습니다.”
기철이 웃으며 이렇게 말하자 그 말을 들은 어부도 따라 웃으면
“응! 아까 여기를 지나간 양반이구먼. 나도 이 추운 날에 바다 구경을 온 사람이 누군가 했소. 좋소! 우리 집이 여기서 멀지 않으니 우리 집으로 갑시다. 이리 오시오.”
하고 앞 선다.
정말 어부의 집은 근처라 얼마 안 가서 도착했다.
집으로 들어가며
“여보! 손님 오셨어. 술상 좀 봐와.”
하는 어부의 말에 주방에서 저녁준비를 하던 60대 부인이 나와 기철에게 인사를 한 후 “저녁상은 어떻게 하고요?”
하고 묻는다.
“먹어야지. 손님 저녁도 준비해.”
하는 어부의 말에
“저는 조금 전에 음식점에서 저녁을 먹었습니다. 그러니 제 걱정은 마시고 식사하십시오. 저는 어르신과 소주나 한잔하렵니다.”
“그래요? 그럼 내 저녁상을 이리로 가지고 와. 술안주 좀 만들어 놓고.”
그 말을 들으며 후한 어부의 인심에 기철은 마음이 푸근해진다.
그래서 어부의 저녁상에 술상이 겸해 졌다.
술을 마시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기철이 지나가는 말로
“제가 저녁을 먹은 화순집이라는 음식점이 좀 이상하던 데요?”
하고 말을 꺼냈다.
“화순집에서 저녁을 하였소?”
“네!”
“그래 무엇이 이상하다는 거요?”
“다른 집들은 집도 잘 수리하고 간판도 화려하고 깨끗하게 단장을 해 놓았는데 화순집인가 하는 그 음식점은 통 손을 보지 않아 집도 허름하고 간판도 다 낡아 주위의 다른 집과 너무 대조되더군요. 밥을 먹으러 들어갈 때는 무슨 다른 생각을 하느라고 잘 보지 못하고 들어갔는데 나올 때 보니까 그렇더군요.”
“응! 그 집!”
어부는 잠시 침묵하고 기철을 쳐다보더니
“그 집은 좀 사연이 많아. 그러고 보니까 자네가 눈 설지 않았던 것이 이유가 있었군.”
술을 먹으며 이런저런 이야기 끝에 나이 이야기가 나와 어부가 기철보다 15세가 많은 칠십대 초반 것을 알고 기철이 말을 놓으시라고 했고 어부도 기철의 청을 받아 말을 놓고 있다.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자네가 그 여자의 죽은 남편과 아주 비슷하게 생겼네. 아니 아주 쏙 빼다 박았어. 쌍둥이라고 해도 믿겠어.”
“네?”
“그 여자 남편이 10년 전에 죽었는데 영락없는 자네야.”
“제가 그렇게 닮았어요?”
“아까는 그 여자 남편 생각을 하지 않아 지나쳤는데, 틀림없는 자네야. 어떻게 이렇게 닮을 수 있을까?” 하고는 그때 마침 물을 떠 가지고 온 자기 아내에게 “안 그래 여보! 이 젊은이 죽은 화순댁 남편하고 쌍둥이 같지 않아?” 하고 묻는다.
“그러고 보니 쏙 빼닮았네요. 화순댁 남편하고.” 부인의 말이다.
기철은 말문이 막혔다.
그런 까닭이 있을 줄이야 기철은 상상도 못했다.
“남편이 어떻게 죽었는데요?”
“확실치 않지만 내 생각에는 빛 때문에 자살한 것 같아.”
“그래요?”
10년 전 빛 때문에 죽은 남편
그 남편 비슷하게 생긴 자기를 보고 그 여자는 어떤 심정이었을까?
죽은 이에 대한 그리움이었을까? 원망이었을까?
이상하게 기철의 가슴이 먹먹해 온다.
“그 뒤로 혼자 살고 있나요?”
“자네가 보지 않았나? 그동안 주위에서 많은 사람이 권하기도 하고 스스로 청혼을 한 사람도 있었지만, 지금까지 십 년이 넘도록 혼자지. 집도 그 후로 수리 한 번 하지 않고. 한이 많은 여자야.”
“그렇군요.”
인생 실패자끼리에 대한 상련이 다시 한번 기철의 가슴을 울린다.
자기가 그녀의 죽은 남편과 닮았다는 것이 그런 그를 보고 그녀의 마음은 어떠했을까 하는 생각이 머리를 떠나지 않으며
그렇게 이런저런 말을 하며 남은 술을 다 먹고 기철은 일어섰다.
“어르신 술 잘 먹었고 말씀도 감사했습니다.”
“아니 무슨 말을. 오리려 내가 잘 먹었지. 어디로 갈 텐가?”
“이제 잠자리를 알아보아야지요.”
“그래! 그럼, 우리 집 빈방이 있는데 여기서 쉴 텐가?”
“그래도 되겠습니까?”
“그럼! 자식 놈들이 모두 대처로 나가고 난 다음부터 늘 비어있는 방인데 깨끗하지는 않지만.”
“아무려면 어떻습니까? 하룻밤인데.”
하던 기철은 그대로는 잠을 잘 수가 없을 것 같다.
아무래도 식당 주인 여자를 다시 한번 만나 보아야 할 것만 같기 때문이다.
전 같으면 쑥스럽고 귀찮은 생각에 피했을 터이지만 지금은 자기를 보고 느꼈을 그 여자의 아픔이 그리움이든 원망이든 자기의 아픔처럼 느껴와 모르는 척할 수가 없다.
그녀가 지금 활달하게 살아간다면 이런 생각이 안 들었을 테지만 어부의 말을 듣고 나니 음식점에서보다 더 깊은 상련이 느껴지며 어쩔 수 없이 포기 못 하는 인생을 살아가고 있는 것 같은 그녀를 그냥 지나칠 수가 없을 것 같다.
어쩌면 그것은 기철 자신이 우울증에 빠질 정도로 세상에 대하여 느꼈던 회한의 감정과 같은 것이 아닐지 그리고 그것은 비록 그 여자가 죽음까지는 생각지 않고 있지만, 세상에서 패배한 사람의 모습에 또 다른 한 편린인지 모른다.
이런 생각에 들며 지금 나가면 언제 돌아오게 될지 늦어지면 이곳으로 못 오게 될지 모르는데 그렇게 되면 이 집에 공연히 폐를 끼칠 것 같아
“아! 아닙니다. 제가 깜빡 잊고 있던 일이 있어서 나가봐야 할 것 같군요. 그러면 늦어질 것 같으니 그냥 주무십시오.”
“그럼 나갔다 들어오게. 우리가 방을 치워 놓을 테니.”
“공연히 폐가 되게 그러지 마십시오.”
“폐는 무슨 폐, 그런 걱정하지 말고 늦더라도 들어오게. 방은 저쪽 건너 방이야. 어구를 손질할 일이 있으면 쓰는 방인데 내일 써야 하는 어구를 고칠 일이 있어 내가 쓰려고 군불도 때어 놓았어.”
“그런 방을 제가 쓰면 됩니까. 저는 다른 곳에서 쉴 테니 걱정마십시오.”
“나야 그 덕에 하루 더 쉬지. 그러니까 자네야 말로 걱정말고 들어와. 늦어도, 이곳은 대문을 잠그지 않는 동네니 아무 때나 들어올 수 있어.”
하고 따라 나오며 방의 위치를 가르쳐 준다.
세상에는 이런 사람도 있구나.
짧지 않은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이런 감동을 받는 것이 몇 번이나 될까?
세상에 이런 사람들과만 어울릴 수 있다면 얼마나 즐거운 일일까?
이런 생각을 하며 「예!」하고 건성으로 대답하며 어부의 집을 나온 기철은 바닷가에서 잠시 바람을 쏘이고 식당으로 갔다.
가면서 한편으로 식장 주인 여자에게 부담을 주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도 없지 않았지만, 그녀를 다시 보고 싶은 감정이 아니 그녀에게 일어났을 감정의 상태에 대한 궁금증이 이런 우려를 시들게 했다.
그러면서 옛날에 영희와 연애 하던 시절의 생각이 났다.
그때도 내가 이렇게 적극적이었나 하고
식당으로 들어서는 기철을 다른 손님인 줄 알고 인사를 하려던 주인 여자가 그 손님이 기철인 것을 보고 놀란다.
그러나 이내 냉정을 찾고
“무엇 잊고 가신 것이 있습니까?”
하고 묻는다.
식당에는 두어 사람이 앉아 늦은 저녁을 먹고 있다.
“아니요. 그게 아니고 술 좀 먹을 수 있을까 해서요.”
“우리 집은 밥집이라 술은 팔지 않은데요.”
“술은 내가 사왔으니 안주나 좀 만들어 주시지요.”
하며 기철이 주머니에서 소주를 두병 꺼내 놓는다.
저녁을 먹으며 「우리 집에서는 술을 팔지 않습니다.」하는 벽보를 보았고 또 술이나 음료수를 넣어두는 음료수 냉장고에 술이 없었던 것이 생각나 일부러 술을 사가지고 온 것이다.
“우리 집은 술 먹는 곳이 아닙니다. 이 앞집 음식점으로 가시지요.”
전 같으면 이런 말을 듣고 더 이상 그 음식점에 있을 기철이 아니다.
아니 이런 어촌에서 음식점을 하는 여인에게 관심을 가지고 다시 만나보러 오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 기철은 세상의 패배자로서 상련을 느끼는 이 여인에게 깊어지는 관심을 놓지 못 하고 있는 것이다.
“아주머니 매운탕 솜씨가 내 입에 딱 맞아서 그래서 자려고 모텔에 들어갔다가 아주머니가 끓어주는 매운탕에 소주 한잔 먹고 싶어 다시 왔습니다. 그러니 너무 빡빡하게 그러지 마시고 매운탕 하나 끓어주세요.”
“전주가 있으신 것 같은데?”
“네 다른 곳에서 한잔했습니다. 그랬더니 매운탕 생각이 더 간절하더군요. 그러니 선심 좀 쓰시지요.”
“이러면 안 되는데.”
“늘 오는 것도 아니고 이곳에 온 첫날 처음 하는 부탁합니다.”
“이 근처에 술 드시기에 좋은 집이 많은데 왜 내 집에서---”
“말했잖아요. 아주머니 매운탕 솜씨에 반해서라고.”
“다른데 매운탕 잘 끊이는 집을 가르쳐드릴 테니 그리로 가시면---”
“다른 사람이 끊이는 매운탕이 아주머니 솜씨와 같겠어요.”
하며 기철이 기어이 탁자에 자리를 잡고 앉는다.
말은 못 해 준다고 하면서 태도로는 그렇게 완강히 거부하는 몸짓이 아니기 때문이다.
마침내
“그분 참 곤란하게 하시네.”
하고 잠시 말문을 닫고는 술병을 식탁 위에 놓고 기대에 찬 눈으로 자기를 바라보는 기철을 주시하다가
“좋아요. 서울에서 오셨다고 했으니, 오늘은 내가 특별한 대접을 하죠. 한쪽에 앉으셔서 다른 손님에게 폐가 되지 않게 해 주세요.” 한다.
그 말에 기철이 머리를 숙이며
“감사합니다.” 하는 인사를 한다.
첫댓글 즐~~~~감!
즐감하고 감니다
무혈님!
지키미님!
감사합니다.
복받사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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