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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꾸르실료 DE COLORES 원문보기 글쓴이: 야고보 아저씨
2023년 12월 29일 금요일 성탄 팔일 축제 제5일
<그리스도는 다른 민족들에게는 계시의 빛이십니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2,22-35
22 모세의 율법에 따라 정결례를 거행할 날이 되자,
예수님의 부모는 아기를 예루살렘으로 데리고 올라가 주님께 바쳤다.
23 주님의 율법에 “태를 열고 나온 사내아이는 모두 주님께 봉헌해야 한다.”고 기록된 대로 한 것이다.
24 그들은 또한 주님의 율법에서
“산비둘기 한 쌍이나 어린 집비둘기 두 마리를” 바치라고 명령한 대로 제물을 바쳤다.
25 그런데 예루살렘에 시메온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이 사람은 의롭고 독실하며 이스라엘이 위로받을 때를 기다리는 이였는데, 성령께서 그 위에 머물러 계셨다.
26 성령께서는 그에게 주님의 그리스도를 뵙기 전에는 죽지 않으리라고 알려 주셨다.
27 그가 성령에 이끌려 성전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아기에 관한 율법의 관례를 준수하려고
부모가 아기 예수님을 데리고 들어오자,
28 그는 아기를 두 팔에 받아 안고 이렇게 하느님을 찬미하였다.
29 “주님, 이제야 말씀하신 대로 당신 종을 평화로이 떠나게 해 주셨습니다.
30 제 눈이 당신의 구원을 본 것입니다.
31 이는 당신께서 모든 민족들 앞에서 마련하신 것으로
32 다른 민족들에게는 계시의 빛이며 당신 백성 이스라엘에게는 영광입니다.”
33 아기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아기를 두고 하는 이 말에 놀라워하였다.
34 시메온은 그들을 축복하고 나서 아기 어머니 마리아에게 말하였다.
“보십시오, 이 아기는 이스라엘에서 많은 사람을 쓰러지게도 하고 일어나게도 하며,
또 반대를 받는 표징이 되도록 정해졌습니다.
35 그리하여 당신의 영혼이 칼에 꿰찔리는 가운데, 많은 사람의 마음속 생각이 드러날 것입니다.”
절에 판 아이
내가 아홉 살 때 심한 중병으로 죽을지 살지도 모르는 상황이었습니다. 숨을 쉬지 못하고 파랗게 질려서 아파하는 나를 위해 할머니와 아버지는 며칠 동안 아주 심각하게 상의를 하시고 모든 의사와 한의사가 살기가 어렵다고 하니까 여기 저기 많은 사람에게 물어본 것입니다. 그러던 어느 날 한 스님이 집에 오셨고 큰 굿을 하는데 스님의 부인되는 사람이 대를 잡고 어머니는 떡을 하고 온갖 음식을 차려놓고 꼬박 삼일은 두드리고 소리 지르더니 또 춤을 추고 도무지 나는 정신이 하나도 없는 것입니다. 이것이 미신이구나 생각하였는데 이렇게 굿을 하면 나는 낫는다고 어른들이 말해 주었습니다. 굿을 하면서 풍성한 잎이 달린 대나무로 여러 대를 맞았고 북과 괭가리 치는 소리에 잠들었다 깨었다 하기를 반복하다가 굿이 끝났을 때 ‘나를 절에다 판다.’고 아버지가 식구들에게 정식으로 얘기를 하셨습니다.
그 후 그 스님을 보고 수양아버지라고 하였고 아버지는 두루마리를 입고, 먹을 갈고, 어머니가 재봉으로 꿰매준 흰 광목천에 붓글씨로 우리 집 주소와 아버지 성함, 내 본향과 이름, 나의 사주팔자(四柱八字)를 쓰고 초롱산이라는 산으로 가야 한다고 하시면서 나에게 그 스님이 수양아버지가 된다고 예를 정식으로 갖추라고 하셨습니다. 나는 기운이 없어서 공기 좋은 절에 가서 살면 나을 것이라고 생각하였는데 동생들은 나를 판다는 소리에 난리가 났고 특히 내 바로 밑의 동생은 식음을 전폐하고 화가 나서 가시나무 덤불 속에 들어가서 단독연좌데모를 하는 것입니다. 그 당시 동생은 나와는 반대로 아주 야무지고 영리하고 대단히 고집이 세었는데 물건을 파는 것처럼 나를 파는 줄 알았던 모양입니다. 집안 식구들이 총동원하여 동생을 달래고 설득하여서 ‘절에 파는 것이 아니라 부처님에게 형이 빨리 낫게 해 달라고 하는 것이라.’고 이해를 시켰을 때 동생은 방에 누워 있는 나를 껴안고 ‘팔지 않기로 했다.’고 달래주어서 서로 부둥켜안고 울었습니다. 그 동생이 지금은 신부님이 되었고, 벌써 은퇴를 해서 외롭고 힘들 때에 그때처럼 내게 위로와 용기를 주었습니다.
어느 날 집안일을 돌보던 아저씨가 나를 업고 할머니랑 어머니와 같이 초롱산에 갔습니다. 작은 암자에 가서 수양아버지를 만나 부처님 앞에 엎드려 절하고 아버지께서 써주신 흰 광목을 스님의 승복 안자락에 꿰매고 나는 절에 팔렸습니다. 할머니와 아버지는 그때 꽤 많은 돈을 시주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 그 후에 우연치 않게 나의 병은 차츰 나았을 때 나는 성당을 찾아가서 하느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그 때에 어린 나이였지만 망설였던 것은 절에 팔린 사람이 성당을 다녀도 되는지 무척 궁금하였습니다. 그러나 신부님과 공소 회장님은 조금도 망설임 없이 나를 반갑게 맞아주셨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수양아버지라는 그 스님이 이웃집에 왔다고 할머니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수양아버지가 오셨다고 하니 네가 천주님을 믿고 있지만 가서 인사하는 것은 도리다. 다녀오너라.” 그 당시 ‘할머니’는 나의 진외조모이신데 숙부인(淑夫人 : 문관인 통정대부(通政大夫), 무관인 절충장군(折衝將軍)의 적처(嫡妻)에게 내린 작호(爵號)) 마님 되시는 어른이셨고 도리에 아주 명철하신 분이셨습니다. 나는 가서 수양아버지의 예를 갖추고 절하였더니 스님은 외면해버려서 어린 마음에 큰 상처를 입었습니다.
지금 가만히 생각해보면 그 사건이 나를 봉헌한 첫 사건이었다고 생각됩니다. 내 이름과 사주팔자를 쓴 광목을 옷에 꿰매면서 부모님에 의해서 나의 의지와 관계없이 봉헌된 것입니다. 그런데 나는 세례를 받을 때에 다시 자유의지로 나를 주님께 봉헌한 것입니다. 그리고 많은 약속을 하였습니다. 오늘 예수님의 부모와 시메온은 관례에 의해서 주님을 하느님께 봉헌합니다. 그러나 주님은 온전히 당신을 봉헌하는 삶을 사셨습니다. 주님의 가르치심을 받고 나는 세례 때에 한 약속을 지키지 못하고 또 무엇을 봉헌해야 하는지도 모르고 평생을 살아온 삶 같습니다. 그때마다 인생의 목표를 세우고 그 일을 잘한다고 생각하고 살았지만 돌아보니 헛된 것에 정신이 팔려 잘못 살았음을 차츰 느끼게 됩니다. 내 가치관은 올바르고 생각은 정확한 줄 알았는데 자세히 살펴보면 나는 결국 다른 사람들에 의해서 끌려 다닌 삶인 것만 같습니다. 그동안 헛된 봉헌으로 살았다는 것을 한 해의 끝자락에서 많이 뉘우치는 마음으로 새해에 새로운 봉헌을 계획해봅니다.
<자기 형제를 사랑하는 사람은 빛 속에 머무릅니다.>
▥ 요한 1서의 말씀입니다. 2,3-11
사랑하는 여러분, 3 우리가 하느님의 계명을 지키면, 그것으로 우리가 예수님을 알고 있음을 알게 됩니다.
4 “나는 그분을 안다.” 하면서 그분의 계명을 지키지 않는 자는 거짓말쟁이고, 그에게는 진리가 없습니다.
5 그러나 누구든지 그분의 말씀을 지키면, 그 사람 안에서는 참으로 하느님 사랑이 완성됩니다.
그것으로 우리가 그분 안에 있음을 알게 됩니다.
6 그분 안에 머무른다고 말하는 사람은 자기도 그리스도께서 살아가신 것처럼 그렇게 살아가야 합니다.
7 사랑하는 여러분, 내가 여러분에게 써 보내는 것은 새 계명이 아니라,
여러분이 처음부터 지녀 온 옛 계명입니다. 이 옛 계명은 여러분이 들은 그 말씀입니다.
8 그러면서도 내가 여러분에게 써 보내는 것은 새 계명입니다.
그것은 그리스도께도 또 여러분에게도 참된 사실입니다. 어둠이 지나가고 이미 참빛이 비치고 있기 때문입니다.
9 빛 속에 있다고 말하면서 자기 형제를 미워하는 사람은 아직도 어둠 속에 있는 자입니다.
10 자기 형제를 사랑하는 사람은 빛 속에 머무르고, 그에게는 걸림돌이 없습니다.
11 그러나 자기 형제를 미워하는 자는 어둠 속에 있습니다.
그는 어둠 속에서 살아가면서 자기가 어디로 가는지 모릅니다. 어둠이 그의 눈을 멀게 하였기 때문입니다.
축일12월 29일 성 다윗 (David)
신분 : 왕, 예언자, 구약인물
활동 지역 : 이스라엘(Israel)
활동 연도 : +10세기BC
같은 이름 : 다비드, 데이비드
성 다윗은 이사이의 막내아들로 유다와 이스라엘의 왕이었고, 다윗 왕조의 태조로서 예루살렘에서 기원전 1000-961년 사이에 이스라엘을 통치한 왕이었다. 다윗은 유다 지방 베들레헴 출신이고 룻기 4장 18-22절에 의하면 보아스와 모압 여인 룻 사이에서 태어난 오벳의 손자이다. ‘다윗’이란 이름은 전통적으로 ‘사랑하는 자’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백성들의 요구에 못 이겨 사울을 왕으로 세우고 왕정 제도를 시작한 예언자이자 판관인 사무엘(Samuel, 8월 20일)은 사울이 왕으로 살아 있을 때 이미 다윗에게 기름을 부어 미래의 왕으로 세웠다(1사무 16,1-13). 이는 이사이도 다윗도 전혀 예측하지 못한 일이었다. 앞서 사울은 아말렉과의 전투에서 승리하고도 아말렉의 왕 아각과 가장 좋은 양과 소와 짐승들을 없애지 않음으로써 헤렘(Herem) 법을 지키지 않았다. 그로 인해 주님께서는 사무엘을 통해 사울을 왕으로 삼은 것을 후회한다는 말씀과 함께 그를 왕위에서 배척하셨다는 말씀을 전하게 하셨다(1사무 15,10-31).
주님의 영이 사울을 떠나면서 사울은 악령의 괴롭힘을 받았다. 그러면서 다윗이 사울을 위한 비파 연주자로 발탁되어 사울의 총애를 받으며 그의 무기병이 되었다. 당시 사람들은 음악에 주술적인 힘이 있다고 믿었다. 따라서 다윗은 사울에게 악령이 내릴 때마다 비파를 타서 악령을 쫓아내고 사울의 마음을 편하게 해주었다(1사무 16,14-23). 이어서 다윗은 필리스티아의 거인 골리앗을 물리치며 화려하게 등장했다(1사무 17장). 골리앗은 이스라엘을 침략한 갓 출신의 필리스티아인 투사로서 엄청난 키와 갑옷으로 중무장한 군인이었다. 이스라엘 군사들이 그를 보고 도망갈 때, 다윗은 돌멩이 다섯 개를 넣은 양치기 가방을 메고 손에는 무릿매 끈을 들고 다가갔다. 그리고 무릿매 끈과 돌멩이 하나로 골리앗의 이마를 맞혀 쓰러뜨리고 그를 죽였다. 이스라엘의 승리와 함께 다윗은 골리앗의 머리를 들고 사울 왕 앞에 나섰다. 이 모든 것은 주 하느님께서 사무엘을 통해 다윗을 선택하셨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이렇듯 구약성경은 다윗의 출현을 다양한 전승을 통해 전해주고 있다.
하지만 다윗은 사울을 시기를 받아 죽음의 위협을 받으면서도 외적과의 전투에서 연승을 거두며 이스라엘과 유다의 사랑을 받았다. 그는 사울의 딸 미칼과 결혼해 그의 사위가 되었으나 왕의 시기와 위협은 그치지 않았다. 다윗의 절친한 친구인 요나탄 왕자의 중재로 겨우 현상 유지는 했으나 이 또한 오래가지 않았다. 다윗은 라마로 도망갔다가(1사무 19,18-24) 놉으로 가서 사제 아히멜렉의 도움을 받았다(1사무 21장). 그리고 필리스티아의 갓 나라 임금 아키스에게 가서 잠시 머물다가(1사무 21,10-15) 아둘람으로 가서 곤경에 빠진 이들, 빚진 이들, 그 밖에 불만에 찬 사람들의 우두머리가 되었는데, 그 수는 사백 명가량 되었다(1사무 22,1-2). 그 후로 사울의 추적을 피해 모압의 미츠파, 크일라, 지프 광야, 마온 광야, 엔 게디 산성을 전전했다. 사울이 다윗을 죽이려 군대를 이끌고 엔 게디 광야로 왔을 때, 다윗은 동굴에서 사울을 죽일 수 있었음에도 그러지 않고 단지 겉옷 자락만 잘라왔다(1사무 24장).
마온에서 포악한 부자 나발을 물리치고 슬기로운 아비가일을 아내로 맞이한 다윗(1사무 25장)은 필리스티아인들의 땅으로 망명해 갓의 임금 아키스와 더불어 살았다. 다윗은 아키스에게 청해 치클락 성읍을 받아 부하들과 함께 아키스의 용병으로 1년 4개월을 살았다(1사무 27,1-7). 사울이 죽자 다윗은 주님의 뜻에 따라 필리스티아를 떠나 헤브론으로 이주하였다. 두 아내와 부하들을 데리고 헤브론 성읍에 자리 잡자 유다 사람들이 와서 다윗에게 기름을 붓고 그를 유다의 임금으로 세웠다(2사무 2,4). 헤브론은 곧 유다의 수도가 되었다. 이스라엘에서는 사울 군대의 장수인 아브네르가 마하나임으로 가서 사울의 아들 이스 보셋을 온 이스라엘의 임금으로 세웠다(2사무 2,9). 이렇게 유다와 이스라엘은 개별국가로 대립했다.
이스 보셋이 살해된 후(2사무 4,1-12) 다윗이 온 이스라엘의 임금이 되자 그는 예루살렘을 점령해 수도로 삼고 새로운 성전 건립을 구상하며 유다와 이스라엘의 통합을 이루고자 했다. 이를 위해 계약 궤를 예루살렘으로 옮겼다(2사무 6장). 예루살렘에서 33년의 통치 기간 중 이스라엘은 강대한 국가로 거듭났다. 그러나 시련도 많았다. 다윗이 총애했던 셋째 아들 압살롬의 반란이 대표적이었다(2사무 15,1-18,17). 많은 아내를 두었던 다윗은 왕자들의 암투와 반란까지 겪게 되었다. 이미 예언자 나탄이 왕자의 난을 예언한 적이 있다. 다윗 왕이 밧 세바에게 빠져 그녀의 남편 우리야를 전쟁터에서 죽게 했을 때다. “이제 네 집안에서는 칼부림이 영원히 그치지 않을 것이다. 네가 나를 무시하고, 히타이트 사람 우리야의 아내를 데려다가 네 아내로 삼았기 때문이다.”(2사무 12,10) 압살롬의 반란이 진정되자 다시 벤야민 지파 세바가 반란을 일으켰다. 다윗은 강경 진압으로 초기에 반란을 진압했지만, 앙금이 남아 솔로몬 사후 북쪽 지방이 떨어져 나가고 말았다.
다윗은 구약성경에 800번 이상 등장할 만큼 이스라엘 역사에 중요한 인물이다. 마태오와 루카 복음이 전하는 예수님의 족보를 보더라도 분명 예수님의 조상이다. 구약성경은 이런 다윗의 다양한 모습을 전해주고 있다. 긍정적인 부분뿐만 아니라 부정적인 모습도 진솔하게 전해준다. 이는 왕정 제도에 대한 긍정적 · 부정적 견해에 따른 결과이기도 하다. 하지만 성경은 무엇보다 주님의 선택과 그 선택이 다윗에게 변함없이 머물렀음을 강조하고 있다. 또한 때때로 주님의 질책을 받으면서도 자신의 잘못을 진심으로 뉘우치고 돌아서서 하느님을 향했던 다윗의 믿음을 보여주고 있다. 하느님께서는 그러한 다윗을 사랑하셨고, 그의 후손을 일으키시어 그의 왕좌를 튼튼히 해주셨다. 다윗과 솔로몬 시대 이후 이스라엘은 남북으로 갈라지고 바빌론 유배를 경험하면서 다윗을 떠올리며 그와 같은 임금, 새로운 다윗을 희망하게 되었고, 그 희망은 다윗의 후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성취되었다.
오늘 축일을 맞은 다윗 (David) 형제들에게 주님의 축복이 가득하시길 기도합니다.
야고보 아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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