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숙(음식점 주인 여자 이름)은 서울에서 오셨다는 것을 강조하면서 못 이기는 체한다.
밥 먹던 손님 중 하나가 경숙이 하는 그 말을 듣고 우리도 소주 사와서 여기서 먹어도 되느냐고 묻자 경숙은 그들이 먹고 있는 상으로 가 돈 받지 않을 터이니 그만 가라고 하며 손님의 밥상을 치우려고 한다.
그 서슬에 놀란 밥 손님이 알았다. 농담이다 하여 겨우 경숙을 진정시킨다.
마을 사람들인 이들은 그동안 한 번도 자기 밥집에서는 술을 먹지 못하게 하던 경숙이 서울 손님이라고 하는 기철에게 술안주를 해 주려는 것을 보고 농을 걸었다가 오히려 당한 것이다.
기철은 그러는 사람들을 보고 자기가 그녀의 죽은 남편과 닮았다면 그 사람들도 그것을 알 터인데 아무 반응이 없어 이상하게 생각했지만, 그 해변에는 몇 채 안 되는 집이 있고, 10년을 지나는 동안 사는 사람이 많이 바뀌어 그녀의 사정을 아는 사람이 별로 없다는 것을 기철은 모른다..
기철의 매운탕을 끓이러 가며 경숙은 힐끔 기철을 본다.
낮에 기철이 음식점 문을 열고 들어설 때 죽은 남편이 다시 살아서 돌아온 것 같은 착각을 했다.
처음 문을 열고 들어서는 손님을 무심히 보다가 그 모습이 죽은 남편과 너무나 닮아 처음에는 당황했고 나중에는 너무나 닮은 그 모습에 한동안 넋을 잃고 바라보다가 또 당황하여 외면을 했다.
닮아도 어떻게 이렇게 닮았을까? 풍채나 몸짓까지 죽은 남편이 환생하여 온 것 같다.
다행이도 너무 추워서 불을 찾는 그 사람은 경숙의 그런 행동을 눈치채지 못했고 계면쩍은 생각이 든 경숙은 얼른 그를 난로 곁의 탁자로 안내했다.
남편이 살았으면 그 정도의 나이를 먹었을 것이고 그런 모습일 것이라고, 생각하고 무엇을 했는지 추위로 입술이 새파래져서 들어온 그 남자를 난롯가로 인도하며 겨울에 바다에 고기잡이 나갔다가 추위에 입술이 파래져서 들어온 남편을 난로 가로 인도하던 생각이 났다.
그래서 자신도 모르게 친근감을 느끼고 말을 붙이고 그 남자가 겨울 바다를 좋아한다는 말을 듣고 겨울에 죽은 남편이 생각나고 남편이 죽은 후 황량하고 쓸쓸하게만 느껴지는 겨울 바다가 싫어 빈정거리는 말을 하다 민망한 생각을 했고 다음에는 그 사람이 “세상을 살려면 어쩔 수 없이 남과 경쟁하여야 하는--- 어쩌구.” 하는 말에 자기 마음속에 숨어있던 말이 하소연 비슷하게 나와 당황해했다.
다행인 것은 그 남자가 자기의 그러한 행동을 별스럽게 생각하지 않고 갔다는 것이다.
그 남자가 나간 후 ‘참 세상에 별일도 다 있다. 서울에서 왔다니 서울 사람인 모양인데 무얼 하는 사람일까, 어쩌면 그렇게 죽은 남편과 쌍둥이처럼 닮았을까.’ 하고는 한동안 죽은 남편을 그리며 옛 생각에 젖어 멍하니 앉아 있다가 밥을 먹으려 손님들이 들어오는 것도 모르고 있었다.
어디다 정신이 팔려 손님 오는 것도 모르냐는 퉁을 농담으로 들었다.
그런데 그 남자가 다시 찾아와 술을 먹겠다고 안주로 매운탕을 끓여 달란다.
경숙은 지난 10년 동안 자기 집에서는 일체 술을 팔지도 않고 먹지도 못하게 하여 왔는데 그 남자가 자기 집에서 술을 먹겠다고 하여 안 된다고 하면서도 그 남자가 정말 자기 말을 듣고 그냥 가버리면 어쩌나 하고 생각했다.
경숙은 자기 마음을 자기도 이해할 수 없었다.
한편으로는 죽은 자기 남편을 닮은 그 남자가 가주기를 바라는 마음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그 남자가 가버리면 어쩌나 하는 상반 된 마음이 가슴 속에서 다투고 있었다.
그 남자는 경숙의 이런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집요하게 요구하여 왔고 경숙은 못 이기는 체하고 매운탕을 끓여주기로 했다.
주방으로 가는 경숙의 가슴 속에는 잘했다는 생각과 이러면 안 되는데 하는 생각이 교차하면서 마음의 갈피를 못 잡고 있다.
매운탕을 끓이는 동안 기철은 음식점 내부를 세세히 둘러보았다.
저녁때에는 별생각이 없었고 식사를 하느라 다른 곳에 정신을 두지 못해 몰랐는데 그렇다고 생각을 해서인지 여기저기에 주인의 특별한 냄새가 나는 것 같다.
일반적으로 음식점에서와 다른
밖의 모양과는 달리 깨끗하게 정돈된 실내와 계산대에 놓여 있는 작고 아담한 꽃병이라든지 벽에 걸려있는 밀레의 만종 그림 그리고 누구의 작품인지 모르지만, 꽤 솜씨가 있어 보이는 눈 쌓인 겨울 산을 그린 동양화라든지 하는 것들이 그것을 말해 주고 있다.
다 끓인 매운탕을 가져온 경숙에게 기철이 그 그림을 가리키며
“저 동양화는 누구의 그림입니까?”
하고 물었다.
“왜 그러시는데요?”
그림에 눈길을 주며 경숙이 되물었다.
“그냥 그림을 보고 누가 그렸나 궁금해서요.”
“그림이 별로 안 좋아 보이세요?”
“아니 그 반대입니다.”
“보실만합니까?”
경숙이 얼굴을 붉히며 다시 물었다.
“네! 그렸습니다. 아주! 그림이 좋아요.”
“반씩 그렸습니다.”
“반씩 그리다니 그게 무슨 말입니까?”
기철이 의아해하는 얼굴로 물으니
“저와 남편이 같이 그린 그림입니다.”
“아! 그러시군요. 두 분이 동양화 화가신가 보군요. 이 그림을 보니까.”
“그런 것이 아니라 잠시 동안 남편과 같이 동양화를 배웠어요. 좀 이름 있는 동양화가 선생님한테서.”
“그렇군요. 그런데 남편은 어디계십니까?”
어부에게서 들어서 경숙의 남편이 10년 전에 죽었다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 기철은 모르는 척 물었다.
그림까지 같이 그릴 정도로 두 사람의 금실이 좋았다고 하는 것이 기철을 짓궂게 만들었나 보다.
여자는 말문을 닫고 돌아서 버린다.
경숙은 후회가 됐다.
오늘은 왜 내가 이렇게 말이 많은가?
그것도 처음 보는 사람에게 무엇 때문에 그림에 대해서 그렇게 자세히 설명했는가?
10년 만에 처음으로 그림에 대하여 관심을 보이는 사람을 대하였기 때문인가?
더욱이 죽은 남편과 닮은 사람이 관심을 보였다는 것 때문인가?
아무리 그렇더라도 무엇이 처음 보는 남자에게 남편이 죽은 후로는 절대로 술을 팔지도 먹지도 못하게 하던 집에서 술을 먹게 하고 그림에 대하여 장황하게 설명하며 죽은 남편을 들먹이게 됐는가?
너무나 오랜 동안의 외롭게 지내다 죽은 남편이 살아 돌아온 것 같은 사람을 보니 마음이 흔들려서인가?
자신이 한심한 생각이 들고 자기가 아무 남자와 말을 섞는 헤픈 여자 같아 보여 창피한 생각도 들었다.
그러면서도 주방으로 들어가려던 생각을 버리고 자기의 돌발적인 행동에 그 남자가 민망해 일어나 나가버리면 어쩌나 하는 생각에 계산대에 가서 앉으며 그 남자가 앉아 있는 자리 쪽을 슬쩍 본다.
그 남자는 아무 생각이 없는 듯 혼자 술잔을 기울이고 있다.
아마도 가지고 들어온 술을 모두 먹고 가려고 작정을 했나보다.
그 모습을 보며 어쩌면 저렇게 죽은 자기 남편과 닮았을까 술을 마시는 모양까지 하고 속으로 감탄하다 기철이 자기를 한 번도 건너다보지 않고 술만 마시고 있는 것에 못내 아쉬운 생각이 들고 혹시 자기의 돌발적인 행동에 마음이 상한 것은 아닌가 하는 염려도 된다.
그리고 난 후부터 이상하게 매운탕을 찾는 4〜5명의 손님 그룹이 세 팀이나 한꺼번에 들어와 준비가 부족했던 경숙을 바쁘게 만들었다.
이 숫자는 평소 경숙이 하루 종일 장사를 해야 채워질까 말까 하는 손님 숫자이기 때문이다.
기철도 한쪽 옆으로 피해 주어야 했다.
자리를 좀 옮겨 달라며 미안해하는 경숙의 말에 기철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자리를 한 옆 구석진 곳으로 옮겨주었다.
매운탕을 준비하면서도 간간이 기철이 앉아 있는 곳을 바라보던 경숙은 나중에는 손님들의 재촉과 이런저런 주문에 정신이 없어 그쪽엔 신경을 쓸 겨를이 없었다.
손님을 다 치르고 대강 설거지를 끝내고 기철 있던 쪽을 바라본 경숙은 기철이 보이지 않아 화장실을 갔겠지 하고 기다렸지만, 꽤 오랜 시간이 지나도 기철이 나타나지 않아서 그냥 가지는 않았을 텐데 하고 이상하게 생각하다 코를 고는 소리 같은 것을 듣고 기철이 앉았던 자리로 가본 경숙은 실소를 금치 못했다.
기철이 상 뒤에 누어 깊은 잠에 빠져있기 때문이다.
외국 여행을 떠난다고 아침 일찍부터 일어나 준비하며 부산을 떨었고 인천공항까지 갔다가 강릉으로 와서 바닷가에서 한 시간 이상 서성이고 어부와 같이 소주를 한 병씩 마시고 또 여기 와서 소주 두 병을 거의 다 마신 기철은 녹초가 되어 세상모르게 곯아떨어져 경숙이 깨워도 모른다.
기철의 잠든 얼굴에 편안함을 본 경숙은 그냥 놓아둘까 하다가 혼자 사는 여자의 집에서 남자가 자고 나갔다고 하며는 나쁜 소문이 나지 않을까 하는 걱정에 몇 번 흔들어 보았지만, 기철은 잠꼬대만 하고 세상 모른다.
그렇다고 처음 보는 남자를 붙들고 마구잡이로 흔들어 깨운다는 것도 조심스러운 일이고 지금 술이 취해 잠이든 기철의 상태로는 그렇게 깨워도 일어날 것 같지 않다.
어떻게 하나 경숙은 난감하다.
시간은 9시경 바닷가 유흥장소에 있는 음식점으로는 장사를 마무리하기에는 좀 이른 시간이다.
그러나 기철을 그냥 놓아두고 장사를 계속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웬 남자가 잠든 홀에서 장사를 계속하다 동네에 나쁜 소문이라도 나면 하는 생각과 오늘은 다른 날보다 매상이 많았다는 것을 핑계로 결국은 기철을 놓아두기로 마음을 먹고 장사를 일찍 마무리하고서 홀에서 자는 기철이 밤에 추울 것 같아 방에서 이불을 꺼내다 기철을 덮어주고 자기도 대강 몸을 닦고 방으로 들어가 방문을 잠갔다.
평소에는 가게 문만 잠그고 방문은 잠그지 않았는데 오늘은 무의식적으로 방문을 잠그며 오십이 넘어도 여자는 여자인가 보다 하는 생각을 하며 실소를 했다.
평소보다 일찍 자리에 들었으나 잠이 쉬이 오지 않는다.
처음 보는 남자이지만 그리고 자기는 방에서 남자는 손님들이 음식을 먹는 홀에서 멀리 나누어져 자지만 자기 집에서 남자가 잠을 잔다는 것은 남편이 죽은 후 10여 년 만에 처음이다.
공연히 가슴이 울렁거리고 밖에 소리에 신경이 쓰인다.
밖에서는 가끔 바람이 지나가는 소리뿐 아무 기척이 없다.
그렇게 뒤척이다가 잠이든 경숙은 꿈을 꾼다.
죽은 남편인지 지금 밖에서 자고 있는 사람인지 모르는데 같이 바닷가 어딘가로 여행을 가서 아름다운 경치를 보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다가 저녁에 멋진 호텔에 들어가 진한 애무를 하며 서로를 탐닉하고 깊은 희열에 떨다가 잠을 깨었다.
꿈을 깬 경숙은 실제로 아래가 축축하게 젖어있는 것을 알고는 그동안 참아온 색욕이 남편을 닮은 남자를 만나서 다시 일어나는 것 같아 혼자 얼굴을 붉히고 샤워실에 들어가 몸을 씻다가 팽팽한 아래 배를 만지며 아직도 여자로서 가치를 잃지는 않았구나 하는 생각을 한다.
첫댓글 즐감하고 감니다
즐~~~~감!
감사히보고갑니다..
지키미님!
무혈님!
이초롱님!
감사합니다.
아직도 날씨는 덥지만 가을이 멀지 않은 곳에서 손짓하고 있습니다
남은 여름 건강히 잘 보내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