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트 특성상,조금은 인디씬에 대한 편중이 보이지만,전체적으로 공감하는 글입니다..약간 긴 글이지만,볼만합니다..
김영준 vs. 강현민 - 함께 승리하는 경쟁자들
M씨가 바라 본 2003년 한국대중음악판은 로큰롤의 한 해였다. 울적한 음반 판매량이 아닌 양질의 음반수로만 따지자면 분명히 그러했다. 푸른새벽의 데뷔앨범 [Bluedawn]과 더더(The The) 네 번째 앨범 [The The Band], 그리고 러브홀릭(LOVEHOLIC)의 첫 앨범 [Florist]와 박혜경의 네 번째 앨범 [Seraphim]과 같은 모던록의 수작들이 상반기에 줄을 이었고, 비슷한 맥락에 놓여있는 챔피언스와 플라스틱 피플, 장연주와 오산하의 범작들도 발표되었다. 김영준과 한희정이라는 공통분모를 가진 푸른새벽과 더더의 앨범이 우울하고 차분한 색채를 가졌다면, 강현민이라는 이름을 떠올리게 하는 러브홀릭과 박혜경은 보다 선명하고 자극적인 멜로디 라인을 갖고 있다는 점에서, 모던록의 영향력 하에 놓여져 있는 비슷한 음악을 하고 있으면서도 상당히 대비되는 색채를 보여주는 음반들이었다.
푸른새벽과 더더는 동일한 프로듀서와 동일한 보컬의 작품이지만, 푸른새벽의 음악은 건조한 드럼과 앙상한 선율에서 노이즈나 잔향을 적극적으로 퍼트리는 기타 사운드, 가라앉고 가라앉아 단 한번도 수면위로 얼굴을 내밀지 않는 노래로 결핍, 창백, 공허의 이미지를 선사한다면, 더더는 좀 더 풍성하고 잘 다듬어져 있는 밴드적인 음악을 담아낸다. (결식아동과 백수의 차이랄까.) 강현민의 솔로앨범으로부터 그다지 큰 변화가 느껴지지 않는 러브홀릭은 팀으로서의 의미가 아직 명확하게 다가오지 않는 반면, 강력한 대중적 호소력을 보여주는 멜로디 라인으로 발라드와 모던록의 중간지점, 가요와 록의 중간지점에서 확실한 존재감을 보여주고 있었고, 박혜경은 모던록에 대한 강박관념을 버리고 좀 더 다양한 스타일의 음악을 담아내며 보컬리스트로서의 입지를 다져가고 있는 것으로 보여진다.
역시 상반기에 발표된 안재욱과 레이나(Raina)의 앨범도 눈길을 끄는데, 안재욱의 4집 앨범 [Reds In Anjaewook 4]은 세련됐지만 차별성이 실종된 최근 가요계의 상황에서, 중국시장을 타겟으로 한 듯 당당하게 선보이는 90년대 중반 국내 가요를 연상시키는 촌티 줄줄 나는 멜로디와 직선적인 편곡, 어쿠스틱한 사운드가 오히려 정직하고 청량감 있게 다가오며, 올해 발매된 탤런트 겸업 가수의 음반 중에서는 최고작으로 꼽을만하다. 레이나의 데뷔 앨범 [매일 꿈을 꾸나요...]는 더더와 러브홀릭의 중간쯤에 위치시킬 수 있는 음악을 담고 있는데, 한희정의 보컬이 담고 삭히는 나즈막한 울림을 추구한다면, 레이나의 경우는 내뱉고 흩뿌리는 시원스러움을 보여주고 있다. <Be Free>나 <飛天(비천)>처럼 갑자기 힘을 잃고 주저앉는 돌발 트랙들을 제외한다면, 메탈의 색이 묻어나는 기타 플레이 역시 그러한 보컬과 함께 어울려 바다와 맞닿은 벼랑 위에서 바람을 맞는 듯한 속도감과 시원함(때로는 몽환적인 부유감)을 선사하고 있다.
재주소년 - 아니 벌써 이런 좋은 멜로디가 나오다니.
라이너스의 담요가 발표한 범작 EP를 지나 2003년 모던록의 마지막은 포크에 기반한 듀오 재주소년이 깔끔하게 마무리하고 있는데, 아무래도 델리 스파이스와 루시드 폴을 연상시키며 전곡에 걸쳐 빛을 발하는 멜로디 라인이 이 음반의 가장 큰 매력이겠지만, <눈 오던 날>과 <귤> 등에서 보여지는 기타 소리와 연주 역시 이들을 진부한 편곡 속에서 빠져 허우적거리는 게으른 포크 뮤지션들로부터 구별시키고 모던이라는 꼬리표를 붙이는데 주저함이 없도록 만든다. 전례 없이 좋은 음반들이 쏟아졌던 이 해의 아쉬운 점이라면, 2001년 좋은 데뷔앨범을 발표했던 우미진의 후속작이 나오지 않았다는 것, 귀여운 목소리로 발칙한 메시지를 노래하던 이지(장연주)가 깔끔한 사운드로 통일성 있는 모던록을 담아냈던 전작 [데칼코마니](테라)에서 오히려 한발 물러나 다소 난삽한 신작으로 돌아왔다는 것, 숨막히는 데뷔앨범으로 M씨의 가슴을 후벼팠던 넬이 - 나쁘지는 않지만 - 조금 어정쩡한 세 번째 앨범을 발표했다는 것 정도다.
피아 - Linkin Park 부러워마라, 한국엔 피아가 있다.
상반기가 모던록의 시기였다면, 하반기에는 하드록의 수작들이 쏟아져 나왔다. 원맨밴드 형태로 발표했던 6집 앨범을 해외 유명 세션을 동원하여 재녹음한 서태지의 신보는 오밀조밀한 디지털 노이즈와 빈틈없는 사운드가 매력적이었던 오리지널에 비해 거칠고 굵은 악기들의 소리를 강조하여 보다 강력해진 날 것의 에너지를 뿜어내고 있었다. 원치 않는 라이브 앨범과 묶음으로 사야했다는 점만 빼면 신보에 가까운 행복감을 선사했던 이 앨범이 테크노를 향해 급작스럽게 질주했다가 다시 뒤로 물러선 크래쉬(Crash)의 [The Massive Crush]과 함께 상반기의 하드록 지역을 외롭게 지키고 있었다면, 하반기에 들어서자마자, 스키조(Schizo)의 [Dumbo Shit]과 피아의 [3rd Phase]가 손을 맞잡고 모습을 드러냈고, 연말이 가까워서는 디샥(DesHock)의 [Deshock]과 식룸 프로젝트의 [Sickroom : Stone Cold, Trip-Ping, Sickness, D.M.K.H]도 비슷한 시기에 모습을 드러냈다.
피아의 두 번째 앨범은 - 전작 역시 좋은 앨범이었음에도 불구하고 - 가히 약진이라 평가할만한데, 전체적인 사운드 밸런스로 보나 곡의 스타일로 보나 당시 테크노로 여행을 떠났던 크래쉬의 공백을 메울만한 밴드로 인식되었던 데뷔앨범에 비해, 린킨 파크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이번 신보는 드럼 사운드의 강화로 보다 명쾌하고 선명한 그루브를 자랑하며 밴드의 지정학적 위치를 하드코어에서 뉴메탈로 옮겨 놓는다. 선명해진 것은 비단 사운드와 리듬만이 아니라 멋진 멜로디를 뽑아 제끼는 작곡과 속지를 보지 않고도 들을 수 있는 가사에도 해당되는 이야기다. 단연 귀에 띄는 <유리턱> 같은 경우는 후렴구 몇 마디 빼놓고는 문천식(노브레인 서바이버)의 답변만큼이나 가사를 알아듣기 어려웠던 그들의 전작에서는 예상키 어려운 즐거움을 선사하는 곡이며, 자국 밴드의 음악을 듣는 기쁨을 알려주는 곡이다.
헤비메탈과 하드코어, 인더스트리얼의 요소들이 공존하는 스키조의 음악은 여전히 매력적이지만, 이전에 공개된 데모곡들에서 보여주던 공격성과 인더스트리얼로 분류될만한 사운드들이 앨범에서는 다소 감소한 점은 조금 아쉽고, <Die for My Young>이 빠지고 <Ready to Fight>가 새로이 들어간 선곡은 쉽게 고개를 끄덕이기 어렵다. 피아의 변화가 아쉬운 청자에게 권할만한 디샥의 앨범은 멜로디나 일렉트로닉한 면은 없지만 상대적으로 하드코어에 충실한 스타일을 담고 있으며, 지글거리는 기타톤과 순간순간 빛을 발하는 베이스와 드럼의 연주들을 매력 포인트로 꼽을 수 있다. Stone Cold, Trip-Ping, Sickness, 동맥경화 4팀이 참여한 프로젝트 앨범은 [Sickroom]은 지난 2001년 발매되었던 컴필레이션 음반 [대한민국 하드코어] 앨범의 후속작을 기다려왔던 청자들에게 행복한 차선책이 될만한 작품이다.
코코어 - 나의 길을 가련다. 따라올테면 따라오던가, 말던가.
뉴메탈 혹은 얼터너티브 메탈로 불리우는 근래의 트렌드에서는 멀찌감치 떨어져 정겨운 로큰롤의 음악적 형식에 기반한 자신만의 길을 가는 밴드가 있으니 그 이름하여 코코어다. 코코어의 신작 [Super Stars]는 일렉트로니카와 그런지를 양축으로 하던 EP부터 시작된 변화의 연장선상에 놓여 있는 작품으로, 올드록 내음이 물씬 나는 뼈대에 몽환적인 전자음들과 가스펠풍의 코러스, 인도음악적 선율, 복잡한 퍼커션와 파이프 연주 등 월드뮤직적인 사운드를 유연하게 녹여내고, 공격적인 가사를 심드렁하게 노래하는 이들의 음악에 감동하지 않을 수는 있을지언정, 놀라지 않기는 실로 어렵다 하겠다.
근래의 하드 록 트렌드를 수용하면서 동시에 가요적인 느낌도 가지고 있는 앨범으로 전작의 약점을 제대로 보완한 체리필터의 [The Third Eye]와 올드록, 록발라드, 록댄스 넘버들부터 펑크, 하드코어, 랩메탈과 같은 스타일까지 얕지만 넓게 쓸어담는 종합선물세트형 음반 마야의 [Born To Do It]도 살펴 볼 수 있다. 체리 필터의 신보는 지나치게 보컬이 강조되었던 전작의 가요적 사운드 스케이프에서 벗어나 기타를 중심으로 끌어들이며 좀 더 록적인 사운드 밸런스로 폭발력 있는 음악을 효과적으로 표현해내고 있는데, 타이틀곡인 <낭만 고양이>와 <오리 날다>만 비교해 봐도 알 수 있듯 대중적인 멜로디 라인은 유지한 채, 좀더 거칠고 세진 기타 연주와 곡이 느슨해질 때에도 긴장감을 잃지 않고 뒤를 받치는 밀도 있는 편곡이 이 앨범의 발전적인 면모로 평가될만하다. 마야의 경우에는 곡 자체는 앨범에서 좀 쎈 곡들이 좋다고 느껴지는데 반면, 보컬은 아쉽게도 그런 곡들에서 충분한 파워를 내보이지 못하는 점이 이후의 음악적 방향을 예상하기 어렵게 만든다.
얼바노, 아소토 유니온 - Come on, feel the groove.
2001년 Jin, 2002년 Ra.D가 있었다면, 2003년에는 얼바노(Urbano)가 있다. 훵크와 R&B를 두 축으로 디스코, 소울, 뉴잭스윙, 힙합, 애시드 재즈, 퓨전 재즈, 블루스 등 다양한 장르적 요소들을 수용하는 이들의 첫 앨범 [Urbano]는 깔끔한 그루브와 탄탄한 화성, 소박한 미디 음악의 느낌과 두텁게 흥을 돋우는 혼섹션, 매력적인 보컬 에디팅으로 멜로디와 리듬, 노래와 악기가 서로 균형을 이루는 하나의 모범답안을 만들어 내고 있었다. 상반기에 얼바노가 있었다면, 하반기에는 아소토 유니온(Asoto Union)의 [Sound Renovates A Structure]가 있다.
모 잡지 샘플러 시디에 수록되었던 <Come on, Feel the Vibe>로 M씨의 가슴에 불만 댕겨놓고 사라진 바이닐(Vinyl)의 후속작이라 할 만한 음반으로, 얼바노와 비교해보자면 보컬보다는 리듬에 중심을 두고 있으며, 다양한 스타일을 활용하기보다는 하나의 스타일에서 진국을 우려낸다는 차이를 이야기 할 수 있다. 보다 미니멀한 인스트루먼틀의 성격이 강하고, 블루스적인 색채가 진하기 때문에 소울풀한 느낌을 만끽할 수 있는 점을 매력으로 들 수 있으며, 윤미래나 최자와 개코의 피춰링이 곡 자체에 해가 되는 점은 없으나 개성이 전혀 드러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 다소 아쉬운 점으로 생각된다.
오버그운드 훵키 뮤직씬을 이끌어 줄 것으로 기대했던 거북이의 신보는 도롯또 댄스뮤직으로 자리를 옮기며 안녕을 고했고, 자자의 <버스 안에서>를 연상시키는 타이틀곡을 힘차게 불러대면서 고개를 돌린 M씨의 등에 비수를 꽂았다. 이제 M씨는 느릿한 그루브와 스윙감이 일품이었던 프리 스타일(Free Style)이 돌아오기만을 목빠지게 기다리고 있다고 한다.
B,H,M - 그 중에 제일은 H라.
R&B 팝 성향의 앨범들 중에서는 M이라는 - 개인적으로 그다지 유쾌하지 않은 - 이름을 달고 나온 신화 이민우의 솔로 앨범이 눈에 띄는데, 음악적 완성도 자체는 뛰어나다기보다는 준수한 편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관된 스타일로 수록곡들의 통일성을 유지하고 있다는 점, 보컬을 강조하지 않고 시원스럽게 때려 넣는 비트를 중심으로 스타일리쉬한 음악을 성공적으로 만들어 냈다는 점, 그리고 무엇보다 기대치가 워낙 낮았었다는 점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긍정적인 인상을 남기는데 성공했다는 생각이 든다. M에 결코 뒤지지 않는 B와 H라는 알파벳도 언급할만한데, 같은 빌보드 R&B의 영향력 하에 놓여져 있으면서도, M이 댄스팝이라 부를만한 사운드라면, 비(Rain)는 힙합쪽에 가깝고, H(현승민)는 가요의 느낌이 있으며, 트랙간의 차이가 크지 않은 M의 음반에 비해 비와 H의 경우는 일관된 사운드 하에서 좀 더 다양한 스타일을 담아내는 차이점을 보여주는 음반들이다. 이수영 5집의 이론의 여지없는 베스트 트랙 <Sunshine>을 만들었던 이강희가 프로듀스한 현승민의 두 번째 앨범은 느린 템포의 곡들은 평범하지만, 비트가 있거나 빠른 곡들은 그루브와 펑키함을 제대로 맛볼 수 있는 트랙들이다.
여담이지만, 최근 10분만 듣다보면 매력이 전무한 음반이라는 것을 알 수 있는 이효리의 앨범과 함께 M의 앨범을 언급하며 빌보드 트렌드를 한국의 주류로 받아 들였다는 의의를 언급하는 일부의 지적도 있었지만, 사실 동시대의 영미권 주류 R&B 음악의 트렌드를 가요계의 중심에 가져다 놓는 작업은 JYP에서 90년대 후반부터 해왔던 일이고, 그 이후에는 유영진의 안쓰러울 정도로 처절한 (의도는 알겠는데 완성도가 너무 안 따라줘서 도시락 싸들고 다니며 말리고 싶었던) 노력도 있었으며, 이제는 김창환조차 Mary J. Blige를 흉내내는 이 마당에, 거의 막차를 탄 타이밍에 가까운 이효리나 M의 음반에 그런 의의를 부여하는 것에는 동의하기 어렵다.
데프콘 - 니가 나에게 이런 라임을 제시하다니.
그간 M씨가 MC들의 음반에 대해서 품고 있던 불만의 불씨는 조금씩 발전해가던 랩 스킬과 그에 발맞추지 못하던 힙합 뮤직에 있었다. 상반기를 장식한 드렁큰 타이거의 [뿌리]와 씨비 매스(CB Mass)의 [Massappeal]은 그런 면에서 이번 해엔 한 발 전진했다고 생각되는 음반들이다. 그러나, 음악으로서의 관점에서 보자면 여전히 전곡이 마음에 드는 음반을 만나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물론 취향의 문제가 가장 큰 이유겠지만.) 이런 상황은 뮤지션으로서보다는 MC로서의 인식이 강하고, 음악보다는 랩에 집중하는 창작 태도에서 비롯되는 것으로 추측되는데, 이런 태도는 가요를 노래와 반주로 구분해서 받아들이고 노래에 청각을 과도하게 집중하는 한국의 일반적인 음악 청자들과 묘한 공통점이 느껴지는 순간이다. 이런 아쉬움은 전반부의 분발에도 불구하고 중반부를 지나면서 힘이 떨어지는 에픽 하이(Epik High)의 [Map of the Human Soul]도 예외가 아니고, 눈부신 라임으로 올 한해 힙합씬 최고의 화제작이라 할만한 데프콘(Defconn)의 [Lesson 4 The People] 역시 <가족>, <내겐 너무 화끈한 그녀>, <달빛클럽>, <Thank U..>처럼 음악적으로도 흠잡을 데 없는 트랙들과 <Damn You>, <E.T>, <POWER 2 BOB>처럼 단순하지만 가사의 정서를 잘 나타내주는 - 그러나 곡 길이가 짧았으면 더 좋았을 - 트랙들 사이로 우격다짐 중구난방 그루브의 <길>이나 무의미한 B.G.M. <VELOCIRAPTOR>, 마도로스 복장을 한 오제형을 마주친 듯한 언발란스 <흐르는 강물처럼>처럼 귀를 괴롭히는 트랙들이 도사리고 있는 것이다.
전체적인 음악적 안정감의 측면에서 보자면 곡 수를 줄인 Elcue의 [Unofficial Experiment EP]와 DJ DOC의 두 번째 싱글 [Street Life], 김진표의 네 번째 솔로 앨범 [JP4]가 생각난다. 김진표의 [JP4]는 뛰어난 팝적인 감각, 깔끔한 사운드로 힙합 매니아가 아닌 대중들에게 어필할 수 있는 음반으로 장점을 가지고 있는데, 그러한 장점은 동시에 곡의 한 부분으로서 무난하게 역할을 수행하긴 하지만 보컬 피춰링에 주도권을 뺏기고 마는 랩에 대해서는 평가를 유보하게 만드는 단점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튀지 않고 자리를 지키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지만, 랩이 있어서 더 좋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4집 앨범에서 남궁연과 함께 한 <5분 대기조>, <Seoul Train>, <Scratch Family>로 탄성을 자아내게 했으나, 5집에서는 그러한 색채를 지닌 곡을 단 한 곡도 수록하지 않았던 DJ DOC는 이번 싱글을 통해 드디어 그 후속곡이라 할만한 곡들을 선보이며 6집에 대한 기대감을 한껏 부풀려 놓고 있다. (으흐흐.. DJ DOC와 윤희중의 새 음반, UMC의 데뷔앨범은 과연 언제쯤 모습을 드러낼 것인가.) Eclue나 에픽 하이와 비교했을 때 라임은 많이 딸린다는 생각이 들지만, DJ DOC와 양동근은 그들에게 부족한 개성을 가지고 있는 것을 상대적인 장점으로 볼 수 있다. 이미 90년대에 벗 헤드라는 팀으로 한국 힙합 음악의 걸작을 남긴 바 있는 이제이가 음악을 맡은 양동근의 2집(이자 세 번째 앨범인) [Travel]은 엉성하면서도 구수한 맛이 나는 그 특유의 거렁뱅이 플로우를 맛볼 수 있는 음반이다.
푸근한 체형의 여성 보컬리스트들이 단체로 득세했던 한 해였다. 날씬한 몸매로 관심을 끄나, 지나치게 건강한 몸매로 관심을 끄나, 어차피 외모를 이용한 마케팅인 것은 동일하지만, 일단 기본적인 가창력이 돼준다는 것이 그나마 음악팬들에게는 위안이 되었던 듯하다. 동일한 여성 4인조 보컬 그룹 버블 시스터즈와 빅마마의 앨범에서는 상대적으로 얕고 가볍지만 발랄하고 패기 있는 버블 시스터즈 앨범에 오히려 더 호감이 간다. 빅마마의 경우에는 그들의 화려한 경력과 능력을 각인시킬만한 부분이 전무하고, 품격은 있되 개성은 없는 트랙들이 지루하게 느껴지면서 마치 굵은 목소리의 핑클을 듣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키고 있었다.
양혜승의 2집 앨범은 수록곡 모두가 타이틀 곡 <화려한 싱글>처럼 어이가 뺨을 때리다 못해 멱살을 잡고 뒤흔드는 수준인 것은 아니지만, 많은 수록곡들의 작곡이 그간 한국에 흘러 넘치던 B급 하우스 댄스곡들과 차이를 보여주지 못하고, 그나마 라틴리듬이나 전자음을 사용하여 대안적인 댄스뮤직 스타일을 모색하는 몇몇 곡들의 편곡도 완성도가 고르지 못하다. 타이틀곡인 <떠나버려>를 고급스러워진 <이유 같지 않은 이유>(박미경)라고 할 수 있는 것처럼 BMK의 첫 앨범 [No More Muisc!]은 양혜승의 경우처럼 가볍고 진부해지는 경우도 없고, 빅마마처럼 수록곡들의 차별성이 부족한 것도 아니지만, - <아직 못 다한 이야기>가 주었던 기대가 너무 컸던 탓인지 - 다소 실망스럽게 느껴지는 것이 사실이다. 다른 MC들의 음반에 피춰링할 때는 박힌 돌을 뽑아내고 곡을 지배하던 그녀가 정작 자신의 앨범에서는 김진표의 앨범을 듣는 듯한 미니멀하고 세련된 힙합 사운드 위에서 - 두텁고 묵직한 보이스 컬러를 잃어버린 채 - 가녀리게 노래하고 있는 모습이 무척이나 어색해 보인다.
크게 재즈로 분류될만한 음반들에서도 인순이, 말로, 나윤선과 같은 여성 보컬리스트들의 음반이 눈길을 끌었다. 짧으나마 미국 유학 이후 내놓은 인순이의 신보 [Jazz]는 <창부타령>과 <사설난봉가>, <Love>(track14)처럼 귀가 번쩍 뜨이는 트랙들이 분명 존재하지만, 전체적으로는 스탠다드 중의 스탠다드로 재즈를 많이 듣는 사람이라면 너무 심심하다고 여길 수 있을 듯한 앨범이고, 나윤선의 2집 [Down By Love]는 재즈적인 리듬과 연주 위로 엔야풍의 에스닉한 뉴에이지적 사운드와 보컬 어레인지를 선보이는 섬세하고 독특한 시도들이 재즈팬들에게도 녹녹치 않은 재미를 선사해 줄 만한 앨범이다.
트럼펫 연주자 이주한을 위시한 젊은 Jazz 연주자들이 내놓은 가요 리메이크 음반 누보송(Nouveau Son) 앨범은 상당히 의외였다. 이제껏 한국가수들이 부른 팝송, 영어로 번안해 부른 가요, 외국 연주자들이 연주한 가요, 심지어는 인디뮤지션들이 리메이크한 메이저 가요들까지 도무지 번안이나 리메이크라는 타이틀을 달고 나온 음반 중에 마음가는 앨범이 한 장도 기억나지 않는 M씨였으나, <춘천가는 기차>, <이별의 그늘> 등 기존 가요들을 재즈로 재편곡한 이 음반은 단순한 반주 바꾸기의 리메이크를 넘어선 완성도를 보여준다. 세간의 평처럼 재해석이라고 부를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오리지널과 비교할 마음이 생기지 않을 정도로 확실히 차별화된 편곡은 분명 평가받을 만하다. 리메이크라면 전곡을 리메이크 곡으로 채운 한소리의 데뷔앨범도 주목할 만한데, 기계적인 하우스 비트에 경도되어 있던 김창환 사단에서 흑인음악적인 그루브에 가장 성공적으로 접근한 앨범이라는 의미와 이제까지의 선례들에 비해 좀 더 이전의 시대로 거슬러 올라가 70, 80년대 히트곡들을 모델로 한 리메이크가 신선하게 느껴진다는 두 가지 의미를 가지는 음반이다.
애즈원, 스웨터 - 흑인음악? 백인음악? 에이~ 그런 게 어딨어?
제이(J) 쪽에 좀 더 음악적 무게를 두고 작업하는 듯 보였던 신재홍이, 그녀의 유학과 함께 애즈원의 음반 작업에 합류하여 총력을 기울일 수 있게 되면서, 제이의 최근작이 보여주었던 흐름을 이어받는 수작 [Never Too Far...]가 발표되었고, 이 앨범에는 R&B와 모던록의 경계를 허무는 탁월한 싱글 <MR. A-JO>가 수록되어 있었다. 애즈원의 음반이 R&B와 록의 사이에 있다면, 스웨터의 신보 [Humming Street]는 디스코와 모던록의 사이(퓨전재즈의 옆집쯤?)에 위치한다고 할 만한 음반이다. 상큼한 음악을 하겠다는 건지 우울한 음악을 하겠다는 건지 도무지 알 수 없이 우왕좌왕하던 데뷔작으로부터 한결 나아진 모습인데, 현재로서도 밝고 부드러운 현과 경쾌한 그루브가 주는 상쾌함이 차분하고 슬픔이 배어 있는 멜로디 라인이나 보컬과 찰떡궁합이라고 말하긴 어려운 - 2% 부족한 - 느낌을 주고 있지만, 음악적 방향 자체는 제대로 잡은 것으로 보이며, 그런 언발란스한 매치를 좀 더 완숙하게 결합시키기만 한다면 밴드의 음악적 정체성과 개성 역시 동시에 거머쥘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정지찬, 김석찬 - 찬 브라더스, We don't know why.
이적, 나원주, 휘성, JK 김동욱, 브라운 아이드 소울이 기대에 부흥하는 - 그러나, 기대치를 넘어서지는 못하는 - 준작을 내놓은 반면, 자화상의 정지찬이 휴(Hue)라는 이름으로 내놓은 솔로 데뷔앨범 [Hue]와 더 준(The Jun)의 [Jun Project]는 단연 기대를 넘어선 수작으로 평가할 수 있으며, 신인들 중에서는 팀(Tim)과 앤드(AND)가 앞으로의 성장을 기대해 볼만하다. [Hue]에서는 <기억이... 눈물이...>, <그대를 사랑하는>, <제발>과 같은 진부하지만 여전히 위력적인 발라드들과 <고백>, <솔직히 말하면>처럼 창법이나 곡 분위기가 유재하를 강하게 연상시키는 자책적이고 의기소침한 노래들이 자리를 지키는 가운데, 아티스트의 개성이 가장 잘 드러나는 <I Don't Know Why>와 <안녕>을 '스산한 바람과 황량한 벌판'으로 요약할 수 있는 앨범의 전체적인 정서를 집약하는 백미로 꼽을 수 있겠다.
그간 아이돌 댄스 그룹들의 음반이나 쿨의 앨범에서 작곡가로 자주 이름을 올리던 김석찬이 발표한 첫 솔로 앨범 [Jun Project]는 작곡면에서는 그의 전작들과 크게 달라지지 않았지만, 쿨의 앨범에 실렸던 <Cool Night>과 본 작에 실려있는 <Cool Night> 한 곡만을 비교해 봐도 단박에 알아 챌 수 있듯, 편곡과 세션, 사운드의 퀄리티만큼은 엄청난 차이를 보여주고 있다. 한결 단단하고 탄탄해진 리듬 라인과 가히 당대 최고라고 할 만한 코러스와 브라스는 탄성이 절로 나오고, - 좀 천박하게 표현하자면 - 돈 처바른 흔적이 흘러 넘친다. (부정적으로 하는 이야기가 절대 아니다.) 이러한 편곡의 질적 급상승은 보다 적극적으로 감정을 드러내는 보컬과 맞물리면서, 이전의 다른 가수들에게 주었던 곡들과 작곡 자체에 큰 차이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마음을 움직이는 힘을 얻게 되는데, 싱어송라이터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일깨우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이미 대중성이 검증된 작곡에 두배 세배 정성을 들인 정상급의 편곡과 세션을 더해 만든 이런 앨범이 오히려 노력이 덜 들어간 전작들보다도 상업적으로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는 것이 아티스트 본인에게 과연 어떤 교훈으로 남을지는 상상조차 하기 싫으며, 앨범 내에서 가장 후진 곡들만을 타이틀로 밀었던 홍보상의 실수가 무척이나 안타깝게 느껴진다.
바나나 걸 - 머리 쓰지마, 몸으로 날 감동시켜 봐.
테크노 계열의 음반에서는 우선 캐스커(Casker)의 데뷔 앨범 [철갑혹성]의 등장이 가장 두드러진다. 이소은과 박지윤의 앨범에서 보여주었던 프렌치나 라틴 향이 물씬 나는 멜랑꼴리한 일렉트로니카와 우주열차를 탄 듯한 분위기를 연출하는 차가우면서도 처량한 일렉트로니카가 공존하며, <skip>과 같은 보컬 트랙에서는 작곡과 가사에 대한 재능도 엿 볼 수 있다.
2002년 김완선의 [S]와 함께 테크노와 멜로딕한 가요의 성공적인 결합으로 깊은 인상을 남겼던 샤이앤 앨범의 주인공들인 이철원, 가재발, 박근태 등이 2003년 새로이 발표한 두 장의 앨범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샤이앤을 주도했던 이철원이 이온(EON)이라는 이름으로 발표한 신보 [EO-NEO-NE]은 가요적인 측면은 흘러간 노래의 리메이크가 주는 이미지에 의지해 둔 채, 음악적으로는 보다 가요적인 측면을 약화시키고 테크노적인 측면을 강화시킨 것으로 보여진다. 샤이앤이 가요의 틀에서 테크노를 수용했다면, 이온은 테크노의 틀에 가요를 수용했다고나 할까.
샤이앤의 후속작을 기대했던 사람이라면 가재발이 박근태, 방시혁 등과 함께 만든 바나나걸 앨범을 권하고 싶다. 보컬 멜로디와 일렉트로니카적 편곡을 좀 더 균형있게 담아내는 이 앨범은 한방에 꽂히는 타이틀 트랙 <엉덩이>에서 느낄 수 있듯, 하우스를 위시한 일렉트로니카 계열의 음악에 잘 녹아들 수 있는 멜로디 라인을 담아내려한 흔적이 엿보인다. 그 외에도 사막을 비행하는 사운드의 순례자 모하비의 세 번째 앨범 [Machine Kid]와 가재발에게 도움을 받은 건지, 가재발 앨범에 피춰링한 건지 헷갈렸던 전작에 비해 한결 다양해진 스타일을 끌어들인 이박사의 신보 [Epaksa.003]도 있다.
자두,원투 - 왜?유치하니까 열받냐?
90년대 말을 지나면서 한국대중가요의 기술적 수준은 - 적어도 그 사운드나 편곡의 측면에서만큼은 - 상당히 상향 평준화되었고, 그런 변화는 분명 발전이라고 칭할 수 있는 것임에도 틀림없지만, 노래들이 고만고만해지는 부작용도 함께 가져온 것으로 보인다. 90년대 중반까지만 하더라도 어떤 가수의 노래는 너무 좋은 반면 또 어떤 가수의 노래는 끔찍하게 싫었고, 같은 가수의 같은 음반 수록곡이라 하더라도 어떤 노래는 귀에 달라붙어 떨어질 줄 모르는 반면, 어떤 노래는 레코드를 뽀개고 싶을 만큼 증오스러운 경우가 다반사였다. 그런데, 요즘은 이 노래가 저 노래 같고 저 노래가 이 노래 같으며 참을 인자를 한번만 써도 모든 곡들이 다 들을만하게 느껴지는 동시에 안 들어도 아쉬움이 털끝만큼도 안 생기는 골때리는 상황이 빈번하게 연출되고 있는 것이었다. 이런 상황에서는 오히려 자두나 원투처럼 호오가 확연히 갈리는 음악이 더 예뻐 보이기도 한다.
전반부는 - 아마도 회사가 권하는 - 댄스뮤직, 후반부는 - 아마도 본인들이 원하는 - 록 성향의 곡들을 수록하고 있는 자두의 세 번째 앨범 [The Jadu 3]는 촌스러움이 진하게 배어있는 음악을 통통 튀는 리듬과 깔끔한 사운드로 포장하고 유치 발랄한 가사로 마무리한다. JYP식 클론 또는 어덜트 량현량하로 보여지는 원투의 <자~엉덩이>는 마이애미 특유의 썰렁한 사운드가 아직까지 한국의 대중들에게는 낯설고, 어이없는 제목과 유치한 가사 역시 무작정 거부감부터 느껴지며, 홀연히 등장하는 호루라기 소리가 청자의 살의를 자극한다는 지적이 있으나, 수년전 <청혼가>를 처음 들었을 때 친구 K군과 박진영 암살에 대해 논의하기도 했던 어두운 과거를 가진 M씨의 견해는 두둥 거리는 드럼 사운드와 짧지만 강력한 훅은 들을수록 매력적이며 썰렁하게 느껴지는 사운드도 두루뭉실하게 악기소리들이 뭉쳐있는 것보다는 백배쯤 낫다는 것이었다. 자두와 원투의 가사가(그리고 간혹 멜로디도) 황당하다는 의견에 대해서는 그다지 이견을 달고 싶지 않지만, 모두가 싫어하지 않는 코드 진행에, 모두가 익숙한 편곡으로, 모두가 알고 있는 이야기를, 누구나 부담 없어 할 만한 표현으로 만드는 음악들보다는 이들의 또렷한 개성에 M씨는 지지를 보낸다. (물론 그렇다고 해도, 전국 분식업계의 안위를 위협할 만한 가공할 유치함을 선보이는 <김밥>의 가사나 웬만한 술주정보다 더 듣기 싫은 <Pink Love>의 랩과 나레이션, 하품하다 턱이 빠질 정도로 지루한 <달빛 창가에서>의 기괴한 리듬과 부담스런 추임새에까지 정이 가는 것은 아니었지만.)
봄날의 곰을 좋아하세요?-앞으로는 드라마 음악도 좀 쿠-울-하게!!
한국은 드라마 음악이나 애니메이션 주제가는 유치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빠져있는 게 아닐까 하는 착각이 들만큼 형편없는 수준을 자랑한다. [여름향기]의 메인테마처럼 진부하지만 아름다운 선율을 갖고 있는 경우는 그나마 양반이고, 올해 접해본 드라마 OST 중에서 가장 호감이 가는 편에 속하는 [옥탑방 고양이]와 [좋은 사람]도 수록곡들의 품질이 고르지 못한 것이 현실이다. [내 인생의 콩깍지]는 OST보다 뮤지컬을 도입한 드라마 자체에 높은 점수를 주고 싶고, 전반적으로 만족스럽지 못한 [나는 달린다] OST에서는 단연 돋보이는 두 트랙 <오늘>과 <세상을 가져봐>의 주인공인 밴드 드왑(DeWarp)에 대해서 주목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음반으로서의 품질에 관계없이 올 드라마 음악 중 최고의 싱글은 마야가 보컬을 맡고 거북이의 터틀맨이 랩을 맡은 [보디가드] 주제곡 <쿨~ 하게! [Club Mix]>와 이적이 노래하고 데프콘이 참여한 [좋은 사람]의 수록곡 <방랑자>를 꼽을 수 있겠다.
영화음악 쪽에서는 [오!브라더스]의 <상우 Runs Intro>와 <Comedy Theme>, [올드보이]의 <Look Who's talking>와 <Cries of whispers> 같은 인상적인 연주곡들이 존재했지만, 전자는 다른 수록곡들이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편이었고, 후자는 수록곡들의 수준이 전체적으로 고른 반면 영화를 보지 않은 청자에게도 충분한 호소력을 가질 수 있을지가 확실치 않아 보인다. [...ing]의 OST 같은 경우에는 예상치 못한 스타일을 담고 있어 참신한 느낌은 있었지만 대중적인 공감을 얻기는 어려워 보였고, 오히려 그런 면에서는 영화의 B.G.M으로서는 얼마나 성공적일지 고개가 갸웃거려지지만 싱글로서의 위력은 탁월한 곡들이 많이 포진해 있는 [봄날의 곰을 좋아하세요] OST가 가장 뛰어났던 것으로 기억된다. 연주곡을 선호한다면 [올드보이]가, 보컬이 있는 트랙을 선호한다면 [봄날의 곰을 좋아하세요]가 좋은 선택이 될 것 같은데, 아무래도 최고의 싱글은 조원선이 보컬을 맡은 [봄날의 곰을 좋아하세요]OST 수록곡 <원더우먼 (Saint binary 초자연 mix)>를 꼽고 싶다. (그 다음으로는 영화 [오 해피데이] 삽입곡인 장나라의 <오 해피데이>정도.) 그나저나, 99년이었던가 나왔던 EP 이후 정식앨범이 나오지 않고 있는 세인트 바이너리의 정식 1집 음반은 언제쯤 만날수 있을까...
라이브의 여왕 김미연:김수미,김미연,신고은-톱스타의 자질을 가진 유능한 재원들.
2003년에는 음반시장의 외곽에서 깜짝놀랄만한 신예들의 출현이 줄을 이었다. 완전 초짜 신인임에도 불구하고, TV 출현이 성공 여부의 관건인 동시에 그 척도가 되며, 음악적 결과물보다는 토크쇼에서의 유머 화술이 대박의 지름길이 되는 한국대중음악계의 냉엄한 현실을 본능적으로 캐취하고, 음반발매를 생략한 채 공중파 TV의 개그 프로를 주무대로 활동을 시작하는 천재적인 활동 전략을 보여주고 있다.
최근에는 많이 주춤하는 모습이지만 연초까지만 하더라도 - 썩을 때까지 썩히는 개그콘서트와는 달리 - 새로운 코메디에 대한 노력을 경주하던 MBC 코메디 하우스를 통해 혜성처럼 등장한 김수미는 지겨운 음악의 양대산맥인 올드팝과 판소리를 절묘하게 결합하여 팝소리라는 새로운 장르로 재탄생시키며 기존 가요계에 식상해 있던 음악팬들을 깜딱 놀라게 만들었다. 김수미가 창시한 '팝소리'는 매너리즘에 허우적대던 한국대중음악계에 거대한 폭풍을 몰고 올만한 전대미문의 실험적인 음악 스타일로서, 2002년 대한민국 최고 권위의 방송사 연말 가요 시상식에서 록 부문 상을 거머쥔 모 아티스트가 주창한 락앤오케스트라, 테크락과 함께 2000년대 한국대중음악계가 거둔 커다란 수확 중 하나로 기록될 만하다.
팝소리 명창 김수미의 인기가 시들해질 무렵, 같은 프로그램에서 모습을 드러낸 라이브의 여왕 김미연은 100% 립씽크에 의존했던 하드록 듀오 허리케인 블루와는 달리 파워풀한 댄스를 선보이면서도 언제나 되도 않는 라이브를 고집하는 열정적인 무대매너로, 무조건 라이브만 하면 음악 수준이 높아지는 줄 아는 멍청한 대중들에게 "이래도 라이브가 좋으냐"는 반항적인 메시지를 던지는 의식 있는 아티스트로서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MBC 무용단 수석무용수로 활동했을 만큼 뛰어난 춤 실력, 충남 능수버들 아가씨 선발대회 3등 입상, 충남 대전 미스월드유니버시티 선발대회 우정상 수상에 빛나는 빼어난 미모와 섹시한 몸매, 맷돌을 갈아 마신 듯한 매력적인 보이스 컬러, 수년간의 트레이닝을 통해 교정 가능한 음치 박치 수준의 가창력 등 한국의 유수 음반 제작자들이 군침을 흘릴만한 대형댄스가수로서의 요건을 모두 갖추고 있는 그녀가 방송사들의 최고가수상을 휩쓰는 톱스타로 한 단계 더 성장하기 위해 해야할 일은 단 한 가지, 유방확대수술뿐이다. (수술이 경제적으로 어렵다면, 스포츠신문들과 손잡고 수술 여부 논란이라도 일으키는 공동마케팅 전략이 절실하게 요구되는 시기다.)
2003년 말미에 KBS 폭소 클럽에 등장한 신고은은 <아기공룡 둘리>, <개구리 왕눈이>와 같은 동요풍의 애니메이션 테마곡들을 R&B로 능숙하게 재해석해내는 놀라운 보컬리스트다. 평소 칭찬에 인색하기로 유명한 소품담당 알바생조차 녹화를 지켜 본 후 "이태원 근처에서 많이 놀아봤지만, 이토록 본토 R&B의 느낌을 능수능란하게 보여주는 가수는 처음이다."라고 인정할 정도로 뛰어난 실력을 가지고 있다는 후문이다. 희비덕 거리는 목소리 뒤집기와 장님 코끼리 다리 만지는 손놀림, 한마디 안에 십수개의 음을 예사로 집어넣는 보컬 애드립 등 그 자체로 한국형 R&B의 교본을 제시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뛰어난 자질을 보여주고 있는 그녀에게 현재 유일한 약점으로 지적되고 있는 것은 '한국말을 너무 잘한다'는 것인데, 별 일 없더라도 미국에 몇 년 좀 갔다 오는 것이 앞으로 정상급 R&B 보컬리스트로 인정받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과제라고 할 수 있겠다. 그리고, 그 유학(이라고 하는 것이 좋다.) 기간동안 반드시 유념해야 할 것은 '대충 시간이나 좀 때우다 오겠다'는 안이한 생각은 철저히 버리고, 한국말을 잊어 먹기 위해 피나는 노력을 경주해야 한다는 것이다. (영어는 배우지 못해도 괜찮지만, 한국말을 못하지 못하는 것은 안 된다.)
그 밖에도 북한 특유의 감성과 음악적 트렌드를 수용하여 통일의 메시지를 전하는 한편 노골적인 핸드 씽크로 열악한 방송환경에 대한 불만을 강하게 드러냈던 국민 록 밴드 꽃봉오리 예술단, 밀리언셀러 가수 부럽지 않은 탁월한 가창력의 소유자 이재훈의 솔로와 3인조라는 사실이 믿기 않는 화려한 화음이 인상적인 아카펠라 그룹 도레미 트리오, 당장 미사리에 투입되어도 손색이 없을 감미로운 어쿠스틱 기타의 진부한 앙상블을 보여주는 포크 듀오 화니 지니 등 여러 개그맨들이 싱잉엔터테이너로서의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또한, 한국 음반업계와 대중들의 도덕적 불감증을 대놓고 비웃으며 수년 전 표절곡으로 판명난 곡을 다시 당당하게 수록하는 갈갈이 패밀리의 [Summertime] 앨범의 대담한 시도도 눈길을 끈다. (과연 그 곡의 저작권료는 누구에게 지불되었을지 무척 궁금해진다.) 이 쪽 씬의 음악을 지켜보면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이러한 개그맨들이 보여주는 음악적 다양성이 한국공중파 TV 음악프로그램들이 보여주는 그것에 비해 오히려 앞선다는 점으로, 개그맨들과 방송사가 함께 만들어낸 이 시대 최고의 코메디로 박수 받을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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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소토 유니온!!! 강추입니다...!!!
버블 얼바노 아소토유니온 나윤선 휴 앤드 더준 다 좋다는