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열정과 합의서
엄동설한 살을 에는 추위다.
새벽 기도 드리고 올라오면 구운돌 침상이 부른다.
그 유혹에 넘어가 엉덩이 대면 발목 잡힌다.
서둘러 환복하고 스트레칭 후 무조건 나가야 몸이 열린다.
이정하 시인 봄을 맞는 자세 끝부분처럼..
‘내가 먼저 문 열고 나서지 않으면/
봄은 오지 않는다/
끝끝내 추운 겨울이다’
침대를 뒤로하고 현관문 열기가 어렵다.
성경을 펴고 무릎 꿇으면 통독과 기도도 쉽다.
시작이 반이다.
뭐든 시도하면 된다.
동장군 엄습에 더 뛰게 만든다.
가냘픈 여성 청소 노동자가 아침마다 전대 담장 길을 쓴다.
깨끗한 거리 달리며 ‘춥지 않으세요?’ 한마디 던진다.
우리 성도들 일터 나갈 시간 ‘춥지 않을까?’ 짜한 마음이다.
가로수가 헐떡거리는 숨소리를 들은 것 같다.
센바람이 점령한 운동장이 매섭다.
손끝이 아리고 콧등이 시려 눈물이 고인다.
강한 바람에 몸을 맡긴다.
10킬로 마지막을 4분 10초에 끊었다.
숨넘어갔다.
열량이 내려가 가볍다.
젖은 몸 온수로 씻으면 감사가 흐른다.
어릴 시절, 씻지 않고 살았다.
몸 구석구석에 때가 눌어붙었다.
마른 버짐이 얼굴에 폈다.
머리에 부스럼이 났다.
굴렁쇠 굴리며 논둑길 달리다 손발이 텄다.
처마에 달린 물의 뼈 고드름을 꺾어 우둑우둑 깨물었다.
가오리 연 날리고 어름 치다 동상에 걸렸다.
이가 물면 몸이 가렵다.
자다 깨어 이를 잡아 엄지손톱으로 으깨 죽이며 등잔불에 태웠다.
까만 이불에 오줌을 쌌다.
정희 친구 집 소금 받으러 간 일이 엊그제 같다.
지나 온 순간들 당연한 것 하나 없는 하나님의 은혜였다.
달음질하고 씻고 먹는 일 걱정 없다.
어머니가 키워 준 덕이다.
하지만 어머니는 어깨가 아파 청소도 못할 지경이다.
겨드랑이에 손 넣고 부축하기 어렵다.
병원을 바꿔 치료한 탓이다.
센트럴 병원을 다시 찾아 처방하였다.
수월하기에 효령 복지센터로 갔다.
물리치료실에서 각종 기기로 몸을 풀었다.
하루해가 기울었다.
우치공원 앞 빈터에 버려진 듯 무심한 포클레인을 봤다.
영락없이 늙은 어머니의 웅크린 자세였다.
다섯 자식 위해 미련할 정도로 버텨내다 고개 떨군 모습이었다.
발버둥 치며 몸을 굴려 누대(屢代)의 삶을 다졌다.
가리나무 둥치 머리에 이고 내려오다 굴러 팔 꺾인 옛이야기를 들었다.
매주 방문 간호사가 주사 놓으면 5시간 후 바늘 빼러 간다.
그림자도 안 보여 스위치를 올린다.
포획된 짐승처럼 움츠린 몸이다.
망가진 고철 덩이로 페기 처분만 기다리는 포클레인 같다.
생각할수록 목이 멘다.
곁에 앉은 아들에게 뱉는 하소연은 녹슨 삶의 이력이다.
늙도록 지울 수 없는 포클레인 바큇자국의 흔적이다.
92세의 인생 끝자락! 그리스도 안에서 산 소망을 쌓길 바란다.
그날 저녁 생소한 전화를 받았다.
‘목사님! 한번 만 도와주세요.
내 어머니 일 아버지가 알면 칼부림 납니다.
과거에도 사기당했거든요.
제가 월 3백 받습니다.
대출 이자 갚고 두 아이 키우려면 10년은 고생해야 합니다.
매제와 한번 찾아뵙고 말씀드릴게요.’
어머니가 선한 뜻으로 빌려준 돈을 받지 못한 채무자의 아들이었다.
이모와 방배동 권사님까지 끌어들인 사건이다.
두 분이 날 붙들고 눈물로 전화한 바람에 심적 고통이 컸다.
어머니도 수년간 속 끓이다 중병을 앓았다.
작년에 신용 정보 회사 통해 법적 대응에 나섰다.
그로 채무자의 아들과 사위가 반응을 보였다.
난 손해 보고 채권 완납 합의서를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썼다.
(채무액 조정 합의로 이전 진행 중인 민사를 취하하고,
민형사상 어떠한 책임과 분쟁을 제기하지 않기로 함)
또 경찰서 수사관에게 고소 취하서를 냈다.
(위 고소인은 사기 고소 건에 대하여 피해 금액을 변제받아 취하함.
이는 누구의 강요나 협박에 의한 것 아니라 자발적인 의사에 의한 것임.
차후 본 사건에 대해 민형사상의 책임 제기 않기로 확약하고 날인함)
그날 저녁 채무자 사위 문자였다.
‘목사님, 숨 쉴 수 있게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한 가정의 가장으로 밥벌이하도록 배려해 주신 사랑 고맙습니다.
목사님 뵙고 돌아와 생각합니다.
아버지 같은 목사님의 격려에 몇 번 고개를 숙입니다.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을 갖습니다.
목사님처럼 이웃의 도움 되고 힘을 실어 주렵니다.
본 된 삶을 살려고요.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건강과 기쁨이 함께 하시길 소원합니다.’
‘00님! 문자 감사해요.
달게 받아 삼킴 같아 좋네요.
법원 취하는 마무리 잘 지었는가요.
도움 필요하면 전화하세요.
살다 보면 산전수전 꺾고 공중전까지 감당할 일이 많지요.
세월이 문제 해결 열쇠 같지요.
하지만 하루하루 성실하게 잇는 삶이 쌓여야 행복하네요.
만남이 힘이고 격려와 위로의 끈이 삶의 원동력이지요.
최근 김형석 교수님 인터뷰에서 백세 넘은 친구 일곱을 언급했어요.
이들의 공통점은 시기, 질투가 없었어요.
희생하며 서로 섬겼다는 말에 공감이 갔네요.
그분이 잡은 동아줄은 믿음이었고요.
사실 내 어머니가 돈 때문에 고생 많았어요.
그랜드센트럴 아파트 계실 때 대출금리 뛰어 월 45만 원 냈어요.
광신 프로그레스 아파트로 옮겼지만 부족한 보증금 월세로 감당했네요.
아무튼 지난 일, 인생을 배운 비싼 수업료 냈다 여기세요.
그 일 디딤돌 삼아 일취월장하길 바랄게요.
서류상 합의했지만 어머니가 포기 못한 나머지 돈,
도의적 책임지고 조금씩 성의 보여야 되지 않을까요?
기간이나 금액에 대해서 강요는 안 하지만 말이에요.
늘 건강하고 행복한 삶 누리세요.’
해묵은 일, 감정으로 치닫지 않고 순적한 해결에 감사할 뿐이다.
2024. 1. 13 서당골 생명샘 발행인 광주신광교회 이상래 목사 010 4793 019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