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룩한 율법은 우리들이 하나님을 가장 사랑하고 우리 이웃을 우리 몸과 같이 사랑하라고 요구하신다.
이러한 사랑의 실천이 없이는 가장 고상한 신앙의 고백도 한갖 위선이 되고 말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시기를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되는 계명이요 둘째는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마 22:37-40) 고 하셨다.
율법은 완전한 순종을 요구한다. “누구든지 온 율법을 지키다가 그 하나에 거치면 모두 범한 자가”(약 2:10)된다.
하늘에 계신 하나님께 대하여 불충성하지 않고는 열 계명 가운데 단 하나도 범할 수 없다.
율법의 요구에 대한 가장 작은 이탈 행위일지라도 무시하거나 고의적인 범죄를 하는것은 죄이며
모든 죄는 죄인으로 하나님의 진노를 받게 한다.
오직 순종만이 고대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각별하신 은총을 받는 백성이 되게 한 약속의 성취를 받는
조건이었다. 그 율법에 대한 순종은 히브리인들에게 한 것처럼 오늘날에도 개인들과 국가에게 놀라운 축복을
가져올 것이다.
십계명 율법에 대한 순종은 우리의 구원만을 위하여서가 아니라 우리의 행복과 우리와 관련된 모든 인간의 행복을
위하여 절대적으로 긴요한 것이다.
영감의 말씀은 “주의 법을 사랑하는 자에게는 큰 평안이 있으니 저희에게 장애물이 없으리이다”(시 119:165)
라고 말씀하였다. 그러나 유한한 인간은 창조주께서 친히 인간의 필요를 위하여 응용하신, 거룩하고 공의로우며
선한 자유의 율법을 어떤 인간도 짊어질 수 없는 속박의 멍에로 제시할 것이다.
그러나 율법을 고통스러운 멍에로 여기는 사람은 죄인이며 율법의 교훈 가운데서 아름다움을 발견할 수 없는
사람은 율법을 범한 사람이다.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치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롬 8:7)다.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롬 3:20) “죄는 불법이”(요일 3:4)기 때문이다. 인간이 죄를 깨닫게 되는 것은
율법이 있기 때문이며 저들이 구세주에 대한 필요를 느끼기 이전에 저들 자신이 하나님의 진노하심을 받게 될
죄인들임을 자각해야 한다.
사단은 죄의 가혹한 특성을 인간이 제대로 평가하지 못하도록 계속적으로 활동하고 있다.
하나님의 율법을 저희 발로 짓밟는 자들은 큰 기만자의 일을 하고 있는데 저들은 죄에 대한 정의를 내릴 수 있고
범죄자의 양심에 호소할 수 있는 유일한 원칙을 거부하기 때문이다.
죄악적이지만 종종 가볍게 넘겨버리는 은밀한 목적들일지라도 실제에 있어서 그것들이 품성의 기초가 되고
시험 거리가 되므로 하나님의 율법은 그 은밀한 목적들을 엄밀히 살핀다.
율법은 죄인이 자신의 도덕적인 품성에 대한 올바른 지식을 갖고자 할 때 들여다볼 수 있는 거울이다.
죄인이 의의 큰 표준으로 말미암아 자기 자신이 정죄된 사실을 깨닫게 될 때 그가 취해야 할 다음의 행동은
자신의 죄들을 회개하고 그리스도를 통하여 용서를 구하는 일이다. 이 일에 실패함으로 많은 사람들은
저희 허물을 드러내는 거울을 깨려고 하며 저희 생애와 품성 가운데 있는 오점들을 지적하는 율법을
무력하게 하기 위하여 온갖 노력을 다하고 있다.
우리는 큰 죄악의 시대에 살고 있다.
허다한 인간들은 죄악적인 관습과 악한 습성의 노예가 되어 있으며 저들을 결박한 속박은 끊어 버리기 힘들다.
죄악은 홍수처럼 온 땅에 범람하고 있다. 매일 발생하는 범죄 사건은 언급하기조차 두려울 정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온성의 파수꾼이라고 자처하는 사람들은 율법은 유대인만을 위하여 제정된 것이며
복음 시대를 도래케 한 영광스러운 특권으로 말미암아 폐하여진 것이라고 가르칠 것이다.
불법과 범죄가 편만한 세상의 상태와 목사들과 신자들이 율법은 아무런 제어력이 없다고 주장하며
가르치는 것 사이에 어떤 관계가 있는 것이 아닐까?(1기별2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