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산모퉁이는 기러기들 때문에 행복합니다.
냇물에서는 점순이 아이들이 수영하고 있고,
흰순이 아이들은 툭 하면 몰려와 예쁜 짓하고(풀 뜯어먹거나, 가만히 앉아 있는 모습만 봐도 예쁘네요.)
그런데 오늘, 놀라운 장면을 목격했습니다.
알 품은지(6.13일부터 품기 시작) 두 달을 훌쩍 넘겼는데도이 여전히 알 품고 있는 기깡이. 그 무더운 여름에 푹푹 찌는 비닐하우스 3층 선반에서 꿈쩍도 안하는 기깡이.
"이렇게 안 나오는 걸 보니 아마도 무정란 아닐까요?"
제 말에 산지기도 고개를 끄덕.
기깡이가 잠시 외출한 사이 둥지를 살펴보기로 했어요.
어머나! 이게 뭐야?
3층 선반에 있던 '제기와 팽이 봉지'에서 화려한 반짝이 술을 꺼내 둥지를 만든 건 알았는데...
가운데 알 딱 하나 있고,
그 주위는 모두 나무팽이.
알을 들어보니 엄청 가벼웠어요.
세상에....
기깡이는 80여일 동안 텅 빈 알 하나와 팽이를 그토록 소중하게 품고 있었던 거예요.
이걸 보니 정말 슬펐어요.
기깡아, 그렇게 아기를 갖고 싶었니?
- 산지기 말에 의하면 요즘 기깡이가 흰순이네 아이들을 데리고 다니는 모습을 몇 번 보았대요.
흰순이네 아이 둘을 돌보는 기깡이.
<기러기 역사>
- 2023년 봄, 산모퉁이에 온 기러기 엄마와 새끼 세 마리.
닭장에서 닭들과 함께 살게 되었는데...
기러기 엄마는 새끼 세 마리를 보호하려고 닭들을 어찌나 괴롭히는지
그래서 기러기 엄마는 '기깡이'
털이 새하얀 아이는 흰순이, 약간 회색끼가 있는 아이는 점순이.
누가 봐도 수컷 같은 아이는 기남이라고 이름을 지어주었지요.
이렇게 예쁘게 컸어요.
그런데 기남이가 개에게 물리는 사건이 일어나면서...
안타깝게도 하늘나라로 떠나고 말았지요.
암컷만 세 마리가 있어서 수소문하여 신랑 한 마리를 데리고 와서 오래오래 살라고 이름을 '기롱이'라고 지어 주었어요.
갇혀 살기만 했던 기롱이는 산모퉁이가 어색하여 한동안 닭장 앞에서 서성거리고, 다른 기러기들과도 잘 어울리지 못했는데...
그런데 웬걸, 어느 날 보니
기러기 세 마리를 모두 거느리고 있었어요.
그리하여 점순이가 포란을 시작했고, 그 다음 흰순이.
그리고 마지막으로 올해 6월 13일 기러기엄마 기깡이도 포란을 시작했지요.
점순이가 10마리 아기를 데리고 나왔고,
그 다음 흰순이가 11마리,
또 점순이가 오늘 두 마리 아기를 데리고 나와서 도합 12마리를 탄생시켰네요.
첫댓글 나무팽이. 딱딱하고 아팠을 거 같은데...
그 더운 여름날, 뜨거운 비닐하우스 속에서 80일을 품고 있었다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