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04월 14일 (화)
제목 : 하갈과 사라 비유
오늘의 말씀 : 갈라디아서 4:21-31 찬송가: 267장(구 201장)
21 내게 말하라 율법 아래에 있고자 하는 자들아 율법을 듣지 못하였느냐
22 기록된 바 아브라함에게 두 아들이 있으니 하나는 여종에게서, 하나는 자유 있는 여자에게서 났다 하였으며
23 여종에게서는 육체를 따라 났고 자유 있는 여자에게서는 약속으로 말미암았느니라
24 이것은 비유니 이 여자들은 두 언약이라 하나는 시내 산으로부터 종을 낳은 자니 곧 하갈이라
25 이 하갈은 아라비아에 있는 시내 산으로서 지금 있는 예루살렘과 같은 곳이니 그가 그 자녀들과 더불어 종 노릇 하고
26 오직 위에 있는 예루살렘은 자유자니 곧 우리 어머니라
27 기록된 바 잉태하지 못한 자여 즐거워하라 산고를 모르는 자여 소리 질러 외치라 이는 홀로 사는 자의 자녀가 남편 있는 자의 자녀보다 많음이라 하였으니
28 형제들아 너희는 이삭과 같이 약속의 자녀라
29 그러나 그 때에 육체를 따라 난 자가 성령을 따라 난 자를 박해한 것 같이 이제도 그러하도다
30 그러나 성경이 무엇을 말하느냐 여종과 그 아들을 내쫓으라 여종의 아들이 자유 있는 여자의 아들과 더불어 유업을 얻지 못하리라 하였느니라
31 그런즉 형제들아 우리는 여종의 자녀가 아니요 자유 있는 여자의 자녀니라
중심 단어: 율법, 아브라함, 여종, 자유 있는 여자, 약속의 자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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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법
22절: 여종의 아들
24절: 시내 산 언약/ 하갈
25절: 지금 있는 예루살렘(땅에 있는 예루살렘)
도움말
1. 하갈(24절): 사라의 여종으로 아브라함의 첩이 된 애굽 여인이다(창 16:1). 바울은 하갈을 사라와 비교하며 복음과 율법을 설명하는 데 인용했다(갈 4:21-31).
2. 산고(27절): ‘출산의 고통’이라는 뜻이다. 여기서는 구십 세까지 자녀를 갖지 못한 사라와 관련해 사용됐다.
말씀묵상
내면화되지 못한 신앙
바울은 율법을 하갈과 그의 아들 이스마엘, 그리고 시내 산과 지금 있는 예루살렘으로 비유했습니다(21-25절). 이는 여종의 몸에서 육체를 따라 나서 아버지의 집에 영원히 거하지 못하고 쫓겨나게 된 종처럼, ‘율법’은 결국 폐기될 규범이며 성도들의 자유를 억압하는 것임을 설명하기 위해서였습니다. 바울이 지적한 율법의 행위 문제는 곧 ‘내면화되지 못한 신앙’의 문제입니다. 결국 ‘내면화되지 못한 신앙’은 우리를 하늘 아버지의 집에 이르지 못하게 하고 자유롭게 하지도 못한다는 결론에 이르게 됩니다. 만일 우리가 죄와 이 세상에 대해 진정으로 자유롭지 못하다면, 우리가 과연 참된 약속을 따라 난 성령의 자녀인지 그리고 우리가 소유한 복음이 참된 복음인지를 돌이켜 봐야 할 것입니다.
복음의 능력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주신 성령의 약속, 곧 복음은 그의 아내 사라의 닫힌 태를 열고, 예수님의 육신을 부활시킨 능력의 말씀이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 능력의 복음을 소유하고 있으면서도 복음 안에 깃들인 부활의 능력을 체험하지 못한 채 죄에 억압된 심령으로 살아갈 때가 많습니다. 우리는 죄와 미움 그리고 세상의 유혹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이제는 신앙의 형식적인 규범에 머물러 있지 말고, 우리를 참자유로 인도하는 신앙을 깊이 경험해야 합니다. 성도는 오직 주님 안에서 세상이 줄 수 없는 기쁨과 평안을 누릴 수 있습니다. 복음의 능력을 구할 때, 하나님은 우리를 인도하시고 그 능력을 친히 보여 주실 것입니다.
도움질문
본문 관찰
1. 본문에서 율법에 대한 내용을 살펴보십시오(주제별 목록 작성 참조).
2. 약속의 자녀가 될 수 있는 증거는 무엇입니까(28-31절)?
3. 본문의 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깊은 묵상
1. 여러분은 자신과 주변 사람들을 율법의 잣대로 바라보지 않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고 있습니까?
2. 여러분은 하나님의 자녀로서 이 세상에서 진정한 자유를 누리고 있는지 점검해 보십시오.
3. 오늘 여러분에게 주시는 특별한 말씀(깨달은 점, 느낀 점, 적용점 등)은 무엇입니까?
<오늘의 묵상>
24 이것은 비유니 이 여자들은 두 언약이라 하나는 시내 산으로부터 종을 낳은 자니 곧 하갈이라
바울은 왜 이것을 비유로 말하고 있을까?
다른 복음을 받아들인 갈라디아 성도들이 율법을 지켜야, 할례를 받아야 구원을 받는다는 말을 듣고 율법으로 돌아가려는 사람들을 바로잡기 위해서다.
예수님도 그러셨던 것처럼 비유는 단순한 설명만으로는 이해가 어려울 수 있었기 때문에 구약의 실제 사건을 가져와 영적인 의미로 풀어 설명한 것이다.
하갈은 아브라함과 사라의 합의를 통해 이스마엘을 낳았던 인물이다. 즉 하나님의 약속이 아닌 인간의 의지와 선택으로 이스마엘을 낳은 여인이다.
사라는 경수가 끊어졌지만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대로 이삭을 낳은 여인이다.(창21:1-8)
그런데 하갈의 아들 이스마엘이 사라의 아들 이삭을 놀리자 사라가 보고 아브라함에게 말한다.
“이 여종과 그 아들을 내쫓으라 이 종의 아들은 내 아들 이삭과 함께 기업을 얻지 못하리라”
아브라함 입장에서는 이스마엘도 이삭도 자신의 아들이었기 때문에 사라의 말을 듣고 근심하자 하나님은 사라의 말을 들으라고 하신다.
“네 아이나 네 여종으로 말미암아 근심하지 말고 사라가 네게 이른 말을 다 들으라 이삭에게서 나는 자라야 네 씨라 부를 것임이니라 그러나 여종의 아들도 네 씨니 내가 그로 한 민족을 이루게 하리라”
이 사건과 인물을 가지고, 바울은 두 언약을 상징적으로 사용했다.
하갈은 율법을 상징한다. 인간의 노력과 육체를 따라 살아가는 삶이다. 그래서 종의 상태를 의미한다.
사라는 약속을 상징한다. 하나님의 은혜와 믿음으로 주어지는 삶이다. 그래서 자유를 의미한다.
즉 바울은 역사적 사건을 통해 영적인 진리를 더 분명하게 드러내기 위해 비유로 설명한 것이다.
그런데 왜 바울은 ‘위에 있는 예루살렘을 어머니라고 표현했는가?’
여기서 “위에 있는 예루살렘”은 하늘에 속한 공동체, 곧 하나님 나라를 의미한다. 그리고 “어머니”라는 표현은 생명을 낳는 근원을 비유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즉 이 말씀은 하나님이 어머니라는 뜻이 아니라, 하늘의 공동체, 곧 하나님의 은혜와 약속 안에서 태어난 신앙 공동체를 어머니처럼 표현한 것이다.
성경을 해석할 때는 문맥을 파악하고 그 문맥이 속한 성경책과 성경 전체를 살펴봐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일관되게 ‘아버지’로 계시된다. 예수님도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도록 가르치셨다. 따라서 이 구절 하나를 문자적으로 받아들여 하나님을 어머니라고 해석하는 것은 문맥에서 벗어난 해석이다.
비유는 의미를 전달하기 위한 표현인데, 그 상징을 그대로 실체로 받아들이면 왜곡된 해석을 하게 된다.
바울이 여기서 강조하고자 한 것은 “자유와 약속”이다. 이것을 “존재의 정체”로 바꾸어 해석하면서 전혀 다른 결론이 나온 것이다. 바울은 여기서 우리가 율법 아래 있는 종이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으로 태어난 자유자라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항상 우리가 누구인지 아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하는 것이다. 우리의 정체성을 분명히 알면 미혹될 이유도 없고, 혼란스러워할 것도 없다.
하나님의 자녀가 된 자는 더 이상 하나님의 자녀가 되기 위해 노력할 필요가 없다.
이 땅에서 주 안에서 하나님이 주신 은혜를 누리며 하나님의 영광스런 자녀, 하나님의 자녀 답게 살아가는 것이 중요한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하나님 나라를 상속받을 상속자 이기 때문이다.
상속자가 되기 위해서 하나님께 잘 보이려고 계획을 세우고 그 계획대로 살기 위해서 애쓰며 살지 않는다. 말씀을 지키며 살아가는 것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하나님 나라의 상속자이기 때문에 지키며 살아가는 것이다. 또한 그리스도께서 그렇게 사셨기 때문에 예수님을 본 받아 살아가는 것이다.
굳이 예수님이 다 이루고 성취한 구약의 절기를 지키며 살 이유는 없다. 다만 그 의미와 정신을 가지고 있어야 할 뿐이다.
‘갈4:10 너희가 날과 달과 절기와 해를 삼가 지키니11 내가 너희를 위하여 수고한 것이 헛될까 두려워하노라’
바리새인은 철저하게 율법을 지켰지만 예수님은 그들을 지옥자식이라고 했다.
마23:15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교인 한 사람을 얻기 위하여 바다와 육지를 두루 다니다가 생기면 너희보다 배나 더 지옥 자식이 되게 하는도다
33 뱀들아 독사의 새끼들아 너희가 어떻게 지옥의 판결을 피하겠느냐
내면에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지고 낮아지면 주님의 말씀이 들리기 시작한다. 왜냐하면 내가 성장했기 때문이다. 성장하면 할수록 주님이 주시는 자유를 더욱더 누리며 예수님처럼 살고 싶어서 주님을 따라가게 된다.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은 자녀를 종으로 두지 않고 자유롭게 살기를 원하시는 마음이다. 억압이 아니라 사랑으로 이끄시는 마음이다.
예수님의 사랑의 마음은 우리를 대신해 율법의 짐을 지시고 자유를 주신 희생의 사랑이다.
성령의 마음은 우리 안에서 약속의 자녀임을 계속 깨닫게 하시고 자유 가운데 살도록 도우시는 마음이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우리는 율법의 종이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 안에서 자유를 누리는 하나님의 자녀다
사랑의 주님. 오늘도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고 낮아지는 종이 되게 하옵소서. 그리스도의 형상을 이루기 까지 다시 들꽃성도들을 위해 해산하는 수고를 감당하는 종이 되게 하옵소서.
주 밖에 있는 것이 자유가 아니라 주 안에 있는 것이 진정한 자유임을 알게 하옵시고, 나를 비우고 예수로, 성령으로, 말씀으로 채워짐으로 그 충만함의 기쁨을 누리는 하루가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