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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글 스크랩 [김재화의 유머 풍속사] ④ 전두환 편 ⑤ 노태우-김영삼의 슬픈 코미디 ⑥ 김대중-이경규 편,
잠실/맥(조문희) 추천 0 조회 365 15.06.16 12:19 댓글 1
게시글 본문내용

.

 

 

 

[김재화의 유머 풍속사] ④ 전두환 편

 

 

이주일과 전두환은 그들의 전성기였던 1980년대 불편한 관계였다. 사진은 2005년 12월 한 결혼식에 참석한 전 전 대통령 <사진=뉴시스>

 

 

전두환-이주일 공통점 8가지

 

1980년. 김영삼 집에 기르던 닭 모가지를 비틀었지만, 새벽은 왔고 아침도 밝았다. 긴급조치 시대가 끝나고 ‘서울의 봄’을 지나 5공화국이 탄생했으니까.

 

전두환과 이주일은 동시에 황제로 등극했다. 한 사람은 헛기침이라도 하면 이 사회가 온통 뒤집어졌으니 가히 정치의 연금술사였고, 다른 한 사람은 어눌하고 띨띨하게 말을 할수록 더욱 온 인구에 회자된, 대중의 마음을 움직이는 우상이었다.

 

웃음의 황제는 대관식만 늦었지 그 준비는 아주 오래 전부터였다. 이주일, 아니 본명 정주일은 거의 심부름꾼 수준으로 악극단을 따라다니다가 1972년 ‘하춘화 쇼’ 보조사회자로 겨우 한 자리를 차지했다.

향단이 역을 맡은 백금녀가 화장실에서 소변량이 많았는지 너무 오래 있었던 덕에 대타를 맡았다. 그의 여장(女裝)은 허리가 끊어질 정도로 폭소가 터지는 요절복통 그 자체였다.

마침내 이주일에게 방송 출연기회가 왔다. 방송통폐합으로 TBC를 흡수한 KBS 2TV에 등장했던 것. 당시 코미디 전문 PD 김경태(그도 머리가 벗겨졌었고, 일찍 세상을 떠났다)는 “뭔가 보여 주겠다”는 이주일을 믿고 ‘토요일이다 전원집합’이란 일본 프로그램 카피본 ‘토요일이다 전원출발’에 전격 기용했다. 그는 전두환이 그랬던 것처럼 ‘2주일’ 만에 확실하게 떴다.

 

이 무렵 세간의 화제는 ‘전두환과 이주일의 공통점 시리즈’였다. 나중엔 강아지도 읊조릴 정도로 대중성과 유행성이 강했다.

 

1. 데뷔 시기가 같다.

2. 머리가 벗겨졌다.

3. 축구를 좋아한다(전두환은 육사에서 골키퍼를 했고, 이주일은 박종환 감독과 함께 축구선수였다).

4. 텔레비전에 자주 나온다.

5. 푸른 집에 산다(청와대와 극장식당 ‘초원의 집’).

6. 미국엘 자주 간다.

7. 웃긴다. 마지막 것이 결정적이었다.

8. “뭔가 보여주겠다”고 하면서 보여 주지 못한다.

 

이런 공통점이 있는데도 전두환과 이주일을 닮았다고 하지 않을 수 있을까?

 

“출연정지, 꼭 말로 해야 아나”…5공 코미디 통제

 

이주일의 코미디 중에 “내가 국회의원이 돼서…” 어쩌구 하는 게 있는데, 그 정도로만 말해도 사람들은 이미 뒤집어졌다.

“아니 저런 친구가 국회의원이 된다구?! 우하하하하~!!”

 

그런 그가 진짜 정치인이 되었을 때는 아무도 웃지 않았다. 이주일은 “코미디 한 수 잘 배우고 갑니다”라는 유명한 대사를 남기고 정치판을 떠나 이내 무대로 돌아왔다. 개그계의 대부로 불리는 전유성이 말했다.

 

“전직 코미디언이 정치를 했습니다. 이제 대통령이나 국회의원 정도 지낸 전직 정치인이 코미디언이 되는 세상도 왔으면 좋겠습니다.”

 

전유성은 정치와 무대를 넘나들며 대중을 휘어잡는 이주일에게서 그 가능성을 봤는지도 모른다. 어쨌건 이주일이 전유성의 바람처럼 ‘코믹 토크쇼’를 진행했으니(요즘엔 강용석이 예능프로그램에서까지 방방 뜨고 있고!), 정치인이 의사당에서만 웃길 것이 아니라 방송에서도 웃기라는 국민의 희망에 부응한 것일까?

 

이주일은 정치판에서 겪은 숱한 왕따에 우여곡절이 심했던 것 같았고(언젠가 필자에게만 살짝 귀띔한 적이 있다), 정계진출 이전인 1980년대에 전두환과의 사이에서 불협화음이 생긴 적이 있다.

5공 정권은 이주일의 머리카락을 빗댄 코미디와 저질 오리궁둥이 춤이 현직 국가원수를 모독하고, 건전한 국민정서에 역행하며, 어린이들에게 유해하다는 이유를 들어 방송출연 정지령을 내렸다. 하긴 TV배우 박용식도 전두환을 닮았다는 단지 그 ‘죄’ 하나로 방송활동을 하지 못했으니!

 

 

“못 생겨서 죄송합니다” “뭔가 보여드리겠습니다” 같은 유행어로 대중을 웃겼던 코미디언 이주일. 사진은 1982년 그가 낸 서울참새 시골참새 음반 <사진=뉴시스>

 

 

정치인이 코미디언 되는 세상

 

세월은 흘렀다. 전두환은 권좌에서 물러났고, 이주일은 교통사고로 외아들을 잃었다. 그때 이주일은 전두환 집에 초대돼 함께 간 최병서에게 업혀 나올 정도로 만취한 일이 있다.

“섭히 생각 말그래이! 내가 출연정지 시키라 한 적 없어.”

이주일은 속으로 이렇게 답하지 않았을까?

“꼭 말로 해야 시키는 건가…?”

 

‘배추머리’ 김병조도 5공 피해를 입은 비운의 코미디언이라 할 수 있을까?

5공이 계속되는 동안 김병조의 지적 언어유희 개그는 인기가 대단했다. 그가 자기 분수도 모르고 날뛰는 자들에게 “지구를 떠나거라” “나가 놀아라” “소금 뿌려라” 하면, ‘정의사회 구현’에 불타는 서민들은 속이 후련함을 느꼈다. 김병조는 하이브로 코미디의 전형을 보여주었다.

누구 눈치도 살필 것 같지 않은 수사법을 구사해 힘없는 이들의 생각을 대변해 주었다.

 

그런 김병조가 자기 딴에는 분위기를 탄다고 한 것이 오버가 되고 말았다. 당시 여당 민정당(민주정의당)을 두고는 ‘정을 주는 당’이라 하더니, 유일 야당인 통민당(통일민주당)을 ‘고통을 주는 당’이라고 했다가 노도와도 같은 국민들의 힘에 방송을 떠나야만 했다.

용비어천가라도 아무나 해서는 어설프기 그지없는 4류 코미디가 되는 모양이다.

 

 

 

 

[김재화의 유머 풍속사] ⑤ 노태우-김영삼의 슬픈 코미디

 

 

김영삼 전 대통령과 노태우 전 대통령. 두 대통령은 임기 동안 국민들의 코미디 소재로 활용됐다.

 

 

물태우 “이 사람 믿어주세요” vs YS “강간도시 만들겠습니다”

 

노태우는 36%의 지지를 얻고 대통령이 되었지만, 당선 다음 날부터 내내 불안했다. 절친이 7년이나 대통령 노릇을 해내는 것을 옆에서 보긴 했지만, 왠지 자기에게 맞지 않은 옷을 입은 것만 같았다.

 

노태우는 보통사람의 수수함을 보여주며 인기를 끌어올리려 했지만, 대통령 선거 이듬해부터 곤욕을 치렀던 것이다. 민심은 13대 총선에서 여소야대 정국을 만들어 버렸다.

노태우의 “믿어주세요”는 성대모사의 달인 최병서의 입에서 딴죽이 걸리곤 했다. 노태우는 “나를 코미디 소재로 삼아도 좋다”고 말한 유일한 대통령이었으나 아이로니컬하게도 그를 코미디로 삼은 경우는 별로 많지 않았다. 시비도 흥미나 관심이 있어야 거는 법!

 

태정태세문단세 예성연중인명선…이윤박최돌물깡김노이박….

사람들은 조선시대부터 이어지는 우리 통치권자 계보에서 노태우를 ‘물’로 묘사했다. 하긴 일부 코미디언이 ‘물’을 소재로 삼긴 했었다. 나중에 그의 천문학적 비자금이 밝혀졌을 때 코미디언들은 노태우의 ‘물’을 ‘식은 숭늉’이 아닌 ‘펄펄 끓는 물’로 고쳐 불렀다.

 

다음은 노태우 대통령을 소재로 삼은 몇 편 안 되는 코미디인데 이것 말고는 없으니 서둘러 읽고, 다음 선수인 김영삼으로 넘어가야겠다.

 

“그를 물이라 하지 마라. 슬프고 가슴 아프다. 물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 줄 아는가?

나? 물고문 당한 양심수다.”

 

“그를 물이라 하지 마라. 한여름에도 오싹 추워지는 말이 물이다. 물이 얼마나 무서운지 아는가?

나는 홍수로 알거지가 된 수재민이다.”

 

‘YS는 못 말려’를 필두로 대통령 실명 조크집이 가장 많았고, 그 자신이 여기저기, 이 입 저 입에서 마구 ‘씹히는’ 유머의 소재가 된 이가 김영삼이었다.

 

문민정부가 들어섰다. 그의 사투리는 시중에서 저절로 개그로 만들어졌다. 김영삼 대통령이 지방 순시 도중 연설을 했다. 그는 ‘경제위기’를 설명하고 그 도시를 ‘관광지’로 개발하겠노라고 역설했다.

“우리 갱재는 이깁니다(우리 경제는 위기입니다).”

 

우리 경제가 “이길 거”라는 말에 사람들은 대박이라며 손이 떨어져 나가도록 박수를 보냈다. 그는 국민들이 자신에게 용기를 준다는 생각에 기분이 좋아졌다. 힘을 내어 다음 말을 이었다.

“이 지역을 ‘강간’ 도시(관광도시)로 만들 것입니다.” 강간이라니!

 

청중들 모두가 험악한 표정이 되었다. 환호를 기대했던 김영삼은 의아해하며 혼자 중얼거렸다.

“…우라까이라운드(우루과이 라운드) 때문에 사람들이 뒤집어진기라…”

 

야사에 따르면 “머리는 빌릴 수 있어도 건강은 빌릴 수 없다” 던 김영삼은 자신을 무식한 사람으로 표현하는 코미디를 아주 싫어했다고 한다. 그의 입노릇을 한참 했던 박종웅 전 한나라당 의원은 지금도 말한다.

 

“YS가 당시 그린벨트를 잘못 이해한 것은 사실이지요. 그러나 그는 우리나라 최고 지성인을 배출한 S대 출신 아닙니까? 그의 머리를 의심해선 안 되죠.”

 

그러나 YS유머는 거의 전부가 그의 머리를 부정적으로 빗댄 것이니 어찌하리오. S대를 나오지도 못한 젊은 말재주꾼 엄용수, 심형래, 김형곤 등은 ‘밀실개그’를 통해 감히 김영삼의 머리에 자꾸 흉을 봤다.

앞서 말한 대로 김영삼 대통령을 소재로 한 우스갯소리 모음집은 불티나게 팔렸다. 이 과정에 사실 여부를 떠나 수많은 루머 성 개그가 탄생했다. 당시 최고 으뜸개그로 떴던 것.

 

YS가 미국 대통령 클린턴을 만나러 갔다.

YS가 ‘Danger!’라는 표시를 보고 “오우, 저 단거를 먹고 싶어요.”라 말했다.

수행원이 얼굴이 벌게지며 설명하길 ‘G’가 우리말 ‘ㅈ’으로 발음되어 ‘데인저’라고 하자, 그는 많은 사람들 앞에서 외쳤다. “Oh, my god!(조+ㅅ)”

 

또 다른 것들도 개그형식이 거의 같다. YS가 정치공작의 대명사인 안기부의 기구를 축소하고 안기부장의 국무회의 불참을 지시하자, 기자들이 그 배경에 대해 물었다.

“안기부장의 국무회의 참석은 통상적인 관례였는데 불참토록 한 이유가 뭡니까?” 그러자 YS는 아주 당연하다는 듯이 대꾸했다. “몰라서 묻나? 장관들이 대통령과 회의하는데 부장이 어떻게 자리를 차지하고 앉을 수 있노? 국장도 이 자리에 못 끼는데.”

 

YS가 대통령에 당선되자 여기저기서 축하 전화가 걸려왔다. 절친한 친구와의 통화내용.

 

“축하한다. 드디어 당선이 됐구먼.”

“고맙데이.”

“부인도 그리 고생하더니 이제 퍼스트레이디가 되었구먼. 진심으로 축하하이.”

그러자 YS가 화들짝 놀라며 “그기 무슨 소리고? 우리 집사람이 언제는 퍼스트 아니었나. 우리 집사람은 절대 세컨드가 아니다.”

 

김영삼은 독설로도 유명하다. 그가 당내의 끊임없는 반목을 이겨내며 결국 권좌에 오를 수 있었던 것도 거칠 것 없고 공격적인 발언 덕분이었다. 그는 말을 하는데 주위를 둘러보거나 누구를 의식하는 것을 선천적으로 하지 못한 것 같다. 와병 중인 두 분의 쾌유를 빈다.

 

 

 

 

[김재화의 유머 풍속사] ⑥ 김대중-이경규 편, ‘개그 황제’ 웃긴 ‘정치 9단’ 위트

 

 

1996년 MBC <이경규가 간다> 김대중 편. 많은 코미디언들이 김대중 전 대통령의 위트에 반해 그를 따랐다.

 

 

이경규 “왜 저를 가장 좋아하시죠?” DJ “안 그러면 편집될까봐”

 

세계 방송문화계가 우리나라 ‘아, 대한민국’을 향하여 조롱을 한 적 있었다. 숨소리마저 엄숙하게 내뱉어야 했던 유신시절에도 없었던 정부의 조치가 5공 때 있었던 것이다.

‘방송에서 코미디를 없애라!’는 포고령이 내려졌었던 것이다. “백성들이 함부로 웃으면 떼끼를 하겠습니다!”라 했으니 문명국들이 우릴 얼마나 우습게 봤을까. 그것이 나중에 ‘1사1프(로그램)’로 다소 완화되기는 했지만.

 

김대중은 달랐다. ‘국민의 정부’가 들어서면서 코미디는 가히 르네상스 시대를 맞았다. 사실 김대중 후보는 선거전에서 부드러운 유머를 구사해 냉철하고 이지적으로 보이는 이회창 후보와 차별화 전략을 폈다.

그것이 대통령으로 당선될 수 있었던 절대적 요소(필자 주장)였거나 최소 20만 표는 더 얻게 했다(정치평론가 분석)는 생각이 든다.

 

코미디언들과 인연을 가장 많이 가진 대통령이 김대중이었다. 일반인들에게 알려지지 않았지만, 김대중이 대통령에 당선되기 직전 최양락-팽현숙 부부와 이봉원-박미선 부부를 따로 만나 식사를 한 일이 있다. 이는 야당 대통령 후보였던 김대중이 요청한 게 아니었다. 오히려 유머감각이 있는 정치인을 만나고 싶어 했던 개그맨 부부들이 원해서 마련된 자리였다. 우연일까? 대통령 선거전이 치열하게 전개되자 많은 코미디언이 자발적으로 유세장을 쫓아다니며 김대중에게 한 표를 달라고 호소했다.

 

코미디언 엄용수는 오래전에 이미 2,3차례나 파경을 하고 불행한 가정생활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김대중 정부 때는 살 맛이 팍팍 난다고 했다. 그는 오래 전부터 열광적인 김대중 지지자였다. 엄용수는 전·현직 대통령들의 음성모사를 아주 잘 내는데, 그중에 백미는 역시 김대중 흉내다. 좋아하는 사람이어서 모사가 더 쉽다고 했다.

 

유머 구사···냉철한 이미지 이회창과 차별화

 

초창기 김대중을 소재로 한 코미디는 다분히 인신공격적 성격이 짙었다. 코미디언들은 김대중이 지팡이를 짚고 절뚝거리며 걷는 장면을 연출했다. 하지만 이후 그가 청와대 행이 유력해 보이고 실제로 집권하자 급격히 달라졌다. 김대중을 풍자하는 코미디언들은 대부분 목소리와 분위기에 치중했다. 당시 개인기의 천재라 불렸던 개그맨 심현섭이 히트시킨 DJ 성대모사만 봐도 그랬다. 심현섭은 움직이지 않고 꼿꼿이 서서 다소 쉰 듯 하지만 결연한 의지가 담긴 목소리를 내어 김대중을 묘사해냈다.

 

DJ는 다변가에 달변가다. 치밀하고 과학적인 화술을 지녔다. 많은 독서에서 찾아낸 무궁무진한 정보량이 뒷받침해주는 후천적 기술이겠지만, 정치 상황에 맞는 방어적 논리어법이 그의 뛰어난 말솜씨를 만들었다. 김대중은 웃음을 알았다. 김대중은 영어(囹圄)의 몸일 때도 화초를 길렀을 만큼 꽃 가꾸기를 좋아했다. 꽃에 물을 주면서 인상을 쓰는 사람은 드물 것이다. 자주 핍박을 받았기에 늘 굳어있어야 할 그의 얼굴이 간혹 부드럽게 펴진 것은 유머의 효용가치를 알았기 때문이라 본다.

 

우리나라 대통령 중에 코미디언을 가장 많이 만난 사람인 김대중, 이경규와의 인연은 그중 각별하다. 그가 영국에서 돌아와 정계에 복귀한 뒤 ‘새정치국민회의’를 창당해 총재로 있을 때였다.

MBC-TV <일요일 일요일 밤에> ‘이경규가 간다’ 코너에 깜짝 출연해 코미디언 이경규와 장시간 이야기를 나눈 일화는 유명하다. 김대중은 이경규 일행의 예고 없는(그 프로그램은 유명인을 전격 방문하여 인터뷰를 따내는 파격적 방식을 썼다) 방문에도 당황하지 않고 태연히 맞아주었다.

 

이경규 “총재님이 가장 좋아하시는 코미디언은 누굽니까?”

김대중 “(주저 않고) 바로 이경규씨죠. 허허!”

 

이경규는 궁금했다. 나중에 김대중에게 진짜 자기를 좋아하느냐고 물었다. 김대중은 천연덕스럽게 “이경규라고 말하지 않으면 편집될 것이라 생각이 들었어요.”라고 하더란다.

 

그 인연이었을까? 그 뒤로 두 사람은 서로 팬으로 가까워진다. 이경규는 김대중의 지지기반이 절대 아닌 영남권 출신이고 그 지역 사투리를 심하게 쓴다. 그런 그가 야당 총재 김대중과 ‘우호적인’ 대화를 길게 했고 우정을 이어간다는 것은 상당한 의미가 있다. 우리나라에서 큰 자리(특히 대통령 같은)를 차지하려면 영남권의 비토를 없애든가 최소한 줄여야 하는 정치공학이 있지 않은가 말이다.

사람들은 알게 모르게 김대중을 ‘코미디를 아는 정치인’으로, 이경규를 ‘정치를 아는 코미디언’으로 느꼈다. 상호 대박이 났던 것이다.

 

김대중을 소재로 한 코미디 역시 코미디언의 뜻이나 내용과는 무관하게 홍보효과를 만들어내는 게 사실이다. 인기 연예인들이 이른바 ‘개인기’를 선보일 때 김대중의 목소리를 흉내 냈다. 이것은 정치인 김대중이 대중 곁으로 다가서는 데 ‘보이지 않는’ 도움을 주었다. 조용필을 키운 사람은 이 땅에 적어도 5백 명은 된다. 그렇다면 김대중도 코미디언의 힘 덕에, 특히 이경규가 ‘길렀는지도’ 모를 일이다.

 

 

 

By 김재화 말글커뮤니케이션 대표,

‘유머1번지’ ‘웃으면 복이 와요’ 등 TV코미디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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